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엮음, 하소연 옮김 / 자화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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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좋은 친구를 만들라고 한다. 인생을 통틀어 두셋이라도 좋은 친구가 있으면 된다는 말도 있다. 좋은 친구의 충고가 나를 바르게 가도록 도울 것이라는 기대 한다. 친구도 나에게 그렇게 기대할 거다. 두어 번 충고를 받았다. 충고를 받는 입장은 내색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이미 사고와 행동이 굳어버린 상태로 받은 충고는 참 난감하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가며 친구에 조언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친구에게 조언하는 것과 직장 동료나 후배, 선배에게 조언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온 삶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픔을 주지 않고 조언해주는 것이 책이다. 마르쿠스 아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네카의 인생론과 행복론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조언은 담담하게 우리를 다독인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그렇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감성적이지 않아 놀라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조언은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 이기적인 조언>은 자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두 번째로 사들인 <세상을 보는 지혜>는 쇼펜하우어가 엮어낸 것이다. 상큼함은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보다 덜하다. 중복된 내용도 있다.

 

293개 잠언과 풀이 중에서 밑줄 친 몇 문장을 옮긴다.

- 성찰과 의지의 관계는 눈과 손의 관계와 같다.

- 행복은 일시적이지만 명성은 지속적이다.

- 견고한 솔직함에 속임수가 들어 있다.(사기꾼)

-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은 똑같이 필요하다. 그 양자를 보장하는 것은 근면이다.

- 자기 시대에 맞는 사람이 되라. 사물은 그에 맞는 시기가 있다.(패러다임)

- 완성은 양보다 질에 있다. 특출한 것은 내적인 것에서 솟아난다.(낭중지추)

- 정신의 열매에도 성숙의 단계가 있다.(독서)

- 과장은 거짓과 흡사하다.

- 정신의 약함은 육체의 약함보다 더 많은 것을 훼손시킨다.

- 신은 우리를 회초리로 길들이지 않고 시간으로 길들인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 들어설 때의 갈채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끝이중요)

-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이고 자기 인식은 자기 개선의 출발점이다.(세상의 중심은 나)

- 못 알아 듣는 척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섬세한 계략은 없다.(주멍푸)

- 질투는 완벽한 자의 무과실을 과실로 간주하고 그 완벽함을 저주한다.(공감지수100)

- 외양이 나쁘면 정당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세상의 절반이 다른 절반을 비웃는다.(빛과 그림자, 명과암)

- 현명한 사람은 남의 죄를 들춰내거나 기억하지 않는다.(아프게 하지마라)

- 샘물이 흐려지면 그곳에 무엇을 넣어야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버려두어야 맑아진다.(인식전환)

- 아픈 상처를 보이지 마라. 그러면 모두가 그곳을 찌를 것이다.(세상사)

- 뱉은 말은 담을 수 없다. 뱉기 전에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글은 더하다)

- 현명한 자라면 운명의 카드가 종종 뒤섞인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인생은 오디세이 서사시)

- 우리의 삶은 기쁜 날보다 기쁨이 없는 날이 더 많다.(그렇다)

- 사람은 자기가 할 일을 말할 필요가 없고, 이미 말한 것은 더 할 필요가 없다.(중언부언 하지마라)

- 오래 살려면 별로 쓸모없는 것이 한 방법이다.(볼품 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

- 평화롭게 사는 자가 오래살고, 인생을 관조하며 살아야 지혜롭다.

- 자기 정원에서 늘 보아온 동상을 제단위에 세울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이거야말로 진실)

- 천상에는 기쁨이 지옥에는 고통이, 그 중간인 우리 세상엔 두 가지가 다 있다. 운명은 바꾸고, 늘 행복한 것도 늘 불행한 것도 없다.(같은 이야기)

- 남에게 예의를 보이는 것은 돈을 들리지 않으면서 많은 도움을 가져온다.(경험상 그렇게 되더라)

- 농담을 받아들일 줄 알라. 그러나 남용하지는 마라. 전자는 예절, 후자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가벼워 보인다)

- 작은 재앙이라도 결코 가볍게 보지 마라. 행운이 혼자서 오지 않듯이 재앙도 결코 혼자서만 오진 않는다.(엎친 데 덮친다고)

- 기쁨을 주는 일은 소유하지 마라. 무엇을 소유하면 그에 대한 즐거움은 줄어들고 싫증은 늘어난다.(무소유)

- 화살은 몸을 찌르고 악담은 심장을 찌른다.(심장이 오래 기억하지)

- 처음 좋은 평을 받은 것을 잘 이용하여 그 바람 같은 찬사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자기가 노리는 것을 붙들어야 한다.(세일즈의 기본)

- 상황에 맞게 살아라. 행동도 생각도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 시간과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하여가)

- 성품은 그가 지닌 직위보다 우월해야 한다.

