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사람의 길 - 上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맹자 孟子 사람의 길 上

맹자 孟子 사람의 길

2025.2.8.()

도올 김용옥은 맹자는 고전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부터 맹자를 읽은 사람이 많았으나 시대적 사상의 제약(주원장은 괘씸하게 여겼고 일본에서는 금서였다. 정몽주에 의해 맹자가 제대로 읽혔다)이 강했고, 뒷받침하는 문헌의 포괄성이 부족했다. 이제는 자유분방한 시대이니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맹자를 읽는다면, 맹자의 사상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기에 옛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수십 종의 맹자가 출판되었고, 홍익출판사의 맹자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맹자 孟子 사람의 길 .는 도올 김용옥의 주석서다. 894쪽 분량에서 430쪽이다. 2024123일 비상계엄을 경험하며 맹자 읽기로 겨울을 버텨내는 중이다. 읽다보니 사마천의 사기세가사기열전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

 

맹자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당나라 때까지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으며, 인기 없는 한 사상가였을 뿐이었다.”(p.53) 송대 한유에 의해 맹자는 사상적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맹자가 제도사적으로 승격된 것은 왕안석에 의해서다. 신법 개혁 사상의 정초로 생각하고 과거과목으로 편입시켰다. 맹자상을 조정내에 세웠고 공묘에 배향하였다. 왕안석의 맹자존숭은 반발도 샀었다. “남송의 주희가 四書集註를 낸 후로부터 맹자의 권위는 확고하게 된다.”(p.55) 맹자관한 주석서는 2세기 조기의 孟子章句가 유일했으나 주희가 孟子集註를 썼다. 우리나라에는 포은 정몽주가 맹자를 읽고 친구인 삼봉 정도전에게 선물하였는데 3년간 시묘살이하며 맹자를 받아들여 조선조 개창 사상에 반영하고, 이후 조선 사림들에게 중요한 경전으로 받아들여져 맹자의 사상이 조선을 이끌어가게 된다. 도올 김용옥은 조선은 맹자의 나라였다.”라고 名言한다. 창덕궁 인정전 편액의 인정(仁政)이라는 말은 맹자에 의해 가장 정확하게 의미가 규정되었다고 한다. 인정이라는 말은 논어에는 없단다. 맹자 孟子 사람의 길 .는 사서집주본을 기본으로 한다.

 

호불호가 있겠으나 도올의 해석인 옥안(沃案)을 읽는 맛에 책을 선택한다. 한자의 해석에 그치면 군더기가 없어 담백하기는 하나 문장에서 맹자의 사상을 온전히 읽기는 어렵다. 옥안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맹자를 적용하는 도올의 얼굴 표정과 몸짓, 성향까지도 거침없이 드러내기에 재미있다. 고금의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김용옥의 지적 세계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지적 호기심을 가진 나를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양혜왕장구 梁惠王章句

옥안의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추려 옮긴다. 송대 근사록이라는 책이름의 출처가 된 切問而近思라는 문구는 자하가 자신의 학문적 태도를 일러 말한 것이다. 배움의 세계 속에서 어김없이 지식을 달구어 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자하는 배우고 남음이 있다고 생각되면 벼슬길에 오르라. 學而優則仕했다. 칸트의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로 규정했다. 니체는 힘에로의 의지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삼아 인간세의 모든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변혁하자.“는 것이다. 맥락은 다르다 해도 상앙의 힘의 철학은 니체의 힘에로의 의지와 상통한다고 한다. 니체는 신의 죽음과 동시에 대지에 충실할 것을 권유하고 상앙은 힘의 원천을 땅에 둔다. 그것은 농본주의를 의미한다. 아마도 21세기에는 국가가 힘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근본은 農戰이 아니라 경제전쟁이지 싶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비교한 글에서 전국시대에는 춘추시대 민중 보병부태의 규모가 2~3만 규모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글을 본다. 상앙과 효공의 대화 중 쉽다는 표현은 특수한 사태가 아닌 일반적 사태라는 것이며, 일반적 사태의 전반적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정치에 있어서 가장 쉽고 명백한 부강의 원칙일수록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상앙의 법은 단순히 민중을 괴롭히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愛民, 利民의 요체이다. 법이야말로 국치, 국부, 병강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내란 사태에서 보는 법꾸라지, 법기술자들에게 필요한 내용이다.

도올은 공자에게 민중의 고난에 대한 열렬한 사명감은 엿보기 어려우나, 맹자는 당대 민중의 고초에 대해 열렬하게 공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공자는 을 말했을 뿐이고 맹자는 仁義를 말한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여민동락 與民同樂이나 오십보 백보’, 교육, 양심, 생활, 선생이라는 말들은 맹자의 텍스트에서 유래한다. 전국시대 강대국은 제환공과 관자로 표현되는 강태공의 나라인 제나라다. 제나라의 수도는 임치로 전국시대 학술활동의 중심지였으며 학술문화를 이끈 것은 순우곤이었고, 마지막은 순자였다. 관자는 관중의 사상 논문집으로 기록을 보니 2012년에 1,0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을 읽고 메모한 기억이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목민관자에서 뽑은 거다. 관자의 정신 중 하나는 사시四時에 어긋나지 않게 정치를 하면(농번기에 전쟁 일으키지 않고, 봄에 장정을 노력에 동우너하지 않기 등) 국가 재정이 튼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의 恒産恒心(5년간 백수로 지내보니 깊게 느꼈다)이란 사상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한문을 배우려면 반드시 맹자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혜왕장구 상의 해석 분량은 100쪽을 넘어 읽어가며 지치게 할 수 있다.

