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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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책만 좋아한 나는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데다 아주 못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면 편하고 재미있는데. 걷기도 귀찮은데 전속력으로 100m를 달려야 하다니. 난 숨쉬기 운동만으로도 충분한데 철봉에 숨이 막힐 때까지 매달려야 하다니. 키도 작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멀리 못 나가는데 기를 쓰고 멀리 뛰어야 하다니. 결국 발야구를 하면 파울만 나오고, 100m19초가 최고 기록인 데다, 멀리 던지기를 하면 코 앞에 떨어졌다. 체육 시간이 그렇게 귀찮고 싫을 수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요가를 배우면서부터였다. 힐링 요가부터 시작한 나는 운동이 편하고, 긴장이 풀리며, 좋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때부터 조금씩 운동을 해서 요즈음은 주로 스트레칭을 즐기고 있다. 긴장하거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날 밤에 온 몸을 꼼꼼히 스트레칭 해서 늘려 주면 전신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과 함께 잠도 잘 오고 개운해졌다. 이제는 근 손실을 막기 위해 근력 운동도 조금씩 한다. 그러나 달리기라면 내게는 아직도 먼 얘기다. 신호등에서 100m만 달려도 숨이 가쁘고 진이 빠지는데, 달리기라니. 마라톤이라니.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받은 <종이달> 등 많은 작품을 쓴 작가 가쿠타 미쓰요 역시 책벌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주말마다 달린다. 그것도 10km씩 이나.
하지만 달리기를 그리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오고 있으면 아 오늘은 안 달려도 돼하는 안도감을 느끼고, 마라톤에 출전해서는 끝나고 맥주. 맥주. 맥주. 맥주를 되뇌거나 끝나고 목욕. 목욕. 목욕. 목욕을 되뇌며 달린다. 골인 지점에서는 ! 완주다! 골인이다!”가 아닌, “,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돼라고 안도한다. 하긴. 10km~40km를 몇 시간에 걸쳐 달리는 일이 그리 가뿐하거나 너무 재미있어서 기쁘지는 않겠지.
그러나 가쿠타 미쓰요는 계속 달린다. 비록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달리려고 하다가 하루만 달리거나, 마라톤 전에 인터벌 훈련을 하려다 힘들어서 전력 질주를 조금씩 빼먹기도 하지만. 꾸역꾸역 달린다. 수행에 가깝다.
이 책에는 가쿠타 미쓰요가 매 주말 달리고 마라톤에 출전하는 이야기와 함께, 지면에 운동에 대한 글을 싣기 위해 W군의 안내로 여러 운동을 체험해보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 요가, 맨발에 가까운 채로 얇은 신발을 신고 달리는 베어풋 러닝, 등산, 밤에 하는 하이킹, 심지어는 와인과 풀 코스 요리를 먹으며 달리는 마라톤 등을 체험하는 흥미로운 에세이다.
그는 가끔 러너스 하이를 맛보기도 한다. 같은 등산을 하더라도 괴롭고 힘들 때가 있는 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깔깔거리고 웃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러너스 하이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 이유를 가쿠타 미쓰요는 함께 등산하는 사람과의 합이나 분위기에서 찾는다.
등산에 따라 나섰다가 천식에 걸려버려 그 후로는 절대 등산을 하지 않는 내게도 이런 날이 언젠가 오기는 할까. 러너스 하이는 커녕 격력한 운동만 하면 기진맥진해버리기만 했던 내게는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기분이다. 어쩌면 마라톤을 하며 각종 와인을 마시고, 전채 요리부터 스테이크에 디저트까지 풀 코스 요리를 먹는다는 메독 마라톤이라면 가능하려나.
10m도 달리고 싶지 않았던 나였는데, 온통 달리고, 매달리고, 산을 오르는 이 에세이를 덮는 순간 나도 달리고 싶어졌다. 다음 주말에는 한강변에 나가서 달려 볼까. , 코로나 때문에 산책로가 폐쇄되었지. 요즈음은 날도 꽤나 덥다. 여전히 내게 운동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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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알면 어휘가 보인다 : 기초한자 700 한자를 알면 어휘가 보인다
큰그림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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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한자를 싫어했었기 때문일까. 한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시험 기간 뿐 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본 후, 시험이 끝나면 모두 잊었다. 또 다음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하고, 시험보고, 잊었다. 중고등학생 때 열심히 한자 공부를 했지만 지금 내 머리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다행히 한자와 별 관련 없는 삶을 살아 와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나이가 드니 한자를 잘 모르는 게 좀 컴플렉스가 되었다. 특히 쉬운 한자로 된 표지판이나 간판, 또는 한자가 섞여 있는 글을 읽지 못할 때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싫어한 한자 공부를 이제라도 다시 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한자 한 자, 한 자를 위주로 학습하기 보다 단어 안에서 한자를 공부하도록 했다. 물론 각 한자의 획순이며 음과 뜻을 설명해 놓았지만, 그 한자가 들어간 단어 역시 함께 쓰고 배우며 한자를 익히도록 했다.
(생각 사)를 배우며 思考(사고), 深思(심사), 思慕(사모)를 공부한다. (생각 사)와 함께 考(생각할 고), (깊을 심) 자 등을 익힐 수 있고, 思考(사고), 深思(심사), 思慕(사모)의 뜻까지 한자로 해부되어 다시 한 번 잘 숙지하게 된다.
이렇게 단어를 통해 한자를 공부하니 더 잘 외워지는 기분이다. 책에 나온 따라 쓰기만으로도 모든 한자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급수별로 외우다보면 지겨워질 수 있는데, 다양한 난이도로 다양한 단어를 가지고 공부하니 훨씬 공부하기 재미있다.
, 13일 동안 마스터하게 되어 있는데 하루 치를 다 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루의 분량이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한자 공부가 지겹거나 어려운 사람,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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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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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여동생을 잃고, 수용소에서 처참한 광경을 보고 듣고 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전쟁 후 고아가 되어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소년에게 삶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에게 신이란 무엇일까. 과연 신은 있는 것일까. 그저 삶을 살아가기는 것도 벅차 보이는 이 상황에서 엘리 위젤은 배움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인생 후반기에는 그 배움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없어지고 나치는 심판을 받았지만, 엘리 위젤은 현대에도 그와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은 난민들과 분쟁지역, 학살현장을 찾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끔찍한 경험은 그에게 상흔을 남겼음이 틀림없지만, 그는 사정이 바뀌었을 때 복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의 핍박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국가 수상을 만나는 등의 행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오히려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바꾸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엘리 위젤의 제자였던 아리엘 버거가 엘리 위젤의 가르침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해 엘리 위젤의 사상을 전한다.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과 같은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이혼한, 가치관이 정반대인 부모님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많은 물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연히 엘리 위젤의 강의를 듣고, 그에게 소개되었던 아리엘 버거는 랍비가 되려는 공부를 하다가,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엘리 위젤의 조교가 되어 박사 과정을 밟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이 위대한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고 그 수업을 지켜본 후 엘리 위젤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수업 외에도 엘리 위젤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아리엘 버거의 많은 물음은 깨달음으로 바뀐다.
엘리 위젤의 수업 방식은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엘리 위젤이 답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목회자부터 학생, 회사원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손과 나치 장교의 자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상반되는 입장이 부딪히며 활기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엘리 위젤은 신앙과 행동주의, 세상의 광기, 기억, 다름 등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답변한다.

