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 평생 동안 서로를 기억했던 한 사자와 두 남자 이야기
앤서니 에이스 버크.존 렌달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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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즈음이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누군가가 카톡으로 전해 주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사자 한 마리와 두 남자의 재회 장면이 있었다. 사자는 거의 야생과 비슷한 환경에 있었고, 두 남자는 사자가 어릴 때 키운 사람들이었다. 한동안 야생 적응 훈련을 하느라 보지 못했던 사자와 두 남자가 반갑게 재회했다. 사자의 움직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느릿느릿 다가오다, 두 사람을 알아보고 급하게 달려와 안겼다. 다 자란 듯 보이는 사자인데. 최상위 포식자가 귀엽게 애정을 표하다니. 거기다 한참을 떨어져 있었어도 주인을 알아보고 달려오다니.



그 사자의 이름은 크리스티앙이었다. 크리스티앙을 키웠던 앤서니 에이스 버크와 존 렌달이 크리스티앙을 키우고 아프리카로 보낸 이야기를 쓴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1969
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시절 런던의 유명한 헤롯 백화점에서는 뭐든지 살 수 있었다. 그게 아기 사자라도 말이다. 가난한 여행자였던 앤서니와 존은 한 번 헤롯 백화점에 구경을 하러 갔다가 크리스티앙을 보았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에게 완전히 빠져서, 갑자기 사자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호주머니를 털어서 크리스티앙을 샀다.
아직은 귀여웠던 크리스티앙은 두 남자가 일하던 가구점에서 살게 되었다. 크리스티앙을 위해 만든 지하 공간에서 지내기도 하고, 가구점의 계단에 앉아 있기도 하고, 주변의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 앤서니와 존과 뛰어다니며 운동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크리스티앙을 만나러 가구점에 오고, 일부러 그들의 가구점에서 가구를 사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크리스티앙의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지고, 포효할 수 있게 되면서, 슬슬 문제가 생겼다. 지루해하는 크리스티앙을 보는 것도 아슬아슬했고, 이제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가구점에 들어오지 못했다.
앤서니와 존은 결국 사자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크리스티앙을 보내기로 했다. 크리스티앙은 나무 상자에 갇혀서 열 다섯 시간을 비행해 아프리카로 가야 했고, 야생 적응 훈련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다른 사자와 지내야 했다.
크리스티앙은 잘 해냈다. 그는 강하고 큰 사자였고, 행운은 그의 편이었다. 사자의 야생 적응 훈련이 사실 쉽지만은 않다. 충분히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맹수이기도 하고, 야생에는 그들을 견제하는 다른 사자도 있다. 때로는 다른 사자가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사냥을 하다 커다란 물소의 뿔에 받히기라도 하면 큰 상처를 입는다. 강에는 악어가 득실대서 작은 사자에게는 위험하기도 하다.
사자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했던 조지는 그런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자를 잃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조지의 프로젝트가 원성을 사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동물의 야생 적응 프로젝트가 좋은 인식을 얻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야생 동물이 왜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서 지겨운 날들을 보내야 하는가? 아프리카의 초원을 누벼야 하는 사자가 왜 서커스단에서 조련되며 사자 입장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묘기를 선보여야 하는가? 그들의 본성을 누르고, 자유와 행복을 저당잡히면서까지.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을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것뿐이지 않은가. 이 책은 지구에서 사람과 야생동물이 어떻게 행복하게 동거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크리스티앙과 두 남자의 우정과, 크리스티앙이 야생에 적응하며 한 모험 이야기 못지 않게 중요한 이야기이다.