- 남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보는 사람은 사려 깊은 사람이다.(신독)

 

<세상을 보는 지혜>20186월 자화상에서 본문 271쪽 분량으로 내놓은 잠언집이다. 핸드백에 넣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꺼내 보기 딱 좋은 미니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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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 - 인류 문명의 진화를 이끈
<독서의 힘讀書的力量> 편집출판위원회 지음, 김인지 옮김 / 더블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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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힘

2018.10.14()

 

사나흘 동안 책 읽기를 게을리 했다.

<독서의 힘>은 지난주 부천 교보문고에서 <독서로 말하라>가 놓인 위치를 확인하다 골라 배달된 책이다. “모두가 책 읽는 나라를 화두에 올리며, 중국 CCTV 다큐를 출판한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류 문명사에서 독서 흐름과 중국의 독서 운동을 파악할 수 있다.

현대 도덕의 추락 배후에 문명의 쇠퇴와 영혼의 황폐화가 있다는 인식에서 2013년 중국은 전인대에서 전 국민 독서법을 제정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독서 시설과 조건을 제공한다. 선전은 도서관 확충으로 책을 사랑하는 도시, 존경받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우한의 지하철 도서관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제도다. 중국에서는 벌써 독서를 생활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독서의 힘>은 무에서 유로 이어진 책의 역사를 다룬다. 고전은 모든 지식인이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하는 문명이 영혼이자 현재 문명의 정신적 선조다. 동방견문록과 천연론의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고, 인생의 성공과 독서 간의 대체 불가능한 인과 관계도 보여 준다. 문화 계승과 문명 창조에 과거 제도가 끼친 영향은 구제도에 대한 다른 해석이자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디지털독서는 여과되지 않은, 정보의 중복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조각난 정보 때문에 치밀한 논리관계가 부족하다는 분석에 공감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낙오되고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2017년 통계는 한국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8.3권이다. 2016년 중국이 파악한 통계로는 2013년 중국 성인 연평균 독서량이 4.58권인데, 한국,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은 각각 11, 20, 40, 60권이다. 4만 불에 도달하지 못하고 경제가 정체하거나 이명박의 후안무치 기사를 봐야하는 이유는 개발독재 탓에 독서를 게을리 한 업보라는 생각이다.

 

- 축의 시대 위대한 작품인 성경, 도덕경(BC770~BC21), 논어(BC540~400), 손자병법(BC515), 기하학 원론(BC300)

- 자산 계급의 성정과 세계를 바꾼 동방견문록(1298), 군주론(1532),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 햄릿(1598~1602), 동물의 심장과 혈액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1628), 요재지이(1680), 프린키피아(1687), 법의 정신(1748), 파우스트(1768~1775), 국부론(1776), 미국 독립선언문(1776), 홍루몽(1791), 인구론(1798),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 자유론(1859), 종의 기원(1859), 꿈의 해석(1899), 전쟁론(18세기말~19세기초), 상대성 이론(1905), 침묵의 봄(1962)

- 사회 변혁을 이끈 공산당 선언(1848), 자본론(1867), 천연론(1897), Q정전(1921)

책 끝에는 중국과 외국에서 인용되는 책 속의 명언을 실어두었다.

 

<독서의 힘>전통적인 독서는 체계적인 지식과 풍부한 영양분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여전히 강한 힘으로 우리를 지탱해 주는 독서를 통해, 우리는 더욱 활력이 넘치는 사상과 지혜, 깨달음, 그리고 강한 의지도 함께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란 중국인이다. <독서의 힘>은 책, 독서에 관한 상식 책이다. 아주 쉽게 쓰인 글이다. 더불북에서 20183월 초판을 본문 335쪽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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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폐허에서 - 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판카지 미슈라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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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지에서 독특한 레시피로 만들어낸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한 여행이다. <제국의 페허에서>가 보여 준 책 읽는 맛이 그렇다. 그 맛은 익숙한 맛이 아니라 새로운 맛이다.

십 여 년 전일까. TV토론에서 어떤 정치인은 발언에 답답했었다. 강대국의 눈 밖에 나면 나라가 금새 혼란에 빠지거나 망할 듯 토론자에게 정신차리라는 투로 말하더라. 의존하는 사고 방식과 세계 인식에 혀를 차는 것 말고는 시청자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몇 가지 차원에서 지적 호기심은 배우는 기쁨을 준다.