 

양혜왕장구 하

조선초부터 궁중과 민간에서 연주되어오는 여민락이란 관현합주곡의 이름이 맹자에서 유래해 맹자사상이 조선왕조에 미친 영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즐거움을 천하와 더불어 하고, 근심을 천하와 더불어 하고서도 천하의 인민이 그에게로 귀속되지 아니 하는 자는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p.183)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서 환과독고鰥寡獨孤야말로 천하에 빈궁한 사람이니 먼저 보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홀애비), (과부), (자식 없는 늙은이), (고아) 맹자의 왕도론의 중요항목은 정전제, 관료의 봉급을 보장하기,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한 통행세, 물품세 폐지, 군주의 사유지 공개, 연좌제 폐지하고 형벌보다 서민교육으로 도덕을 진작시키기, 환과독고의 최빈자를 최혜자로 다루기등이다. 1b-8(p.198~203)맹자가 조선에 자리 잡는 과정을 상술하며 구한말 동학 역시 맹자의 혁명사상이 없이는, 맹자의 호연지기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사상이라고 말한다. 수호지의 영웅, 양산박의 두령인 송강의 별명이 급시우 及時雨(때맞추어 내라는 비)로 맹자의 若時雨降이란 표현에서 유래한 것이다. “맹자 논리의 위대성은 민중을 변호함에 있다. 군주라도 정치를 잘못하면 인민이 군주에게 항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는 혁명사상이 깔려있다.”(p.215) “외환의 본질은 내우에 있다 작은 나라 일수록 내우를 다스리면 외환의 문제는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p.220)

 

公孫丑章句 上

인간의 화복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 자초하지 않음이 없다.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나이다’ (p.249)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움직인다.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오,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이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이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이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이다.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쟁도 이 장의 해석을 두고 이루어진다. 퇴게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제목으로 출판돼 있다. ‘孺子入井이란 상황은 측은지심의 일상적 예다.

 

公孫丑章句 下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호만 못하다.”(p. 265) 천하에 두루두루 통하는 존귀함에는 셋이 있어 작위, 나이, 이다. 하나만 갖고 있다고 해서 나머지 두 개의 존귀함을 가지고 있는 자를 깔볼 수 없다. 不敢請耳, 固所願이다.

 

滕文公章句 上

여기는 중요한 맹자사상이 표출되고 있는데, 성선의 전제로서 깔려있는 인간평등론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평등하다는 사상이 확보되어야만 인간은 누구든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p.307) 항산이 있는자는 항심이 있으나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 또한 없다가 다시 언급된다. 선비만이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유지한다. 소국인 등나라에 정전이라는 조법의 유연한 제도(경제적 구상)를 활용하여 민중의 삶을 편안케 하고, , , 學校와 같은 서민을 위한 지방학교를 세워 인민대중을 가르쳐야한다고 말한다. 정전제는 토지의 균등분배와 사유를 허용하는 일종의 집단농장체제이며 상부상조의 복지체계이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경자유전의 유토피아가 맹자에서 비롯된다. 親義別序信,“오륜이라는 말 자체는 명대 선종이 편찬한 오륜서를 그 용례의 최초로 삼은 것이며, 이 책을 영종이 널리 보급하여 일반화된 후대의 개념이지 맹자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는 인륜人倫이란 표현만 썼다.”(p.334)

 

滕文公章句 下

이 세계는 도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가혹하다. “아무리 타협으로 부귀를 누린다 한들 그것은 현세를 지배할 수 있으나 결코 누적되는 역사의 가치가 될 수 없다.”(p.344)는 문장은 멋지다. 위정자 자신이 도덕적으로 정당치 못하면 정치는 행하여질 수 없다. 현재도 명태균 게이트가 증명한다. 장부란 독자적 실존 영역을, 즉 단독자로서라도 삶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자 이어야 하나, 여자는 순종을 도리로 삼아 독자적 실존을 갖지 못한다는 부분은 오늘날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다. 위무威武 즉 국가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 대장부의 조건 중 하나이다. 사나이의 진정한 용기는 실존 내면의 도덕성에서 우러나온다. 그래서 공자는 삼군의 거대병력에 맞서 장수를 빼앗을 수 있으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인류의 역사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본다. 천당이나 종말이라는 목적이 없다.

 