크리스티앙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애쎴던 앤서니와 존은 그 이후, 야생동물의 보호에 관한 활동을 하게 된다. 한 마리의 다정한 사자가 두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두 남자 또한 크리스티앙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어린 시절 그들이 쏟아부은 사랑 덕에 아마도 크고 강한 사자로 자라지 않았을까?
시선을 끄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볼 것도 많은 이야기였다. 유튜브의 놀라운 영상에서 시작해서 사람과 동물의 우정, 야생동물 보호까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벌써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크리스티앙의 영상을 보았다면, 그 안에 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전해지지 못한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충분히 즐겁고 의미있는 것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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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3
메리 셸리 지음, 김나연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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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지만, 괴물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프랑켄슈타인>은 사실 괴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이 굉장히 많은 고전이었다. 단순히 괴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읽기에는 무거운 주제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남극을 항해하는 월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극에 가까워진 후 거대한 괴물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쓴다.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지나간 그 거대한 괴물에 이어서, 유빙에 실려 떠내려온 사람을 구조한다. 그가 바로 빅터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어서 빅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사촌 엘리자베스와 친구 앙리, 하녀 유스틴과 어린 동생들, 아버지와 함꼐 유복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성장해서는 자연 철학에 심취하여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생명 현상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생명의 원리를 꺠우친다. 그리고 밤낮을 바쳐 연구하며 그 생명을 불어넣을 육신을 만든다. 그 육신은 사람 크기로 만들기가 불가능해서 거대해졌다. 피폐해져 가면서 실험을 거듭하고, 드디어 육신에 생명을 불어넣은 날. 그는 도저히 자신이 만들어낸 생명체를 보지 못하고 실험실을 뛰쳐나가 버린다. 너무나 흉측한 외모의 괴물이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실험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외모가 별로 보기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작업을 이어 갔으나, 막상 그 육신이 생명을 가지니, 도저히 마주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크게 충격을 받은 빅터는 거리를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고, 집 안에 그 괴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심한다. 그렇게 그의 실험은 자연 철학에 대한 혐오감만을 남기고 마무리 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괴물은 어딘가에 살아 있다가 빅터에게 마수의 손길을 뻗는다. 빅터의 창조로 갑자기 생명을 얻은 괴물. 그는 괴물이기는 했지만 하나의 생명체이며 인격체였다. 그에게도 감정이 있고, 섬세한 감성과 인지 능력이 있고, 소망과 미덕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흉측함으로 인해 상처만 얻는다.
살아있는 생명체이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괴물. 그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그도 사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닐까? 최소한 창조자인 빅터라도 괴물을 돌보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모두에게 거부당하고, 선의마저 왜곡되는 단 하나의 이유는 그의 외모.
선함으로 가득하던 그의 인성이 빅터를 향한 복수로 이글대고, 파국으로 치닫는 이 소설을 읽으며,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을 생각할 줄이야 몰랐다.
괴물이 나오는 SF 소설의 시초이지만, 절대 재미있기만 하지는 않았다. 작가인 메리 셸리의 평탄하지 않았던 인생에서 길어 올려진 이야기여서 였을까. 아픈 이야기이기도 했고, 끔찍한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인류의 편견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외모 때문에, 갖고 있는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또는 극심한 가난 때문에, 무시당하고 천대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사람들을 차별하는 매정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쉽게 공감하고 동의해 버리는가? 메리 셸리가 그려낸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을 보면서,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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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동물 자수 - 사랑스러운 26가지 작품과 패브릭 소품 만드는 법 수록
치치 지음, 수키 옮김 / 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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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자수에 빠져서, 티코스터를 만들고, 지갑나 손거울, 손수건 등을 만들어 선물했다. 지금은 파우치를 만들고 있다. 사실 프랑수 자수를 하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동생이 십자수인줄 알고 시킨 키트가 사실은 프랑스자수 키트였고, 이미 배송되어 버린 것, 어찌어찌해서 설명서를 보면서 수를 놓다 그만 빠져버린 것이다. 아무려면 어떠나. 좋기만 한 걸. 그 이후 프랑스자수로 소품을 만드는 재미에 밤마다 바늘을 잡았다. 수를 하나 하나 놓는 과정도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즐겁기도 했고, 소품을 완성해 내가 쓰거나 선물을 하면 정말 뛸 듯이 기뻤다.

