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고 고결한 밤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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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신실하고 고결한 밤>. 이 책을 읽으며 시집도 인상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루이즈 글릭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어진 이 책은, 시집을 읽으면서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내게는 너무나 새로운 형식의 시집이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루이즈 글릭은 여성 시인이지만, 이 시집의 화자는 소년도 등장한다. 그러면서 여성의 시선도 담았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으면서 화자의 성별을 바꾸어 마치 픽션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루이즈 글릭 자신의 경험이면서도 말이다. 화자가 여성과 남성을 넘나드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 경험은 특별하기도 하면서 보편적이기도 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만한 일이기도 하고, 소소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면서, 루이즈 글릭만의 감정이 담긴 특별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를 잊어버리지 마세요, 나는 소리쳤다, 이제
많은 묘지들, 많은 어머니들 아버지들 뛰어 넘으며….
(p. 40)


많은 시가 산문처럼 호흡이 길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그의 탄생의 순간도,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죽음도 오롯이 느끼며, 마치 한 사람의 생애를 압축한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가 느낀 상실감과 상처가 전해졌다. 마치 인생이 저물어가는 사람이 한 생애를 뒤돌아보듯이.
루이즈 글릭의 다른 시집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이런 시집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평소에 시집보다 산문과 소설을 즐기는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시집이었다. 다시 한 번, 루이즈 글릭에 주목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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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르노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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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그가 노벨문학상을 탈 때 스웨덴 한림원이 언급한 시집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만큼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PEN 뉴잉글랜드 어워즈 수상작이기도 하다.


아베르노.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
고대 로마인들에게 지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알려진 곳.

(p. 10)


본격적으로 시가 시작되기 전에 아베르노의 뜻이 실려있는 이 책은 하데스에게 붙잡혀 간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래도 범상치 않게 시작해서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왜 이 책을 언급했는지 조금은 알 듯 하다.
이 시집을 가로지르는 주제는 죽음과 사랑인 것 같다. 마치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에게 잡혀 간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의 마음을 들여다 보듯이, 루이즈 글릭은 죽음이라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을 이리 저리 살피며 노래한다.

죽음이 그녀와 맞닥뜨릴 때, 그녀는
데이지 꽃 없는 초원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녀는 갑자기, 어린 날 부르던 노래들
더는 부르지 못하고, 엄마의
아름다움과 다산을
찬미하던 그 노래들. 그 틈이
있는 곳이 바로 불화의 자리.
지상의 노래,
영원한 생명이라는 신비한 환상의 노래….
(p. 38)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연인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한다. 어쩌면 사람은 모두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져 있기에, 우리의 사랑이 더욱 가치가 있는 지도, 또 우리는 그렇게 사랑에 목매고 사랑을 부르짖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할 때면, 우리는 죽음의 공포도 잊고, 매 순간 기쁨으로 넘치며, 삶에 이유가 생긴다.

언니가 사랑에 빠질 때면, 내 여동생이 말하네,
번개에 감전된 것 같아.
(p. 40)


페르세포네의 신화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죽음과 사랑을 환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시집에 그만 반해버렸다. 시라면 어렵기도 하고, 책장도 잘 넘어가지 않아 잘 보지 않다가, 루이즈 글릭에 호기심이 동해서 잡아 본 시집이 내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원문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도 불러일으켰다. 루이즈 글릭이라는 매력적인 시인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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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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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시집. 또한 이 책으로 그는 퓰리처상도 수상했다. 그야말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야생 붓꽃>에는 이 책의 제목인 야생 붓꽃을 포함해서 광대수염꽃, 꽃양귀비, 데이지꽃 등 다양한 식물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한 군데 뿌리 박고 사는 식물들이, 그들만의 목소리로 부르짖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한다. 울음 소리를 내는 동물도 아니고, 그저 햇빛만을 보고, 물을 먹을 뿐인, 한 자리에 조용히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들의 목소리를 처음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으나, 이 책을 읽어가며 그 작고 연약한 생명들에게 점점 감정 이입이 되어 갔다.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
야생 붓꽃 중, p. 11)


기도하는 목소리 역시 이 책의 커다란 주제 중의 하나이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에서 신에게 가 닿고자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울린다.

당신이 느끼는 것 중 무엇이
당신을 제일 많이 놀라게 하는지,
대지의 찬란한 빛인지, 당신 자신의 기쁨인지?
나로서는, 언제나
그 기쁨이 바로 놀라움인데.
                                                  (
아침 기도 중, p. 50)


