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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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living) 곳일까. 사는(buying) 곳일까. 요즈음의 세태를 보아 하면 집에 살아야(live) 함에도 모두들 사기(buy)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특히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신혼 부부들의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말이다. 게다가 강남 집값이 크게 뛰어오르고, 8학군이라는 것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집은 이제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 같기도 하다.
김이은의 <산책>에서는 윤경과 여경 자매가 나온다. 이 중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처럼 영혼을 끌어다가 집을 산(buy) 사람은 윤경이다. 그는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그것도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몰골의 작은 집을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산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서, 집 값이 오를 거니까, 아이 교육을 위해서.
그러나 윤경의 처지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과 씨름하고, 남편과 말싸움을 하다 뛰쳐나와 여경의 집에 온 참이다.
여경은 반대로 변두리 신도시에 산다. 공기 좋고,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동네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나 이웃과 반갑게 인사하는 곳. 그러나 여경의 아파트에도 텃세나 월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처럼, 또 윤경처럼, 미래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현재를 담보로 집을 무리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
경유지에서>는 식물인간이었던 어머니를 오랜 기간 동안 돌보다 떠나 보낸 이화가 주인공이다. 그는 답답한 삶을 살다, 갑자기 어떠한 충동이랄까, 방향 전환이랄까, 방치 또는 유기랄까, 같은 것을 느끼고 영어 학원 강사에게 자신의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 준다.

사실 삶의 모든 변화의 순간들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게 다가왔다 지나가는 거여서 마치 열차의 스위치백처럼 단 한 번의 덜컥임으로 방향은 바뀌고 마는 것이다.
(p. 46)


그리고 이어지는 돌봄과 자기 방치는 그가 어머니를 간병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끝부분으로 치달을수록 나는 파탄과 같은 상황이라고 느꼈으나, 이화는 달랐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누군가 먼 곳에서 잠깐이라도 자기를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왠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웃음이 났다.
(p. 64)

어쩌면 이화에게는 그러한 방치 또는 유기가 그에게 필요했던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마무리였다.
두 편의 소설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집이다. 또한 연필로 진하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이 나오는 소설집이다. 좋은 문장을 만나고 싶다면 일독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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