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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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호러물의 분위기를 띄면서 가슴 졸이게 하나, 정작 호러라 할 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거나 뒷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소설이라면 어떨까. <도메인>이 바로 그러한 단편 소설집이었다. 유재영의 <도메인>에는 <><>이라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영역은 바로 <>에 나오는 선배의 이름이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인 도메인”. 얼키고 설킨 의미들을 곱씹게 한다.
<
>에서는 지혜와 진언이 캠핑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곧 진언의 친구 기태와 기태의 연인 현진이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여행을 떠나는 길에서부터 불길한 것들이 눈에 띈다. 차에 무언가 물컹한 것이 치인 것 같아 차를 멈추고 살피는 지혜의 눈에 맞은 편 차선에서 차에 치인 지 이미 오래 된 듯한 사체가 들어온다. 그러나 지혜는 굳이 진언에게 알리지 않고 계속 캠핑을 떠난다.
전 날 비가 온 데다, 겨울 초입의 쌀쌀한 캠핑장에는 아무도 없다. 지혜, 진언, 그리고 기태와 현진이 전부다. 그들은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고, 캠핑장에서 사는 것 같은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고기를 던져 준다.
그들이 불가에서 나누는 이야기에서부터 호러가 시작된다. 아니, 길에서 발견한 사체에서부터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할까. 그들은 반딧불을 찾으러 먼 길을 걸어가다 수상한 차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들의 호러는 1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캠핑장에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
>은 아주 독특한 형태의 호러물이다. 글쓰기 강의를 듣는 주인공이, 대화를 녹취하라는 숙제를 하기 위해 유튜버인 선배 영역의 방송을 받아 적는다.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영역의 유튜브 방송이다. 그리고 영역은 다시 케빈 조라는 유튜버의 시리즈물을 요약해서 전달한다. 케빈 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 호러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영역이 참조한 이야기이고 영역의 이야기는 다시 주인공의 글쓰기 강의 과제물이 된다.
케빈 조의 이야기는 사라 윈체스터의 성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다룬다. 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입주한 아티스트들이 의문을 남기고 실종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알 수 없다. 케빈 조가 연락이 닿지 않고 그의 채널이 폭파된 후에 영역이 이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저런 공포증에 가까운 것을 갖고 있어서, 호러물을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내 호기심을 유발하며 책장을 끝까지 넘기게 했다. 하필 밤늦은 시간, 모두가 잠든 후에 읽어서 이 소설의 호러 효과를 톡톡히 보느라 힘들었지만, 매력 있는 호러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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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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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미혼모이고, 떨어지는 운석을 보고 마음을 바꿔 자신을 낳았다면? 그런데 자신도 미혼모가 되기 일보직전이라면? 또는 옆집에 좋아했던 격투기 선수하고 똑같은 거구의 흑인이 산다면?
이런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되는 정남일 작가의 두 편의 소설은 관계를 다룬다. <세리의 크레이터>에 나오는 세리와 아이 아빠인 오. 또한 세리와 현재 동거하고 있는 나. 세리 뱃속의 아이까지. 과연 세리와 아이와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세리와 헤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가? 이 소설은 운석이 떨어졌던 흔적으로 생긴 마을인 초계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래에서 묵직한 관계의 고민을 다룬다.
<
옆 집에 행크가 산다>는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이사 간 신도시의 옆집에서 행크가 나오다니. 나와 아내 민정은 과연 그가 진짜 행크인지, 닮은 사람인지 알아내고자 선물을 들고 옆 집에 인사를 가기도 한다. 행크의 인상적인 세레머니와 그의 불운했던 선수 생활, 그리고 옆 집에 사는 흑인의 정체와 신도시 집 값에 대한 분쟁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얽히며 책장을 놓을 수 없었다. 결말이 참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영상으로 만들어도 아주 매력적일 듯 한 이야기이다.
정남일 작가의 소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미소 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부모 자식, 연인과 부부에서 옆 집에 사는 누군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가 닿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따스해서도 좋았다. 소설 본문과 해설, 작가의 말까지도,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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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거장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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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화 <타이타닉>에는 여주인공이 피카소의 작품을 사서 걸어두는 장면이 나온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괴상한 그림을 왜 샀냐고 하지만, 여주인공 만은 피카소의 작품성을 알아본다. 피카소의 작품은 그만큼 독창적이고 기이한 매력이 있다. 여인의 얼굴을 그리며 앞 모습과 옆 모습을 동시에 담는다든지. 얼굴의 형태를 길쭉하게 변형시켜서 그린다든지. 얼핏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린다.
대충 보면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 같은 것을 그리는 피카소는, 사실 그림에 큰 재주가 있는 신동이었다. 열 살 남짓일 때 이미 극 사실화를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명암이며 사실적 표현이 아주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실적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구상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적 그림을 그리지 않고 구상화를 그린 것이다. 그는 구상화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는 데는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p. 194)


