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법률가들 - 법은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는가
헤린더 파우어-스투더 지음, 박경선 옮김 / 진실의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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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법률가들

2026. 5. 31()

부제가 법은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은 법이 어떻게 정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여 국가가 인간성과 법치라는 근본적 기준을 깨뜨리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는지를 알려준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 권력인 공권력에 의해 생명과 재산을 잃고 빼앗긴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이 차츰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독재 권력이 경찰과 군, 검찰을 이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모른 체 하거나 관점이 다르다는 말장난으로 책임과 반성의 기회조차 나는 몰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농단과 불법 계엄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력화하는 상황에서 법의 제정과 적용이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왜곡된 규범 질서의 주요 부분이 어떻게 변화하고 정권에 충성하던 법 이론가들이 이를 정당화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나치의 법 이론은 형식주의와 실증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의 통합’, ‘명예’, ‘인종적 동질성’, ‘인종적 평등같은 실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법의 실질적 개념을 선호했다. (p.20) ‘공익은 사익보다 앞선다.’라는 원칙에 따라 법은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신 공동체를 육성해야 했다. 민족사회주의 법에서 지침과 제도들의 이론적 토대에는 국가의 통합을 이유로 획일적인 세계관과 공통의 윤리적 신념을 바탕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삶을 꾸릴 것을 시민들에게 요구했다. 이는 계몽철학의 기본원리와 충돌했다. 칸트는 어느 누구도 내게 본인의 방식으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라는 자유 개념은 나치 이데올로기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책은 독일 최초의 민주정인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의 결점들(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따른 통치 가능성, 명확한 사법 심사 권한을 갖춘 헌법재판소의 부재 등)을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긴급명령은 극히 제한적이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경험이 있으니,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에 비해 한국 헌법은 안정적임을 알 수 있다.

나치의 법률가들은 1차 대전에 참여했던 투사들의 경험으로 생겨난 사회적, 공동체적 유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바이마르공화국 말기에 자행된 나치 돌격대의 잔혹한 테러와 폭력을 은폐하려 하였다. 1933년 민족사회주의 정권을 장악했던 법 이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정을 뿌리 깊게 경멸하였고 대학의 법 이론가들의 공격적인 수사는 전체주의 국가를 용인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바이마르 헌법 48조는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 정치적 과정에 개입하도록 허용해 군사적 지원 요청할 권리,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할 권한이 주어졌다. 이는 극우파와 급진좌파의 영향력에 맞서 공화국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권위주의가 부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외에도 국가기관들이 헌법에 따라 입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는 법적 기관이 없었다. 대통령은 헌법의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제국 대통령의 명령은 위헌적이었고 법원 판결의 결함은 상당 부분 제도적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히틀러의 집권을 지지했던 보수주의자들은 히틀러가 볼셰비즘을 막아줄 유용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고, 히틀러와 나치당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p.66)

 

법사상가들이 히틀러의 권력 축적을 정당화한 방식을 살펴보면, 1934년 힌덴부르크 사망 이후 히틀러가 제국 총리로서 제국의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전임 군 장성 힌덴부르크의 후광을 입은 총통은 국가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 법 이론가들은 전체국가(total state)라 일컫는 특정 유형의 단일국가로 해석하여 독일이 독재국가로 변모한 사실을 은폐하려 하였다.

