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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세계사 -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이선필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독한 세계사
2025. 2. 2.(일)
『독한 세계사』는 동양과 서양에서 인간과 개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가를 살펴보는 ‘개의 문화사’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개를 길러보지 않았던 기억 탓에 직장 내에서 반려견 이야기로 일과를 시작하는 동료에게 핀잔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세계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약 22조 원을 넘기고, 우리나라 반려동물 시장 규모도 2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란다. “당신이 진정한 반려인이라면, 현대 반려 문화에 관해 관심과 고민이 많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라는 추천사를 옮겨 본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에 따라 전개되는 개의 문화사를 따라가 보자. 메소포타미아에서 개를 토테미즘의 대상으로 불운이나 불행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좋은 동물로 여겼다. 개들에게 목줄을 해주기 시작한 것도 메소포타미아인들이다. 아시리아에서 진흙이나 상아 조각, 청동으로 개 모양의 토우나 조각상을 만들어 부적으로 이용했다.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애견 TV를 처음 선보인 곳은 이스라엘이다. 고대 페르시아는 개에 대해 포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국교인 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는 여섯 가지 규정을 세세하게 만들었는데, ‘임신한 개는 6개월간 잘 보살펴라, 개에게 우유와 고기 및 기름진 음식을 제공하라, 딱딱한 뼈나 너무 뜨거운 음식을 주지 마라,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세 입 분량의 음식을 남겨 개에게 주어라, 개를 죽이는 자는 채찍형에 처한다, 개에게 좋지 않은 음식을 주는 자에게 채찍형을 가한다.’ 등이다. 개에 대한 인식은 7세기 이슬람의 지배 이후로 변한다. 2019년 1월 이란 경찰 당국은 “향후 공원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차에 태우고 운전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처벌을 부과한다.”라고 발표했다. 저자는 이란의 반려동물 정책을 반려 동물문화가 서방 문화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집트의 아누비스 신은 검은색 개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지하 세계의 신이다. 이집트인들은 개보다 고양이를 더 아꼈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개는 알고 모르고를 기준으로 친구와 적의 얼굴을 구분하기 때문에 진정한 철학자”라 하고, 개들은 “지식을 근거로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를 깨우쳤지만, 인간은 누가 그들의 진정한 친구인지 속고 있다.”라고 꾸짖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하데스가 관장하는 지하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루스라는 개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견으로 묘사한다. 로마 군대에서 식량을 지키려 고양이를 이용했고 도시 생활이 중요해지면서 개를 반려견으로 기르는 가정이 많아졌다. 집 지키는 개, 사냥하는 게, 싸우는 개가 있었으나 대중적 역할은 경비견이었다.
중세 전반기는 유럽의 반려견 문화는 암흑기였으나 후반기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고귀한 취미로 여겼다. 곡식과 페스트의 원흉으로 여겨진 쥐를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고양이의 유용성은 컸지만 의외로 개만큼의 대접은 받지 못했다.
주장했다. 14세기 성직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은 유일한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을 잘 보살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품성을 함양하는 것으로 여겼다.
18세기가 되면 중산층의 애견에 대한 인식이 반려견 즉 가족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전 시기와는 달리 개가 단독으로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1822년 영국은 ‘가축의 부당한 취급 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19세기 유럽에서 도그 쇼라는 애견 문화가 생겨났다.
북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인이 말을 들여오기 전까지 개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인도만큼 개가 대우받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개를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범죄이고 동물을 유기하면 초대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라고 설파했다.
개고기는 고대 중국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되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주례’는 개를 경비견, 사냥견,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개로 구분해 개고기 섭취는 윤리학과 대립적이지 않았다. 식용관습은 기원후 1세기경 불교의 도입과 4세기경 도교의 확장 이후 점차 줄었다. 청태조 누르하치가 명군의 추격을 받고 화살을 맞아 초원에 누워있을 때 명군이 초원을 불태웠고, 개 한 마리가 호수에 뛰어들어 물을 자기 몸에 묻혀 주변의 풀들을 적셔 누르하치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진다. 춘추전국시대에 한나라와 연나라는 구감(狗監)이라 부르는 사냥개 관리 전담 공무원이 존재했다. 고대부터 전해오던 반려견 사랑은 1949년 공산화 이후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부르주아지적 감정을 의미하고 데카당스의 상징이라 비판했다. 1970년대 등소평 이후 경제 성장과 서구 문화의 수용은 반려견 문화를 다시 성장하게 했다.
일본에서는 하얀 개를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다. 따라서 일본 설화에 등장하는 개 대부분은 하얀색이다. 저자는 시부야역 앞에서 10년간 주인을 기다리다 죽은 개, ‘하치 이야기’가 유명해지게 된 데에는 일본 제국주의적 야욕이 숨어 있었다고 본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훌륭한 덕성이라는 믿음을 전파하고자 했다는 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는 개를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바라보았던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전북 임실의 오수개, “의견 설화는 전국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문화에서 개가 충성스러운 동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p.203)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보내준 『독한 세계사』를 수년 후에야 읽게 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파트를 벗어나 단독주택에 살게 되면, 나도 개를 키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