첫째, <제국의 폐허에서>19~20세기 영국, 미국이라는 서구 강대국의 시각에서 세계를 인식하도록 가르치고 배워왔던 기성세대에게 새 지평을 안내한다. 인도사람 판카지 미슈라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해석한다. 물질을 중시하는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정신도 중시하는 중국과 인도, 이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둘째, 앨빈 토플러가 3의 물결로 지식정보사회를 예견한 것처럼,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 량차오, 타고르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데, 선견지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말로를 예견했던 사상가들의 삶을 통해 21세기를 예견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이미 황태연의 <갑진왜란과 국민전쟁>과 같은 국내 서적에서도 언급하는, 드러내기 껄끄러운 내용을 통해 알려준다. 러일전쟁이후 일본에 대한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반응은 환영주목이었다. 동양이 서양을 꺾었다고 인식한 것이다. 대한제국 말기 일부 지식인들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한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대다수 우리에겐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넷째, 경제학자였던 슈펭글러가 아마추어라곤 하지만 <서구의 몰락>을 내게 된 배경에 물질주의의 만연, 1차 대전 이외에도 러일전쟁에 승리한 동양의 한나라, 일본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문화는 창조 모체인 영혼의 자기표현이며 영혼이 그 창조력을 고갈시켰을 때 쇠퇴한다는 기조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국사 교과서는 중국의 5.4운동이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운동이라고 가르친다. 대한제국의 3.1운동이 동양 강대국이었던 중국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이다. 책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중국인들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중국의 요구를 제출하였으나,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산둥반도의 반환 등 중국의 요구가 무시됨에 따라 실망한 것이 기폭제였음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제국의 폐허에서>는 머리말을 통해서 판카지 미슈라의 연구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책은 현대 세계의 모습을 19055월 쓰시마 해협에서 있었던 러일전쟁에서 그려낸다. 서구의 대표로 나선 러시아와 동양의 대표인 일본이 싸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서구 세계가 멘붕에 빠진다. 백인종이 무지몽매한 흑인, 황인종을 가르치고 깨우쳐 문명 상태로 만드는 것이 신의 뜻이며 이는 백인의 짐이란 인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다.

루스벨트, 인도 총독은 놀랬고 무스타파 케말, 자와할랄 네루, 타고르, 쑨원은 기뻐했다. 일본의 승리에서 오스만 제국, 이집트, 베트남, 페르시아, 중국의 신문은 추론에 들떴다. 세계 어디서나 식민지 사람들은 일본의 승리가 가진 심리적, 도덕적 함의를 열열히 받아들였다. 무슬림 나라의 학생들은 일본이 진보한 힘을 배우러 일본으로 향했다. 중국, 베트남, 인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판카지 미슈라의 눈으로는 유럽은 쓰시마 해전과 1차 대전에서 대학살을 자행으로 도덕적 위신을 대부분 잃어버렸다고 본다. 게다가 “2차 대전 중 아시아를 정복한 일본이 기진맥진한 유럽 제국들의 손아귀에서 아시아를 떼어내는 일에 일조했다”(p.18)고 본다.

20세기 역사를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으로 규정하는 유럽인과 미국인에 반하여, 아시아가 지적,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아시아와 유럽 제국들의 폐허에서 부상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판카지 미슈라의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구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아시아의 사상가,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본다.

이 책의 두 주역은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닌 사상가 겸 활동가다. 먼저 자랄 알딘 알아프가니(1838~1897)19세기 후반 중동과 남아시아에서 오래송안 언론 활동과 정치적 권고에 주력한 무슬림이다. 또 한 명은 현대 주국의 가장 두드러진 지식인 량치차오(1873~1929)인데, 그는 오랜 제국의 확실성을 무너뜨린 여러 사건과, 중국이 온갖 참상을 겪은 뒤에 세계의 주요 열강으로 다시 부상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현대 초기의 이 두 아시아인은 아시아 전역에서 서구와 서구의 지배를 향한 분노, 조국의 무력함과 쇠퇴를 근심하는 마음이 대중의 민족주의적 해방운동과 야심찬 건국 계획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선두에 서 있었다.”(p.23)

 

1: 종속된 아시아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은 서구인이 이슬람을 앞지르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듯, 1905년 쓰시마 해전은 동양이 서구에게 더 이상 허수아비가 아님을 암시한다. 비록 한국인의 입장은 기분 나쁘고 뼈아픈 역사일지라도.

헤겔은 중국이 세계사에서 뒤쳐진 까닭으로 해양 탐사에 무관심했음을 지적했다.

볼테르와 라이프니츠가 중국을 계몽주의의 정점으로 보았던 것과 반대로 19세기 초에 서구는 발달한 기술력과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중국을 뒤쳐진 나라로 보게 된다. 중국인은 19세기 서구로부터 당한 치욕으로 아편전쟁과 원명원파괴를 기억하고 있다.