19331월 히틀러가 제국 총리 자리에 임명된 것은 독일에 급격한 정치적, 법적 변화를 몰고 온다. <제국 의회 화재 법령>으로 바이마르헌법이 보장하던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정지됐다. <수권법>은 과거 주권을 가졌던 연방 주들은 제국의 행정단위로 전락하여 중앙집권국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천명한 목표는 일당독재였고 1년 만에 이를 이루었다. <신규 정당 설립금지법>, <당과 국가의 통합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 제정되었고, 19341월에 <제국의 재건을 위한 법>은 주의회를 해산시키고 주권을 제국에 넘김으로써 독일의 연방 구조를 뒤엎어 버렸다. 19348월 실시된 대통령 및 총리 직무 통합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90%의 득표로 히틀러는 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투표는 정치적 전횡을 형식적인 법적 정당성 안에 은폐하려던 전략이었다. 이후 총통은 대통령, 총리, 나치당의 당수 역할을 한다. 전반적으로 법률가들은 인조 이데올로기와 총통에 대한 신화적 지위 등을 포함한 민족사회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국가기관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후 나치 형법 이론가들이 범죄행위 자체보다도 범죄자의 범죄 의도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형법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인종적, 사회적 편견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나체 체제는 형법을, 국민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공포로 몰아넣었고, 게슈타포에게 여러 권한을 빼앗기면서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어 버렸다. 나치당은 사실 중심 형법에서 신념 중심 헌법으로 바뀌어 갔다. 나치 국가의 형법에서 형법의 주요 목적은 범죄 억지와 보복, 형법의 도덕화와 명예 처벌 승인, 자유주의 원칙인 법 없으면 범죄도 없고, 처벌도 없다처벌 없는 범죄는 없다로 대체, 유추의 허용, 의도 중심의 형법 개발이라는 특징

가졌다.

반유대주의 인종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고 관료주의적 각료들도 과격해지던 정권의 계획을 충분히 인지했을 뿐 아니라 대량 학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치 친위대와도 교류했다. 나치 친위대인 게슈타포는 국가 안의 국가였고 공포, 박해, 살인의 중심에 있었다. 나치 친위대에 자체적인 군 사법관할권은 법률적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치 친위대 사법권이 직면한 문제는 폴란드 점령지역에서 장교들이 자행한 중대 범죄뿐 아니라 대량 학살 명령이 친위대 법원 최고 심급인 힘러와 히틀러로부터 직접 전달되었음이 사실이다.

19334<직업공무원제의 재건을 위한 법>에서 모든 유대인 공무원을 해임한다고 규정하였다. 1935년 뉘른베르크법은 유대인과 아리아계 독일인과의 결혼 및 혼외정사를 금지하였다. <제국시민법>은 유대계 독일인의 투표권을 박탈했고, 유대인은 독일제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1941년쯤에는 이른바 최종해결지시는 히틀러로부터 서면이 아닌 구두로 하달되었다. 히틀러가 내린 이 명령은 나치 친위대장이자 독일 경찰 수장인 함러에게, 나치 친위대와 경찰 고위 간부들, 특수기동대에 전달됐다.

 

3<게슈타포법>은 게슈타포의 조치들에 대한 사법 심사를 배제하여 강제수용소 내 친위대의 폭정과 수감자들의 법적 무방비 상태를 고착했다.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모든 동향을 감시, 박해, 진압하는 것이 비밀국가경찰의 기능이라고 정의했다. 함으로는 히틀러의 의지를 합법성의 근원으로 강조했다. 1938<보호구금에 관한 법령>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기까지의 모든 절차를 은폐했다. 나치 친위대 사법권은 나치 법 이론의 특징인 법과 도덕의 통합을 수용하는 도덕화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저자는 법과 도덕을 분리하고 법은 자율적인 행위성 및 타인과의 비폭력적 조정을 보장해야 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을 읽어가며 입법이 세상이 펼쳐지는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며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법 사상가들, 법 이론가들, 대학 교수들의 사고가 법 제정의 바탕에 있음을 확인하니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절차이자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이라는 법의 위계를 고려할 때 국회의 권한이 막중한데도. 이보다 큰 문제는 법을 적용하는 사법권에 있다고 본다. 법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가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보통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문제다. 송사에 연루되면 그동안의 불확실성이 생업 종사에 막대하게 지장을 주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히틀러의 법률가들은 일반 독자에게 큰 흥미를 끌지는 못할지라도 입법, 행정, 사법 등 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법률적 행위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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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오션 전략
김위찬 외 지음, 강혜구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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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전략

2026. 6. 22()

2006613일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과 토고가 둥근 지구에서 둥근 공을 가지고 다투던 날 읽었던 블루오션 전략을 트레바리 세종 독서클럽 발제를 위해 다시 읽는다.

