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문화와 문자문화 - 출간 30주년 기념판
월터 J. 옹 지음, 임명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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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글쓰기의 다름이 우리의 사고체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한 책이다.

말은 사라지나 글은 남는다는 라틴 격언을 떠올린다. 글을 쓰는 일이 두려운 까닭은 정확한 진실이 아니면 책임과 비난이 따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자라도 책을 읽으며 근거 없는 주장인지, 지나친 생각인지, 불필요한 중복인지를 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어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함이다.

 

책은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연구자들이 중복돼 나온다. 언어학 전공자에게 필요한 책이란 생각으로 읽었는데, 출판사는 인문, 사회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교양서로 평가한다.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바뀐 것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정보를 인식하는 체계를 바꾼 것’, ‘문자는 의식을 구조화한다’, ‘학술 언어와 일상 언어의 차이에서 여성의 일상어 기반 소설 등장’, ‘중세는 물론 낭만주의 시대까지 구술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음’, ‘한글에 대한 외국 학자의 평가’, ‘방언이 지배적 언어가 되는 과정’, ‘왜 유럽에서 라틴어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문자로 존속하는가’, ‘유럽 내 학교에서 라틴어가 학술 언어가 된 까닭’, ‘말하기에서 문자로 쓰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거부감등이 책을 덮고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식 조각들을 정리해 나중에라도 스키마가 잡아당길 때 까지 기억하려한다.

- 미국주의는 하버드 대학이 제공하는 이념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하며, 예일대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국학을 확립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뿌리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군사력 못지않게 대중매체, 문화, 과학의 힘에 토대를 둔다. 중국은 미국의 soft power를 통제하려 할리우드 영화에 엄격하다.

 

1: 언어의 구술성

언어학의 아버지 소쉬르는 구술로 하는 말이 가장 우선적이고 모든 언어적 의사소통의 근저를 떠받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으며, 쓰기가 언어의 기본 형태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경향이 학자사이에 존재함을 주의할 것을 촉구한 바가 있다

일차적 구술성이란 쓰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술성을 가리킨다. 수사학은 과거 2 천 년 동안 서양문화 전체에서 가장 포괄적인 학문의 주제였다. 수사학은 기본적으로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나 연설이기에 오늘날에도 강연자에겐 의미 있다. 고대에는 준비한 텍스트에 따라 말한다는 건 무능한 일이었다.

 

2: 일차적 수술성에 대한 현대의 발견

호메로스의 존재와 그의 작품인가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서구의 문화유산 중 가장 모범적이고 진정하며 뛰어난 세속시란 것이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고 일반적인 견해다두 서사시는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손질된 끝에 기원전 700~650년경 그리스 알파벳으로 적힌 것이다. 플라톤은 쓰기가 지식을 처리하는 수단으로서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질문에 무책임하고 기억력을 손상시킨다며 쓰기를 유보하자는 의견을 냈다. 기원전 4~5세기 플라톤 시대에 이미 그리스인은 글쓰기의 실효성을 알았고, 독창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3장 구술성의 정신역학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특징으로 첨가적이다. 정형구에 의지한다. 장황하거나 다변적이다.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이다(박식한 노인들이 높이 평가 받는다) 인간생활 세계에 밀착된다. 논쟁적 어조가 강하다. 객관적 거리를 두기보다 공감적이며 참여적이다. 추상적이기 보다 상황 의존적이다. “구술문화는 기하학적 도형, 추상적 카테고리에 의한 분류, 형식논리적인 추론, 수속, 정의 등과 관련이 없고, 텍스트를 통해 형성된 사고에서 유래한다

본문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며 걸었다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사례(만능의 므윈도 : 그에 대한 통상적 형용구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걷기 시작한 조그만 이다)가 있다.

 

어떤 사물의 물리적 내부를 확인하는 데 소리만큼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는 감각은 없다. 우리 눈은 불빛에 끌리지만 불꽃의 어느 곳에도 응시점(fix)’을 가질 수 없다. 시각은 토막 내는 감각이고 청각은 통합하는 감각이다. 시각의 이상은 명확성과 명료성이며, 청각의 이상은 하모니다. 내면성과 하모니는 인간 의식의 특징이다. 지식이란 궁극적으로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며 하모니를 이루는 일이다.