680년 이맘인 후세인 이븐 알리가 카르발라 전투에서 순교한 일은 수니파와시아파 대립의 출발점이다.

서구에 정복당한 사람들은 분개하면서도 정복자들을 부러워했고, 결국 그들 힘의 비법을 전수 받기를 열망했다.” (p71)

2: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의 기이한 여정

이란에서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는 이슬람 혁명의 지적 대부로 숭배받는데, 선구적인 반제국주의 지도자이자 사상가로 여긴다. “휴면기의 동양에서 처음으로 자각의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다. 대대로 인도를 통치 해 온 무슬림에게 세포이 반란이 진압된 사건은 근본적이고도 총체적인 정신적 패배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란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델리와 카불, 이스탄불, 카이로, 테헤란, 런던, 모스크바로 돌아다니며 이슬람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다.

신은 인간이 자기 조건을 바꾸지 전에는 인간의 조건을 바꾸지 아니하신다.”

다음은 여성의 권리를 강조한 알아프가니의 연설이다.

여성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의무를 모르는 한, 어리석음에서, 치욕과 곤경의 감옥에서, 암흑과 오옥의 심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초급 교육과 기본적인 도덕을 가르칠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 여성의 교육이 경시될 때, 한 국가의 모든 남성이 박식하고 고매하더라도 그 국가는 한 세대 동안만 그들이 달성한 상태로 존속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어머니의 품성과 부족한 교육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그들을 배신할 것이고, 그 국가는 무지와 곤경의 상태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알아프가니는 이슬람 세계를 잠식해 오는 서구 국가들의 힘 앞에서 무슬림이 수동적으로 체념하는 태도를 버릴 것을 처음으로 역설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폭력적으로 대립하는 이항(二項)이라는 개념으로 이슬람과 서구를 사용한 최초의 주요 이슬람 사상가였다.” 무슬림 대중 사이에 아직 정치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시절에 대중운동에 참여하고 무슬림의 단결과 반란을 주장하는 등 여러모로 시대를 앞섰다.

 

3장 량치차오의 중국과 아시아의 운명

메이지 유신이후 서구를 따라잡던 일본인들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을 깔보는 경향을 갖게 됐다. 1885년 후쿠자와 유키치는 아시아 나라들이 가망 없이 뒤떨어진 데다가 약함으로 일본은 아시아를 탈출해서 서구의 문명국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당대 이론 엘리트들 사이에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1902년 일본과 영국의 군사협정은 유럽의 기준에서 본 국제관계에서 일본이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부러운 것은 메이지 당시 일본이 서구와 맺은 불평등 조약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려고 노력했고, 성공했다는 거다. 아직도 SOFA(한미행정협정)에서 불평등한 상황인 현재 우리를 보면 더 부러운 거다.

189537세 캉유웨이와 제자인 22세 량치차오가 과거시험 보러 베이징으로 가던 기선이 동중국해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수색을 받는다. 이 기이한 우연으로 량치차오는 현대 중국에서 우상적인 지식인으로 성장한다. 당대의 주요관심사와 미래의 많은 관심사를 예측한 명료한 글로 마오쩌둥을 비롯한 몇 세대 중국 사상가들을 자극한다. 중국 고전에 대한 학식과 서구의 사상과 동향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능력을 다 가지고 있었다. 량치차오는 옌푸(염복, 천연론)의 번역서로 서구 철학자들을 만난다.

량치차오는 파리강화회의에 중국 대표로 참석해중국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참담한 상태로 귀국한다. 인도와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파리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1차 대전에서 인도 병사 8만 명이 중동과 유럽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고매한 이상이었을 뿐이다.(프랑스 총리 클레망소는 하느님도 10개조뿐이었다고 농담했다고 한다) 파리강화회의는 서구의 현실정치가 아시아의 지식인들과 활동가에게 가르쳐준 교훈 가운데 가장 뼈저린 일이다.

“1917년에 권력을 장악한 레닌은 프랑스, 영국, 제정러시아가 체결한 중동 분할에 관한 비밀협약을 폭로했고, 중국에서 누리던 특수이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이러니 일제에 고통 받던 조선 지식인들의 마음이 움직일 방향은 뻔했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니라 현실을 타개, 개혁할 대안, 세력, 이념이 없었기에 선택한 것이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명국, 프랑스, 미국이란 제국주의의 이익추구가 월슨의 배반과 러시아의 불평등 조약파기와 함께 아시아 민족들에게 공산주의에 눈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었다.

