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해독 - 그냥 두면 절대 풀리지 않는 피로, ‘만성피로증후군’의 모든 것
알렉스 하워드 지음, 서경의 옮김 / 니들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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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분명 잘 시간이 다 되어도 똘망똘망, 힘이 넘치고 자기 싫었는데, 이제는 밤마다 지쳐 쓰러져 눕는다. 해야 할 많은 일을 해치우고 자리에 눕고 나면, 이불을 끌어다 덮을 에너지조차 없다. 주위에서는 별 달리 무리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여기 저기 쑤시고 저리고 아프고 피곤하단다. 나이가 들면서 에너지가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이 정도로 힘들다면 좀 고민할 만 한다.

<피로해독>의 알렉스 하워드는 그 자신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였다.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증세에 치료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TV나 보던 그는, 삼촌과 운명적 대화를 한 후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그는 만성피로증후군을 극복했으며 피로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피로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는 진정 삶의 전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렉스 하워드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들과 자신이 도운 환자들, 그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주류의학에서는 피로에 대해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 진단할 뿐이다. , 피로는 주류의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다. 피로는 세균 감염도 아니고, 환자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예후도 다르고, 운동 후 급작스럽게 몰려오기도 하고, 무리한 직후가 아닌 한참이 지난 후에 발생하기도 한다. 주류의학은 아직 이 모든 것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알렉스 하워드는 기능적 의학의 관점에서 전체론적으로 접근하여 많은 환자를 도울 방법을 찾아냈다.

기능적 의학은 질병의 기저에 깔린 원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체계 중심의 의학적 접근법을 이용한다. 쉽게 설명해 기능적 의학은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대신 피로의 근본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p. 30)


피로는 성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성취를 극도로 지향하는 성격, 완벽주의자,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자신은 돌보지 않는 조력자, 매사 불안한 사람,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치료를 해서 좋아진다고 해도 다시 악화되기 쉽다. 이전에 살던 방식대로 살다 보면 다시 피로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자신의 성격 유형이 발현되려고 하는 순간을 인지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한다.

경력이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든, 아니면 치유든 우리 몸이 요구하는 휴식의 필요를 무시하고 성취에 맹목적으로 매진하게 되면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p. 72)


마찬가지로 과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라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소화기가 좋지 않거나, 면역 체계가 좋지 않거나, 커피나 당류 등의 자극적인 음식으로 호르몬 균형이 유지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피로를 경험할 수 있다.
회복하기 위한 전략은 사람마다 다르다. 모두가 다른 이유로 피로하기 때문에 식이요법도 자신에 맞는 것을 실천해야 하며,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자신이 스스로 주의 깊게 살펴 꼭 맞는 전략을 써야 한다.

우리 몸 안에는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는데 항상 자신과 소통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먹을 때가 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허기처럼 분명한 것에서부터 잠을 자라고 말해주는 졸린 경우까지 몸은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해준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메시지가 정말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 그 메시지를 듣고 있는가 이다.
(p. 168)


피로에도 유형이 있다. 마음이 괴로워 피로한 정신적 피로, 힘든 감정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 피로, 몸이 과하게 활동했을 때의 신체적 피로, 단조롭고 지루한 주위 때문에 생기는 환경적 피로가 있다. 각각의 경우에 따라 피로의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회복은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먼저 깊은 휴식을 취하다 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조금씩 시도해야 한다. 마음챙김 명상,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올바른 식단,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피로는 백인백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피로한 성격, 카페인 섭취, 정서적 피로 및 신체적 피로가 겹친 것 같다. 이제부터 마음도 여유롭게 가지고, 커피 대신 허브티를 시도해보고, 과도한 일을 잡지 않으며, 내 몸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자고 다짐해본다. 어렸을 때마다 했던 생각, ‘자기 싫어. 하던 거 더 하고 싶어.’ 를 다시 해볼 수 있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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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 대한민국 - 고도성장의 기적 이후, 무엇이 경제 혁신을 가로막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26
박상인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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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우리나라 경제의 재벌 독과점을 감지한 것은 휴대폰 사업에서였다. 십 년 전쯤 모토로라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면서 삼성과 LG만 남았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에는 LG도 휴대폰 사업부를 없앴다. 오로지 갤럭시 하나만 남았다. 갤럭시나 아이폰. 또는 샤오미.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대폰 구매의 선택지는 이렇게밖에 남지 않았다. 이 중 국산은 갤력시 뿐이지만,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갤럭시를 절대 쓰지 않는다. 샤오미의 저렴하고 디자인도 괜찮은 보급 폰은 직구를 해서라도 쓰는 사람이 있다. 소수일 테지만. <지속 불가능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희미하고 모호하게 감지한 재벌의 독과점 현상 및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에 대해서 낱낱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부 때부터 정부 주도의 재벌 육성 및 수출 장려 정책으로 인해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건 그 시절에 적절했던 방법일 뿐, 이제는 그러한 정책으로는 경제 개발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슘페터의 성장이론에서는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기술이 기존에 있던 기득권자들을 대체함으로써 성장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라는 아이디어다.
(p. 48)


