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 - 송나라 사신 고려를 그리다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0
서긍 지음, 한국고전번역원 옮김, 조동영 감수 / 서해문집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고려도경 高麗圖經

2018.9.14.(금)

 

세상에 첫 책 <독서로 말하라>를 내놓았다. 홍보한다고 동분서주하고 반응에 민감해지더라. 처음 경험하는 스트레스다. 책읽기에 소홀하니 머릿속이 텅 빌 것을 염려한다. 수일 전에 고려도경외 여섯 권을 사들이고도 며칠은 책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눈을 뜨고 <고려도경>을 읽고, 독서노트를 남긴다.

 

<고려도경>은 학창시절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다녀가 남긴 기록으로 후대에 고려를 이해하는 자료가 되었다고 배웠다. 시험 답안엔 서긍이나 고려도경을 쓰면 됐었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찌하다보니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하나다. <징비록>, <간양록>과 견주며 읽는다. <징비록>은 조선의 고위관료가 후세를 경계하려는 의미로 지었으니 녹봉을 받는 고위직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이다. <간양록>은 일본에 포로로 가 있던 기간에 개인이 보고 듣고 배운 바를 적었으니 조선을 아끼는 마음이 지극한 자료다. 이에 견주어 <고려도경>은 송나라 휘종 황제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며 ‘고려의 풍속’을 살펴오라는 명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 공무원이 해외에 다녀오면 제출해야하는 국외체험보고서 격인 사행보고서다.

서긍은 송에서 파악한 고려에 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개경에 다녀간 경과와 견문을 그림을 곁들여 엮어냈다. 서긍의 선지식에는 오류도 있으나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주관적인 평가도 곳곳에 남겨 두었다. 보고서에 들어있던 그림이 망실되어 아쉽다.

 

서긍이 고려에 다녀간 것은 1123년(고려 인종)으로, 북송이 금나라에 멸망하기 4년 전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송, 요, 금, 고려가 자국의 입장에 따라 외교전을 벌인다. 송나라 휘종은 요에 대한 굴욕을 씻고자 요의 동쪽 금나라와 협공으로 요를 치려고 하고, 고려는 네 나라가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송의 의도를 파악한 고려는 송에게 사신을 보내 송의 계획을 포기하라고 종요하였다. 그러나 송은 계획대로 금과 손잡고 요는 멸하였으나, 강대해진 금에게 망국의 화를 당하고 휘종 부자가 북으로 끌려가는 참변을 당한다. 고려의 국제정세 파단이 옳았다.

서긍의 여행일정을 정리하면 요동을 금이 지배하니 바닷길을 이용해야 했다. 서긍 일행은 관선 두 척과 민간 소유 선박 여섯 척으로 출발했다. 저장 성 연안 항구에서 출발하여 흑산도, 고군산군도, 예성강 입구에 이르는 17일간의 배를 타야했다. 돌아가는 길은 바람이 좋지 않아 42일이 걸렸으니 개경 체류 한 달을 포함하여 대략 3개월이 걸렸다.

 

<고려도경>은 제1권 ‘건국에 관하여’ 부터 제40권 ‘같은 문물’까지 왕실계보, 성곽, 궁전, 의식용 물품, 의장과 호위, 수레와 말, 의식주 관련 사항, 연회, 숙소, 배, 바닷길 등에 대해 기록한다. 방대한 기록은 서긍 혼자만의 관찰은 아닐 것이다. 송에서 출발한 사신 일행은 뱃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200명이 넘는 규모였다. 사신의 지위 고하에 따라 관찰 조사할 내용을 분담하였고 이를 취합하여 <고려도경>을 엮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음은 책을 읽어가며 밑줄치고 메모한 내용이다.

도성 수비 근위부대 병력이 상시 3만을 유지했다.

당시 불승 중에 중국어로 독경할 수 있는 자가 있어 서긍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민(四民)의 업 중에 선비를 귀하게 여기므로,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기록으로 보아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하다.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의 고려도경 서문은 ”우리 겨레가 오래 전부터 문화를 사랑하고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하자고 말한다.