이루장구離婁章句 上

이루의 시력이 있고, 공수자의 기교가 있다 하더라도 규구規矩(콤파스와 곡척)에 의존하지 않으면 정밀한 사각형이나 원형을 만들 수가 없다. “위에 있는 자ㄱ들이 예의를 지킬 줄 모르고, 아래에 있는 민중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백성은 도적이 되어 봉기하기 마련이니, 그리하면 국가의 멸망은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p.385)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구하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은 절반쯤 온 것이며 아무도 탓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도착했다.”라는 중국 속담과 다르다. 自暴者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의론을 할 수가 없다. 自棄者와는 더불어 가치있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오늘알 대통령의 지위에도 폭넓은 교양과 정확한 판단력과 다양한 인식능력을 갖춘 자라야 그 지위에 앉을 자격이 있다. 어떤 일이든 가볍게 말을 내뱉는 놈들은 심각하게 비판할 아무런 가치조차 없다. 맹자는 부귀나 빈천에 흔들리지 않고 어떠한 위무에도 굴하지 않는 대장부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요구한다. 조선 시대의 선비상이 이런 맹자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라고 말한다. 맹자가 말한 불효의 세 가지는 부모를 불의에 빠뜨림, 부모가 연로하신데 자기 앞가림 못하는 것,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맹자세미나가 이루어진 현장이고 주관한 인물이 삼봉 정도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맹자 사람의 길 - 下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맹자 사람의 길 下
2025.3.1. 토요일
7,000자로 길다
이루장구 하
아래의 글은 모두 도올의 주해인 沃案을 바탕으로 정리한다.
맹자의 논의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라는 신념을 드러낸다. 성선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사단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도올은 조선에서 율곡이 맹자의 대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중”과 “재”이다. 그것은 도덕과 재능이다. 두 가지를 구비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인 몫을 하고도 남는다. 도덕과 재능을 구비한 자를 “현”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불초不肖”라한다. 사극에서 들어 보는 불초소생이란 말의 불초다. 현과 불초의 양극화를 막으려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방에 향기가 스며드는 것과 같은 가정에서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己所不欲 勿施於人”이야말로 진실한 도덕이다. 자공이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에 공자가 ‘서恕’라고 답한다. 서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다.
도올의 관점에서 서구철학의 최대 문제점은 아직도 상식 내에 신화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赤子之心’, 마음이 어린애 같이 순결한 인간이어야 대인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자득이어야 한다. 진리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의 체험 속에서 깨우치는 것이다.
박학은 설약說約(주제파악)을 지향해야 하고 설약은 박학을 지향해야 한다.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하지만 종국에는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료하게, 단순하게, 간결하게, 요약하여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학이 요약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지식의 질병에 빠지게 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하나의 문제의식을 갖고 수미일관해야 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일신교가) 불변과 영원이 불변의 가치인 양 선전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불안한 심리를 예속시킨다. 공자는 흐르는 물의 아름다움과 같이 우리의 삶이 흐르고 변화하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수용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의 개념도 다르지 않다. 무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금수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근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금수에 비해 인의의 도덕성을 살리고 보존한다. 인의를 통해서, 인의와 더불어, 인의 속에서 행동할 뿐이지 인의를 행동의 목적이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인(수평)하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요, 예(수직)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공경한다는 것이다.
군자에게 종신의 우환은 있을 수 있으나 하루아침의 걱정은 있을 수 없다. 하루아침의 걱정거리 같은 것은 군자는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아니한다.
중국 사람들은 ‘易地思之’란 말은 쓰지 않는다. 보통 “易地(則)皆然”이라고만 말한다. 받아들일만 하다.
불효의 다섯 가지는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 놀음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음주에만 빠지는 것, 돈버는 데만 미쳐 자기 부인과 자식만 아끼는 것, 이 세 가지 탓에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것다. 耳目의 쾌락만 추구하거나, 쌈박질만 해대면서 부모에게 불명예를 안기거나 부모를 위태롭게 해드리는 것이다.
責善이란 붕우지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도리이며 부자지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졸저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에서 칼럼으로 수록함)
신을 인간으로부터 객화시키는 모든 사상은 사이비일 뿐이다.(p. 504)