사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러면서도 성경이나 코란 등 종교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다. 이 시집에서 고요히 울리는 기도하는 목소리를 읽다 보면 점차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도란 것을 듣거나 읽다 보면, 그 기도가 전해질 수 있다고 믿든, 그저 혼자만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마음이 정갈해지는 듯 하다.
평소에 시를 잘 읽지 않는 나이지만, 이 시집에서는 나름대로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간절한 마음으로 신에게 보내는 기도이기도 하고, 여린 식물들의 목소리이기도 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던 듯 하다.
사실 시는 어렵다. 소설은 그냥 스토리 전개를 따라 주욱 읽어나가면 참 재미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는 조금씩 아껴서 음미해야 하며, 그래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야생 붓꽃>을 펴낸 시공사에서는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집 역시 제공하니, 시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도 해설집을 곁들여 읽을 만 하다. 루이즈 글릭의 고요한 울림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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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aS(자스)의 충격 - 위드 코로나
닛케이산교신문 엮음, 노규성.박세정 옮김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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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소유의 의미에서 사용의 의미로의 전환이다. 꼭 많은 돈을 들여서, 또 인생을 다 바쳐서 일해가며 고가의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걸까? 어차피 집은 사는 곳이니, 빌려서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 말을 접하며 그게 더 쉽고 빠르게 행복해지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과 비슷하게, XaaS(자스)는 물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하는 것으로의 이행을 지향한다. X as a Service. 무엇이든 서비스된다. 기존에 구매해서 소유하며 쓰던 것들을 매달 사용료를 내는 식으로 서비스 받아 쓰는 사회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분야는 MaaS . Mobility as a Service. 차량을 많은 돈을 주고 사서 사용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이었다면, MaaS의 세계에서는 필요할 때 손쉽게 이용료를 내고 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출퇴근 차량 공유 서비스. 자신의 차를 이용할 때와 비슷하게 door to door로 집에서 사무실까지 이동할 수 있다. 3~5인 정도가 차량을 공유하며 이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회사로 가는 경로와 픽업하는 시간은 AI가 계산한다. 꽤나 정확하다는 평이다.
코로나 시대에 차량을 공유하다 보니, 거리 두기를 한다거나 차량 소독 및 감염 방지 대책이 필요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밀집되는 지하철이나 버스보다 훨씬 편리하면서 감염 위험도 덜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택시, 버스, 지하철에 전동 킥보드, 공유 자전거 등까지 포함해서 최단 경로를 계산하고, 해당 경로로 이동할 때 이용해야 하는 모든 서비스의 결제까지 논스톱으로 할 수 있는 서비스 역시 인상적이다. 카카오맵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결제까지 논스톱으로 할 수는 없다. 지하철 티켓까지 모바일로 제공한다니, 스마트폰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서비스화는 진행 중이다. Air as a Service라고 해서 에어컨을 사지 않고 대여해서 쓰면서, 에어컨 제어 시스템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졸릴 때의 안구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조는 사람이 있다면 온도를 3도 내리는 시스템이 인상적이다. 물건을 팔 때도 고장 예지 및 제어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운송 업체에 타이어를 팔면서는 센서를 부착해 공기압을 감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고 예방에는 공기압 감시가 필수적이지만, 운전자가 매번 공기압을 확인하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서비스화. 부담 없이 필요한 것들을 쓸 수 있고, 편리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XaaS의 시대는 좀 더 쉽게, 또 행복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닛케이산교신문사에서 기자들이 쓴 글이어서 그런지, 기업이 제공하는 청사진을 비판적 시각 없이 그대로 전달한 듯 한 점이 다소 아쉽다. 상당히 낙관적인 시선에서 기술된 책이지만, 그럼에도 XaaS의 시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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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말차 카페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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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그 만큼이나 커피를 마시는 멋진 공간, 카페도 사랑한다. 집에서는 잘 안되던 일도 카페에서는 쑥쑥 진도를 나가고, 지겨웠던 책도 잘 읽히며, 좋아하는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도 더 즐겁다.

단순히 카페가 배경이어서 읽게 된 <월요일의 말차 카페><목요일에는 코코아를>의 속편이다.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의 도입부에 마블 카페라는 곳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마블 카페가 쉬는 날 이벤트로 운영하는 말차 카페로, 또 후쿠이도라는 말차 전문점으로 이어진다. 시종일관 훈훈하고 따스한 이야기다.
이 카페 시리즈 소설에는 특이한 구성이 있다. 단편집 같지만, 장편인. 장편인 듯 단편으로 즐겨도 되는 구성이다. 앞의 이야기에 조연으로 나왔던 주인공이 다음 편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또 그 편에서 살짝 나왔던 사람의 시선으로 다음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바톤터치 하며 이야기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어지듯이. 그러면서 맨 처음 편에 등장한 사람의 이야기가 맨 마지막 편에 이어진다. 그야말로 너무나 멋진 구성이어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콩닥대는 소설이다.



가장 멋진 것은 먼 곳에서 손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걸 전혀 모른다는 거지. 그걸로 된 거야. 자기 일에 몰두한 것이 생판 모르는 남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
(p. 165)



너무나도 추운 날, 마블 카페에서 몸을 녹이려 힘들여 걸어왔던 미호는, 바로 앞에서 월요일은 마블 카페의 휴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낸다. 돌아가려는 순간, 마블 카페의 마스터가 나와서 오늘만 말차 카페로 운영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호는 거기서 임시로 일하던 깃페이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이들의 뒷이야기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사람, 이렇게 귀여운 표정을 짓네. 더 웃으면 좋을 텐데. 가슴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처럼 물컹하고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우와, 뭐지, 이 기분.
(p. 22)



이야기를 받아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주인공 중에는 심지어 고양이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헌책방에 가서 주인 아저씨와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헌책방 주인 아저씨가 받아서 고양이는 몰랐던 헌책방 운영의 고뇌를 털어놓는다.
<
목요일에는 코코아를>에 나왔던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물들도 대거 등장한다. 이들이 서로 엮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새 책 한 권이 끝나있다. 이 책을 쓴 아오야마 미치코는 2022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가이기도 하며 서점 대상에서 2년 연속 순위에 든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필력이 이 소설에서도 엿보인다.
카페를 배경으로 한 훈기가 느껴지는 이야기. 이 겨울에 읽어본다면 누구나 반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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