고려는 공예를 숭상하여 기술자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는 농민들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민가에 대한 기록에 풀로 지붕을 덮어 비바람만 막는 수준이라 마치벌집이나 개미구멍 같은 데 열에 한두 집만 기와를 얹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장사하는 가옥이 없다. 조세에 관한 것을 제외하며 고을에서 송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긍은 고려의 의식을 보면서 “孔子가 살고 싶다고 하고 더럽다 하지 않은 이유다”라고 적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여 공자가 동이로 오려한 것이 아니다. 예와 악을 중시했던 공자 판단에 동이에는 禮가 살아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나라의 등급을 정할 때 수레의 수를 보아 차등을 두었다. 서긍이 고려에 도착했을 때 사신을 받드는 안장과 말이 대력 왕의 것과 같아 참람되고 사치하다고 사양한다. 이는 사후 행장에서 보이는 서긍의 모습과 일치한다. 당시 고려의 관부, 복식, 풍속 등에 요나라에서 유래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나 대부분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개경의 정부 창고에는 쌀 300만 섬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서긍이 관찰한 바에는 내외직의 현직에 있어 녹을 받는 관원이 3000여 명이고, 녹은 없이 논밭을 급여 받는 사람이 1만 400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려에서 송에 의관을 요청한 후 의술에 통달한 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거란이 고려에게 패한 것은 재가화상 무리 힘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다. 재가화상은 형벌을 받고 복역하고 있는 자들로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렸기 때문에 화상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서희의 담판이 정사라면 서긍이 들은 바는 야사다. 백성의 삶을 관찰한 바에는 남녀의 혼인은 경솔히 합치고 쉽게 헤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內外法에 비추면 주목할 만하다.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고 부처를 좋아하나 시체는 들 가운데 버려두고 봉분을 만들지 않는다고 관찰하였다. 注에 불교의 영혼관 때문이라며 일본도 1세기 전에 이와 같았다고 한다. 고려에 밀이 적어 산동성이나 하남성 지역에서 사온다. 麵이 대단히 비싸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중국인에 비해 고려인은 목욕을 자주한다. 고려에는 籌算이 없어 출납회계를 나무에 칼로 긋어 표시하고 버리니 지난 일을 따져 볼 수 없겠다고 보고 있다. 注에 우리나라에서 1910년대까지 전남 일부 지역에서 결승을 사용했단다.

후주後周에 유학하고 돌아오다 거란에 잡혀 벼슬한 최광윤이 거란의 침입 야심을 고려에 알려 지방 호족들의 군대를 연합해 30만 광군을 편성했다고 한다. 고려에 유통되던 그림부채는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고려의 선박 건조 기술은 정교하지 않다. 배에 다락방이 없고 돛대와 노, 키가 있는 수준이다.

 

<고려도경>은 서해문집에서 2005년 8월 초판 1쇄를 발행하고, 독자는 2015년 초판 2쇄본, 본문 304쪽 분량으로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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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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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부모님이 특별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무신론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웃집 어른을 따라 교회에 다니다 부흥회의 분위기에 질겁하고, 소풍 길에 다녔던 절은 볼 거리이거나 쉼터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책을 통해 이슬람을 만나고 왜곡된 프로파간다에서 참모습을 찾으려 읽는다.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익숙함이 종교보다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 온 이진경님이 불교를 종교보다 철학으로 이해하고 안내하는 불교철학 기본서 라고 판단한다. 바람 쐬러 다녔던 절, 스님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체유심조’와 ‘가는 걸 잡지 말고, 오는 걸 막지마라’ 정도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보왕삼매경’을 보고 좋다고 느낀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불교 철학을 온통 이해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몇 가지 불교 철학 개념을 알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에서 막혔던 가슴이 터지고, 답답함이 사라지며 ‘아 ! 그래,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연기적 사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책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책이다. 가지고만 있으면 책이 아니라 짐이거나 스트레스일 뿐이다. 좋아했던 남자의 변심을 원망하고 안타까워하고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연기緣起가 무엇인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사라짐이다.

“‘연기적 사유’는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주역의 모든 것은 변한다와 같은 변화를 긍정함을 토대로 한다. 그러니 불변한 것을 찾으려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다.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혼 초기에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10년, 20년 후에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연기적 사유는 동일한 것조차 조건에 따라 본성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업’이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하는 성향으로 관성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업은 본성이 아닌 것조차 반복되면서 본성처럼 몸과 입, 의지에 달라붙어 관성적인 언행을 만들어낸다.” 연기적 조건의 차이에 업의 힘이 끼어들어 변화를 만들어간다.