오늘날의 세계는 불확실성의 세계다. 누구도 스마트폰과 인터넷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개발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앞으로 발전할 산업 분야나 부상할 기술을 예측해서 지원해줄 수 없다.
한국의 재벌이 처한 상황 역시 문제이다. 서두에 썼듯이 한국의 재벌들은 저가의 가성비 좋은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저가 모델 시장을 뺏기고 있다. 그렇다고 하이엔드 제품을 만들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하이엔드 시장에서도, 로우엔드 시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재벌의 독과점은 한국 경제가 무너질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외의 문제도 양산한다. 무조건 비용을 줄이기 위해 50대의 베테랑 직원들을 정리해고 함으로써, 치킨집을 하는 자영업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한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수는 도산한다. 그렇다고 청년들의 사정이 좋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들은 중소기업의 낮은 보수를 피하고자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를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기 때문에 입사가 늦다. 그런데다 50대에 해고된다면 연금도 많이 받을 수 없어 치킨집으로 내몰리고, 많은 수가 역시 도산한다. 노인빈곤의 원인이다.
이 외에도 탄소중립 문제 역시 심각하다. 중화학공업 등이 발전한 한국에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어마어마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대책이 없다시피 하다. 만약 이 상태로 탄소가격제가 도입된다면 한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바로 재벌 개혁이다. 미국의 뉴딜정책에서 재벌을 해체한 것처럼, 이스라엘에서 재벌을 규제한 것처럼, 중소기업이 살아나고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퇴출장벽도 낮아져서 진정한 의미의 경쟁시장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 개의 재벌이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술 발전도 없고, 하청업체의 기술 탈취나 착취 때문에 소득 불균형 문제 역시 발생한다.
이 상황을 알고 있으나 재벌 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몫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재벌 육성 정책을 폈기 때문에 정치권 역시 움직이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개혁을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런 개혁이 가능할까이다.
(p. 236)


한국 경제가 붕괴된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재벌이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이다.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일반 국민이 똑바로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났던 진보운동과 같은 조직화된 사회 운동과 정치 연대가 필수다.
(p. 231)


경제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이다시피 했으나 이제라도 한국 경제를 읽는 눈이 생겨서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런 서평을 써서 보잘 것 없는 포스팅을 하는 것 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일을 작게나마 해보자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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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존 포슬리노 지음, 강나은 옮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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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죽기 전에 몇 권의 책을 완독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라든가. <신곡> 이라든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월든>이라든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오두막에 대해서 들어 보았고, 월든 호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에서 소로의 오두막을 재현한 사진을 보기도 했다. 마치 <월든>을 읽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익숙한 것들이 많은데 왜 <월든>을 선뜻 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
월든>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책장에서 곰국이 되고 있는 초록색의 그 책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 책 역시 <월든>을 또 한 번 뺐다 넣었다 쓸어보다 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은 소로가 오두막에서 살던 시절을 카툰으로 재현했기 때문에 더욱 나를 <월든>으로 이끌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에서 본 월든 호수와 오두막 사진, 빛이 찬란히 들던 그 집 안의 내부가 눈에 선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거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기억에 이 카툰의 내용이 덮어졌다.





카툰이고, 귀여운 그림체로 된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보통의 만화를 팔랑팔랑 넘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월든>에서 발췌하거나 재구성한 문장들은 가벼워 보이는 카툰 위에 무겁게 내려 앉아 책장이 더디 넘어갔다.






소로가 유지한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연에서 큰 기쁨을 얻었는지, 그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낸 날의 경험이 어떻게 소로를 변화하게 했는지, 숲으로 나들이 오는 이웃과는 어떤 관계였는지, 등을 이 책은 조명하고 있다. <월든>을 읽는 것과는 물론 다른 경험이겠지만, 이건 이대로 소로의 행복했던 날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
월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카툰이면서 소로가 오두막에서 지낸 경험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월든>을 꺼내보리라 다짐한다. 어쩌면 소로의 문장이 이 책 덕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귀여운 그림체가 보내는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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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저에 답이 있다 - 삶의 질을 훼손하는 여성 질환 뿌리 뽑기
킴 보프니 지음, 윤혜영 옮김 / 한문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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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질환이라고는 부인과에 생기는 암이나 월경 전 증후군 정도밖에 모르던 내가 어느새 다양한 여성 질환에 대해 꿰고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나서 낭종이 생겨 조직검사까지 해 본 것도 하나의 계기였고, 할머니의 파킨슨 증후군이 조금씩 심해지면서 여성질환도 함께 생기고, 심각한 것은 아니더라도 신경 쓰느라 고생하시는 것을 가까이서 본 것도 또 하나의 계기였다.
킴 보프니는 용어도 생소한 골반저 전문가다. 그리고 그는 모든 여성이 치아를 관리하듯 골반저를 관리해야 하며, 골반저 관련 여성 질환은 약간의 노력으로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써 나오게 된 게 이 책이다.