내부나 외부라는 개념은 수학 개념이 아니며 인간 존재에 기초를 두는 개념으로서 인간 자신의 신체 경험에 입각한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는 일체가 형성된다. 화자가 청자에게 자료를 건네주고 읽도록 하면 청중의 일체성은 무너진다. 쓰기와 인쇄는 대상을 분리한다. “신앙은 듣는 것으로부터 온다”(로마서 1017)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혼은 사람을 살린다”(고린도서 36)

 

4장 쓰기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델포이 무녀는 신탁을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신의 목소리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책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진실이다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텍스트의 내용이 거짓임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 텍스트는 계속 거짓을 말하는 셈이다

소크라테스는 쓰기는 비인간적이다’, ‘기억을 파괴한다’, ‘쓰인 것은 대답하지 않는다’, ‘쓰인 말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쓰기는 기술이다. 쓰기는 소리를 정지된 공간으로 환원하고, 현재로부터 말을 분리시킨다. 쓰기는 무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쓰기는 의식을 높인다. “쓰기는 인간의 모든 기술적 발명 중에도 가장 영향력이 컸으며, 말하기를 구술-청각의 세계에서 시각의 세계로 이동시킴으로써 말하기와 사고를 함께 변화시켰다

종이는 중국에서 기원전 2세기, 중동에는 8세기, 유럽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다.

“12세기 영국에는 벽시계도 달력도 없었다. 중세나 르네상스시대에도 지금이 달력상 몇 년에 해당되는지 일상생활에서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달력상으로 몇 년에 태어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문학이 나타난 것은 17세기가 지나서 였다. 어휘가 풍부해진 것은 인쇄된 사전 덕택이다. 17세기 라틴어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는데 남성이 대상이었다. 여성들은 훨씬 덜 연설적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표현했으며 이것이 소설의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겨우 50마일만 떨어져도 주민들이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어들이 달랐기에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한정된 수의 소년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라틴어는 학술라틴어, 즉 쓰기를 통해 완전히 통제된 언어가 되었다. 학술 라틴어는 1000년 이상 남성만이 쓰고 말하는 언어였다. 근대과학은 라틴어의 정신 위에서 성장한 것이다. 낭독은 19세기까지도 일반적이었다.

 

5장 인쇄, 공간, 닫힌 텍스트

인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유럽 르네상스로 바꾸었고, 종교개혁,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 서유럽이 전 지구를 탐험하게 했고, 가정생활과 정치, 근대과학을 융성케 했다.

사고와 표현의 세계에서 오래 지속되던 청각의 우위는 인쇄를 통해 시각의 우위로 바뀌게 되었다. 텍스트가 한층 읽기 쉽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속독과 묵독을 가능케 한다. 인쇄는 수사법이란 옛 기술을 학문 교육의 중심에서 추방했다. 영어 사전이 만들어진 것은 18세기다. 인쇄는 폐쇄감각을 부추긴다. 인쇄된 텍스트는 저장의 말을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낸다고 여긴다.

 

6장 구술적 기억, 줄거리, 성격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잘 읽히지 않는다. A41~2장이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 담을 수 있다. 이를 276페이지에 늘여둔 것으로 보인다. 임명진이 옮겨 문예출판사에서 19951쇄가 발행됐고, 나는 20188월 개정판 1쇄를 읽은 거다. 엄청나게 지루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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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윌리엄 F. 러디먼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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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PLOWS, PLAGUES, and PETROLEUM

2019.1.1()

지리교육학에 전공필수로 기후학이 있었으니 전공서적이려니 생각하며 구입해 읽었다. 저자 윌리엄.F.러디먼이 이 책으로 과학도서상을 받았다니 과학 서적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처럼 <농경, 전염병, 석유>가 원제나 출판사에서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로 제목을 정했으리라. 다이아몬드가 총균쇠로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풀었듯이 리디먼도 지구 기후의 변화와 전망을 농경, 전염병, 석유(화석연료)로 풀어간다.