량치차오는 민족의 힘이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서 비롯되는데, 민주주의란 군주제의 이기심과 반대되는 그저 공공심(公共心)”일 뿐이라고 본다

 

41919, 역동하는 세계사

이탈리아-터키 전쟁의 영웅인 무스타파 케말의 활동은 쓰시마 해전과 같은 충격을 아시아와 서구에 주었다. 서구의 몰락에 내재한 물질주의는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정복하고 개인과 계급, 국민 들이 서로 충돌하는 다원주의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끊임없이 새것을 원하고 끊임없이 좌절하는 서구의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은 전쟁에 지치고, 불안정한 현실에 괴로워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이 자랑하던 위대한 진보를 스스로 엄정하게 성찰하고 회의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유럽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눈에는 별안간 유럽이 멸망할 운명으로 보였고, 량치차오는 이를 감지한다.

 

량치차오는 유럽인은 과학의 전능을 고대해왔다. 이제 그들은 과학의 파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근대적 사유의 대전환기다.” 서구인이 보기에도 도덕적 질서를 강조한 공자와 맹자가 더는 부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신문화 운동의 급진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과학은 더 이상 사회복지 문제에 대한 만능 해결책이 아니었다. 량치차오는 물질적 삶은 정신적 삶을 살기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에 이르는 수단으로 목표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유교의 이상인 중용을 적용해서 모든 사람이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 버틀란트 러셀도 우리 문명의 뚜렷한 장점은 과학적 방법이고, 중국 문명의 뚜렷한 장점은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라고 역설했다. 량수밍(1893~1988)중국 문화의 근본 정신은 중용에 의거한 사상과 욕구의 조화.”라고 말한다.

 

5장 아시아의 타고르, 망국에서 온 사람

타고르는 인도의 유럽화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맹렬하게 비판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러일전쟁의 승리에 환호했던 타고르는 일본의 침략주의, 제국주의 팽창 의도를 알게 되자 신일본은 서구의 모조품일 뿐입니다.”“당신네는 유럽 제국주의라는 병균에 감염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193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참석한 뉴욕 만찬회에서 지금은 서구의 시대이고 인류는 여러분의 과학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여러분은 이 유감스러운 선물 때문에 무력해진 사람들과 굴욕을 당한 사람들을 착취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6장 아시아의 재형성

일본의 이익은 아시아의 이익이라던 궤변은 역풍을 맞아 탈탈 털렸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에게 깨진 프랑스 대신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5년 사이공 미대사과 옥상에서 미군헬기가 철수해야만 했다. 1965년 싱가포르 리콴유는 아시아 전쟁세대가 더 이상 제국주의 국가에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량치차오가 이루지 못한, 국민이 공유하는 윤리를 중심에 두고 중국을 되살리는 일을 시작했고, 오늘날 중국 정부는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는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죽고 정통 공산주의 보다 자유무역과 결합한 맹자의 공적 소유라는 경제적 이상에 기댄 듯한 원칙에 입각해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

내부가 약했던 이슬람 세계는 외부 위협에 시달렸으나 신이 사회를 인도하고 공동선의 개념을 규정한다는 이슬람의 믿음은, 개인의 이익에 입각한 사회경제 질서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았다. 이슬람주의 세계관에 따르면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 이데올로기를 만든 서구 자체도 실패한 것으로 본다. 오르한 파묵은 서구 세계는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느끼는 이 압도적인 굴욕감을 거의 모른다며 테러리스트를 찾는 일 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에 속하지 않는 가난하고 멸시받고 그릇된다수를 이해하는 것이 서구가 직면한 문제다라.”라고 일갈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서구에 대한 적의를 강화했다.

 

유럽의 인종들은 대개 지독한 불한당이지만, 적어도 신의 의지와 힘을 부여하고, 한동안 인류의 우두머리 자리에 앉도록 예정해 둔 듯한 불한당이다. 지구상의 그 무엇도 그들의 영향력에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1855년 알렉시스 토크빌의 예측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실이다.

아시아인들은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훼손한 과거의 종교적, 정치적 위엄을 잊지 않고 있다. 더불어 21세기 위싱턴 컨센서스(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의 대외 확산 전략,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 철폐, 무역 자유화와 시장 경제 국가 기간 산업 민영화 등)도 무너지니 신뢰를 잃고 있다. “분명 서구의 지배는 이미 제국과 문명의 기나긴 역사에서 놀랄 만큼 단명한 또 하나의 단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제국의 폐허에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1920년대에 사상가와 활동가들이 세계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11쇄가 책과 함께에서 20138월에 본문 486쪽 분량으로 나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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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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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운만큼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일본에 관한 책을 읽어왔지만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란 예감이었다. 예감은 95% 맞았다. 카프카가 책이란 얼음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오랜만에 지적 호기심을 풀어준 책이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통해 메이지 유신이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측 해안지도를 탁월한 개인의 역량을 알아본 일본막부가 1821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은 지리전공자인 나에게도 놀라운 소식이다.

