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 2000년 사유의 티핑포인트를 읽어야 현대 중국이 보인다
미조구치 유조 외 지음, 조영렬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2021.12.6.(월)
“Ha! 은주가 찐하게 위진남북조에서 수당이랑 송원명청했다더라.” 독자가 중국 왕조를 쉽게 외우려고 암기용으로 만든 문장이다.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배운 게 적어 아직 공자와 맹자, 주자학에서 왜 그토록 하은주 시대를 숭앙하는지 의문이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를 읽어도 풀리지 않는다.

학창시절 배운 동양사의 맥락은 유럽인의 개념이나 틀, 혹은 유럽화된 일본이 바라본 관점이 대부분이다. 라이샤워와 페어뱅크의 동양 문화사도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은 일본 학자들이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 내부의 시각에서 중국사상사를 조망하려는 의도로 집필한 책이다. 이런 까닭에 선개념이나 상투개념에 비껴나 있는 관점을 볼 수 있어 안목을 넓혀준다.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삼재(天․地․人) 사상을 처음 외친 것은 순자다.
도가의 ‘자연’은 문법적으로 부사였고, 뜻은 만물․백성이 자기 힘으로 자율적, 자발적으로 존재, 변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 이래의 학문은 농담의 차이가 있긴 했으나 모두 시대의 움직임에 충실한 실천적인 사상이었다. 중국의 사상은 학문이란 형태를 취하며 자기를 표현 한 것이다.
당 태종대 정관 연간에 만든 오경정의는 오늘날로 보면 국정교과서였다.
송대 사대부들이 주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소유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인쇄출판이란 기술혁신이 있었다. 이전에 경서나 주해는 기본적으로 암송해야할 대상이었다. 상업출판이 인쇄본의 주류가 되어 오늘날로 전해진다.
낙서란 1에서 9까지의 수를 3×3의 마방진(갈 세로 대각선, 어는 쪽으로든 합이 15기 된다)에 배치한 것
주자학에서 사서는 중급자용이고, 오경학습으로가는 단계에 불과 했다. 과거시험에서 사서는 필수, 오경은 선택필수라는 제도가 사서 편중 경향을 사회적으로 초래했고, 양명하기 취한 경전 경시 태도가 증폭시켰다. 맹자가 경서로 인정받은 것은 송대였단다.
왕양명이 말하길 “요순은 무게 1만의 황금, 공자는 무게 9천, 범인은 한 냥이다. 하지만 순수한 금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견주어 못하지 않다.”(보는 방식을 바꾸면 두 가지로 읽힌다)
중국의 황제질서는 예에 의한 통치로 서양식 정치학의 논리로 보면 ‘전제인데도 자유’라는 기묘함이 있다. 이와 관련해 「공자와 세계 1,2,3,4,5」를 보면 흥미진진하다.주자학의 등장이후 왕권이론은 천명을 받은 혈통에서 자기 수양으로 바뀐다.
화이사상은 송나라가 요에 대해 가졌던 굴절된 우월의식을 형성한다. 세계제국이었던 당나라는 화이를 구별함에 엄격하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들에게 호(胡)나 이(夷)는 이국적인 어떤 것으로서 인기를 누렸다. 그에 비해 서방이나 북방에 영토를 소유하지 못하고 남방으로 밀려나 있던 송나라는 자타를 엄정하게 구분한다. 서하도 당나라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은 요를 이적이라 여기고 자기를 중화라 여겼다. 국력이 찌그려져가는 일본이 혐한론을 부추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자학은 ‘심’논리가 자기의 마음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심을 두는 것을 양명학이 비판한다. 양명학은 행위의 타당성을 동기 차원에서 판단한다(“산 속의 적을 무찌르는 일은 쉽고, 마음 속의 적을 무찌르기는 어렵다.”)
주자학 양명학이 주목한 향리공간을 체계화한 것은 「주례」였다. (경복궁을 짓는데도 주례 동관 고공기를 참고했다니 주의 영향력은 시공간을 너머선다.)
중국 역사의 변화가 왕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의해 왕조가 규정된다(이 문장이 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다)
송나라 이후 균분 상속의 역사(부조가 1000무의 토지를 소유할 때 자식이 둘 이라면 500무씩 나뉘고, 그 자식에게 다시 자식 두명씩 있다면 500무는 250무, 3대째는 4분의 1이되고, 자식이 다섯 명씩이라면 손자 대에는 25분의 1이다)에서 가난은 3대로 이어지지 않고, 부도 3대를 이시 못한다는 말이 생긴다.
송대에 도교, 불교에 대해 유교를 우위에 둔 관료들이 도덕을 수양하는 학문으로 변화시킨다.
명말 청초에 가장 이르게 사(욕망)를 긍정한 것은 이탁오다.(이탁오 평전 참고)
명나라 홍무제가 반포한 교육칙어인 육유에서 황제에 대한 충성이나 국가, 관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가문과 향리를 둘러싼 도덕을 중시한다.
당송 전환기 오대라는 분열과 할거는 신해혁명후 1949년 재통일까지의 시기와 함께 대전환기의 하나에 견줄만한 커다란 혁명이었다. (일본이 그 사이에 침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변혁의 혼돈에 편승했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중세 서양의 봉건과 중국의 봉건이 다르듯이 중궁의 향치와 서양의 지방자치도 다르다. 중국의 향치는 “지방의 공사는 지방의 손으로”라는 차원에서 이뤄진 지방자치로 재벙이 자맂ㅂ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민간 주도라고 해도 실은 대부분 관과 향신, 백성이 합동으로 운영에 참여했느는 점이다. 태평천국군을 제압한 향신의 상군이 이와같은 맥락이다.
“만물이 가지런하지 않은 것은 물의 자연이다. 백성에 빈부의 차이가 있는 것은 수명에 장단이 있는 것과 같아 조물주도 어찌할 수 없다.”
균전제, 정전제가 명청대에 이르러 인구의 증가로 실현가능성이 멀어지고 중국동맹획가 토지국유를 주장한다.
중국 지식인들이 중국문화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1915년 무렵이다. 천두슈(진독수)에 따르면 종족제는 반개화, 봉건시대의 도덕으로 가장 먼저 비판해야 할 대상으로 결정되었다.
“형제는 타인의 시작이다”(일본에서 쓰는 관용구)