 

불교의 가르침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상이란 조건이 달라져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무상이란 동일성이 없음, 동일성에 반하는 ‘차이’가 있음이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봄이다.” 무상을 보지 못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 할 때 애착과 집착이 일어나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동일성의 사유’도 배운다. 차이에서 출발하는 불교 철학은 차이화에서 생긴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일성에 가두려는 힘에 대항하며 차이를 긍정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 과학의 분석적 인과성과 불교 철학의 연기적 인과성을 비교한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이라는 단서로 독립변수와 종속 변수로 분석하는 인과는 서양의 분석법이다. 분석적 인과성에서 변수간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어야 하지만, ‘연기적 인과성’이란 필연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필연성을 가진 법칙마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우연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카게무샤의 눈물’에서 우리는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를 풀어낸다. 자아는 ‘환경이나 관계 등 외부와의 만남에 의해 그때마다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안정성’이라 본다. 행동패턴은 익숙해진 일상생활을 쉽고 편하게 해 주는데, 이는 새로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패턴 안에 제약된다. “삶의 가능성이 ‘나’라고 불리는 성격이나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오십 정도가 되어야 자아가 안정된다는 말은 자아에 갇혀가는 시기라는 말이다.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나와 남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남에게 폐가되고, 나에게 안타까운 어떤 상태를 표시할 뿐이란다. 그렇기도 하다.

 

지구는 가장 큰 공동체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대기비율처럼, 지구의 온도 역시 그런 항상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일 뿐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생명체다.”

 

끌어당겨 내 것으로 가지려는 마음(탐심 貪心), 밀쳐 내거나 제거하려는 마음(진심 嗔心) : “오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치달리고, 갖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집착하며, 가버린 것을 붙잡으려 애쓰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을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이 다가온 것을 밀쳐내려 버둥거린다.”

 

‘도’라는 지혜는 선악호오, 미추정사 美醜正邪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 요체다. 분멸은 모두 ‘나’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호오미추의 척도를 내려놓고 애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저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들리고 그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호오미추의 판단을 떠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空’이란 연기적 조건을 모두 지워 남는 것이 아무런 본성도 규정성도 없음이다. “공성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윤회’는 영생불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삶이란 모면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에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런 고통 속에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윤회의 중단은 고통스런 삶의 중단이요, 그로부터 벗어남이다. 열반, 해탈은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연기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당대에는 혁명적 발상이다. “고통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차분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였다.” 고통이나 번뇌 없는 깨달음은 없다. 윤회하는 현세적 삶과 별개의 해탈이나 극락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윤회하는 삶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이다. 고통에서 배우려고만 한다면 깨달음을 향한 길을 알려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다.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기쁨을 주고 최대한 슬픔을 덜어주며 살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은 집착이다. “연민 없이 사랑하라.” 동정이나 환대는 평등성과 거리가 멀다. 동정이나 연민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비대칭성이 전제되어 있다.

 

一切唯心造 :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그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만든다.”

 

十二緣起 : 無明/行/識/名色/六處/觸/受/愛/取/有/生/老死

앞에 것이 뒤 것의 조건이다. 뒤는 앞이 있어서 일어난다.

 

“미움 없이 미워하라.”와 “눈 업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는 것들”, “十二緣起”의 어느 부분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휴에서 2016년 11월 초판을 내놓았고, 2017년 9월 초판 6쇄, 본문 356쪽 분량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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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2018.7.3.(화)

허리를 세우고 걷는 행위와 생각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다. 생각,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철학을 발전시켜 왔던 사람들을 철학자라 부른다. 걷기와 철학자! 칸트가 걷는 시간에 태엽시게를 맞췄다는 일화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구분하기 전에 떠오른다.

이동방법으로 걷는 행위가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일 만보 걷기를 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하체를 튼튼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걷는다. 목표는 목표로 존재하고 월 2만~2만 5천보를 걷는다. 걷는 과정에서 인사이트와 사고의 융합도 경험한다. 글 쓰는 기간에 걷기는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글감을 늘려주고 다듬기도 한다. 건강을 목적으로 걷다가 경험한 통찰은 걷기의 가치를 키워준다는 걸 지난겨울에 경험했다.

그러니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이란 제목에 목차도 살펴보지 않고 구입한다.

