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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
2025.2.22.(토)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가족, 친구들, 선생님, 업계로부터 빌 게이츠가 배우고 혼자 터득한 삶의 방향과 노력을 쉽게 풀어두었다. 회고록을 읽는다면 내 삶과 견주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빌 게이츠가 독자에게 주는 조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절대적으로 사실이다.”(P.285)문 문장이다.
빌은 유년 시절 ‘가미’라고 사랑을 담아 부르는 할머니로부터 발음과 읽기, 도서관 가기, 카드 게임을 5년여 동안 배웠다. 카드 게임을 통해 “나는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P.31) 라고 회고한다. ‘가미’의 카드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풀 때 가졌던 것과 같은 강렬한 열정을 흥미를 느끼는 모든 것에 쏟아부었다. 빌이 흥미를 느낀 것은 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등이었다. 빌의 가족이 가졌던 규칙으로 할아버지는 「아들아, 돈 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돈 버는 법」, 할머니는 「더 많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 어머니는 「청지기, 즉 자신에게 맡겨진 무언가를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사람」를 강조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품은 원대한 비전의 바탕에 있던 ‘성공’이란 돈보다는 명성으로, 지역 사회는 물론 더 넓은 범위의 시민 단체 및 비영리 단체를 돕는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 빌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일상과 전통, 규칙의 구조 속에서 살았다. 침대 정리하기, 머리 빗기, 셔츠는 다려 입어야만 한다 등이다. 빌은 초등학교 초기에 집에서 혼자 많은 책을 읽었고, 혼자서 학습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책에서 새로운 사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 푹 빠져 있었다. 백과사전을 탐독하는 등 독서 덕분에 자신의 두뇌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이런 자신감 덕분에 어른들과 자신 사이에 지적 격차가 사라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9살이던 때에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로 어머니는 큰 타격을 입는다. 빌은 혼자 잘난 양 건방지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고, 대신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더욱 깊숙이 숨는다. 오늘날이라면 자폐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고, 식탁 건너편에 앉은 아버지가 물컵을 들어 빌의 얼굴에 끼얹었다. 이때 빌은 잠시 동안 동작을 멈추고 접시에 시선을 고정하고 “샤워, 고맙네요”라고 싸늘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갔다고 회상한다.(이런 상황에 세상의 어떤 부모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으랴) 빌의 아버지는 빌이 사업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차분하게 법률적 조언을 해주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기도 했지만, 전학을 갔던 초등학생 시절 5학년에 ‘델라웨어’주에 관한 177쪽짜리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는 사전 조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선생님에게 주목받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열세 살이었던 빌 보다 두 살 많았던 폴 앨런(10학년생), 켄트 등과 함께 컴퓨터실에서 지내던 상황을 “그해 가을부터 우리는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성적이 떨어졌고, 부모님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배우고 익히고 있었다. 내가 학교생활에서 경험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다”(P.164)라고 회상한다. 1968년경은 IBM이나 GE가 컴퓨터 본체를 구성하는 칩과 테이프 저장 드라이브, 처리 장치 등 냉장고 크기의 상자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과 연결된 장치 같은 하드웨어로 돈을 벌었다. 소프트웨어는 부수적인 것으로 무료로 제공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빌과 친구들은 DEC라는 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찾아내 보고하는 동안 DEC에 임대료를 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유료 고객이 문제를 발견하기 전에 청소년인 빌과 친구들이 찾아내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무료로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기 빌과 켄트는 8학년 열세 살, 폴과 릭은 10학년 열다섯 살에 불과했다. 스스로 선택한 분야와 사랑에 빠진 후 일정 기간 얼마나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가가 중요하다. 이 기간이 원초적인 관심이 실제 실력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폴은 괴짜였다. 섹스와 마약, 로큰 롤에 대해 정통했다. 빌이 초기 마약류에 경험하게 된 것은 폴 덕분이었다. 빌은 급하게 즉각적인 사고로 답은 찾고, 쉬지 않고 며칠 동안 일하고 또 일할 수 있었다. 반면에 폴은 시간을 들여 곰곰이, 신중하게 생각했다. 경청하고 나름대로 정보를 처리하는 그의 지성에는 인내심이 따라다녔다. 켄트(일찍 죽었다)와의 우정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더 나아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폴의 소개로 빌은 1972년 여름 인텔이 <마이크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를 칩 하나에 구현했음>을 알게 되는데, 컴퓨터의 주요 기능을 하나의 실리콘 조각에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인텔이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부른 제품을 개발한 이유는 휴대용 계산기를 생산하는 일본의 한 기업에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P.265)라는 사실에 독자는 놀란다. 그해 폴과 빌은 ‘수업 일정 프로그램’ 작업으로 번 360달러(오늘날의 약 2천4백 달러에 해당)로 4004를 샀다.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진 효율화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탄생시킨 디지털 혁명을 주도했다. 빌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없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도 없었을 것이라 회고한다.