책은 경영전략/혁신으로 분류된다.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는 2010년대 초반 충남교육청 학교 정책과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며 독서콘서트라는 사업을 평가하고 재구조화하는 전략으로 활용했었다. 이는 독서의 결과를 교육정책 업무에 적용했다는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다시 읽어가며 경영전략/혁신을 기업이나 사업에 적용하는 것 말고 개인의 삶에도 투사하여 성찰하는 삶을 꾸려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읽는다.

 

경영전략서인 블루오션 전략은 기업이 경쟁이 무의미한 비경쟁 시장을 창출해 유혈 경쟁의 레드오션을 깨고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 경쟁자를 벤치마킹하거나 줄어드는 수요를 경쟁업체와 나누는 대신, 수요를 늘리고 경쟁에서 벗어나는 전략이다. 블루오션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전략 캔버스‘4가지 프레임 워크를 소개하고 블루오션 전략의 원칙을 상세히 설명한다.

전략 캔버스는 경쟁하는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고 제품과 서비스, 유통에서 경쟁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고객들이 경쟁 상품으로부터 얻는 것은 무엇인가를 그래프 형태로 보여준다. 레드오션에서는 요소들을 연결한 가치곡선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집중한다. 여기서 저자들은 전략 포커스를 경쟁자에서 대안품으로, 고객에서 비고객으로 방향을 재설정하라고 한다. 이를 풀어보면, 가치와 비용, 두 가지를 추구하려면 경쟁자를 벤치마킹하거나 차별화와 원가 우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기존의 전략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4가지 액션 프레임워크는 새로운 가치곡선을 그리기 위해 업계의 표준 이하로 내려야 할 요소를 찾고(감소), 업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요소들 가운데 제거할 것을 찾고(제거), 업계의 표준 이상으로 올릴 것을 찾고(증가), 업계가 아직 한 번도 제공하지 못한 것 중 창조해야 할 요소(창조)는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의 원칙6가지다. 첫째, ‘시장 경계선을 구축하라는 대안 사업을 관찰하고, 산업 내 전략 그룹들을 관찰하고, 구매자 체인을 관찰하며, 보완적 제품과 서비스 상품을 관찰하고, 구매자에 대한 상품의 기능적 또는 감성적 매력 요소를 관찰하고, 시간의 흐름을 고찰하여 시장의 실제 상황을 재구축하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블루오션으로 연결하라는 것이다. 둘째, ‘숫자가 아닌 큰 그림에 포커스하라는 전략 포커스를 그려 현재 시장 공간에서 기업의 전략적 포지션을 시각화할 뿐 아니라 미래 전략을 도식화하라는 것이다. 전략의 시각화를 4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를 통해 전략 기획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숫자가 아닌 큰 그림으로 그리기를 권하며 영혼은 이미지로 생각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소개한다. 셋째, ‘비고객을 찾아라는 블루오션의 규모를 어떻게 최대화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고객들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구매자들이 가치를 주는 강력한 공통점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고객을 3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최대 규모를 포착해야 함을 강조한다. 넷째, ‘정확한 전략적 시퀸스를 만들어라는 수익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다수의 가격대를 규명한 후 가격대 내 수준을 명확히 하라 한다. 블루오션을 찾는 가치혁신은 변화를 뜻하기 때문에 종업원, 비즈니스 파트너, 일반 여론을 대상으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블루오션 지수엔 효용성, 가격, 비용, 도입에 장애를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조직상의 주요 장애를 극복하라는 조직의 인지적 장애, 한정된 자원, 기득권층으로부터의 강력한 저항, 동기가 없는 직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여섯째, ‘전략 실행을 전략화하라는 공정한 절차가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설명한다. 공정한 절차는 지적, 정서적 인식을 바르게 하고 신뢰와 참여를 이끌어 전략을 실행할 때 자발적 협조를 이끌 수 있음을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블루오션 전략을 창출해 내기까지 시르크 드 솔레이유, 카셀라 와인즈, 사우스웨스트, 넷제츠, 여성 전용 핼스 클럽 커브스, 노보 노드디스크, 블룸버그, 헝가리 버스 업체 NABI, 멕시코의 세멕스 시멘트 회사, 아이튠즈, 프랑스 옥외 광고 공간 판매회사인 JC 드코, 등 수많은 기업의 흥미 있고 가슴설레게 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블루오션 전략의 결론은 블루오션 전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 자문하고 10~15년은 간다고 본다. 이를 위해 블루오션을 모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하며, 그래도 언젠가는 모방하니 항상 가치곡선을 모니터하면서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기업을 경영하지 않는다고 블루오션 전략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4가지 프레임워크는 자신의 삶과 직장 생활을 평가하고 성찰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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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
임종수 지음 / 모아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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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