전반부의 글 전개는 걷는 것을 조감하는 행위로부터 말하기, 글쓰기와 연계하려 한다. 조금은 억지스럽다. 인간이 걷는 행위를 아무리 철학자라지만 100여 페이지에 풀어가니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다만, 걷기, 산책이란 행위를 꾸준히 했던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세 번째 산책’과 ‘네 번째 산책’은 지식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밤늦게 출발할 만보 걷기를 할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60분간 걷다 왔고, 샤워를 마치고 독서노트를 쓰도록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네 개의 산책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 : 로봇이 위험하고 정교한 이를 해내지만 인간의 사소한 동작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나이 들어감을 ‘세월의 타격’으로 표현한다. 이 책이 걷기, 말하기, 생각하기의 관계를 둘러싸고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말하는 건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락이 시작되었다가 만회되고 다시 이어지면서 나아간다.”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철학은 걷기 방식과 유사한 존재 양식에 따라 이어진다. 넘어지면서, 넘어지는 걸 스스로 막으면서 무한히 반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양식이다.”

 

첫 번째 산책 : 플라톤 철학의 핵심인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감각의 허상에 사로잡힌 포로들이며, 진실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인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실제 세계로 여긴가는 걸, 지실은 저 너머 다른 곳에 있으며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요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아침 일찍, 때로는 몇 시간 동안 씩 걸으며 성찰하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던 탓이다.

회의주의자들은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기쁨과 슬픔은 어떤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에 선택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겉모습을 보고 이런 대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뿐이다.

디오게네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는 집, 부인, 자식을 버렸고, 통 속에서 자고(이것만 알렉산더와의 일화로 알려져 있다), 신전에서 먹을 것을 훔치고,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하고, 행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단다. 화폐도 위조 했다네. ‘삶과 자연’만 존중했다고 한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연일 재판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할 철학자다.

세네카 편에서는 로마에서 걸음걸이로 직업과 여자의 정숙함을 판단했다고 한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두 번째 산책 : 힐렐의 일화를 소개한다. “성서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고? 문제없네.” 힐렐은 “사람들이 네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걸 네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 전체의 말이네. 나머지는 모두 해설이네. 이제 가서 공주하게나......”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다름이 없다.

간주곡 : “일반적인 생각의 차원을 떠나 철학적 생각과 그 고유한 방식에 몰두하면 걷기와 생각의 닮은 점이 분명해진다.” “명백한 사실들을 문제 삼지 않고, 확실한 사실로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철학도 없다.”

 

세 번째 산책 : 오컴이 활동하던 13세기 유럽은 모든 학자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라틴어로 말하고 읽었다. 오컴은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존재하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하게 구분하는데 이는 비트켄슈타인이 나오기 600년 전이다. ‘오컴의 면도날’

몽테뉴는 서재에서 백 보를 걸으며 <수상록>의 텍스트를 받아 적게 하고 구술했단다.

루소는 “걷기에는 내 생각을 활기차고 생기 넘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움직여야만 정신이 깃든다.”라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산책을 예술로,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거의 삶의 이유로 만든다. 어디론가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한 걷기, 이것이 혁신이다.” 산책을 예술로라는 구절은 젊은 연인들이라면 끄덕일 듯하다. 저자는 루소가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쓴 원동력이 걷기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우리도 걸어야 한다.

칸트에게 걷기는 군대 같은 엄격함이 필요한 건강법이자 엄청난 작업을 하며 버티는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칸트가 생활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역사학, 지리학, 문학, 법학을 강의해야 했기에 대단히 일찍 일어났고, 사시사철 일했으며, 매일 일이 끝나면 걸었다고 한다. 칸트는 혼자 걷기와 코로 숨 쉬며 걷기 방법을 썼단다.

데카르트, 디드로, 공자, 노자, 붓다, 헤겔도 많이 걸었던 사람으로 묘사한다.

네 번째 산책 : 쾨뢰시 초머 산도르라는 철학자를 처음 알게 됐다. 언어에 재능이 있던 헝가리인인 그는 헝가리어의 기원을 찾아 헝가리에서 터키, 페르시아를 거쳐 티베트에 도착했고 이 걷기 여정에서 터키어, 페르시아어, 티베트어를 익혔다. 히말라야에서 걸어서 벵골과 콜카타까지 더 걸었다. 티베트에서 7년간 머무르며 영국의 부탁을 받고 티베트어-영어 사전과 티베트어 문법책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보러” 떠났다가 아샘의 다르질링에서 쉰여덟에 이질로 죽는다.

소로는 하루에 적어도 네 시간 이상 걸었다. 월든 호수에 살 때. 소로가 걸은 것은 어디론가 가기위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에 다가가기 위해서 였다.