해 본 자수 도안은 주로 꽃무늬였다. 지금 하고 있는 도안은 앨리스이지만, 그 전에 한 것은 모두가 꽃무늬 도안이었다. 사실 꽃무늬가 어떤 소품에나 무난하기는 하지만, 다른 도안도 해 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만났다.
<
이야기가 있는 동물 자수>에는 너무나 귀여운 동물들이 나온다. 사슴, 토끼, 다람쥐, 고슴도치, 아기 돼지 등등. 처음 접해보는 너무나 예쁜 자수 도안에 따라 해 보고 싶은 의욕이 마구 솟구친다.



뒷부분에는 이런 동물 자수를 활용해서 소품을 만드는 법도 설명되어 있다. 별 모양 동전지갑이라거나, 파우치라거나, 테이블 매트라거나. 소품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 유용한 부분이다. 사슴이 수 놓아진 동전 지갑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꼭 만들어보고 싶다.


책 앞 부분에는 완성된 자수 소품 및 작품 사진이 주욱 있어 탄성을 지르며 보게 된다. 뒷 부분에는 실물 크기 도안과 소품 만드는 법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자수 놓는 법에 대한 팁도 있다. 사실 나는 그냥 설명서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프랑스자수를 시작해서, 잘 모르던 팁도 있었다. 여태 프랑스자수를 할 때 매듭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니. 내게 아주 유용한 부분이다.


다양하고 특이한 동물 자수 도안으로 소품을 만들어 볼 기대에 차 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예쁜 동물 자수가 밤마다 날 즐겁게 해 줄 것 같다. 프랑스자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꽃 무늬만 수놓아 본 사람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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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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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든다. 열심히 듣거나 읽어 봐도 아리송하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한 것을 이렇게 어렵게 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철학서는 원전보다는 해설서를 선호한다. 해설서를 읽은 다음에 원전을 읽는 것이 로망인데, 아직은 펼쳐본 원전이 없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역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쉽게 풀어 주어, 철학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의 말에 공감도 하고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술술 읽힌다거나, 책장이 팔랑팔랑 넘어가는 수준은 아니어도, 중간에 조금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풀이해주는 중간 중간에 원전을 인용하기도 했다. 해설을 읽고 나니, 알 듯 말 듯 했던 원전도 이해가 갔다. 원전을 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라는 것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다. 이 의지에 의해서 사람에게는 욕구가 생기고, 너와 나의 욕구가 충돌하면서 고통이 생긴다. 그러나 너의 욕구와 나의 욕구는 하나의 의지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을 쇼펜하우어는 동고라고 한다. 높은 인식으로 동고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고통, 다른 동식물의 고통, 세계의 고통까지 자신의 고통으로 느껴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의지를 인식한 결과이다. 인간은 세계 전체를 다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부분만을 인식한다. 이것이 바로 표상이다 이 때, “충분근거율이라는 것을 통해 의지를 표상한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존재의 근거율), 무언가 새로 만들어지는 데는 원인이 있고(생성의 근거율), 이성의 논리 규칙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인식의 근거율), 동기가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행위의 근거율). 인간은 이 네 가지 충분근거율로 세계를 표상으로 정립한다.
(p. 72)



이렇게 다소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을 읽고 나면 이 책의 백미인 뒷부분을 만나게 된다. 철학 책을 읽으며, 맞아, 맞아, 하고 동감하면서 웃기도 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고통 없이 쾌락만 얻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인간들은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려면 쾌락까지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만을 피하는 방법이란 없다.
(p. 108)



의지는 끊임없이 뻗어나가는데, 그 뻗어나감이 방해 받으면 고통이 생긴다. 그 뻗어나감의 모든 단계에서 의지의 잠정적인 목표가 방해 받을 때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목표가 충족될 때는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목표가 충족되고 나면 다시금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게 마련이라 그 만족은 너무나 일시적이다.
(p. 132)



대학 입학에 성공하면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금세 취업이라는 문이 기다리고 있다. 무사히 취업을 하면 이제 결혼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고, 결혼을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하자 마자 육아의 고생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달려가는 우리 인생에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의지의 잠정적인 목표가 충족되어 만족을 느끼게 되면 인간은 또 권태를 느끼게 된다.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는 권태를 느끼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시계추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57) 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 133)



바쁠 때는 좀 한가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한가해지면 바빠서 미루었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는커녕 졸음만 쏟아지던 날들이 떠오른다.