골반저는 골반강을 가로지르는 해먹 모양의 탄력 있는 근육을 형성하며, 방출해도 되는 순간 혹은 방출을 원하는 순간까지 체액이 방출되지 않도록 골반 내부 장기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p. 17)



이 골반저에 문제가 생기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삶의 질이 아주 저하된다. 요실금이나 대변실금은 실수를 할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사회 활동마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우울증을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골반저 관련 질환은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여성들에게 꽤나 흔히 나타나지만, 이들은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치심 때문에 반려자나 부모, 자매에게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킴 보프니는 케켈 운동이나 코어를 강화하는 운동 등 도움이 될 만한 관리법을 소개하며, 골반저 질환을 앓는 여성들의 대다수는 이러한 방법으로 충분히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생리통, 변비, 골반통, 자궁내막증, 장기 탈출증 등 골반저와 관련된 질환은 아주 많다. 아마도 대다수의 여성이 일생에 한 두 번쯤은 생리통으로 힘겨워 해보기도 했을 테며, 바쁜 날들에는 변비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출산율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어도, 출산을 경험한 대다수의 여성은 출산이 골반 부분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느낄 것이다.
아직 어떠한 문제도 없는 여성이라 할 지라도, 이 책을 한 번쯤은 펼쳐보았으면 좋겠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많은 아픔 중에 일부라도 이 책이 덜어줄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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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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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떠난 자리를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고 나서였다. 그러나 그 때도, 장의사를 부르는 것 같은 장례 절차의 하나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흔적을 지워 드립니다>를 읽고 나서,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떠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그런 사람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염을 해주고, 유품을 정리하고, 가는 길을 배웅해준다.
특수청소가 필요한 사람은 고독사, 자살, 살인 현장에서 떠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떠나고 나서 2주가 지나도 발견되지 못하기도 하고, 그 사이 시신이 부패해서 녹아 내리게 된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장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유품을 소독하고 폐기 처리한다.
<
흔적을 지워 드립니다>의 주인공은 노래방 등지를 전전하며 별 생각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사이다. 그는 고독사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술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사사가와라는 남자를 마주친다. 그리고 어느새 사사가와의 특수청소 회사 데드모닝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청소한 곳은 고독사 현장, 아이와 엄마의 동반 자살 현장, 1년 동안 버리지 못한 유품 정리 의뢰가 들어온 곳 등이었다. 아사이는 부패한 냄새가 심하고, 거대한 파리와 구더기 떼며, 쥐까지 출몰하는 현장에서 쓰러지는 다다미에 깔리기까지 하면서 우왕좌왕한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현장이지만, 그는 조금씩 노하우를 익히며 특수청소에 적응해간다.
특수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고인에게 전혀 애정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세 들어 산 사람이 고독사하자, 다시 세를 놓지 못할까 봐 어서 냄새를 해결하라고 아우성인 사람도 있고, 고인에게 전혀 애정이 없는 데다가, 특수청소하는 사람들을 깔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사이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진심을 다해 청소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한다. 곧 폐기될 물건이더라도 고인이 아끼던 유품을 소중히 다룬다거나. 청소하다 본 이런 저런 단서로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를 찾아 유족에게 전해준다거나.

사사가와는 조심스럽게 방의 구석에 있는 블록 하나를 비닐 봉투에 넣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리고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나도 말없이 벽에 붙어 있는 그림에 손을 뻗었다. 태양 아래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자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옆에 어머니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려져 있었다. 눈가에 웃음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p. 328)


그들이 찾은 현장에는 떠난 이들의 흔적과 자취가 남아있었다. 비록 끔찍한 모습이더라도. 시신이 녹아 내린, 차마 볼 수 없는 현장이더라도. 사사가와는 모든 현장 앞에 스위트피 조화를 조심스레 놓는다. 그저 그 흔적을 치우는 사람일 뿐이더라도. 마음을 담아.
많은 죽음의 현장을 경험한 사사가와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죽음은 다르다라는 답을 한다. 각각의 삶이 다른 만큼 수만 개의 다른 죽음이 있다고.
내가 떠난 뒷모습은 어떨까. 내가 떠난 자리에는,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마친 홀가분한 얼굴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책장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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