이미 알고 있는 바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 전한 말기(기원전 1세기) 무렵에 유교가 국교화 되었다.
- 공자는 천과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 도덕과 정치를 중심으로 한 인간사회와 인간의 힘 저편에 있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법(理法)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 유가는 종교적 의례였던 예를 세속화해 가족 도덕을 세우고 사람의 귀천과 상하를 구별하는 계급질서로 재구축한다. (맹자가 삼년상을 ‘효’의 구현이라 평가)
- 유가와 묵가가 제자백가의 앞에 있다.
- 도가의 ‘물을 물로 여기는 자는 물이 아니다’(물을 물로 여기는 자란 만물을 물로 여기고 존재 변화시키는 주재자를 가리키며, 물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을 행하는 자가 물이 아니고 도라는 말이다.)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은 글항아리에서 본문 365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내용과 제목이 따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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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관하여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2
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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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자오엔 소설집 : 화장실에 관하여


밖에는 찬 바람이 겨울을 데려오고 있다.
복층 유리는 바람만 막아주니 햇살은 부엌까지 밀고 들어온다.
해가 쉬러 간지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어도 안에서는 추위를 잊는다.
간서치 이덕무처럼 햇볕을 따라 앉은뱅이 책상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다.

루쉰 전집 이후 오랫동안 이어놓지 못한 중국 근현대 소설을 읽는다.
예자오엔 소설집은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두 번째로 내놓은 번역소설이다.
「연가」, 「화장실에 관하여」, 「추월루」, 「대추나무 이야기」를 제목으로 묶었다.
「연가」는 중국 대학생의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까지의 ‘감정의 변주’(번역자의 표현)를 다룬다. 독자의 학창 시절 연애와 결혼 생활과 닮아있다. 학창 시절 연애해서 결혼한 과커플(80년대엔 이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CC라고 한단다)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다. 그저 평범하게 그려서 심장이 벌렁이거나, 야한 장면이라곤 없다.

「화장실에 관하여」는 눈이 크고, 백자터럼 흰 피부에 연지빛 혈색이 도는 양하이링이 주인공이다. 공장 노동자인 그녀가 직장 동료들과 상하이를 방문했다가 화장실은 찾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싸는 내용이 소재다. 시골과 도회의 풍물을 비교하고, 외국의 화장실 사정을 소개하는 구성과 내용에서 김훈의 필법이 보인다.

「연가」와 「화장실에 관하여」는 중국 현대(아마도 문화혁명이후 즈음)가 시대 배경이다.
「추월루」 20세기 초 일제의 핍박을 받던 시기를 배경 삼아 이야기를 끌어간다. 「추월루」에서 청말, 중화민국, 일제 강점기를 통과하는 선생 가문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을 떠올리면 읽으면 배경을 가시화하기 쉽다. 일본의 난징 침략 시기에 친일하지 않고 의를 지키려 한다. 자신이 지은 누각에서 내려오지 않고 기거한다. 누각에서 내려옴은 의를 져버리는 것이라는 메타포를 담고 있다. 나라가 망해갈 때 한 사람의 마음과 노력은 힘이 되지 못한다.

「대추나무 이야기」는 1970년대가 시대 배경이다. 얼웅, 바이렌, 슈윈 중 전설적인 투사인 얼웅, 비적이자 항일투사의 몫을 해낸 바이렌, 얼웅의 형수이자 바이렌의 내연녀였던 노파의 회고를 토대로 끌어가는 이야기는 시대를 옮겨가며 모지이크화된 구성이다.
「화장실에 관하여」를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본문 346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네 편 중에서 「추월루」가 제일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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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 생활 속 지리 여행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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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20.12.23.()

부여에 가 부서산성을 오를 때면 상가 간판에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를 본다. 유홍준의 안목이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해 준 이후의 일이다. 부동산업자는 땅값이 오를만한 지역을 쉽게 구분해 낸다. 길치라 부르는 사람은 공간 감각이 떨어져 낯선 곳에서 헤매기가 쉽다. 지리학자는 일상을 그의 눈으로 어떻게 볼까? 이경한 교수의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모범 답안을 보여 준다.

 

자리 잡기의 미학, 갈등을 넘어 공존 모색하기, 장소 속의 의미 찾기, 모양의 원리 알아보기, 바람과 온도의 미학, 돈벌이의 질서로 이름 지어 6개의 장에 일상에서 만나는 지리학의 개념들을 풀어 넣는다. 쉽게도. 하여 지리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다보면 지리학이란 것이 이런 안목을 갖게 하는구나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극장에 좋은 자리가 있고, 납골당에도 로열층이 있다며 입지의 개념을 풀어간다. 네비에이션이 공간감각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우려한다. 메타세콰이어 길과 관방제림, 아테네 회랑처럼 갈등을 넘어 공존을 모색하자고 한다. 새만금 간척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음과 비오톱(biotope)은 자연신탁제를 통해 최대한 남기자 제안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의 침식을 바라보며, 지역 행정에 지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참여하지 못해 일어나는 아쉬움을 느낀다. 벽골제를 통해 갯땅쇠의 의미와 개척정신을 소개한다. 문등이(文登伊)를 배운 문화지리학 강의를 소환한다. ‘갯벌은 단위 면적당 생산성에서 논보다 30배나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객관성을 문자화하였다.