일을 열심히 해야 노는 것도 재미있어진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우에도 그 하고 싶은 일이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 더군다나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라도 계속하면 하기 싫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
(p. 134)


그러니 행복이 있으려면 필연코 고통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다. 그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p. 134)



이렇게 재미있는 구절이 많은 철학 책이라니. 저자의 쉽고 명쾌한 해설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맹목적인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금욕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 말미에는 같이 읽으면 좋은, 쇼펜하우어의 다른 저작이나 다른 철학자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다소 염세적인 쇼펜하우어가 펼치는 행복론이라거나.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동양 철학을 함께 분석한 책이라거나. 관심 가는 책이 많이 생겼다.
크게 어렵지 않고 즐겁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은근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지적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독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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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무선 보급판) 디 에센셜 에디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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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라고 하면 여러 악행으로 유명하다. 연인과 몇 번씩이나 자살 시도를 하고, 연인은 세상을 떠났으나 그 자신은 자살에 실패한 일을 거듭했다거나. 약물에 중독되었다거나. 어떤 이는 다자이 오사무가 나약하다고 공격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사실은 나도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읽지 않았어도 그의 이런 뒷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 다자이 오사무라면 뜨악하기도 했다.

<디 에센셜> 시리즈가 하도 매력적인 책이라, 다자이 오사무를 읽게 되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적인 일화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그의 작품은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았다.
그러나 큰 기대 없이 펼쳐본 그의 소설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요즈음 MZ 세대에게 하도 인기를 끌어서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리커버해서 나오기도 하는 <인간 실격> 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문학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걸 경계해서 썼다는 <여치>는 한 고결한 예술가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자 추악하게 타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그 예술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했던 그의 아내가 던지는 뼈 있는 이야기들이 백미였다.
꿈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마치 환상문학 같기도 한 재미를 주는 <포스포렛센스> 역시 인상적이었으며 <비용의 아내>에서는 망가지고 허물어진 비용에 대비되는 그의 아내의 현실 적응력을 보며 감탄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실격>에는 완전히 빠져들어 버렸다. 인간 세계와 인간이란 존재를 두려워하고, 적응하지 못하며, 한 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요조의 이야기였다. 그러한 부적응을 감추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가며 익살을 떠는 것이 그의 삶의 전략이었다. 웃고 있으나, 실은 떨고 있는. 다른 사람을 웃기고 있으나 자신은 살얼음판을 걷는. 그가 성장하고 늙어가며, 인간 사회 안에서 무언가를 해보려 노력하지만, 실은 그 사회에 녹아들 수 없었던 고뇌를 담고 있다.
소심한 사람이라면 일부분이라도 동감할 수 있는 그의 고민과 바보같은 행동들.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만 보는 장면들이 아팠다.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현현과 같기에 그렇게 시리고 아픈 장면들을 쓸 수 있었나보다.
앞 부분이 짧고 간단한 단편들인데에 반해, 뒷 부분으로 갈 수록 점점 다자이 오사무 작품의 매력이 크게 드러났다. 이 책을 덮자 다자이 오사무가 겁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연인에게 피해만 입혔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약물 중독 전적에도 크게 뜨악하지 않는다. 그의 음산하고 어두운 정체성에 그만 공감해버렸다.
이 책 한 권으로 다자이 오사무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이 책이 보여준 그의 정수에,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슬그머니 위시리스트에 넣는다. <디 에센셜> 시리즈가 보낸 초대가 나를 달뜨게 했다. 또 한 명의 좋아하는 작가를 얻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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