<
파블로 피카소>에서는 이런 피카소의 작품 세계와 그의 유명했던 여성 편력, 그가 남긴 어록과 유산 등을 조명한다. 피카소라는 사람을 다각도에서 분석하여 쓴 이 책은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총망라했지만, 피카소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받지 못했는지, 그림에 대한 설명만 있고 그림 사진을 싣지 않아 조금 아쉽다. 그림 사진도 함께 있었다면 이해하기가 조금 더 쉬웠을 듯 하다.
반면 피카소와 가까웠던 인물들과 관련된 자료의 사진은 충분히 실었기 때문에, 그의 인간관계나 작품 활동을 할 당시의 상황 등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살아생전에 가장 성공하고, 부유한 화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의 인생과 그의 작품, 그가 남긴 것을 읽고 나니, 그의 왕성한 창조력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림뿐 아니라 도예,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 심취했고, 잘 알려진 구상화뿐 아니라 그의 뮤즈가 바뀔 때마다 화풍을 크게 바꾸며 한 사람이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그림을 남긴 그가 놀랍다. 우리나라에서도 피카소 전을 한 적이 있다는데, 다음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미술관을 찾아 피카소의 다양한 그림을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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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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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관계란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관계다. 부부 사이는 갈라서면 남남이라지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해서도 끊어질 수 없는 끈인 것이다. 그 끈이 아주 가늘고, 약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끈만을 희망으로 삼고 살기도 한다. 비록 그 줄을 가까이 당길 수 없다고 해도.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희망의 끈>은 그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주인공 마쓰미야 형사는 야요이 찻집의 여주인이 등에 빵을 자르는 칼이 꽂힌 채 살해된 사건을 수사한다. 한편으로는 아야코라는 한 료칸의 여주인이, 죽은 줄 알았던 마쓰미야의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연락을 해 온다. 마쓰미야는 수사하는 사건과는 별개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추적해간다.
야요이 찻집의 여주인과 십 수년 전 헤어진 그의 전남편, 전남편과 현재 사실혼 관계인 다유코, 지진 사건으로 두 아이를 잃었던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 그리고 유키노부와 레이코가 사고 후 다시 가진 아이인 모나. 거기에 마쓰미야의 어머니 가쓰코와 마쓰미야에게 연락해 온 아야코, 아야코의 말기암 환자 아버지, 그리고 오래 전 사고로 죽은 아야코의 어머니까지. 많은 사람이 얼키고 설키며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던 사고와 사연들 사이로 퍼즐이 맞추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퍼즐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것은 마쓰미야다.
마쓰미야가 사건을 수사할수록 드러나는 진실들과 친자 확인 문제부터, 마쓰미야 자신의 친부 문제가 번갈아 나오며, 이야기는 마쓰미야를 중심으로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자신이 수사하는 사건의 저변에 흐르는 문제에 마쓰미야 자신의 문제가 겹쳐져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에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능한 가가 형사가 나온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마쓰미야의 추리가 단연코 돋보인다. 그리고 그가 형사로서 일을 진행시키는 것과 한 사람의 소중한 마음이나 인생을 지키려는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장면이 백미다.

형사의 일이란 진상만 밝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취조실에서 밝혀지는 진실뿐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 이끌어 내는 진실도 있는 법이거든.
(….)
그래, 중요한 것은 각오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p. 386)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속도감 있게 읽히는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혈연 관계란 무거운 주제로, 한 편으로는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소재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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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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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living) 곳일까. 사는(buying) 곳일까. 요즈음의 세태를 보아 하면 집에 살아야(live) 함에도 모두들 사기(buy)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특히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신혼 부부들의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말이다. 게다가 강남 집값이 크게 뛰어오르고, 8학군이라는 것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집은 이제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 같기도 하다.
김이은의 <산책>에서는 윤경과 여경 자매가 나온다. 이 중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처럼 영혼을 끌어다가 집을 산(buy) 사람은 윤경이다. 그는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그것도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몰골의 작은 집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산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서, 집 값이 오를 거니까, 아이 교육을 위해서.
그러나 윤경의 처지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과 씨름하고, 남편과 말싸움을 하다 뛰쳐나와 여경의 집에 온 참이다.
여경은 반대로 변두리 신도시에 산다. 공기 좋고,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동네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나 이웃과 반갑게 인사하는 곳. 그러나 여경의 아파트에도 텃세나 월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처럼, 또 윤경처럼, 미래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현재를 담보로 집을 무리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
경유지에서>는 식물인간이었던 어머니를 오랜 기간 동안 돌보다 떠나 보낸 이화가 주인공이다. 그는 답답한 삶을 살다, 갑자기 어떠한 충동이랄까, 방향 전환이랄까, 방치 또는 유기랄까, 같은 것을 느끼고 영어 학원 강사에게 자신의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 준다.

사실 삶의 모든 변화의 순간들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게 다가왔다 지나가는 거여서 마치 열차의 스위치백처럼 단 한 번의 덜컥임으로 방향은 바뀌고 마는 것이다.
(p. 46)


그리고 이어지는 돌봄과 자기 방치는 그가 어머니를 간병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끝부분으로 치달을수록 나는 파탄과 같은 상황이라고 느꼈으나, 이화는 달랐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누군가 먼 곳에서 잠깐이라도 자기를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왠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웃음이 났다.
(p. 64)

어쩌면 이화에게는 그러한 방치 또는 유기가 그에게 필요했던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마무리였다.
두 편의 소설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집이다. 또한 연필로 진하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이 나오는 소설집이다. 좋은 문장을 만나고 싶다면 일독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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