구하도, 갯벌, 평탄면, 풍화혈, 부석, 산사태, 심층풍화와 차별풍화, 천정천, 사구, 두부침식과 분수계, 삼각점을 통해 독자들이 지형 경관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스콜, 꽃샘추위, 작물의 북한계선, 식생의 수직구조, 편향수와 방풍림, 열섬과 높새바람으로 지리학에서 다루는 기후 현상을 일상에서 불러낸다.

원시 어업, 집적이익, 전후방연계, 상권 다툼, 프랜차이즈, 유역변경식 발전, 지리적 표시제, 공간적 상호작용 등의 지리학에서 다루는 개념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지리학은 암기과목이라 오해하는 학생에게 안목을 갖게할 안내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터, 지리를 배우는 초심자에게도 배워가는 과정을 체크해 보는 계기가 될 내용이다.

 

큰 이익을 보지 못함에도 지리학 관련 서적을 내주는 푸른길이 고맙다. 본문 204쪽 분량이다.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에 인용한 예자오엔의 소설 화장실에 관하여가 집에 도착했다. 품절된 책이라 온라인 중고매장을 통해 구입한 소설이다. 루쉰 전집이후 만나는 중국 소설이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이라니 재미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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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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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 「자리의 지리학. 2018」 지은이가 같은 책이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는 지리교사 모임에 스폰서 참여한 출판사 판매대에서 샀고, 나머지는 박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거다. 80년대 전반에 지리교육을 배운 까닭에 ‘장소’라는 단어는 지리에서 중요한 단어임에도 ‘공간’에 치어 눈에 띄지 않은 단어였다. 아니면 당시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에 학창시절에 배운 내용과 요즘 지리학의 간극을 좁혀 보려고 노력하며 렐프의 ‘무장소성’과 ‘장소애’라는 개념을 배운다. 그러니 이 책들은 연결되지 않았던 80년대 전반과 2020년의 중간 어느 지점에 들어온 개념이리라. 좌우지간에......
‘장소’라는 단어로 한 권의 에세이가 나올 수 있음은 놀랍다. 결코 정치학이나, 경제학, 법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와 같은 책을 낼 수 없다. 나는 나름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나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성장해가는 일이 독서하는 사람의 일상이라 여기면 책을 본다.
이경한 교수의 책은 ‘장소’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를 지점, 곳을 보는 안목을 가졌기에 나올 수 있었으리라. 나의 지적 호기심이 귀납적이라면 이경한 교수의 안목은 연역적이지 싶다. 일상과 학문(지리학의 주요 개념인 ‘장소감’, 나는 이제 겨우 알게 된)을 연결해 풀어낸 글이다.
책을 읽어가며 몇 가지를 생각하고 메모한다.
하나, ‘가맥’에 대한 궁금함이 풀렸고, ‘몸’을 장소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일이다.
하나,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장소’로 구성한 장을 읽을 때 전주에 있는 듯한,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가맥, 필리핀 식당, 다리 밑, 이면도로에 있는 다방에 가봐야겠다. 저자의 장소 마케팅이 성공적이라 의미다.
하나, ‘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장소’에서 ‘몸’과 ‘장소’를 이렇게 풀 수 있구나 생각한다. 테리토리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
하나, ‘타인과 함께 나누는 장소’에서 공원의 우리 곁에 있기까지를 그림을 매개로 풀어 놓은 글이 좋다. 코로나 19로 마을회관에 나가지 못하는 어머님을 생각한다.
하나, 요즘 지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장소’라는 개념이 쉽겠지만, ‘공간’을 주로 배웠던 기억에 ‘장소’를 이해하는 안목을 키워야지 생각한다.
