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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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부터 든다. 열심히 듣거나 읽어 봐도 아리송하기도 하고, 어쩌면 당연한 것을 이렇게 어렵게 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철학서는 원전보다는 해설서를 선호한다. 해설서를 읽은 다음에 원전을 읽는 것이 로망인데, 아직은 펼쳐본 원전이 없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역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쉽게 풀어 주어, 철학을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의 말에 공감도 하고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술술 읽힌다거나, 책장이 팔랑팔랑 넘어가는 수준은 아니어도, 중간에 조금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풀이해주는 중간 중간에 원전을 인용하기도 했다. 해설을 읽고 나니, 알 듯 말 듯 했던 원전도 이해가 갔다. 원전을 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라는 것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다. 이 의지에 의해서 사람에게는 욕구가 생기고, 너와 나의 욕구가 충돌하면서 고통이 생긴다. 그러나 너의 욕구와 나의 욕구는 하나의 의지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을 쇼펜하우어는 동고라고 한다. 높은 인식으로 동고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고통, 다른 동식물의 고통, 세계의 고통까지 자신의 고통으로 느껴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의지를 인식한 결과이다. 인간은 세계 전체를 다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부분만을 인식한다. 이것이 바로 표상이다 이 때, “충분근거율이라는 것을 통해 의지를 표상한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존재의 근거율), 무언가 새로 만들어지는 데는 원인이 있고(생성의 근거율), 이성의 논리 규칙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인식의 근거율), 동기가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행위의 근거율). 인간은 이 네 가지 충분근거율로 세계를 표상으로 정립한다.
(p. 72)



이렇게 다소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을 읽고 나면 이 책의 백미인 뒷부분을 만나게 된다. 철학 책을 읽으며, 맞아, 맞아, 하고 동감하면서 웃기도 하면서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고통 없이 쾌락만 얻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인간들은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려면 쾌락까지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만을 피하는 방법이란 없다.
(p. 108)



의지는 끊임없이 뻗어나가는데, 그 뻗어나감이 방해 받으면 고통이 생긴다. 그 뻗어나감의 모든 단계에서 의지의 잠정적인 목표가 방해 받을 때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목표가 충족될 때는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목표가 충족되고 나면 다시금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게 마련이라 그 만족은 너무나 일시적이다.
(p. 132)



대학 입학에 성공하면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금세 취업이라는 문이 기다리고 있다. 무사히 취업을 하면 이제 결혼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고, 결혼을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하자 마자 육아의 고생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달려가는 우리 인생에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의지의 잠정적인 목표가 충족되어 만족을 느끼게 되면 인간은 또 권태를 느끼게 된다.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는 권태를 느끼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시계추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57) 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 133)



바쁠 때는 좀 한가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한가해지면 바빠서 미루었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는커녕 졸음만 쏟아지던 날들이 떠오른다.



일을 열심히 해야 노는 것도 재미있어진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우에도 그 하고 싶은 일이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 더군다나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라도 계속하면 하기 싫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
(p. 134)


그러니 행복이 있으려면 필연코 고통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다. 그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p. 134)



이렇게 재미있는 구절이 많은 철학 책이라니. 저자의 쉽고 명쾌한 해설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맹목적인 의지에 휘둘리지 않고 금욕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 말미에는 같이 읽으면 좋은, 쇼펜하우어의 다른 저작이나 다른 철학자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다소 염세적인 쇼펜하우어가 펼치는 행복론이라거나.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동양 철학을 함께 분석한 책이라거나. 관심 가는 책이 많이 생겼다.
크게 어렵지 않고 즐겁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은근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지적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독할 만 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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