2026. 5. 20()

저자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고 직장인이다 라고 말한다. 수십 년간 직장에서 일을 한 후 은퇴하고 자주 산에 오르는 정도라면 수긍할 수 있다. 30여 년에 걸쳐 전국 100대 명산을 다 오른 경험을 가진 저자를 평범하다고만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저자는 책으로 산행이나 인생에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낸다.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의 핵심 주제는 산행과 인생살이이다.

‘01 이 산에 서면 저 산이 그립다 에서 전국에 있는 100대 명산에 오른 이야기다. 100대 명산 중 가장 낮은 산(홍천 팔봉산 300m)을 앞에 배치하였다. 산이 낮아 쉽게 보여도 실은 쉽지 않음을 말하려는 뜻이다. 산마다 가진 매력이 다르고 같은 산이라도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을 맞이한다.

오르막 없는 정상은 없듯이 고통 없는 삶도 없다.(p.62)”라며 산행과 인생을 표현한다. 누구나 산에 오른 때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정상에 오르려 노력하듯이 인생도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 상실, 외로움, 실망을 겪게 마련이다. 산행에서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반드시 불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등산로가 직진코스만 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뉘고, 중간에 쉼터도 있다는 현실과 인생행로는 같았다. 삶에도 오르내림이 있고, 더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롤러코스터 등산로 같다는 것을 실감한다.”(p.70)라는 문장도 산행과 인생을 표현한다. 멀어서 미루어두었던 고성 연화산을 다녀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고 밝힌다. 이런 경험으로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을 마주하고 회피할 생각부터 한다면 되는 일도 안된다. 정면 돌파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해졌고, 이왕 시작한 일이면 최상의 목표를 언들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로 연결한다. 가끔은 멀리서 봐야 좋다면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삶의 태도를 산행에서 배운다. “삶은 행복함과 팍팍함이 서로 반복되는 인생 여행이다.”(P.61)

이외에도 세월유수, 여조과목, 불광불급, 과유불급, 다다익선, 호사다마, 새옹지마, 사근취원 등의 사자성어로 산행과 인생살이를 쉽게 풀어가니 읽기 쉽다.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를 읽어가며 가보고 싶거나 다시 가야 할 산들이 있다.

“2월 하순에 남쪽 지방의 땅속에서 가장 먼저 머리를 내밀고 하얀색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가 변산바람꽃이다.”(P.38) “계룡산에 다시 가지 말라 했다.”(P.84) 변산과 계룡산은 가까우니 철에 맞게 다시 가보고 싶다.

무등산 등산을 여러 해 다니면서 느낀 것은, 어느 곳에서 정상을 오르내려도 편안하다는 것이다.”(P.110) 눈이 쌓인 무등산에 가보는 것이 꿈인데, 겨울을 기다려야 하니 이번 주말에 다녀와야겠다.

눈꽃 산행의 백미를 보고 싶으면 두말 말고 영동 민주지산으로 가라”(P.133)를 읽으며 소백산 눈꽃을 보려 기차를 탔던 추억이 떠오른다.

사진으로 책에 실어준 돈대봉에서 내려다본 관매도의 봄’(P.194)을 보니 내년 봄이면 진도에 가서 배를 타고 관매도에 들어가 유채꽃을 보고 싶다.