걷기는 관찰과 반추의 원천이자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 공감한다.

니체도 한 평생을 걸었다. 오직 시각을 다양하게 늘리기 위해서 이었으리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키르케고르, 비트켄슈타인의 걷기에 대해서도 저자의 생각을 밝힌다.

 

에필로그 : 철학, 걷기, 말과 생각은 동일한 내적 움직임에 의해 작동되는 유일하고 동일한 활동이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책세상에서 본문 219쪽 분량으로 2017년 11월 초판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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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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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스키타이 초원에서 크림반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과 피렌체, 파리, 런던을 휩쓴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역사다.

<La Peste> 는 알베르 까뮈가 2차대전후 알제리 오랑이란 항구도시에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를 서술자로 두고 인간의 삶을 그린 소설이고.

역사와 철학이 주지 못하는 걸 문학이 줄 수 있음을 장 타루가 페스트에 굴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확인한다. 그는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었기에. 노트를 기록하고 작품해설을 보려한다. 내가 느낀 것과 해설의 간극이 얼마나 가까운가를 알고 싶다. Peste는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가 Peste가 창궐하기 전에 허약한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낸 후부터 시작한다. 리유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장 타루, 리사르, 늙은 카스텔, 그랑, 랑베르, 코타르, 라울, 파늘루라는 조연과 Peste가 시작돼서 수많은 목숨을 먼나라로 데려가고 제풀에 힘이 떨어져 폐쇄된 도시가 개방되기까지,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까뮈는 5부로 소설을 구성했으나 독자인 나는 내 나름대로 를 동심원이 확대되는 것처럼 4단계를 거치며 소설을 재구성하여 읽는다.

첫 단계에서 도지사 리사르와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의 입장차이, 즉 도시에 퍼지는 병을 Peste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관료와 의사의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인다. 다음과 같이...... 『리사르는 주저하다가 리유를 건너다보았다. “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Peste라고 확신합니까?”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결국”하고 지사가 말했다. “이것이 설령 Peste가 아니라 해도, Peste가 발병했을 때 취하는 예방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요” “기어코 제 의견을 필요로 하신다면 사실 제 의견은 그겁니다”』 두번째 단계는 Peste를 공식화하는 단계다. 지사가 파리로부터 받은 전보공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Peste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세 번째 단계는 베르나르 리유와 장 타루의 대화이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 Peste로 죽어가는 사람수가 급격히 늘어갈 때 신을 탓할 것인가, 신을 원망할 것인가를 두고 이루어지는 대화를 삼단계로 본다.

마지막 단계는 인간에 대한 봉사가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할 것 보다는 찬양해야할 것이 더 많다”고 말하고 싶어 리유가 서술자로서 이야기를 쓴 거라는 고백이 네 번째 단계다.

 

호텔에 살고 있는 장 타루는 차장 검사를 아버지로 두었기에 한 때 유복한 시절을 지내 넉넉해 보이는 젊은이다. 그는 Peste 창궐로 도시가 폐쇄된 기간 내내 수기를 써 일상을 기록한다.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다. 11월에 장타루와 리유는 테라스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우정의 시간을 갖는다. 리유는 타루의 인생을 들어주고 방파제와 가까운 바다에서 수영하며 달콤한 추억을 만든다. 정월에는 타루가 Peste에 굴복한다. 수용소에 격리하지 않고 베르나르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리사르는 도지사로 Peste를 공식화하기를 주저하는 전형적인 관료지만 책임을 다하다 죽는다.

늙은 카스텔은 Peste 혈청을 만들기를 반복하고 10월에는 실험한다. 그가 만든 혈청의 효과였는지, 겨울이 왔기 때문인지, Peste가 힘을 잃어서인지 명확치 않지만 그랑이 살 수 있었던 까닭중 하나다.

그랑은 시청 하급 공무원으로 아내 잔은 그를 떠났지만 잊지 못하고 글로 그리움을 쌓아둔다. 그랑은 Peste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때 봉사대인 보건대에서 서기 비슷한 역할을 해낸다. 베르나르 리유는 그랑을 보잘 것 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 그랑에게도 Peste가 들어온다. 떠나간 아내 잔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편지를 쓰고 싶다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울 수밖에 없었다. 소설 한 장을 넘기니 쥐가 다시 나타난다. 그랑의 병세가 호전돼서 소설 끝까지 살아 봉사한다.