 

프롤로그는 책을 집어 들면 읽을 수밖에 없게 썼다.

질문이 잘못된 것이면 올바른 답이 없다며, 근대화 이전에 조선과 일본이 비슷했다는 생각이 착각이란다. 일본이 1986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근대화에 일본은 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근대화 이전에 일본과 조선이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은 고대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문화적 우월감이 연장된 고정관념이란다. 우동가게 주인의 말이 아니라,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 시대 이야기란 부제를 쓴 까닭이다.

메이지유신 이전의 에도 시대는 역사,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다방면에서 정보의 습득과 실생활에서 응용을 통해 형성된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스키마가 근대화 시기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쉽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18개의 장중에서 2장과 3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밀려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와 다름없었던 에도로 영지를 분봉 받고 에도를 100만이 넘는 인구를 수용하는 큰 도시로 만든 과정을 그린다. 참근교대제는 제도로서 우키요에의 확산과 여행에 미친 영향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책은 천하보청과 참근교대제를 에도 시대를 이끌어간 막부 권력의 원천으로 파악한다. 재미있다. 4장부터 18장까지는 13개 주제에 따라 내재적인 발전 요인을 찾아내 알려준다. 한발 더 들어가 재미난 이야기를 옮겨본다.

2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 허허벌판을 영지로 받은 탓에 임진왜란 때 병력차출을 제외 받았고, 구원이 없음으로 조선통신사를 쉽게 받아들였다고 본다. 도쿠가와는 물이 없던 에도에 내륙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치수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간선도로를 구축하여 에도의 토대를 마려난 것으로 평가한다. 여기에는 히데요시 사후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보청의 역무로 다이묘들의 등골을 빼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풀어간다. 천하보청은 쇼군이 다이묘들에게 부과하는 공공사업 역무를 말한다. 성곽 축조, 운하망 건설, 하천 정비 및 농수로 건설, 간선도로 확충 등 인프라 건설에 다이묘는 인력과 자제를 제공해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쇼군은 다이묘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는 없었지만 천하보청을 통해 다이묘를 견제한 것이다. “천하보청에 따라 세금 징수가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로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관리비용등 매몰비용이 착복이나 증발 없이 모든 투입이 실물 인프라로 이어졌다천하보청의 역무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거나 부실한 다이묘는 영지를 뺏기거나 황무지로 옮겨가라는 명령을 받아야했으니 최선을 다해 인프라 건설에 참여해야 했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를 근대화를 예습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번저(번의 업무를 보는 저택으로 번에서 비용 부담)를 두어야 했다.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나와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제도다. 100명에서 500명 이상의 인원이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해야했는데, 제반 비용을 독자작인 번의 징세권을 갖고 잇던 다이묘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게다가 에도 체재비를 더하면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비용이 다이묘 세수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액수였다고 한다. 전국 270여 다이묘들이 이동과 에도 체재에 쓴 경비는 부의 환류와 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른 화폐경제의 확산과 대상인, 서민사회의 성장이 동반된 것이다. 더구나 에도와 지방이 연결된 전국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인원, 물자, 정보가 유입되고 분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는 천하보청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길을 닦은 신의 한 수’ ”라고 본다.

 

일본 된장(미소)이 전략물자였고, 센다이 다이묘는 미소의 개발과 대량생산법으로 센다이의 힘을 키웠다. 아직도 400년 된 센다이미소양조소가 도쿄에서 영업을 한단다. 이후 자율적인 미소 공장들 간의 경쟁이 경쟁원리에 대한 이해와 실용주의적 현실감각, 변화에 대한 감수성, 신기술에 대한 수용성차원에서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사회심리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일본에서 여행의 대중화는 서구보다 100년이나 앞서 장기투어, (), 료칸, 유곽 등에 300년이 넘는 축적이 담겨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 일본의 출판문화는 엄청난 기세(17세기 중반 200여개 출판업자, 18세기 중반 연간 1000여 종 신간)로 성장하여 “19세기에는 모든 국민이 책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활용하는 출판대국이 된다. 출판혁명의 시작은 17세기말에 <호색일대남>이란 오락소설, 포르노가 히트를 친 것으로 본다. ‘구사조시라는 그림과 텍스트가 결합된 가벼운 읽을거리장르가 유행하고, 18세기 말이면 전업 작가가 등장한다. 19세기 초에는 <경전여사>라는 초급 유교 경전 해설서가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에도의 시대는 나아가 판권, 대본업이란 개념이 일상화되는 출판 대국이었다.