동방인들은 철학을 어떤 특정한 진리 추구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문학이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문사철을 겸비해야만 사상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논리를 논리로써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은유나 비유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 휠씬 더 가슴을 파고드는 진실이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만장장구 上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음흉하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장인, 처형, 매부, 아들, 둘째 부인을 살해했다. “6명의 황제가 난립한 시기에 다신론적 사태를 1인의 황제체제 즉 유일신론적 사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기독교라는 유일신종교를 활용했을 뿐이다.”(p.515) 읽어주길 기다리는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에서 언급하는지 지켜 보자.
하늘이 보는 것은 민중이 보는 것을 통하여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민중이 듣는 것을 통하여 듣는다. “오늘날 기독교가 조선땅에서 설치는 것도 맹자 덕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으로 조선의 건강한 기독교인이라면 맹자가 말하는 민중 즉 인간의 보편성을 하늘의 의지로 수용하는 신앙인이어야만 한다.”(p.537)
만장장구 下
유하혜의 생각,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내 곁에서 웃통을 벗거나 전 나체로 있든 그것은 너의 무례일 뿐 그것이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으랴!”(p.560) 공자가 스스로의 학문 세계를 스스로 자평하여 “술이부작”이라 말했다. 공감하기에 나의 첫 책 <독서로 말하라>를 출간하고 경인 방송 인터뷰에서 나도 ‘술이부작’이라는 공자를 따랐다.
서양 문명의 장처는 철학사에 있지 아니 하고, 과학사에 있다. 철학은 과학을 뒤쫓아왔을 뿐이다. 철학은 아직도 우주와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 신화적 단계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p.565)라는 문장은 나에게 더 공부하라는 문장으로 읽힌다.
맹자에게 벗이란 나이, 신분의 귀천, 연줄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내 시간과 정력을 공짜로 빼먹으려 하는가 ! 지식이나 도덕이 공짜일 수 없다. 지식인을 대접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이 정당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 여건을 만들어 주는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p. 574) 모든 강연자가 공감하는 바다.
“사람과 교제하는 데 있어서는 공손한 것이 제일이다.”
맹자의 “所不召之臣”의 신념, 천하에 다스리고자 하는 군주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신하를 곁에 두어야 한다.
친구 사귀기와 독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성현들을 추론하면서 벗 삼아라. 그들의 시를 읊고 책을 읽어라. 그래야 인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산 시대를 논구해야만 한다. “독기서부지기인가호 讀其書不知其人可乎” 그 책을 읽고도 그 사람을 모른데서야 말이 되는가.
성상근야 습상원야 性相近也, 習相遠也. 태어난 그대로의 성은 모든 사람이 서로 가깝다. 그러나 후천적 학습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
고자장구 上
식색食色 그 자체로서 우리는 선악을 논할 수 없다. 식색을 본능이라는 말로 비하시켜서도 아니 된다. 우리의 모든 문화적 활동의 총체가 식색의 문제일 수 있다. 종교, 예술, 정치, 산업, 그 모든 것이 식색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p.615)
측은지심은 인의 발로이며, 수오지심은 의의 발로이며, 공경지심(사양지심)은 예의 발로이며, 시비지심은 지의 발로이다. 인의예지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덮어씌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도올은 인간의 염색체 배열 속에 인의예지라는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하니 쉽게 알아볼 수 있다.
6a-7은 沃案을 여러 번 읽어도 (‘주희, 율곡, 퇴계가 말하는 理가 얼마나 유교의 본의와 동떨어진 것인가로 보여주는 위대한 로기온자료다’라는) 소화하기 쉽지 않다.
<牛山의 예>는 성선설은 명료하게 설파한 로기온자료다. 몸에 고유한 선한 마음을 방치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마치 도끼와 자귀로 나무를 계속 베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매일매일 나무를 벌채하여 없애버리듯이 양심을 잘라 내버리니 그 아름다운 마음이 유지될 수 있을까보냐?
“조심操心‘이야말로 맹자 心學의 키워드이며 ”求其放心’의 다른 표현이다.(p.631) 학문의 길이란 별것이 아니다. 그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되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쥐불놀이에서 원심력이 욕망이고 구심력이 도덕이다. 이 양자의 밸런스가 유지될 때 이성이 유지된다. 맹자의 생각에 인은 인간의 내면적 주체성에, 의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관련된다는 생각이 있다.
고자장구 下
인간이라면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도덕적 선의 주체성을 인간보편에게서 확립하려는 맹자의 노력이다. 율곡이 맹자에 정통했음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격몽요결>의 ‘입지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을 파악한다는 것은 양가적 사태를 전관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과 증오, 원망과 사모,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은 모두 같은 차원의 동시적 포섭적 가치일 뿐이다.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표현이 일상적 삶에서 사라지게 되면 인간은 메마르게 되며 인간관계 또한 논리적일지는 모르나 각박하고 냉혹하게 되며 중층적 깊이를 상실한다.”(p.667)
“맹자라는 캐릭터 이외의 모든 인물을 모두 맹자를 빛내기 위한 부속적인 ~ 이러한 오류의 대표적인 주석이 주희의 집주이며, 맹자집주는 사서 중에서도 가장 졸렬한 작품”(p.671)이라는 품평에서 도올 김용옥의 학문적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맛이 도올의 책을 선택하게 하는 매력이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관중의 규구회맹 – 샘을 폐쇄하거나 물줄기를 전용하지 말 것, 인도주의적인 곡물의 매입을 막지 말 것, 일단 세운 태자를 갈아치우지 말 것, 첩으로써 정처를 대신하지 말 것, 부인들로 하여금 국사에 관여케 하지 말 것(2025 탄핵에서 ‘연’일 듯하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거대한 역사의 임무를 내려주시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에 더없는 고통을 안겨주시고, 그 육신의 근골을 더없이 수고롭게 하시며, 그 몸뚱이를 배고프게 하시며, 그 육신의 삶을 공핍(궁급)하게 하신다(p.709)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인용하는 글이다.