 

산업혁명과 함께 사용량이 폭증한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가 환경오염의 주범이고, 지구온난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상식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고생물학을 전공한 윌리엄.F.러디먼은 40여 년 간 연구의 결과로 농경의 시작과 전염병이 지구 기후에 미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밝힌다. 장구한 시간동안 누적된 농경과 전염병의 영향은 18세기 이후 화석연료가 기후에 미친 영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농경의 시작이 기후에 영향을 미쳤다전염병이 기후에 영향을 미쳤다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윌리엄.F.러디먼은 수많은 표와 그림을 제시하며 연구 방법과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이는 책 제목 중 어떻게에 해당한다.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1부 지구 기후를 통제하는 요인에서 지구과학 분야에서는 지구는 오래된 행성이다’, ‘거대운석이 지구와 출동하여 유기체의 대다수를 멸종으로 몰아감으로써 진화에 얼마간 기여했다’,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 ‘기후과학 혁명을 네 가지 혁명으로 다룸을 알려 준다.

 

‘2부 자연이 통제하다에서 지질학에서 시간을 표기하는 방법을 배운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250만 년 전이면 ‘BP 250만 년이다. BPBefore Present. 150여 년 전에 지구 궤도의 작은 변화가 기후에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지질학과 천문학이 어우러져 만든 결과다.

하늘에서 태양의 높이, 태양이 전달하는 복사 에너지의 양은 지축의 기울기와 지구궤도에서 지구의 위치가 상호 작용한 결과라는 사실을 16세기 천문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구 궤도면에 대한 지축 기울기의 변화가 기후를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이다. 지축 기울기는 41000년 주기로 작게 변화하는데 위도 45도 이상 지방에 전달되는 태양 복사에너지양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단다. 기후를 변화시키는 두 번째 방법은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인 까닭에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달라지게 만드는 이심률(타원율 ellipticity 이라는 이심률은 10만 년 주기로 변화한다)과 지축의 세차운동(precession 회전하는 팽이에서처럼 자전축 자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운동)이 원인이다. 이심률과 세차운동은 함께 작용해 지구에 실제로 다다르는 태양 복사 에너지양을 결정한다.

1940년대 말 윌러드 리비(Willard Libby)와 동료들이 개발한 방사성 연대측정법이 빙상에 남아있는 일부 퇴적물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게 해 기후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놀라운 사실은 태양 복사에너지가 최대일 때는 축 기울기 주기(41000)와 세차운동 주기(22000)가 만들어내는 최고점이 거의 일직선을 이룰 때였다. 가장 최근에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16000~6000년 전이었고, 그때 북반구의 거대 빙상은 거의 다 녹아내렸다는 연구 결과다. 지구 궤도 변화가 몬순의 주기를 결정한다는 사실도 몬순을 대기대순환으로 이해했던 수준을 벗어나게 한다. “지구 궤도가 몬순을 좌우한다는 존 쿠츠바흐의 학설은 지구 궤도가 빙상을 좌우한다는 밀란코비치의 학설과 그 중요성에서 쌍벽을 이룬다"(p.98)

저자는 기후 변화가 포유류 멸종의 주요인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며, 그 원인이 인간과 관련 있다고 여길 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아보고자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책을 낸 이유다. 여기에서 장 자크 루소가 200여 년 전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사양할 뿐 그 이상은 조금도 탐하지 않고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원주민)’이라 정의한 개념에 반기를 든다. 농업의 발견이 기후 변화의 주요인이라는 주장을 이어간다.


‘3부 인간이 통제를 시작하다에서 저자는 농사를 자연저긴 것이라기보다 인류가 지금껏 한 일 가운데 지표면을 자연 상태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나도록 만든 일대 사건으로 본다. 3부는 자연적 요소로는 온실가스(메탄과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며, 늘어가는 인간 활동이 대안적 설명이 될 수 있음을 다룬다.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농도 변화는 지구 귀도 주기에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워 만일 예측치에서 벗어난 것을 인위적 현상으로 본다. 자연만이 기후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라면 지구 기후는 제법 추워졌어야한다. 그런데 저자는 인위적인 온실가스가 자연적인 냉각화 현상을 상쇄하면서 온난화 효과를 낳았다고 본다. 인간이 기후 시스템을 좌우하는 힘으로 자연에 맞서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농업의 시작, 가축 사육, 관개 확산, 석탄 채굴, 화약 등 인간 활동이 기후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닐 로버츠의 <홀로세 : 5000년 전부터 시작되는 시기를 다룬 장에서 자연 길들이기라는 제목으로 육지는 이제 개척해야할 자원으로 떠올랐으며, 이러한 접근법에 대한 인간 활동 탓에 환경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견해와 비슷하다. 환경오염의 역사를 철학적으로 살필 때 중요한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꼭 참고 해야지.