 

책에 여기까지만 소개돼 있다면 아쉬울 뻔했다.

‘02 우리 산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계절별로 가보면 좋은 산을 소개한다. 봄에 가면 더 멋진 산은 산청 황매산, 지리산 바래봉, 지리산 세석평전, 홍천 팔봉산, 홍천 공작산, 창원 무학산, 무등산국립공원 안양산, 부안 내변산. 여름에 가면 더 멋진 산은 인제 방태산 아침가리, 양평 유명산, 과찬 관악산, 문경 대야산, 제천 월악산 용하 야영장,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계곡, 포항 내연산. 가을에 꼭 가봐야 할 주제는 억새와 단풍산행이라며 청송 주왕산 절골, 평창 오대산 선재길, 포천 소요산, 정읍 내장산, 장흥 천관산, 창녕 화왕산, 포천 명성산, 장수 장안산, 울주 신불산을 추천한다. 겨울에 가면 더 멋진 산으로 제주 한라산, 평창 계방산, 영동 민주지산, 원주 치악산, 진안 운장산, 무주 덕유산을 추천한다. 더불어 계절마다 다르게 등산 채비를 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지도를 자주 보는 독자라서 아쉬운 것은 소개한 산마다 적당한 크기와 색감을 가진 지도를 곁들여 놓았다면 등산 초보자에게 산행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산행이란 등산과 여행이라며, 은퇴자에게 재정과 건강이 보장되어야 인생 2막의 목표 설계와 취미생활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라는 조건을 이야기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문장은 느림의 미학을 아는 이, 특히 저질 체력을 지닌 이들에게 산행은 완전히 멋진 일이다.”(P.270) 빨리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다고 여기던 독자에게 바삐 서두르지 않아야만 즐겁고 행복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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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전 - 헌정 수호를 위한 뜨거운 전쟁
이금규 지음 / 모아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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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전

2026. 4. 24()

2024123일 내란 발발부터 해를 넘겨 202544, 내란 수괴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63일 대통령 선거까지도 가슴 졸이며 뉴스를 봐야 했다. 그 탓에 책을 읽기보다는 유튜브 시사 프로를 보게 되었고, 퇴근하면 매불쇼와 스픽스를 알게 됐다.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아침에 시작하는 유튜브는 나를 당기지 못한다.

 

탄핵 열전은 크게 두 가지를 다룬다.

첫째 탄핵과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을 고찰하고, 탄핵의 의미와 역사, 탄핵 소추된 대통령들을 다룬다.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교양으로서 탄핵을 배우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을 재판할 때 헌법 재판관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를 살필 수 있다. 법 조문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을 어겼을 때조차 가벼운 것인지 혹은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가도 중요한 판단 요소임을 밝힌다.

둘째, 대통령 윤석열 탄핵으로 본 탄핵의 조건과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법률대리인으로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단상이란 이름으로 서술하고 있다.

탄핵 열전이 가진 특징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상세히 살핀다. 저자는 그 이유를 트럼프 탄핵 사건과 윤석열 탄핵 사건이 닮았고 두 사람은 너무 많이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피청구인 윤석열의 거짓말과 심판정 태도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공개된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본 것과 같다. 두 번째 특징은 위자료 청구 소송 운동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전국의 모든 법원에서 윤석열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이 들불처럼 일어나, 헌법상, 형법상 책임은 물론 민사상 책임까지 지우게 함으로써 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사람은 누구라도 반드시 패가망신하게 하여 우리 헌정사에서 그 누구도 다시는 이와 같은 반헌법적인 행위를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해야 하겠다”(p.258)라는 뜻을 밝혔다.

맺음말에 손해배상 청구의 소소장과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의 선고에서 승소하였음을 판결문을 공개하여 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법률대리인, 채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보로 활동한 이금규 변호사는 탄핵 열전을 통해서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 재판을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 여러 나라에서 퍼지는 민주주의의 퇴행은 합법을 가장하고 있기에 가랑비에 옷 젖듯 교묘하고도 전략적으로 진행되어 행 사실을 눈치채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상기하라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대니얼 지블렛이 말한 민주주의의 전복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들은 하나같이 합법을 가장한다.”(p.29)를 인용한다.

