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이란 무엇인가 개념어총서 WHAT 3
김영진 지음 / 그린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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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두 철학자가 쓴, <불교가 좋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불교 관련 책. 첫번째 책이 비교종교학의 입장에서 불교가 가톨릭등 다른 종교에 비해 자연과 생명에 대한 더 폭 넓은 이해를 갖고 있음을 '자랑'(?)하는 책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좀 더 심오한 불교의 세계로 안내한다.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 그런데 이 공개념은 불교 내에서도 초기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 갖는 차이가 크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기의 공개념은 '공'이라는 실체를 가정하여 존재와 비존재와는 또 다른 제3의 실체를 가정한다면, 대승불교(이 책에서는 주로 대승불교의 공개념을 가장 극한적으로 사고한 나가르주나)에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말한다.

 

전자의 것이 외려 노자의 <도덕경>과 맞닿아 있다면, 후자의 것은 니체의 니힐리즘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니힐리즘이 꼭 염세주의나 극단적 허무주의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가르주나의 공개념은 존재의 가능근거에 대한 통속적인 이분법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연기설을 벗어나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주체의 자리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주체관을 성립시키려는 노력이다. 즉 인과론("씨앗에서 싹이 튼다"와 같이 변화의 가능근거가 본래 주어져 있다는 생각)과 우발론("씨앗에서 싹이 트지 않는다"와 같이 변화의 가능근거는 외부로부터 우발적으로 주어진다.)는 두 통념에 대해 이중적인 부정을 통해 주체의 자리는 본래부터 공(空)했으며, 그것은 연기(緣起)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굳이 현대에 적용하자면, 근대적인 자아개념은 설자리가 없다. 나가르주나는 데카르트와는 완전 상극이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공개념은 허무주의가 아니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는 순간 참 허무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체가 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저자는 공개념으로도 윤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연기의 과정중에도 공으로서 스스로를 일깨우는 주체라도 있어야 윤리를 행할 것 아닌가?

 

대승불교의 전통이 개인적 수양론을 배제하고 중생 속에서 끊임없는 구도의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 윤회를 거부하지 않는 다는 점에는 호감이 가나, 과연 누가 주체를 지워버린 자리에 떠도는 공개념을 포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오히려 자기상실을 통해 타자와의 합일을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은 데카르트를 존경한다고 말한 함석헌의 주장이 더 끌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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