“천변 산책길에 사람들이 오가면머리에 땅을 박은 꿩마냥, 나만 뒤돌아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을 감행한다.(p.54)” 이 문장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상을 매달아 놓은 사진까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사서 읽어 보세요]
“세월이 흘러도 남자는 남자다(p.81) (중략) ”. “다방은 ‘환대와 기대와 인간적 영접이 있는 친밀성의 장소’이다(p.81)”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이라면 연식이 드러나는 일이다. 다방을 ‘저비용 사회복지시설의 기능을 감당’하는 곳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행복한 곳에 사는 거다. 적어도 고독사는 하지 않을 터.
‘장소’와 ‘몸’을 연결한 다음 문장을 뽑아내는 일은 지리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몸은 자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의미를 접하고, 그리고 자아에서 형성된 개인적 의미를 사회와 맞딱뜨리게 하는 일차적 장소(p.106)”
“몸은 배타적 공간이자 장소이기도 하지만, 공유의 장소이기도 하다(p. 111)” 언제 공유의 장소일까 궁금하지 않으시리라 .
귀족 지배 권력의 소산이었던 공원이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통해 시민의 터전으로 바뀌었음을 풀어 놓았다.
“시골 마을의 모정과 마을회관은 우리 시대의 희생세대인 노인들이 실존적 존재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장소이다.(p.155)”
“‘같은 장소, 다른 의미’라는 장소 개념을 실제적으로 경험한다(임은지, 2011)“
에세이라면 누군가의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쯤이 대부분이라는 경험 탓에 높게 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는 낮게 칠 수 없는 에세이다. 그 까닭은 하나, ‘장소’라는 지리학이란 학문의 주요 개념을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일상과 연결했기 때문이다. 학문과 일상의 연결이니 어렵지 않겠냐고 한다면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하나는 글을 읽는 일의 목적이 ‘이해와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 볼 때, 이 책을 읽는다면, 늘 마주치던 곳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저자가 보았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반복하다보면 자기만의 안목이 생길 일이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를 다시 읽고, 「자리의 지리학. 2018」을 만나야 하겠다.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는 푸른길에서 2012년에 본문 19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저자는 전주교대 사회교육과 이경한 교수이다.
추기 : 책을 읽고 예자오옌의 <화장실에 관하여>를 긴급 주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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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투쟁기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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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투쟁기
2020.12.15.(화)
<책꽂이 투쟁기>가 내 집에 오기까지 경로를 되짚어 본다.
직장이 없이 살기 시작한 지 3년이 지나 아침에 아내가 출근하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댓꿀쇼를 본다. 뉴스쇼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댓꿀쇼에 변상욱 대기자와 뉴스톱 대표인 김준일 기자가 출연한다. 변기자의 이야기보따리와 김준일 기자의 팩트 체크에 믿음이 생겨 즐겨 본다. 탐정 손수호 코너의 손 변호사가 가끔씩 책을 추천하는 데 <책꽂이 투쟁기>도 그 중 하나다. 졸저 <독서로 말하라>의 최초 제목이 <◇◇◇의 분투기>이었던 이유도 책을 주문하게 된 까닭이다.