졸업 후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 릭은 자신을 스스로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이라 일컫고 컴퓨터를 공부하며 ‘보내빌 PDP-10’을 이용해 부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TRW 엔지니어와 교류할 때 빌은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TRW의 “노턴은 재능과 전문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다른 프로그래머들이 갖지 못한 그의 강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보다 20퍼센트 더 뛰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타고난 재능은 어느 정도 작용하고 헌신적인 노력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전날보다 오늘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집중하고 고심하며 어마나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여야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걸까?”(P.289) 틴 에이저 중에서 누가 이런 생각을 할까. 빌 게이츠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 시절인 1969년 “당시 군대는 컴퓨터 산업의 가장 큰 고객이었으며, 소련과 대치한 냉전의 공포로 인해 미사일 유도와 잠수함 조종, ICBM 발사 탐지 등의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하는 대학에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었다.”(P.299) 이는 하버드에 재학하던 시기의 분위기였다. 하버드 에이킨 연구소의 컴퓨터를 야간에 독점하다시피 사용한 일은 사건이 되어 곤란해질 수 있었으나 지도 교수의 너그러움으로 해결된다. 하버드에서 응용 수학을 배우며 “응용 수학이 순전히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토대로 다양한 강의를 섭렵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같은 전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P.338) 책을 읽어가며 파악한 빌의 공부법은 집중과 선택이었다. 좋아하는 것에는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도 지치지 않았고, 대신 흥미 없는 과목은 수강도 포기하고 시험일 전에 며칠간 벼락치기로 통과해 버렸다. 함께 컴퓨터에 몰두하던 친구들도 그랬다.
초기 개인용 컴퓨터 세계의 히피 정신에 따라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누군가가 수천 시간을 들여 설계하고 작성하고 디버깅하고 작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비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초반 반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팩토리’와 ‘전 세계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싶다’라는 목표가 있었다. 1977년 미국에서 코모도어 PET와 애플 Ⅱ, 라디오 색 TRS-80이 학교와 사무실, 가정 등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PET 사용자가 WAIT 6502.1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화면 왼쪽 상단에 한 단어가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바로 <MICROSOFT!> 였다.”(P.475) 내가 PC를 사들인 것은 1993년이니 컴퓨터와 인터넷은 약 20년 후에 내 곁에 왔고 김대중 정부에서 전자정부를 구현했다. 빌 게이츠의 그 목표는 이루어졌다.
1978년 12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에서 시애틀로 본사를 옮긴다. 홀로 귀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창업한 회사, 다양한 직원들, 성장세에 오른 수익성 있는 사업체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의 마지막 문장 두 문장은 이렇다. “시속 160킬로미터로 5번 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상상해 보려 애썼다. 앞으로 이 길이 얼마나 더 멀리 나를 데려갈까?”(P477)
빌 게이츠의 가족이 담당하던 초기 교육, 조기 교육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기에‘ 맹모삼천지교’, ‘한석봉의 어머니’, 『근사록』, 『소학』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어떻게 실행했는가가 중요하다. 인식은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빌 게이츠가 독서에 흥미를 느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백과사전을 읽었고(내 세대에는 백과사전이란 그저 참고할 뿐이고, 자식 세대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부피가 큰 백과사전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 흥미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폭넓게 읽었다. 새로운 책, 잡지도 폴 앨런을 통해 빠르게 받아들였고 흡수하기 좋았다. 그만큼 독서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이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일은 인생에서 행운이다. 사고를 당해 일찍 먼 나라로 갔던 켄트는 빌 게이츠와 생각과 행동 방식이 같았고, 폴 앨런은 괴짜라는 점에서 같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친구들과 공유하는 강점이 있었다. 릭의 사고와 행동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벤처 사업을 시작했던 그들은 누구보다 업계의 변화를 빠르게 흡수했고, 배울 점을 찾아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물론 계약을 위반하는 업체와 다투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유년 시절부터 하버드를 중퇴하기까지 만났던 선생님, 교수의 지적이고 인간적인 도움도 빌 게이츠가 성장하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 개척하는 일이 인생의 주된 추진력이어야 함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가족, 친구, 선생님들의 역할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조화다.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으로, 두 번째 회고록이 마이크로 소프트를 운영하던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삶과 게이츠 재단의 활동을 조명하는 세 번째 회고록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니 기대한다. <열린 책들>에서 출간해 보내준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 은 청소년에게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확산하던 90년대를 경험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되기 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여 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일어난 디지털 혁명은 두번 째 회고록과 연관지어 읽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