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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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 「자리의 지리학. 2018」 지은이가 같은 책이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는 지리교사 모임에 스폰서 참여한 출판사 판매대에서 샀고, 나머지는 박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거다. 80년대 전반에 지리교육을 배운 까닭에 ‘장소’라는 단어는 지리에서 중요한 단어임에도 ‘공간’에 치어 눈에 띄지 않은 단어였다. 아니면 당시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에 학창시절에 배운 내용과 요즘 지리학의 간극을 좁혀 보려고 노력하며 렐프의 ‘무장소성’과 ‘장소애’라는 개념을 배운다. 그러니 이 책들은 연결되지 않았던 80년대 전반과 2020년의 중간 어느 지점에 들어온 개념이리라. 좌우지간에......
‘장소’라는 단어로 한 권의 에세이가 나올 수 있음은 놀랍다. 결코 정치학이나, 경제학, 법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와 같은 책을 낼 수 없다. 나는 나름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나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성장해가는 일이 독서하는 사람의 일상이라 여기면 책을 본다.
이경한 교수의 책은 ‘장소’라는 단어에서 여러 가지를 지점, 곳을 보는 안목을 가졌기에 나올 수 있었으리라. 나의 지적 호기심이 귀납적이라면 이경한 교수의 안목은 연역적이지 싶다. 일상과 학문(지리학의 주요 개념인 ‘장소감’, 나는 이제 겨우 알게 된)을 연결해 풀어낸 글이다.
책을 읽어가며 몇 가지를 생각하고 메모한다.
하나, ‘가맥’에 대한 궁금함이 풀렸고, ‘몸’을 장소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일이다.
하나,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장소’로 구성한 장을 읽을 때 전주에 있는 듯한,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가맥, 필리핀 식당, 다리 밑, 이면도로에 있는 다방에 가봐야겠다. 저자의 장소 마케팅이 성공적이라 의미다.
하나, ‘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장소’에서 ‘몸’과 ‘장소’를 이렇게 풀 수 있구나 생각한다. 테리토리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
하나, ‘타인과 함께 나누는 장소’에서 공원의 우리 곁에 있기까지를 그림을 매개로 풀어 놓은 글이 좋다. 코로나 19로 마을회관에 나가지 못하는 어머님을 생각한다.
하나, 요즘 지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장소’라는 개념이 쉽겠지만, ‘공간’을 주로 배웠던 기억에 ‘장소’를 이해하는 안목을 키워야지 생각한다.
“천변 산책길에 사람들이 오가면머리에 땅을 박은 꿩마냥, 나만 뒤돌아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을 감행한다.(p.54)” 이 문장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상을 매달아 놓은 사진까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사서 읽어 보세요]
“세월이 흘러도 남자는 남자다(p.81) (중략) ”. “다방은 ‘환대와 기대와 인간적 영접이 있는 친밀성의 장소’이다(p.81)”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이라면 연식이 드러나는 일이다. 다방을 ‘저비용 사회복지시설의 기능을 감당’하는 곳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사는 어르신들은 행복한 곳에 사는 거다. 적어도 고독사는 하지 않을 터.
‘장소’와 ‘몸’을 연결한 다음 문장을 뽑아내는 일은 지리학을 배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몸은 자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의미를 접하고, 그리고 자아에서 형성된 개인적 의미를 사회와 맞딱뜨리게 하는 일차적 장소(p.106)”
“몸은 배타적 공간이자 장소이기도 하지만, 공유의 장소이기도 하다(p. 111)” 언제 공유의 장소일까 궁금하지 않으시리라 .
귀족 지배 권력의 소산이었던 공원이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통해 시민의 터전으로 바뀌었음을 풀어 놓았다.
“시골 마을의 모정과 마을회관은 우리 시대의 희생세대인 노인들이 실존적 존재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장소이다.(p.155)”
“‘같은 장소, 다른 의미’라는 장소 개념을 실제적으로 경험한다(임은지, 2011)“
에세이라면 누군가의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쯤이 대부분이라는 경험 탓에 높게 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 2012」는 낮게 칠 수 없는 에세이다. 그 까닭은 하나, ‘장소’라는 지리학이란 학문의 주요 개념을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일상과 연결했기 때문이다. 학문과 일상의 연결이니 어렵지 않겠냐고 한다면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하나는 글을 읽는 일의 목적이 ‘이해와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 볼 때, 이 책을 읽는다면, 늘 마주치던 곳이 새로운 눈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저자가 보았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반복하다보면 자기만의 안목이 생길 일이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2009」를 다시 읽고, 「자리의 지리학. 2018」을 만나야 하겠다. 「일상에서 장소를 만나다」는 푸른길에서 2012년에 본문 19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저자는 전주교대 사회교육과 이경한 교수이다.
추기 : 책을 읽고 예자오옌의 <화장실에 관하여>를 긴급 주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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