랑베르는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신문기자다. 탈출 직전에 탈출을 포기하고 오랑에 남아 보건대 일에 동참한다.

코타르는 연금생활자로 한 때 자살을 기도했지만 폐쇄된 도시로 들여오는 물자를 암거래해 돈을 모은다. Peste가 쇠퇴하자 불안해하고 급기야 총을 쏘는 미친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체포된다.

라울은 랑베르의 도시 탈출을 도와주려 노력한다. 1만 프랑을 받기로 하고.

파늘루는 인간보다 신의 의지에 믿음을 깊게 가진 카톨릭 신부다. Peste가 만연하자 자원봉사에 열성적으로 힘을 보탠다. 그는 “신부가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순”이라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한다. 병명미상으로 기록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 3부는 Peste 절정기의 아랑을 묘사한다. 봄에 시작된 Peste가 8월에 절정에 이른다. 공포와 반항을 내포한 생이별과 귀양살이, 시내에서도 격리구역 설정하기, Peste균을 없애겠다는 의도로 빈발하는 방화. 최대한의 신속성과 최소한의 위험성을 바탕으로 한 장례식. 곤궁이 공포보다 절박해지는 상황. 절망에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다. 개와 사람의 죽음의 차이는 확인도장을 받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소설 4부는 9월부터 12월까지의 기록이다. 10월에 큰 비가 내리고, 혈청은 성공하지 못하고, 혈청을 투여한 어린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모두 큰 충격을 받는다. 11월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내려간다. 태양이 힘을 잃어간다. 12월이 되면 그랑의 병세가 절망과 희망을 주고받는다.

소설 5부는 정월부터 이월까지의 기록이다. Peste가 약화된다. 겨울추위와 함께. 카스텔의 혈청도 효과가 나타나고. 병이 제풀에 힘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흥분과 의기소침이 교차한다. 단말마의 고통과 기쁨의 중간지점이다. 정월에 장 타루가 죽음에 굴복하고 이튿날 베르나르 리유는 일주일전 요양 가있던 안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2월 어느날 오랑시는 폐쇄했던 문을 연다. 랑베르가 기차역에서 아내를 기다릴 때 행복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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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김연수 지음 / 앨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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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30.(토)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역식>외 59권의 단행본과 강석화의 <조선후기 함경도와 북방영토의식>외 44편의 논문, <경국대전>외 26개의 자료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선조의 비겁과 무능, 일본의 교활함, 명나라 신종황제가 제발 자강하려고 애쓰라며 조선을 보는 태도를 보면 속이 터진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황폐화된 조선 강토에서 죽어간 민중과 살았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삶이 보인다. 의병활동과 이순신, 김덕령을 폄하하고 죽이는 선조의 태도에서 어떤 철학이 선조에게 있었는지 답답하며,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쟁을 대하는 16세기 말 조선과 일본, 명나라, 여진의 시각을 보며 현재의 국제정세와 비교해 본다. 저자 김연수가 왜 제목을 <임진왜란 비겁한 승리>로 지었는지 수긍할 수 있다.

 

임진년 왜의 침입을 대한 선조의 생각들은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에서 볼 수 있다. 왜가 침입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근거가 여러 사료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조정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번봉을 지켜 조공을 착실히 바쳐 왔으며 제후의 법도를 어기기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나라 대하기를 내복內服처럼 여겼으며 알려 줄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알려 주었고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등 마치 한집 식구나 부자와 같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귀국도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고 천하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선조수정실록 24년 5월 1일]

전쟁 전 사신으로 조선에 와 있던 일본 승려 현소를 통해 보낸 공식 문서 내용이다. 조선이 명의 속국이니 명이 지켜줄 거라는……. 명나라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진 왜가 이 문서를 보고 얼마나 헛웃음을 쳤을까?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고 그럴 것이라고 믿고 TV에 나와 공공연하게 이를 언급하며 사드 등 전략무기에 믿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떠오른다.

 

“충주에서 패전 보고가 이르자, 임금이 대신과 대간을 불러들여 파천에 대해 발의 하였다” [선조실록] 25년 4월 28일

왜가 부산에 침입해 보름이 지난 후에 선조의 반응이다. 대신들이 파천을 청하기를 기다리다 지친 선조가 스스로 입을 열어 도망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승만이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전으로 도망간 것과 다르지 않다.