<책꽂이 투쟁기>를 받아본 느낌은 제본이 특별하단 점이다. 실밥이 보이는 제본이라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하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가 낸 책이니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책은 인간의 역사요, 독자의 역사다라며 책을 읽고 사고, 출판하는 어려움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요즘 문고본이 왜 세상에 나오지 않는지 말하며 출판대국 일본의 <이와나마 문고>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저자 김흥식의 책 읽는 이유는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하며, 인류가 어떻게 무에서 오늘날의 문명을 일구었는가를 알고 싶단다.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나 저자는 ‘서해문집’의 대표로 판단한다. 내가 사 읽은 책을 살펴보니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책 중 좋은 책이 있다. <징비록>, <난중일기>, <간양록>, <고려도경>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일부이고<세상의 모든 지식>, <유라시아 견문 1,2,3>, <리바이어던> 도 재미있거나 유익한 책이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 전집에 대한 향수(이 부분을 읽으며 이사 올 때 짐을 줄이려 백과사전을 폐기처분한 것이 잘못한 짓이다 생각한다)도 드러낸다.
민음사에서 내놓은 삼국지 <위서>, <오서>, <촉서>를 읽은 것보다 <사기세가>와 <사기 열전>이 재미있었다. 이를 쓰는 까닭은 “<삼국지>를 백번 읽은 사람과 다투지 마라”는 속설이 터무니없다는 저자의 인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꽂이에 LP와 CD도 많은 듯하며, 임방울의 음반을 들어보게 한다. (“판소리가 도대체 왜 20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 겨레를 들었다 놨다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융성했던 문화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라며......) 저자의 음악에 대한 칭찬은 귀가 없어 공감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차분하게 유튜브 영상을 봐야겠다.

