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고, 수용소에서 처참한 광경을 보고 듣고 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전쟁 후 고아가 되어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소년에게 삶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에게 신이란 무엇일까. 과연 신은 있는 것일까. 그저 삶을 살아가기는 것도 벅차 보이는 이 상황에서 엘리 위젤은 배움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인생 후반기에는 그 배움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없어지고 나치는 심판을 받았지만, 엘리 위젤은 현대에도 그와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은 난민들과 분쟁지역, 학살현장을 찾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그들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끔찍한 경험은 그에게 상흔을 남겼음이 틀림없지만, 그는 사정이 바뀌었을 때 복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의 핍박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국가 수상을 만나는 등의 행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오히려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바꾸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엘리 위젤의 제자였던 아리엘 버거가 엘리 위젤의 가르침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해 엘리 위젤의 사상을 전한다. 아리엘 버거는 엘리 위젤과 같은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이혼한, 가치관이 정반대인 부모님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많은 물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연히 엘리 위젤의 강의를 듣고, 그에게 소개되었던 아리엘 버거는 랍비가 되려는 공부를 하다가,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엘리 위젤의 조교가 되어 박사 과정을 밟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이 위대한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고 그 수업을 지켜본 후 엘리 위젤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수업 외에도 엘리 위젤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아리엘 버거의 많은 물음은 깨달음으로 바뀐다.
엘리 위젤의 수업 방식은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엘리 위젤이 답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목회자부터 학생, 회사원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손과 나치 장교의 자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상반되는 입장이 부딪히며 활기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엘리 위젤은 신앙과 행동주의, 세상의 광기, 기억, 다름 등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답변한다.

강의 시간에 당신 이야기를 꼭 다같이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했었지요. 그건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가 더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고통을 다리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이 그 다리를 밟고 지나가며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어야만 합니다.
(p. 48)


그는 홀로코스트의 목격자였다. 홀로코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라는 소설도 출간했지만 너무 끔찍하여 그 안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목격한 것에 대한 행동을 촉구했다. 어떠한 작은 것이 되었든 말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야말로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해서 평생 행동해온 사람이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염려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거나 그 반대거나, 주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그냥 돌아서거나, 혹은 할 일이 많다고만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작은 행동이라도 직접 나서거나이런 모든 사소한 순간과 선택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p. 274)

아직도 홀로코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엘리 위젤은 셔츠를 걷고 팔에 새겨진 수인 번호를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히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의 강의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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