p.712를 읽으며(고자장구를 주해하는 과정에서 도올이 육체적 고통을 이겨왔음) 그 고통 덕분에 <맹자>를 쉽게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도올의 고자 주해는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느 인간도 감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밴쳐의 역정이었다. 현재의 주석가는 물론 조선왕조의 그 어느 누구도 <맹자>를 나만큼 이해하지 못했다”(p.713)라는 문장에 경의를 보낸다.
진심장구 上
생사를 초월하여 나의 몸을 닦음, 즉 수신에 전념함으로써 나의 몸속에서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입명 立命’의 길이다. 명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일방적인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불운한 죽음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맹자는 인의예지 사단을 말하지만, 인간의 감정 중에서 의와 관련된 ‘수치羞恥’를 특별히 중시한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정의로움과 관련된 수치의 감각은 그의 도덕성을 명백히 드러낸다. 치는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수오羞惡’즉 악을 증오하는 사회적 정의감과 관련 있다. 수치가 외면적인 사회정의감일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자기향상의 노력의 핵심을 이루는 실존의 동력이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인 것은 범용한 민중이지만, 진정한 지식인은 무항산이라도 유항심하여야 한다. 경험상 무항산은 노년이 아닐지라도 무위고無爲苦를 수반한다. 성취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는 크나큰 고통이다.
사람이 덕행이 뛰어나거나, 지혜가 출중하거나, 지모가 탁월하거나 하는 사람은 거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삶의 진질疢疾(열병진, 환난이나 고난, 재난) 속에 놓여 있어 단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의 글이 沃案에 자주 보인다. 서얼의 허통許通(벼슬길을 터줌)을 율곡에게 제안한 사람은 율곡의 큰누님 매창梅窓이었다.(p.739) 진심장구에서 인간의 고뇌, 고난, 재난을 바라보는 긍정적 시각, 소외된 계층의 인간을 품어주는 따사로운 맹자의 시각을 본다.
‘학기學記’에 나온 ‘학불엽등學不躐等(밟을 엽)’은 배움이란 단계를 건너뛰고 다음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순과 도척이 갈리는 것은 利를 탐하느냐 善을 실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떠한 일은 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우물을 파는 것과도 같다.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중단해버리는 것은 우물 파기를 처음부터 포기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나라 법체에 ‘정상참작’의 정상이란 “情狀”이라고 쓰는데 인간의 감정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이는 유교적 전통에서 계승된 것이다.
칸트의 철학이 물리학을 골격으로 하여 ‘드라이dry’ 할 수밖에 없으나 맹자의 철학은 구체적 삶의 체험 속에서 이야기한다.(p.774)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무화無化시켜야만 한다. 겸허하게 자기를 비우고 낮추어야 한다. 신분을 믿고 현명함을 믿고, 나이를 믿고, 훈로勳勞가 있다는 것을 믿고, 연고를 믿고 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꼭 해야 할 일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다. 本末과 輕重을 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대인이란 결국 이런 경중을 가릴 줄 아는 時中의 대가들이다.
진심장구 下
민이 가장 귀한 것이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직이며 가장 가벼운 존재가 군(맥락상 제후국의 군주다)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자이며 천자의 신임을 얻는 자가 제후가 되는 것이다. 제후의 신임을 얻은 자가 대부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무도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한다면 제후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러나 민은 갈아치울 수가 없다. 2025년 겨울 대한민국에서민은 깨어있는 민과 어리석은 민으로 나뉘었다. 수출을 몇백억 못하는 것보다 민이 나뉜 것이 더 큰 문제다. 윤부부의 죄는 형법으로 단죄하기에 너무 크다. 이를 담은 ‘진심장구 하’는 맹자에서 인용 빈도가 높은 장이고 맹자의 래디컬한 사상이 드러나 역대 군주들로부터 탄압받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오늘 민주사회의 지도자들도 깨달아야 한다는 도올의 열망을 본다.
선비는 “남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자기 반성하기도 바쁜 마당에 “남의 말”을 해서 자신의 정결한 실존을 더럽히는가! 타인의 평판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자신이 확신하는 정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맹자는 한 나라의 제후가 토지, 인민, 정사를 보배로 삼으라 한다. 오늘날 주권의 개념이 군이 아니라 政事로 돼 있다.
인간으로서 큰 병통 중의 하나는 자기 밭은 내버려두고 남의 밭에 김매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엄청 많으면서 정작 자기가 걸머져야 할 책임은 소홀히 하는 짓이다.
生而知之, 學而知之, 困而知之 하든, 결국 안다고 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본문에 쓰인 Logion은 ‘어록’이다.
포폄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P.S.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지켜보고, 민초로 살아갈지라도 맹자의 가르침에 견주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 도올 김용옥이 주해한 『맹자 사람의 길 上下』(본문 851 쪽 분량임)을 읽었다. 대부분이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말이고 내 감정과 지식의 극히 일부만 보탰을 뿐이다.
좋아요
댓글 달기
보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