인간과 인간 활동(벼농사를 위한 관개, 가축의 사육, 바이오매스의 연소)은 지난 수천 년간 메탄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원인이다.(p.145) 자연적인 과정은 약 15000년 전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초고였고 8000년 전까지는 수치가 줄어들었다. 그 이후 이사화탄소양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것은 인간이 농사를 짓기 위해 숲과 초목을 대거 잘라낸 까닭이라고 둠스데이 조사(Domesday Survey 1089년 잉글랜드 1000미터 이하 경작지의 90퍼센트, 전원지역의 85퍼센트에서 삼림이 파괴됨)를 자료로 활용한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기후 시스템이 두 배의 이산화탄소에 반응한 결과는 지구 전반에 기온이 평균 2.5도 정도올라간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전()산업시대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았더라면 캐나다 북동부 일부 지역에서 비아작용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만약 전산업 시대와 산업시대의 온실가스가 연합작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이 지역에 비하가 존재할 거라는 의미다. 인간이 방출한 온실가스가 빙하작용을 중단 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거다.

새로운 과학 개념은 테제, 안티테제, 진테제, 이론의 형성과정을 밟는데 저자는 머지않아 진테제와 이론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4부 질병이 기후 변화에 개입하다에서 따뜻한 바다보다 차가운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다는 화학작용의 기본법칙을 배웠다.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 통계와 얼음 코어 기록에 나타난 주요 이산화탄소 감소 시기는 전쟁이나 기근이 일어난 시기보다 세계적 유행병에 따라 인구가 감소한 시기와 더욱 분명하게 연관됨을 찾아냈다. 상관관계가 인과 관계는 아닐지라도 세계적 유행병은 대규모 인구 손실을 초래하고, 이산화탄소를 감소시켜 기후가 추워지는데도 기여한다. 추운 기후가 인구 손실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5부 인간이 통제권을 쥐다에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 비유하며, 반응시간이라는 기후의 지체 시스템에 대해 설명한다. 북반구에서 태양 복사 에너지 강도가 가장 높은 날은 621일이나 육지 여름 기온은 7월 중순이후가 되어야 가장 높아지는 것이 기후 시스템의 반응 지체다. 순수한 자연 세계라는 개념은 신화라며, 전 지구적 기후 변화를 바라보는 과학과 정치를 견준다. 환경보호주의자와 기업은 통계와 연구 결과를 아전인수하여 활용함을 개탄한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우리 손자손녀 세대는 1800년대 말에서 21세기 초반까지 짧았지만 운 좋은 버블시기’, 즉 억세게 재수 좋은 인류 몇 대가 대체로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 선물들을 대부분 써버린 시기였노라고 회고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는 에코리브르에서 본문 382쪽 분량으로 20176월 초판을 내놓았다. 윌리엄.F.러디먼의 연구 결과인 지구 기후 변화에 농사와 전염병이란 인간과 인간 활동을 찾아낸 것으로부터 카프카가 말한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는 기쁨을 느낀다. 저자의 40년 연구 결과를 한 권 책으로 배울 수 있어 멋진 겨울 추억을 만든다. 환경에 대한 철학적 배경에 <홀로세>로부터 지식을 추가할 수 있음도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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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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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다 세 가지 이유로 사 읽는다.

하나는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는 카피에 100% 공감했고,

둘째, 양장본이고

셋째, 책값도 9,000원이라 쉽게 사기로 결정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에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 깨인 사상, 역사의식, 자아 인식, 주체적 결정, 도덕적 감수성, 시적 경험으로서의 교양을 말한다. 교양을 가지려면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한 어떤 것을 말합니다.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 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양을 갖추려고 할 때는 이 세상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을 품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이 교양이란다.

 

교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고 호기심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이다.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비율적 관계, 정확함에 대해 의식하는 것이다. 지식의 힘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데 있다. 언제나 깨어있는 사람은 회의적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교양을 쌓은 이는 단순한 궤변적 외양과 올바른 사고를 구별한다.