교육의 힘도 정리해주는데 각 번 정부가 설치한 250여 개의 번교, 서민교육의 중심인 사설학당 데라코야는 읽고 쓰고, 주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었다.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주쿠()’의 역할도 중요하게 본다. 요시다 쇼인도 주쿠를 통해 후학을 키운 거다.

뉴스와 광고전단의 원형을 요미우리신문과 히키후다에서 찾는다. 요미우리는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 기록하고 있는데, 유래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히키후다는 상점, , 신사, 가부키 극장 등에서 사람을 끌기위해 만들기 시작한 광고지의 효시란다.

일본 최초의 본격 번역서 <해체신서>는 참여자들이 시금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3년만인 1774년 출간된다. 이는 서구의 관념을 자신들의 관념으로 변환하는 번역이란 언어의 통로를 만든 것이다. 하나오카 세이슈란 의사는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외과 수술(유방암 수술)이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마취제를 실험하다 모친이 사망하고 아내의 실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선산이란 마취제 개발 덕분이다.

에도 후기 측량가 이노 다다타가는 일본 최초 실측지도를 만든다. 50세 은퇴후 17년간 10차례 측량여행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후 3년 뒤 제자들이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완성한다. 쉰이 넘어 전일본 해안선 실측이란 도전을 일흔이 넘도록 실천한 것이다.

<난불사서>,<두후하루마>와 같은 사전 편찬과정을 보면 악전고투란 단어로 부족하다. 멘 땅에 헤딩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서구인에 의한 일영사전 출간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인들이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일사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란다.

도자기가 문화에서 산업으로 성장해 나간 과정, 에도시대 지식인의 모습에서 시대가 변하면 지식도 변한다는 것을 이끌어 내고, 도올 김용옥이 <논어 한글역주>에서 언급한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의 도덕과 정치 분리 주장,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의 길’,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던 막부의 화폐정책 등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에필로그에 인용한 영국 재야 사학자 헨리 토머스 버클의 문명의 진보를 결정하는 것은 집단 지성의 축적이며, 그 축적은 부의 창출과 분배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일본의 좌표로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수준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지식인들에게 의문을 가져야 답이 있음을 촉구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는 뿌리와 이파리에서 20178월에 초판을 낸 것으로 나는 초판 5쇄를 읽고 배운 거다. 본문 174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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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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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운만큼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일본에 관한 책을 읽어왔지만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란 예감이었다. 예감은 95% 맞았다. 카프카가 책이란 얼음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오랜만에 지적 호기심을 풀어준 책이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통해 메이지 유신이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측 해안지도를 탁월한 개인의 역량을 알아본 일본막부가 1821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은 지리전공자인 나에게도 놀라운 소식이다.

 

프롤로그는 책을 집어 들면 읽을 수밖에 없게 썼다.

질문이 잘못된 것이면 올바른 답이 없다며, 근대화 이전에 조선과 일본이 비슷했다는 생각이 착각이란다. 일본이 1986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근대화에 일본은 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근대화 이전에 일본과 조선이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은 고대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문화적 우월감이 연장된 고정관념이란다. 우동가게 주인의 말이 아니라,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 시대 이야기란 부제를 쓴 까닭이다.

메이지유신 이전의 에도 시대는 역사,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다방면에서 정보의 습득과 실생활에서 응용을 통해 형성된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스키마가 근대화 시기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쉽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18개의 장중에서 2장과 3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밀려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와 다름없었던 에도로 영지를 분봉 받고 에도를 100만이 넘는 인구를 수용하는 큰 도시로 만든 과정을 그린다. 참근교대제는 제도로서 우키요에의 확산과 여행에 미친 영향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책은 천하보청과 참근교대제를 에도 시대를 이끌어간 막부 권력의 원천으로 파악한다. 재미있다. 4장부터 18장까지는 13개 주제에 따라 내재적인 발전 요인을 찾아내 알려준다. 한발 더 들어가 재미난 이야기를 옮겨본다.