2025.2.22.()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가족, 친구들, 선생님, 업계로부터 빌 게이츠가 배우고 혼자 터득한 삶의 방향과 노력을 쉽게 풀어두었다. 회고록을 읽는다면 내 삶과 견주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빌 게이츠가 독자에게 주는 조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절대적으로 사실이다.”(P.285)문 문장이다.

 

빌은 유년 시절 가미라고 사랑을 담아 부르는 할머니로부터 발음과 읽기, 도서관 가기, 카드 게임을 5년여 동안 배웠다. 카드 게임을 통해 나는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P.31) 라고 회고한다. ‘가미의 카드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풀 때 가졌던 것과 같은 강렬한 열정을 흥미를 느끼는 모든 것에 쏟아부었다. 빌이 흥미를 느낀 것은 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등이었다. 빌의 가족이 가졌던 규칙으로 할아버지는 아들아, 돈 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돈 버는 법, 할머니는 더 많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 어머니는 청지기, 즉 자신에게 맡겨진 무언가를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사람를 강조했다.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품은 원대한 비전의 바탕에 있던 성공이란 돈보다는 명성으로, 지역 사회는 물론 더 넓은 범위의 시민 단체 및 비영리 단체를 돕는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 빌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일상과 전통, 규칙의 구조 속에서 살았다. 침대 정리하기, 머리 빗기, 셔츠는 다려 입어야만 한다 등이다. 빌은 초등학교 초기에 집에서 혼자 많은 책을 읽었고, 혼자서 학습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책에서 새로운 사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 푹 빠져 있었다. 백과사전을 탐독하는 등 독서 덕분에 자신의 두뇌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이런 자신감 덕분에 어른들과 자신 사이에 지적 격차가 사라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9살이던 때에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로 어머니는 큰 타격을 입는다. 빌은 혼자 잘난 양 건방지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고, 대신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더욱 깊숙이 숨는다. 오늘날이라면 자폐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고, 식탁 건너편에 앉은 아버지가 물컵을 들어 빌의 얼굴에 끼얹었다. 이때 빌은 잠시 동안 동작을 멈추고 접시에 시선을 고정하고 샤워, 고맙네요라고 싸늘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갔다고 회상한다.(이런 상황에 세상의 어떤 부모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으랴) 빌의 아버지는 빌이 사업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차분하게 법률적 조언을 해주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기도 했지만, 전학을 갔던 초등학생 시절 5학년에 델라웨어주에 관한 177쪽짜리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는 사전 조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선생님에게 주목받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열세 살이었던 빌 보다 두 살 많았던 폴 앨런(10학년생), 켄트 등과 함께 컴퓨터실에서 지내던 상황을 그해 가을부터 우리는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성적이 떨어졌고, 부모님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빠른 속도로 배우고 익히고 있었다. 내가 학교생활에서 경험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다”(P.164)라고 회상한다. 1968년경은 IBM이나 GE가 컴퓨터 본체를 구성하는 칩과 테이프 저장 드라이브, 처리 장치 등 냉장고 크기의 상자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과 연결된 장치 같은 하드웨어로 돈을 벌었다. 소프트웨어는 부수적인 것으로 무료로 제공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소프트웨어의 개선에 빌과 친구들은 DEC라는 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찾아내 보고하는 동안 DEC에 임대료를 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유료 고객이 문제를 발견하기 전에 청소년인 빌과 친구들이 찾아내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무료로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기 빌과 켄트는 8학년 열세 살, 폴과 릭은 10학년 열다섯 살에 불과했다. 스스로 선택한 분야와 사랑에 빠진 후 일정 기간 얼마나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가가 중요하다. 이 기간이 원초적인 관심이 실제 실력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폴은 괴짜였다. 섹스와 마약, 로큰 롤에 대해 정통했다. 빌이 초기 마약류에 경험하게 된 것은 폴 덕분이었다. 빌은 급하게 즉각적인 사고로 답은 찾고, 쉬지 않고 며칠 동안 일하고 또 일할 수 있었다. 반면에 폴은 시간을 들여 곰곰이, 신중하게 생각했다. 경청하고 나름대로 정보를 처리하는 그의 지성에는 인내심이 따라다녔다. 켄트(일찍 죽었다)와의 우정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더 나아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폴의 소개로 빌은 1972년 여름 인텔이 <마이크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를 칩 하나에 구현했음>을 알게 되는데, 컴퓨터의 주요 기능을 하나의 실리콘 조각에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인텔이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부른 제품을 개발한 이유는 휴대용 계산기를 생산하는 일본의 한 기업에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P.265)라는 사실에 독자는 놀란다. 그해 폴과 빌은 수업 일정 프로그램작업으로 번 360달러(오늘날의 약 24백 달러에 해당)4004를 샀다.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진 효율화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탄생시킨 디지털 혁명을 주도했다. 빌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없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도 없었을 것이라 회고한다.

 

졸업 후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 릭은 자신을 스스로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이라 일컫고 컴퓨터를 공부하며 보내빌 PDP-10’을 이용해 부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TRW 엔지니어와 교류할 때 빌은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TRW노턴은 재능과 전문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다른 프로그래머들이 갖지 못한 그의 강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보다 20퍼센트 더 뛰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타고난 재능은 어느 정도 작용하고 헌신적인 노력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전날보다 오늘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집중하고 고심하며 어마나 오랜 기간 노력을 기울여야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걸까?”(P.289) 틴 에이저 중에서 누가 이런 생각을 할까. 빌 게이츠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 시절인 1969당시 군대는 컴퓨터 산업의 가장 큰 고객이었으며, 소련과 대치한 냉전의 공포로 인해 미사일 유도와 잠수함 조종, ICBM 발사 탐지 등의 자동화 시스템을 연구하는 대학에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었다.”(P.299) 이는 하버드에 재학하던 시기의 분위기였다. 하버드 에이킨 연구소의 컴퓨터를 야간에 독점하다시피 사용한 일은 사건이 되어 곤란해질 수 있었으나 지도 교수의 너그러움으로 해결된다. 하버드에서 응용 수학을 배우며 응용 수학이 순전히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토대로 다양한 강의를 섭렵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같은 전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P.338) 책을 읽어가며 파악한 빌의 공부법은 집중과 선택이었다. 좋아하는 것에는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도 지치지 않았고, 대신 흥미 없는 과목은 수강도 포기하고 시험일 전에 며칠간 벼락치기로 통과해 버렸다. 함께 컴퓨터에 몰두하던 친구들도 그랬다.

 

초기 개인용 컴퓨터 세계의 히피 정신에 따라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누군가가 수천 시간을 들여 설계하고 작성하고 디버깅하고 작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의 비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초반 반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팩토리전 세계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싶다라는 목표가 있었다. 1977년 미국에서 코모도어 PET와 애플 , 라디오 색 TRS-80이 학교와 사무실, 가정 등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PET 사용자가 WAIT 6502.1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화면 왼쪽 상단에 한 단어가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바로 <MICROSOFT!> 였다.”(P.475) 내가 PC를 사들인 것은 1993년이니 컴퓨터와 인터넷은 약 20년 후에 내 곁에 왔고 김대중 정부에서 전자정부를 구현했다. 빌 게이츠의 그 목표는 이루어졌다.