역사의식으로서의 교양은 전체주의적 형이상학을 무너뜨릴 수 있다. 사람, 죽음, 도덕, 행복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자기 것이 아닌 남이 만든 기준에 맞춰 사는 한, 사람은 자신의 생에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없다. 교양이라는 것은 다양함에 대한 인지, 남의 것에 대한 존중, 처음에는 우월감을 가졌더라도 곧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교양인이란 책을 읽는 사람이며, 책을 읽은 후에 변화하는 사람이다. 내면의 변화와 확장을 이끌어내 결국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 교양이 가진 뚜렷한 특징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 그 앎을 얻기가 어째서 어려운지를 아는 사람이다. 자아상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적인 민감성을 견지하며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는 사람이다.

주체적 결정으로서의 교양이란 내가 지금 가진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관용과 공감 능력은 도덕적 감수성으로서의 교양을 구성한다.

 

교양이 주는 행복들 :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더 잘 세우는 것, 어리석은 미신을 떨쳐냈을 때 느낄 수 잇는 해방감, 역사적인 인식을 향해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주는 책을 읽을 때 느끼는 행복, 다른 곳에서는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안겨주는 감동, 자신의 경험을 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느낄 때의 황홀한 기쁨, 어느 한 순간 자신의 생애에서 주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게 되었을 때의 신선한 행복, 그동안 달려오던 귀도에서 이탈해 내면의 모습을 바꾸고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갈 때의 느낌을 일궈냈을 때의 해방감, 사회적 상상력을 길러 도덕적 감수성에 관한 자신의 내적 지평을 넓혔을 때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경험"(p.39)

 

2부 격인 이해의 다양한 모습(학문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에서는 지식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칸트적 결론을 확인한 소득 말고는 밑줄 칠 것이 없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201881쇄를 내놓았고, 내가 읽은 것은 113, 본문 87쪽이다. 출판사가 광고 문구를 제대로 잡아 나를 꼬시는데 성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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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
장진근 엮음 / 파워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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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반 없다. 그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때에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당과 밀약에서 김춘추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해준 대가로 대동강 이북을 당에게 넘겨주기로 했다는 것조차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한 번도 우리 땅인 적이 없다. 여진과 만주족이 금과 청나라를 세웠고 청대에 봉금지역이었으며, 만주괴뢰국이 존재했음과 마오가 국민당군을 만주에서 몰아낸 것이 중국통일에 전기를 마련했다는 정도다. 중국은 만주지역에 존재했던 왕조들을 중국의 소수민족사로 취급하여 만주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흔적을 지우려 동북공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얼 하는지 답답하다. 역사학계와 재야사학계의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이다. 이도 인터넷에서나 그렇다. 언젠가 만주원류고를 읽으리란 다짐은 겨울의 시작과 함께 실천한다.

 

정식 이름은 <흠정만주원류고>로 흠정이란 황제가 직접 지었거나 명으로 저술되거나 편찬한 책이란 의미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서 편찬한 만주족 선조 및 그와 관련 있는 여러 민족의 중요한 역사를 다룬다. 명을 멸하고 청을 세웠기에 명의 지배를 받았던 부분은 명확치 않고 부정하거나 착오가 있지만 만주와 한반도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정리하였기에 동북아시아 민족의 흥망성쇠를 파악할 수 있다. 건륭제의 명(1777)에 따라 청조의 창업을 찬양한 책이기에 한계가 있을지라도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꼭 참고할 책이다. 이 책은 정통역사학자가 아니라 공직생활을 마친, 한문과 중국어에 소양이 있던 장진근이 번역하였다. 왜 역사학계에서 번역하거나, 학교에서 <만주원류고>란 책이 있다는 사실도 가르치지 않는가?

중국의 역사인 [하은주춘추전국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중국] 중 북위, , 청조는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을 지배했으니 농경민과 유목민족의 대립이 중국 역사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고구려의 영역이 금과 청의 영역이 겹치니 우리 역사학계에서 다루어야만 할 부분인데도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역자에 따르면 신채호, 정인보, 안호상 등이 기초자료로 활용하였고, <고조선 연구>를 남긴 리지린 등 북한 학자들은 <만주원류고>를 대만족주의 사상의 산물로 보고 가차 없이 비판하거나 가감 없이 인용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한다. 만주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과 연구결과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형편에 장진근은 번역을 통해 기존 사학계의 정설에 반하는 기록을 찾아내 우리나라 고대사를 제대로 연구해 보자고 한다.