강의 시간에 당신 이야기를 꼭 다같이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했었지요. 그건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가 더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고통을 다리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밟고 지나가며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p. 48)


그는 홀로코스트의 목격자였다. 홀로코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라는 소설도 출간했지만 너무 끔찍하여 그 안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목격한 것에 대한 행동을 촉구했다. 어떠한 작은 것이 되었든 말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야말로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해서 평생 행동해온 사람이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염려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거나 그 반대거나, 주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그냥 돌아서거나, 혹은 할 일이 많다고만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작은 행동이라도 직접 나서거나이런 모든 사소한 순간과 선택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p. 274)

아직도 홀로코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엘리 위젤은 셔츠를 걷고 팔에 새겨진 수인 번호를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히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의 강의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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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인생이니까 -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김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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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특히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 때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는 내 거의 모든 걸, 공부 또는 일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과 공부가 항상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제일 높은 우선순위를 가졌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런 열정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할 수록 내가 점점 소진되고 불행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 때는 한 박자 쉬어가고, 간간이 삶에 여유를 갖고 휴식하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건강이나 운동, 가족, 내 취미 생활 등 일 외의 것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꼭 위대한 일을 이루어야 좋은 삶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서른 여섯의 김신지 작가 역시 말한다. 모두가 빅 픽처를 그리며 내달리고 있지만 그는 매일 매일, 100, 1000개의 스몰 픽처를 보면서 살고 싶다고.