 

197812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에서 시애틀로 본사를 옮긴다. 홀로 귀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창업한 회사, 다양한 직원들, 성장세에 오른 수익성 있는 사업체와 함께 돌아가는 것이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의 마지막 문장 두 문장은 이렇다. “시속 160킬로미터로 5번 주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상상해 보려 애썼다. 앞으로 이 길이 얼마나 더 멀리 나를 데려갈까?”(P477)

 

 

 

빌 게이츠의 가족이 담당하던 초기 교육, 조기 교육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일 것이기에맹모삼천지교’, ‘한석봉의 어머니’, 근사록, 소학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어떻게 실행했는가가 중요하다. 인식은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빌 게이츠가 독서에 흥미를 느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백과사전을 읽었고(내 세대에는 백과사전이란 그저 참고할 뿐이고, 자식 세대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부피가 큰 백과사전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 흥미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폭넓게 읽었다. 새로운 책, 잡지도 폴 앨런을 통해 빠르게 받아들였고 흡수하기 좋았다. 그만큼 독서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이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일은 인생에서 행운이다. 사고를 당해 일찍 먼 나라로 갔던 켄트는 빌 게이츠와 생각과 행동 방식이 같았고, 폴 앨런은 괴짜라는 점에서 같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친구들과 공유하는 강점이 있었다. 릭의 사고와 행동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벤처 사업을 시작했던 그들은 누구보다 업계의 변화를 빠르게 흡수했고, 배울 점을 찾아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물론 계약을 위반하는 업체와 다투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유년 시절부터 하버드를 중퇴하기까지 만났던 선생님, 교수의 지적이고 인간적인 도움도 빌 게이츠가 성장하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 개척하는 일이 인생의 주된 추진력이어야 함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가족, 친구, 선생님들의 역할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조화다.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더듬는 과정으로, 두 번째 회고록이 마이크로 소프트를 운영하던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삶과 게이츠 재단의 활동을 조명하는 세 번째 회고록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니 기대한다. <열린 책들>에서 출간해 보내준 빌 게이츠 소스 코드: 더 비기닝 은 청소년에게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확산하던 90년대를 경험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되기 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여 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 일어난 디지털 혁명은 두번 째 회고록과 연관지어 읽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한 세계사 -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이선필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한 세계사

2025. 2. 2.()

독한 세계사는 동양과 서양에서 인간과 개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는 개의 문화사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개를 길러보지 않았던 기억 탓에 직장 내에서 반려견 이야기로 일과를 시작하는 동료에게 핀잔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세계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약 22조 원을 넘기고, 우리나라 반려동물 시장 규모도 2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란다. “당신이 진정한 반려인이라면, 현대 반려 문화에 관해 관심과 고민이 많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라는 추천사를 옮겨 본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에 따라 전개되는 개의 문화사를 따라가 보자. 메소포타미아에서 개를 토테미즘의 대상으로 불운이나 불행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좋은 동물로 여겼다. 개들에게 목줄을 해주기 시작한 것도 메소포타미아인들이다. 아시리아에서 진흙이나 상아 조각, 청동으로 개 모양의 토우나 조각상을 만들어 부적으로 이용했다.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애견 TV를 처음 선보인 곳은 이스라엘이다. 고대 페르시아는 개에 대해 포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국교인 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는 여섯 가지 규정을 세세하게 만들었는데, ‘임신한 개는 6개월간 잘 보살펴라, 개에게 우유와 고기 및 기름진 음식을 제공하라, 딱딱한 뼈나 너무 뜨거운 음식을 주지 마라,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세 입 분량의 음식을 남겨 개에게 주어라, 개를 죽이는 자는 채찍형에 처한다, 개에게 좋지 않은 음식을 주는 자에게 채찍형을 가한다.’ 등이다. 개에 대한 인식은 7세기 이슬람의 지배 이후로 변한다. 20191월 이란 경찰 당국은 향후 공원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차에 태우고 운전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처벌을 부과한다.”라고 발표했다. 저자는 이란의 반려동물 정책을 반려 동물문화가 서방 문화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집트의 아누비스 신은 검은색 개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지하 세계의 신이다. 이집트인들은 개보다 고양이를 더 아꼈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개는 알고 모르고를 기준으로 친구와 적의 얼굴을 구분하기 때문에 진정한 철학자라 하고, 개들은 지식을 근거로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를 깨우쳤지만, 인간은 누가 그들의 진정한 친구인지 속고 있다.”라고 꾸짖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하데스가 관장하는 지하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루스라는 개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견으로 묘사한다. 로마 군대에서 식량을 지키려 고양이를 이용했고 도시 생활이 중요해지면서 개를 반려견으로 기르는 가정이 많아졌다. 집 지키는 개, 사냥하는 게, 싸우는 개가 있었으나 대중적 역할은 경비견이었다.

중세 전반기는 유럽의 반려견 문화는 암흑기였으나 후반기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고귀한 취미로 여겼다. 곡식과 페스트의 원흉으로 여겨진 쥐를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고양이의 유용성은 컸지만 의외로 개만큼의 대접은 받지 못했다.