역자가 찾은 흥미로운 사실은 첫째, 고조선과 삼한이 원래 만주에 있었고, 둘째, 현재 만주와 길림(吉林)이 신라의 계림(鷄林)이었음을 지리나 언어와 연관시켜 밝히고 있고, 셋째, 백제의 강역에 대해 중국 동부 연안으로부터 요서, 요동을 거쳐 황해, 충청, 전라도까지라고 한다. 최근 역사 교과서에서 중국 동부 해안이 백제의 영역이었음을 가르치는 것을 제외하면 역사상식을 혼란스럽게 하는 기록들이다.

이외에도 동이족이 발해만 북쪽에서 황하문명보다 한 시대 앞선 요하 문명을 만들었다’, ‘한 무제가 B.C.108년 위만조선을 정복하고 세운 낙랑군이 항상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기사’, ‘7년 대당전쟁후(676) 신라가 백두대간 대부분을 확보했다’,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은 임진왜란(1592) 때 의주로 피난 왔던 선조에게 10만 명에 달하는 원군 파병을 제안했으나 선조가 거절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만주는 본래 부족의 이름인데 주()의 의미가 지명과 비슷해 가차(假借)해 쓰다가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만주족의 발생설화(p. 61~62)에 따르면 장백산 동쪽에서 청나라의 터전을 삼았다. “()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제도 또한 요서, 진평(당나라 유성과 북평일대)을 빼앗아 차지하였다”(p.110)는 기록에 대해 중국과 남북한 사가들 사이에 의견차이가 현격하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백제 의자왕은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는 행실이 알려지고 형제들 사이에 우애가 있어 당시 사람들이 해동의 증민曾閔(증참과 민자건을 동시에 일컫는데, 공자의 제자로 효행이 유명)이라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오대사(五代史)와 책부원구(冊府元龜)후당 청태 3(936) 정월에 백제국에서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했다고 국사에서 배웠는데…….

당서(唐書)에서 백제의 왕이 사는 곳은 동서 두 성에 있다는 기록은 서도가 오늘날 산둥 반도 영성현에 있었다는 의미로 백제 만주존재설의 방증이며, “백제가 만주에도 있었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삼국사기><당서>에 기록된, 백제가 망하고 그 땅이 신라, 말갈, 발해에 나눠지고 말았다는 기록에 대한 합리적인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주석을 달고 있다.

신라에서 임나(任那) 등 여러 나라를 공격하여 이들을 멸하였다"(p.151)는 기록이 있는데,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는 국사에서 임나조차 일본이 꾸며낸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1225년에 남송에서 만든 지리책 <제번지(諸蕃志)>에서 아프리카, 시칠리아, 중앙아시아, 소아시아에 대해 기록한 것은 1402년 김사형, 이무, 이회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참고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당태종이 고구려에 침입했을 때 흑수말갈은 군사 15만 명을 최전선에 배치돼 고구려를 도왔다고 한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은 패수(패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왕험성의 위치가 확정된다”(p.305)고 보고 중국의 강물에 관한 기록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은 대능하(大凌河) 뿐임을 지적한다.

명조의 역사를 평가한 <명위소성참고>에서 청은 명나라가 실록에 기록하며 벼슬을 주었다라고 하지만 어쩌다 어떤 부()의 장이 스스로 왔다거나 겨우 사람이 와서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근거 없음을 지적한다.(p397)

 

참으로 의아한 것은 <흠정만주원류고> 1부터 권7까지 만주,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안완, 건주 부족을 고증하였는데, 고구려가 없다는 거다. 왜 그랬는지 책을 읽으며 단서를 찾을 수 없다. 우리 역사로 백제, 발해를 신라보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8부터 권13까지 강역에서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은 없다. 14부터 권 15까지 산천을 다루고 권 16부터 권20까지 국속을 다룬다.

 

내가 읽은 <만주원류고>는 장진근이 옮기고 파워북에서 20081, 20114쇄로 나온 것으로 본문 605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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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123 2022-01-13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중국어판 <만주원류고>는 고구려 건국신화부터 그 역사가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 평화로운 한반도로 가는 길을 묻는 스무 고개
홍석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금수저로 태어나 중앙일보 사주로 한국 보수의 중심으로 분류하기에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읽는 것은 내게는 일반적인 책 선택이 아니다.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 프로그램에서 정관용과 홍석현의 인터뷰를 보고 홍석현에 대한 이미지에 변화가 생겼다. 덕분에 좋은 책을 읽는다.

