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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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良書)라 함은 바로 이런 책을 가리키는 것.

 

흔히 사람들이 '가난'에 대하며 보이는 태도들, 말하자면 '배운 사람'의 입장에서 경솔하게 특정 이론을 들이밀며 끼워맞춰 설명하려 하거나,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경망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며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겠다고 하거나... 그런 모습들이 이 책에선 보이지 않는다. 저자 자신은 충분히 그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번도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대학의 사회학 교수. 그녀가 유니세프의 연구비 지원으로 시작된 철거지역 주민들에 대한 현장 연구는, 이러저런 인연이 얽혀 스물 두번째 해에는 다큐멘터리를, 스물다섯해에는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감히) 가난했다고 말할 수 있을 나의 어린 시절과,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가난했던 나의 친척들, 동네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 스스로 반추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산체스네 아이들>을 소개하면서 말했듯이 '빈곤 문화'의 유형으로 '역사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면,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얼마나 '변혁적인'(!!) 힘인지!!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껏 어머니 아버지의 어린시절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가끔 술 드시고 푸념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 까지는 아니어도, 어머니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에 많이 고팠었던 것 같다. 가난해도 스스로를 자학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인생서사, 나에겐 그런 것이 필요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충분히 그래도 좋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한번도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셨다. 내 가족사에서 가장 큰(?? 가장 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불행이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주민들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연구조교의 이야기가 여러차례 나온다. 그녀는 섣불리 가난의 '문화적 조건'을 규정하고 그런 문화를 비난하고는 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들을 만난 25년의 세월은 이를 '문화적 조건'이 아니라 '문화적 결과'로 바라보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끈질기게 포착해 낸다.

 

이 책을 문학의 한 장르로서 '르포'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르포를 쓰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끈질김, 인내, 그리고 성숙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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