주장했다. 14세기 성직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은 유일한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을 잘 보살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품성을 함양하는 것으로 여겼다.

18세기가 되면 중산층의 애견에 대한 인식이 반려견 즉 가족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전 시기와는 달리 개가 단독으로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1822년 영국은 가축의 부당한 취급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19세기 유럽에서 도그 쇼라는 애견 문화가 생겨났다.

북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인이 말을 들여오기 전까지 개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인도만큼 개가 대우받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개를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범죄이고 동물을 유기하면 초대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라고 설파했다.

개고기는 고대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주례는 개를 경비견, 사냥견,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개로 구분해 개고기 섭취는 윤리학과 대립적이지 않았다. 식용관습은 기원후 1세기경 불교의 도입과 4세기경 도교의 확장 이후 점차 줄었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명군의 추격을 받고 화살을 맞아 초원에 누워있을 때 명군이 초원을 불태웠고, 개 한 마리가 호수에 뛰어들어 물을 자기 몸에 묻혀 주변의 풀들을 적셔 누르하치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춘추전국시대에 한나라와 연나라는 구감(狗監)이라 부르는 사냥개 관리 전담 공무원이 존재했다. 고대부터 전해오던 반려견 사랑은 1949년 공산화 이후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부르주아지적 감정을 의미하고 데카당스의 상징이라 비판했다. 1970년대 등소평 이후 경제 성장과 서구 문화의 수용은 반려견 문화를 다시 성장하게 했다.

일본에서는 하얀 개를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다. 따라서 일본 설화에 등장하는 개 대부분은 하얀색이다. 저자는 시부야역 앞에서 10년간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개, ‘하치 이야기가 유명해지게 된 데에는 일본 제국주의적 야욕이 숨어 있었다고 본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훌륭한 덕성이라는 믿음을 전파하고자 했다는 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는 개를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바라보았던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전북 임실의 오수개, “의견 설화는 전국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문화에서 개가 충성스러운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p.203)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보내준 독한 세계사를 수년 후에야 읽게 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 나도 개를 키워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 - 단숨에 읽히고 즐겁게 깨치는 원영 스님의 반야심경 이제서야 이해되는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

2025.1.30.()


3PRO TV Religion에서 원영 스님과 프로들의 대화를 듣고 궁금해 읽는다. Religion 덕분에 종교문해력총서 1~5’을 사들여 두고 겨울을 나고 있다.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는 불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양변을 여의라라는 고우 스님 강설 육조단경에서 취했다. 철학으로서의 불교라는 차원에서 읽었다. 내게는 입문서 역할을 했던 거다.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은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다. 아마도 금강경을 읽는다면 반야심경과 같은 쓸모가 있을 거라 짐작한다.

 

반야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반야는 지혜란 뜻이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이고, ‘지혜(깨달음) 의 완성에 대한 핵심을 설한 경으로 고통의 바다라고 생각하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언덕(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지혜이다. 반야심경은 54260자로 짧은데 이를 책은 300여 쪽으로 풀어준다. 밑줄 친 애용도 적지 않고, 불교 용어라서 입에 달라붙은 데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나 원영 스님은 하루 7번씩 읽으면 암송할 것이라 하니 도전해 볼 일이다.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을 타파해야만 오히려 알 수 있는 것이 이다. 그러므로 공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연기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서 이것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공은 연기의 다름이 아니며, 모든 현상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났다 사라지므로 불변의 경계나 실체 따위는 없다.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이 가피. 반야심경을 이끌어가는 관자재보살이 관세음보살이다.

반야바라밀은 저 언덕(피안)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통찰의 지혜다. 또 완전한 성취를 위한 통찰의 지혜에는 지식도 필요하다.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나를 구성하는 오온은 물질과 형상을 통틀어 ’, 어떤 대상을 통해 일어나는 좋고 싫은 느낌인 ’, 느낌이 일어남으로써 떠오르는 생각이나 관념에 해당하는 ’, 생각이 의도나 충동을 담아 나오는 의욕 및 의지 작용인 ’, 이것을 분별하고 판단해서 인식하는 을 말한다.

모든 것들이 잠시 머물다 변화하고 사라져 가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모르고 연연하여 집착하는 중생들이 있기에 부처님은 오온이 모여 고통이 된다고 강조한다. 오온이 공함을 알면 마음을 다스리기 쉽고 자신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가변적이고 임시적이기 때문에 공하고, 중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보면, 모든 것은 분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공하다.

, , , 식은 마음이 움직이는 순서다. 색을 포함해 다섯 가지 작용이 활발히 일어남으로써 업은 쌓인다.

꽃이라고 하는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꽃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아닌지가 문제다.

자신에 대한 집착도, 상대에 대한 집착도, 그 어떤 잘못된 견해도 다 무명(어리석음)에서 나온다.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접촉이 있어야 느낌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의존적으로 발생한다는 연기의 법칙이야말로 부처가 깨달은 내용의 핵심이다.

전도는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는 것이고, 몽상은 헛된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꿈인 줄 모르고 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삶을 왜곡시키지 않고 제대로 보는 연습, 전도몽상을 멀리하는 수행이야말로 열반을 향한 반야바라밀행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조작해서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부처님은 알아차렸고, 그 내용을 중생들에게 친절하게 전해주신 것뿐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숭아제 모지사바하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 높은 곳으로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이루어질지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