오키나와 노인들의 장수 비결은 80퍼센트만 먹고 80퍼센트만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덜 먹고 덜 애써야 할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토록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알려 준 적 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p. 5)


그렇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일찍 퇴근하여도 저녁을 먹고 나면 늦은 밤인 이어진다. 주말이 되면 멋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수목원 가는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곧 후회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그저 버리는 시간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평일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곤 한다.
이사를 가게 되면, 살던 동네의 좋았던 곳들을 마지막으로 찾는 행복을 만끽한다. 여행지에서는 빡빡하게 일정을 채워서 피곤해질 때까지 돌아다니기 보다는, 하루에 중요한 계획을 하나만 세우고, 나머지는 우연과 인연에 기대 즐거운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회사를 옮기고 너무 심하게 바빠져서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없어지면, 출근 전에라도 시간을 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하루의 쉼표를 만든다. 어쩌면 김신지 작가는 어떠한 불행한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좋았던 장소에 두 번 가는 일, 쉬운 듯 보여도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여행에서라면 더더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 같은 장소에 두 번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한다.
(p. 159)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기는 어렵지만, 김신지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한다. 비록 영향력이 그렇게 크진 않을지 모르지만,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우리나라에서, 김신지 작가는 어쩌면 가장 성공한 사람인지 모른다. 금전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혼자인 길을 함께 걸어주는 것은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다 누군가는 마침내 원하던 곳에 닿고, 누군가는 닿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건 여전히, 그리 중요한 일을 아닐 것이다.
(p. 195)


가볍고 재미있는 에세이들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행복한 순간들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었다. 읽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에세이이다. 삶에 지친 날 따스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김신지 작가의 책을 읽는다면, 많은 위로를 받고, 그 날의 불행을 조금은 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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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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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집을 잘 보지는 않는다. 내게는 너무 난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압축된 시어들 사이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다 보면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애쓰기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박준 시인만큼은 읽고 싶었다. 박준 작가의 시집이 베스트셀러였고,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어서만은 아니다. 박준 시인에 대한 인터뷰나 그의 에세이 같은 이런 글 저런 글을 읽다 보니 나는 그만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박준 시인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시를 쓰기 때문에 시를 쓴다는 것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것 같다고 한다. 인상적인 시론이었다.

방에서 독재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 <
여름에 부르는 이름>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이라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먼저 읽었다. 그의 경험에 대해 읽고 나서 그의 시를 읽으니, 좀 더 시가 가까이 다가왔다. 박준 시인의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따라다녔다. 심지어는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의 그림자 때문에 들어오는 일을 내치지 못하고 모두 하다가 너무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그 근원을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찾았다.
그는 어린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첨성대에 올라가고, 무령왕릉에 들어갈 때, 그는 무료하게 혼자 보내야 했다.

그 때, 수학여행에 못 가고 벤치에서 몸을 김밥처럼 말아넣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첨성대를 돌아 천마총으로 향하고 있었을 겁니다 뒷산에서부터 저녁이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놀이, 혀가 마른 입술을 아리게 만나는 놀이, 시소가 떠난 무게를 기억하는 간단한 놀이, 누가 부르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는 놀이들을 모래에 섞어 신발에 넣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면 경주는 많이 갔다 와봐서, 바다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어라고 신발을 털며 말하고 싶었지만
- <
천마총 놀이터>

그의 시는 마냥 감성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았고 결코 가벼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도저히 해독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 보이지도 않았다. 박준 시인을 겹겹이 둘러싼 인생이 토해내는 시들은 내 가슴에 슬며시 스며들었다.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조만간 박준 시인의 또 다른 시집을 들고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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