2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 허허벌판을 영지로 받은 탓에 임진왜란 때 병력차출을 제외 받았고, 구원이 없음으로 조선통신사를 쉽게 받아들였다고 본다. 도쿠가와는 물이 없던 에도에 내륙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치수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간선도로를 구축하여 에도의 토대를 마려난 것으로 평가한다. 여기에는 히데요시 사후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보청의 역무로 다이묘들의 등골을 빼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풀어간다. 천하보청은 쇼군이 다이묘들에게 부과하는 공공사업 역무를 말한다. 성곽 축조, 운하망 건설, 하천 정비 및 농수로 건설, 간선도로 확충 등 인프라 건설에 다이묘는 인력과 자제를 제공해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쇼군은 다이묘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는 없었지만 천하보청을 통해 다이묘를 견제한 것이다. “천하보청에 따라 세금 징수가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로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관리비용등 매몰비용이 착복이나 증발 없이 모든 투입이 실물 인프라로 이어졌다천하보청의 역무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거나 부실한 다이묘는 영지를 뺏기거나 황무지로 옮겨가라는 명령을 받아야했으니 최선을 다해 인프라 건설에 참여해야 했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를 근대화를 예습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번저(번의 업무를 보는 저택으로 번에서 비용 부담)를 두어야 했다.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나와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제도다. 100명에서 500명 이상의 인원이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해야했는데, 제반 비용을 독자작인 번의 징세권을 갖고 잇던 다이묘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게다가 에도 체재비를 더하면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비용이 다이묘 세수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액수였다고 한다. 전국 270여 다이묘들이 이동과 에도 체재에 쓴 경비는 부의 환류와 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른 화폐경제의 확산과 대상인, 서민사회의 성장이 동반된 것이다. 더구나 에도와 지방이 연결된 전국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인원, 물자, 정보가 유입되고 분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는 천하보청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길을 닦은 신의 한 수’ ”라고 본다.

 

일본 된장(미소)이 전략물자였고, 센다이 다이묘는 미소의 개발과 대량생산법으로 센다이의 힘을 키웠다. 아직도 400년 된 센다이미소양조소가 도쿄에서 영업을 한단다. 이후 자율적인 미소 공장들 간의 경쟁이 경쟁원리에 대한 이해와 실용주의적 현실감각, 변화에 대한 감수성, 신기술에 대한 수용성차원에서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사회심리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일본에서 여행의 대중화는 서구보다 100년이나 앞서 장기투어, (), 료칸, 유곽 등에 300년이 넘는 축적이 담겨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 일본의 출판문화는 엄청난 기세(17세기 중반 200여개 출판업자, 18세기 중반 연간 1000여 종 신간)로 성장하여 “19세기에는 모든 국민이 책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활용하는 출판대국이 된다. 출판혁명의 시작은 17세기말에 <호색일대남>이란 오락소설, 포르노가 히트를 친 것으로 본다. ‘구사조시라는 그림과 텍스트가 결합된 가벼운 읽을거리장르가 유행하고, 18세기 말이면 전업 작가가 등장한다. 19세기 초에는 <경전여사>라는 초급 유교 경전 해설서가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에도의 시대는 나아가 판권, 대본업이란 개념이 일상화되는 출판 대국이었다.

교육의 힘도 정리해주는데 각 번 정부가 설치한 250여 개의 번교, 서민교육의 중심인 사설학당 데라코야는 읽고 쓰고, 주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었다.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주쿠()’의 역할도 중요하게 본다. 요시다 쇼인도 주쿠를 통해 후학을 키운 거다.

뉴스와 광고전단의 원형을 요미우리신문과 히키후다에서 찾는다. 요미우리는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 기록하고 있는데, 유래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히키후다는 상점, , 신사, 가부키 극장 등에서 사람을 끌기위해 만들기 시작한 광고지의 효시란다.

일본 최초의 본격 번역서 <해체신서>는 참여자들이 시금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3년만인 1774년 출간된다. 이는 서구의 관념을 자신들의 관념으로 변환하는 번역이란 언어의 통로를 만든 것이다. 하나오카 세이슈란 의사는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외과 수술(유방암 수술)이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마취제를 실험하다 모친이 사망하고 아내의 실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선산이란 마취제 개발 덕분이다.

에도 후기 측량가 이노 다다타가는 일본 최초 실측지도를 만든다. 50세 은퇴후 17년간 10차례 측량여행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후 3년 뒤 제자들이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완성한다. 쉰이 넘어 전일본 해안선 실측이란 도전을 일흔이 넘도록 실천한 것이다.

<난불사서>,<두후하루마>와 같은 사전 편찬과정을 보면 악전고투란 단어로 부족하다. 멘 땅에 헤딩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서구인에 의한 일영사전 출간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인들이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일사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란다.

도자기가 문화에서 산업으로 성장해 나간 과정, 에도시대 지식인의 모습에서 시대가 변하면 지식도 변한다는 것을 이끌어 내고, 도올 김용옥이 <논어 한글역주>에서 언급한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의 도덕과 정치 분리 주장,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의 길’,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던 막부의 화폐정책 등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에필로그에 인용한 영국 재야 사학자 헨리 토머스 버클의 문명의 진보를 결정하는 것은 집단 지성의 축적이며, 그 축적은 부의 창출과 분배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일본의 좌표로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수준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지식인들에게 의문을 가져야 답이 있음을 촉구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는 뿌리와 이파리에서 20178월에 초판을 낸 것으로 나는 초판 5쇄를 읽고 배운 거다. 본문 174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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