 

탄핵의 현대정치적 의미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파면할 수 없거나 수사기관이 사실상 소추할 수 없는 대통령, 법관 등 고위직 공무원을 의회에서 소추하여 파면하거나 처벌하는 행위나 제도를 말한다. 탄핵은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 특히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다. 탄핵 심판 제도는 민주적인 모습의 탈을 쓴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자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제도자체가 아니라 제도의 운용에 달렸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도 국정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다면 민주 정부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집권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견제와 비판, 감시가 꼭 필요하다.

 

저자는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례를 한국 민주주의가 미성숙(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은 미국에 비해도 우수하다. 대통령의 문제를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으로 보는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기 어렵다. 국회로 달려간 시민과 한겨울 추위에 윤석열 탄핵을 외친 시민들이 있다) 하다는 사실과 탄핵이라는 합법적 처방을 통해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했다(P.53)고 보고 있다.

탄핵 심판의 결과가 형사재판을 물론이고 민사소송을 거쳐 금융치료까지 이어지길 희망한다. 이 자식을 이름을 여러 번 써야 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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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 : 현대편 - 지금 유용한,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방상호 그림 / 북플랫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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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현대편)

2026. 4. 19()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영국과 소련 사이에 퍼센트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서부와 남부 유럽은 영국이, 동부와 중부 유럽은 소련이 관리하겠다는 발상이었다.(P. 23)

1940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에 50척의 구축함을 공급하였다. 지원의 대가로 버뮤다,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트리니다드, 인티과, 영국령 기아나 등 영국 영토에서 미국이 99년간 군사기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였다.(P.25) 이는 미국, 제국의 연대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미국은 미국 방위에 중요한모든 국가, 특히 영국에 무기를 팔거나 빌려 줄수 있는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켰다. 무기대여법은 이후 더 확대되어 소련 역시 지원을 받았고, 미 해군은 무기를 비롯한 각종 물자를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미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독일만큼 철저하게 약화하되 그 자리를 영국이 아닌 중국이 대신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한 원칙에 따라 카이로 회담(1943)에 장제스를 불러들였으며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독립을 명문화하였다. 1949NATO를 설립하여 미국은 유럽 내 전략적 요충지를 마음껏 사용하게 되었으며 유럽 국가들의 군사 정책에 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2026년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은 이와 다르게 보인다.

1944년 브레턴우즈회의는 금본위제와 고정환율제에 근거해 환율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국제 무역을 안정시킨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1온스당 35달러로 가치를 고정하였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국내의 우익 세력은 송진우,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조직했다. 미군정의 지원을 받았으며 반공주의를 표방하였다.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농지개혁에 소극적이었다.

해방후 농지개혁으로 지주제가 해체되면서 지주들의 토지 지배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토지 매매가 수월해졌으며 농민들이 노동자가 되기에도 유리했다. 즉 국가나 자본가는 보다 수월하게 필요한 토지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고 농민들 역시 고율의 소작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도시로 가서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토지에서 벗어난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따라 부를 축적할 기회를 얻게 된다. 1960냔대 이후의 산업화가 성고을 거둔 배경에 농지개혁이 있었던 것이다.(P.114)

북한의 제도는 소련을 본떴다. ‘민주집중제라는 원칙에 따라 인민회의, 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공산당 지도부가 전권을 행사하는 형태로 구조화된 것이다. 1990년대 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선배들은 민주집중제가 아주 민주적인 것으로 호도하였고 의사결정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나는 전교조 활동을 중단했다.

