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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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운만큼 알아야한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일본에 관한 책을 읽어왔지만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란 예감이었다. 예감은 95% 맞았다. 카프카가 책이란 얼음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오랜만에 지적 호기심을 풀어준 책이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를 통해 메이지 유신이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측 해안지도를 탁월한 개인의 역량을 알아본 일본막부가 1821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은 지리전공자인 나에게도 놀라운 소식이다.

 

프롤로그는 책을 집어 들면 읽을 수밖에 없게 썼다.

질문이 잘못된 것이면 올바른 답이 없다며, 근대화 이전에 조선과 일본이 비슷했다는 생각이 착각이란다. 일본이 1986년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근대화에 일본은 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근대화 이전에 일본과 조선이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은 고대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문화적 우월감이 연장된 고정관념이란다. 우동가게 주인의 말이 아니라,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 시대 이야기란 부제를 쓴 까닭이다.

메이지유신 이전의 에도 시대는 역사,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다방면에서 정보의 습득과 실생활에서 응용을 통해 형성된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스키마가 근대화 시기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쉽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18개의 장중에서 2장과 3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밀려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와 다름없었던 에도로 영지를 분봉 받고 에도를 100만이 넘는 인구를 수용하는 큰 도시로 만든 과정을 그린다. 참근교대제는 제도로서 우키요에의 확산과 여행에 미친 영향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책은 천하보청과 참근교대제를 에도 시대를 이끌어간 막부 권력의 원천으로 파악한다. 재미있다. 4장부터 18장까지는 13개 주제에 따라 내재적인 발전 요인을 찾아내 알려준다. 한발 더 들어가 재미난 이야기를 옮겨본다.

2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황무지, 허허벌판을 영지로 받은 탓에 임진왜란 때 병력차출을 제외 받았고, 구원이 없음으로 조선통신사를 쉽게 받아들였다고 본다. 도쿠가와는 물이 없던 에도에 내륙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치수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간선도로를 구축하여 에도의 토대를 마려난 것으로 평가한다. 여기에는 히데요시 사후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보청의 역무로 다이묘들의 등골을 빼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풀어간다. 천하보청은 쇼군이 다이묘들에게 부과하는 공공사업 역무를 말한다. 성곽 축조, 운하망 건설, 하천 정비 및 농수로 건설, 간선도로 확충 등 인프라 건설에 다이묘는 인력과 자제를 제공해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쇼군은 다이묘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는 없었지만 천하보청을 통해 다이묘를 견제한 것이다. “천하보청에 따라 세금 징수가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로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관리비용등 매몰비용이 착복이나 증발 없이 모든 투입이 실물 인프라로 이어졌다천하보청의 역무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거나 부실한 다이묘는 영지를 뺏기거나 황무지로 옮겨가라는 명령을 받아야했으니 최선을 다해 인프라 건설에 참여해야 했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를 근대화를 예습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번저(번의 업무를 보는 저택으로 번에서 비용 부담)를 두어야 했다.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나와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제도다. 100명에서 500명 이상의 인원이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이동해야했는데, 제반 비용을 독자작인 번의 징세권을 갖고 잇던 다이묘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게다가 에도 체재비를 더하면 참근교대에 소요되는 비용이 다이묘 세수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액수였다고 한다. 전국 270여 다이묘들이 이동과 에도 체재에 쓴 경비는 부의 환류와 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른 화폐경제의 확산과 대상인, 서민사회의 성장이 동반된 것이다. 더구나 에도와 지방이 연결된 전국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인원, 물자, 정보가 유입되고 분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참근교대제는 천하보청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길을 닦은 신의 한 수’ ”라고 본다.

 

일본 된장(미소)이 전략물자였고, 센다이 다이묘는 미소의 개발과 대량생산법으로 센다이의 힘을 키웠다. 아직도 400년 된 센다이미소양조소가 도쿄에서 영업을 한단다. 이후 자율적인 미소 공장들 간의 경쟁이 경쟁원리에 대한 이해와 실용주의적 현실감각, 변화에 대한 감수성, 신기술에 대한 수용성차원에서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사회심리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일본에서 여행의 대중화는 서구보다 100년이나 앞서 장기투어, (), 료칸, 유곽 등에 300년이 넘는 축적이 담겨있다고 한다.

17세기 이후 일본의 출판문화는 엄청난 기세(17세기 중반 200여개 출판업자, 18세기 중반 연간 1000여 종 신간)로 성장하여 “19세기에는 모든 국민이 책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활용하는 출판대국이 된다. 출판혁명의 시작은 17세기말에 <호색일대남>이란 오락소설, 포르노가 히트를 친 것으로 본다. ‘구사조시라는 그림과 텍스트가 결합된 가벼운 읽을거리장르가 유행하고, 18세기 말이면 전업 작가가 등장한다. 19세기 초에는 <경전여사>라는 초급 유교 경전 해설서가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에도의 시대는 나아가 판권, 대본업이란 개념이 일상화되는 출판 대국이었다.

교육의 힘도 정리해주는데 각 번 정부가 설치한 250여 개의 번교, 서민교육의 중심인 사설학당 데라코야는 읽고 쓰고, 주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었다.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한 주쿠()’의 역할도 중요하게 본다. 요시다 쇼인도 주쿠를 통해 후학을 키운 거다.

뉴스와 광고전단의 원형을 요미우리신문과 히키후다에서 찾는다. 요미우리는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 기록하고 있는데, 유래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히키후다는 상점, , 신사, 가부키 극장 등에서 사람을 끌기위해 만들기 시작한 광고지의 효시란다.

일본 최초의 본격 번역서 <해체신서>는 참여자들이 시금을 전폐하다시피 하여 3년만인 1774년 출간된다. 이는 서구의 관념을 자신들의 관념으로 변환하는 번역이란 언어의 통로를 만든 것이다. 하나오카 세이슈란 의사는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외과 수술(유방암 수술)이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마취제를 실험하다 모친이 사망하고 아내의 실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통선산이란 마취제 개발 덕분이다.

에도 후기 측량가 이노 다다타가는 일본 최초 실측지도를 만든다. 50세 은퇴후 17년간 10차례 측량여행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후 3년 뒤 제자들이 <대일본연해여지전도>를 완성한다. 쉰이 넘어 전일본 해안선 실측이란 도전을 일흔이 넘도록 실천한 것이다.

<난불사서>,<두후하루마>와 같은 사전 편찬과정을 보면 악전고투란 단어로 부족하다. 멘 땅에 헤딩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서구인에 의한 일영사전 출간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인들이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일사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란다.

도자기가 문화에서 산업으로 성장해 나간 과정, 에도시대 지식인의 모습에서 시대가 변하면 지식도 변한다는 것을 이끌어 내고, 도올 김용옥이 <논어 한글역주>에서 언급한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의 도덕과 정치 분리 주장, 이시다 바이간의 상인의 길’,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던 막부의 화폐정책 등을 재미있게 풀어간다.

에필로그에 인용한 영국 재야 사학자 헨리 토머스 버클의 문명의 진보를 결정하는 것은 집단 지성의 축적이며, 그 축적은 부의 창출과 분배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을 일본의 좌표로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수준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지식인들에게 의문을 가져야 답이 있음을 촉구하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는 뿌리와 이파리에서 20178월에 초판을 낸 것으로 나는 초판 5쇄를 읽고 배운 거다. 본문 174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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