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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인생이니까 -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김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어렸을 때, 특히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 때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는
내 거의 모든 걸, 공부 또는 일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과
공부가 항상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제일 높은 우선순위를 가졌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런 열정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할 수록 내가 점점 소진되고 불행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 때는 한 박자 쉬어가고, 간간이 삶에 여유를 갖고 휴식하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건강이나 운동, 가족, 내 취미 생활 등 일 외의 것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꼭 위대한 일을 이루어야 좋은 삶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서른 여섯의 김신지 작가 역시 말한다. 모두가 빅 픽처를 그리며 내달리고 있지만 그는 매일
매일, 100개, 1000개의 스몰 픽처를 보면서 살고 싶다고.
오키나와 노인들의 장수 비결은 80퍼센트만 먹고 80퍼센트만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덜 먹고 덜 애써야 할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토록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알려 준 적 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p. 5)
그렇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일찍 퇴근하여도 저녁을 먹고 나면 늦은 밤인 이어진다. 주말이 되면 멋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수목원 가는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곧 후회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그저
버리는 시간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평일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곤 한다.
이사를 가게 되면, 살던 동네의 좋았던 곳들을 마지막으로 찾는 행복을 만끽한다. 여행지에서는 빡빡하게 일정을 채워서 피곤해질 때까지 돌아다니기 보다는, 하루에
중요한 계획을 하나만 세우고, 나머지는 우연과 인연에 기대 즐거운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회사를 옮기고 너무 심하게 바빠져서 자신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없어지면, 출근
전에라도 시간을 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하루의 쉼표를 만든다. 어쩌면 김신지 작가는 어떠한 불행한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좋았던 장소에 두 번 가는 일, 쉬운 듯 보여도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여행에서라면 더더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 같은 장소에 두 번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한다.
(p. 159)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기는 어렵지만, 김신지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한다. 비록 영향력이 그렇게 크진 않을지 모르지만,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우리나라에서, 김신지 작가는 어쩌면 가장 성공한 사람인지
모른다. 금전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혼자인 길을 함께 걸어주는
것은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다 누군가는 마침내 원하던 곳에 닿고, 누군가는 닿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건 여전히, 그리 중요한 일을 아닐 것이다.
(p. 195)
가볍고 재미있는 에세이들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행복한 순간들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었다. 읽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에세이이다. 삶에
지친 날 따스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김신지 작가의 책을 읽는다면, 많은 위로를
받고, 그 날의 불행을 조금은 씻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