출판하는 사람이기에 IMF 경제 위기가 출판 문화계에는 문예의 시대가 가고 경제의 시대를 맞게 했다고 알려 준다. 도쿄 도서전의 쇠락과 베이징 도서전의 발흥, 유럽 서점 탐방기도 소개한다. 번역에 대한 불만과 감사는 독자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원전을 본격적으로 번역한 천병희 교수와 정암학당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낸다. <변신이야기>외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책 5권을 장만해 두고 읽었으니 다행이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플라톤 전집이 소개되지 않은 나라라 고백한다.

유럽 헌책방에 들러 읽지도 못하는 책을 한보따리씩 사가지고 오는 심정을 밝혀 놓았다. 아! 이런 게 출판인의 마음이구나 하며 알게 되니 안타까움이 솟는다. (p. 184. 서양에서는 이런 책을 이 시대에 이렇게 많이 읽었어요. 게다가 책의 수준을 보십시오. 결국 지금 우리가 경제적으로 세계 몇 대 강국이라고 떠벌린다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경제적인 부문에 국한된 것일 수 있습니다. 저들이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울지 모르지만 근대 문명의 전통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들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 지갑도 웬만큼 두툼해졌으니 문명의 두께를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벼락부자일 뿐 지성과 품성, 철학과 사고 면에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맨큐의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의 본 모습을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아쉬워한다.
깐수로 불렸던 정수일 교수의 책도 비중을 두는 데 그의 책이 좋았으니 저자의 안목을 훔친 듯해 다행이다.

<국부론>과 <자본론>에 대한 시대사적 이해에 공감하며, 나름의 경제사를 <독서로 말하라>에서 정리할 수 있었음에 뿌듯함을. 중국 출판계가 우리나라를 앞선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는 판단을 하고 있으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이렇게 판단한 저자는 “애국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될 수 있지만 지성의 눈은 어느 순간에도 냉철하다”고)
고전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보다 저자의 정의가 적확하다. 옮겨 보면 저자는 고전이란 “인간의 보편적 삶과 사상을 다룸으로써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삶의 방향과 깊이를 전달해 주는 작품”이라 말한다.

출판인이면서 영화저널을 냈던 경험으로 저자의 영화에 대한 평가에 <국제여단. 아마도 켄 로치의 랜드 앤드 프리덤을 말하는 듯>, <붉은 수수밭>,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소개하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작품인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를 소개한다. 다 보고 감동이 일었던 작품들이다. 장준하의 죽음과 <사상계>에 대한 아쉬움은 경험하지 못한 내용이지만, 사상계의 목차만 봐도 수준이 높았음과 당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생긴다. 동시대인에겐 아픔이었겠으나.
<생각의 역사 ⅠⅡ>는 두 권 합하면 2,500쪽이 넘는다지만 사 볼 책 목록에 넣는다. <예술의 역사 ; 경제적 접근>, <미국의 아들>, <니체 극장>도 읽어보고 싶다. 절판됐다면 중고서점이라도 뒤져봐야겠다.
<책꽂이 투쟁기>는 그림씨에서 2019년 9월 초판을 내놓았고 나는 2020년 1월에 내놓은 초판 2쇄, 본문 342쪽 분량을 읽었다.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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