북한은 남한에 약 3년 앞서 토지개혁에 성공하였다. 토지개혁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민중의 대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가 지적하듯 오늘날까지 북한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토지개혁의 수혜자들이다.”(P.161) 남한에서의 농지개혁이 근대적인 자본주의 생산 방식을 도입하기 위한 토대였다면, 북한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처단과 결부시켜 공산주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에 참여해 국민당과 싸운 한인은 6만 명이 넘었고 전사자만 3,550여명에 달했다. 심지어 북한은 중국공산당의 배후기지 역할을 했다.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시리즈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김일성은 중국에 지원을 요청할 명문을 갖게 되었다. 중국은 우선 25만을 긴급 투입하고 총 60만 정도를 투입해 북한을 돕겠다.’ 항미원조전쟁. ,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을 돕겠다는 발상이었다.

이승만은 오직 이승만을 추종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자유당을 창당하였는데, 전쟁 이후의 고조된 반공주의 등이 그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민당은 민국당을 거쳐 민주당이라는 야당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식 독재는 개인 카리스마에 의한 동원체제의 성격을 띠었다. 대한청년단, 호국군이라는 준군사조직, 학도호국단, 국민회(18세 이상의 모든 남녀는 무조건 가입)등을 조직하고 모든 단체의 총재는 모두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비공식적이며 비정상적인 징발체제가 일상화 되었고 이는 그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말, 이후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괴롭힐 일상적인 부정부패는 이때부터 문화화되었다.(P.202)

미국은 매번 한반도의 모든 현상을 긍정했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인정했고, 4.19 민주혁명이 일어나지 이를 지지했고, 다시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이 또한 받아들였다. 독재건 민주건 반공은 분명하지 않은가. 앞으로도 미국은 이런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P.210) 저자와 달리 냉전이 끝났고, 중국경제력과 군사력의 급상승은 미국의 태도에 변화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마가세력의 입장에서 미국의 이익에 우선이 되는 방향으로 한반도를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4.19혁명 당시 가장 격렬한 요구가 경찰개혁이었다. 해방 초기부터 3.15부정선거까지 경찰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26년 대한민국 국민의 요구는 검찰 개혁이다. 조작과 조직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퇴직후 사법카르텔의 일원이 되어 호가호위하려는 검찰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위해 미국은 브라운 각서(1966)’를 준비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미국이 감당하겠다. 한국군의 무기 및 장비의 현대화를 지원하겠다. 베트남 관련 물자와 용역은 가능한 한국 기업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내용이다. 베트남 전쟁에는 24천여 명의 민간 기술자가 파견되었다.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의 3분의 2가량이 외국 회사에 취업했다. 참전 군인 중 1,022명이 현지 기술자가 되었다. 이들은 1970년대 중동 진출 당시 중요한 해외 역군이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현대건설, 버마 현대건설 등으로 이직하는 등 한국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65년 일본과 공식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내용은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1964년 벼 육종 전문가 허문회 교수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IR667이라는 교배종을 개발해 귀국하였다. 667회 교배를 통해 성공한 품종으로 이후 통일벼로 불리며 식량 자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중학교 다닐 때 농업 시험에서 통일벼의 본래 이름을 쓰라는 시험문제에 ‘IR667’을 아무도 쓰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일찍 돌아가신 농업 선생님은 당시 전자시계를 유일하게 차고 계셨었다. 통일벼로 지은 밥은 맛이 없다는 것이 총평이었다. 아마도 자포니카 품종의 쌀을 먹다 보니 인디카 종의 통일쌀은 풀풀 날려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전두환은 언론통폐합(980) 정책을 통해 수많은 방송국과 신문사를 없앴다. 군산에 있던 서해방송이 문을 닫던 날을 기억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언론사는 크게 번성하였다. 조선일보가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P.345) 전두환 정권기 언론사에 대한 각종 혜택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 사업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1980년대는 언론기관이 수백억 매출을 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시기였으며 이 기회를 누렸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언론사들은 보수적인 언론관을 구체화하기도 했다.(P.345)

19876,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된 순간 나는 용산에서 군복무 중이었고 88서울올림픽을 제대하고 머리가 자라기 전에 봤다. 군복무 기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먼 나라로 가야했지만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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