그에게도 내게도 어린 시절 북한이란 존재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뿔 달린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80년대 초가 돼서야 짐작과 귀동냥으로 70년대 이전까지 북한이 국제정치나 경제적으로 남한을 우습게보고 있을 거라는 것이 전부였다. 21세기에 들어서 남과 북의 경제력이 401이라는 수치는 모르더라도 현격한 차가 있다는 사실이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박정희 시대는 철저하게 왜곡된 정보가 눈과 귀를 가리던 시대였음을 확인한다. 암흑의 시대였다. 독재가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국민을 어리석게 만들었다.

 

홍석현은 유학시절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이라는 여성 경제학자가 1964년에 120쪽 분량으로 쓴 <Korean Miracle>이란 책을 1974년에 읽고 북한에 대해 크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1960년대까지 북한은 남한보다 잘 살았고, 가난이 없는 나라로 기술하고 있다. 이후 40대가 돼서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지식인이 사리 분별없이 현실에 의거하지 않은 채 이념적으로 경도된 언론 논조를 갖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고도 고백한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거쳐 연구해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내놓은 것이다. 책과 ‘2018년의 남북 대화 상황은 통일정책은 정부가 만들고 국민은 통일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아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놓은 무관심이란 관성에서 벗어나는 외부의 힘이 되었다.

통일이 먼저냐 평화가 먼저냐는 논쟁이 백낙청 교수와 최장집 교수 간에 있는 모양이다. 최장집 교수는 통일에 비중을 더 두는 보수에게 통일을 가슴에 담고 평화를 먼저 추구해야한다는 홍석현의 생각이 신선하다고 평가한다. 우리의 의식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직도 이념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 홍석현의 생각에서 취할 점이 여러 가지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 세력과 야당과도 대화량을 늘리라고 주문한다. 설득과 타협으로 하나의 관점을 만들어가지고 한다. 남남갈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원전공론화위원회와 같은 형식이라도 남한 내부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의 비핵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김정은의 입장에서 미국을 완전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다자보장체제를 제안한다. 김정은에게도 핵보다 경제발전으로 주민들의 자발적 충성을 유도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할 거라고 제안한다.

2002년과 2008년에 예산의 1%를 통일기금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는데 실현되지 못해 아쉬워한다. 나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할 일이라 본다. 20184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완결을 선언하고, 앞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집중할 것을 결의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판단하는 사례로 본다. 또한 무오류의 화신으로 군림하던 지도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것도 진정성을 믿게 한다고 본다. 북한의 핵개발은 1990년 전후 소련의 붕괴로 강력한 후원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선택한 측면이 크다. 선군노선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전환한 까닭이다.

이제는 경제 건설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핵을 가지고는 국제적 제제와 압박으로 인해 잘 사는 나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국제적 상황이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핵협상에서 최고가를 받을 수 있는 시점이다라고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다. 우수한 노동력, 지하자원, 남한의 지원이라는 장점을 살리면 베트남 식이든 중국식이든 싱가포르 식이든 경제발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의 IT 수준은 우리보다 우수해 국제 코딩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

선평화-후통일이 현 단계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궁핍과 빈곤에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선결해야할 인권적 과제로 본다. 북한이 잘한 것으로 첫째는 중국에 예속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하자원을 무분별하게 개발하거나 헐값에 팔아버리지 않는 것도 높게 평가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가장 우려할 사항이다.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빠르게 진행되는 까닭은 미국 주류에서 보기에 중국의 군사적 팽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탓이다. 북한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견제해왔으며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비공식석상에서 통일 후에도 미군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의 문제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세력 균형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에 유독 민감한 것이 아니라 북핵의 문제는 남북문제 만이 아니라 국제문제인 까닭이다. “좌든 우든 이념적 접근에 치우친 기존 사고방식에는 맹점과 함정이 존재한다.” 퍼주기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북한 경제가 스스로 살아나도록 체질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투자라는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홍석현은 북한 스스로 경제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북한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한다.

책 제목에 오디세이를 붙인 것은 완전한 평화 까지는 여전히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메타포란 점에 공감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협상은 좋은 기회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려야하듯이 실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는 메디치에서 20181031일 발행했다.

아래 링크는 조앤 로빈슨의 코리언 미라클을 요약한 웹페이지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rimm1863&logNo=80143689030&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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