 

“7년 동난 행한 모든 일이 움츠려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계책뿐이었고, 쇄신 분발하여 적을 섬멸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리를 진작시키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남쪽으로 내려가겠다는 하교가 있지만, 신은 믿어지지 않는다” [선조실록]31년 11월 7일

이는 의주로 도망가고 요동으로 도망가려 했으며, 조명 연합군이 한양 도성을 수복하고 조정 신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자는 청을 6개월 동안 미루던 선조가 전쟁이 끝날 무렵에 경상도 남동 해안에 웅크리고 있는 왜군을 몰아내는데 임금이 내려가 독전하겠다는 선조의 말을 듣고 사관이 기록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153건 사료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대하는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시각을 드러낸다. 정말 다행인 것은 사관들이 임금과 대신 간에 주고받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하는 이유를 누구나 알 수 있다.

 

다음은 조정 대신들의 시각을 실록에서 찾아본다. <선조수정실록> 24년 3월 1일자다. 먼저 통신사로 다녀온 부사 김성일은 정사 황윤길이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란 말에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라고 말한다.

한양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출발하는 날 선조의 의중을 알아차린 도승지 이항복의 말이다. “의주에 머물만합니다. 만약 형세와 힘이 궁하여 팔도가 모두 함락된다면 바로 명나라에 가서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몽학의 난에 연관된 것으로 사태를 오판한 조정은 의병장 김덕령을 체포하고 처분을 논할 때,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의 若無湖南 是無國家와 어찌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지…….

한편 조선에 군사를 보낸 명나라의 시각은 사료에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살펴본다.

“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칙유하노라. 그대의 나라는 대대로 동번을 지켜오면서 본디 공순함을 다하였고 (중략) 국왕은 서쪽 해변으로 피난하여 초야에 파천해 있다고 하였다. (중략) 지금 특별히 행인사행인 설번을 보내어 국왕에게 이르노라. 그대는 마땅히 조종이 전해 준 기업임을 생각하여야 할 것인바 어찌 차마 하루아침에 가벼이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급히 치욕을 씻고 흉적을 제거하여 힘써 광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선조실록] 25년 9월 2일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자강책을 강구하지 않았던 조선이 명에게 다시 원병을 청한다. 이에 명나라가 조선에 보낸 비난이다.

“어찌하여 몇 해 동안이나 휴식하면서도 군사훈련을 시키지 않고 스스로 와신상담을 잊고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게 되자, 전과 같이 또 장황하게 글을 바쳐 천조의 구원을 바라느냐. ...... 짐이 약소를 측은히 여기는 인과 어려움을 구해 주는 의로써 다시 군대를 보내고자 한다. ...... 짐은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만리 먼 길을 달려가 도와주는데 너희들은 사직을 지키는 의리에 소홀해서 한 가지 계책도 세우지 않았다. ...... 너희 마음이 너무 어두워 가련할 뿐이다.[선조실록] 30년 10월 24일

쪽팔릴 뿐이다. 주은래나 시진핑이 이런 역사적 사실과 모를 리 없고, 한반도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동인 세력의 리더로 왜의 침입에 전쟁준비를 하자고 못하고 수수방관했지만,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겼음과 강항이 <간양록>을 남긴 것 말고는 온통 부끄러운 일 뿐이다. 충무공이 없었다면…….

 

역사에서 조선은 왜의 침입을 알지 못했다고 가르쳤다. 최소한 알고 있었다고 가르치려면 어떤 준비를 했는가를 말해야했기 때문이리라.

- “나는 이 적들을 한없이 우려했다.”고 <선조실록> 25년 5월 2일자 기록을 보면 선조는 왜가 침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 조선은 정보를 얻을 곳이 없어 조선에 와 있던 왜 사신 현소로부터 “내년에 길을 빌어 상국(중국)을 침범할 것이다”는 확언으로 조정은 의논에 들어간다.

- 중국은 일본이 조선을 거쳐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전쟁 8개월 전에 류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에 통보했다. 일본에 머물던 중국 상인 진신과 허의후 등도 일본이 중국ㅇㄹ 침략할 것이며 조선이 일본군의 향도가 될 것이라는 정보를 중국 조정에 전달했다.

- 관동별곡으로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정철은 정여립 역모 사건을 기획하여 동인을 상대로 원한을 갚는 소인배인 듯하다

 

<임진왜란 비겁한 승리>는 앨피에서 2013년 5월 초판을 내놨다. 본문 395쪽 분량이다. 사료를 토대로 한 글이지만 읽기 쉽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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