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장교가 물었다. "Wieviel Stuck?"(몇 개) 그러자 하사는 단정하게 경례를 붙인 뒤 650‘개‘이며 모두 준비가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 카르피 역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서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 P17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지니고 살게 될 터였다. - P35

낯선 외국어가 모든 사람들의 정신의 밑바닥으로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기상‘. 따뜻한 담요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경계, 잠이라는 튼튼하지 못한 갑옷, 고통스럽기도 한 밤으로의 탈출, 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우리는 다시 무자비하게 잠에서 깨어나 벌거벗고 연약한 상태에서 잔인하게 모욕에 노출된다. 이성적으로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너무나 춥고 너무나 배고프고 너무나 힘이 들어 그 끝은 우리와 더 멀어진다. 그러므로 회색빛 빵 한 덩이에 우리의 관심과 욕망을 집중시키는 것이 더 낫다. 빵은 작지만 한 시간 후면 틀림없이 우리 것이 된다. 그것을 집어삼키기 전까지 5분 동안 그것은 이곳에서 우리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다. - P94

오,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다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등하게 바람과 맞설 수 있다면! 영혼이 없는 텅 빈 벌레로 사는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 - P105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에서,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누릴 수 없어서라기보다 불행의 상태가 지니는 복잡한 성질을 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차례대로 늘어선 그 불행의 이유들이 단 하나의 이름을, 가장 큰 이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유가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그 뒤로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비탄에 잠길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뒤로 또 다른 이유들이 줄을 서 있다. - P110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소는 벌을 받는 곳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수용소는 게르만식 사회구조 한가운데에서 시간 제한없이 우리에게 부과된 존재방식일 뿐이다. - P125

그러나 수용소 안의 사정은 이와는 다른다.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 절망적일 정도로,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 P133

내가 보기에 증오는 개인적인 것이고 한 사람에게, 어떤 이름에게, 어떤 얼굴에게 향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멀리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접근할 수도 없었다. ...또 이 책이 쓰인 그 몇 달 동안, 즉 1946년에 나치스와 파시즘은 정말 얼굴이 없는 듯했다. 그것들은 무시무시한 악몽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다시 허공 속으로 흩어져버린 듯했다. 새벽닭이 울면 유령들이 사라져버리듯이 말이다. 그런 유령 집단을 향해 내가 어떻게 분노를 키우고 복수를 바랄 수 있겠는가? - P268

나는 이런 설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 현상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려(끔찍한 명령을 실행에 옮긴 자들도 결코 무죄일 수 없다!) 설명한다는 건 옳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한 개인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행동의 동기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가정들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을 변명하며 죄의 양이 아니라 질을 설명한다. 나는 솔직히 히틀러와 그의 뒤에 있던 독일의 광적인 반유대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몇몇 진지한 역사학자들(블록, 슈람, 브라허)의 겸손함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서도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P301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 P303

물자 부족, 노역, 허기, 추위, 갈증들은 우리의 몸을 괴롭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정신의 커다란 불행으로부터 신경을 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불행할 수 없었다. 수용소에서 자살이 드물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자살은 철학적 행위이며 사유를 통해 결정된다. 일상의 절박함이 우리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우리는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이나 그후에는 자살에, 자살할 생각에 가까이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아니었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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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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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에 대한 수많은 단상을 보여준다. 시 한 구절만 기억할 수 있다면 하루 중 유일한 배급식량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이란 어떠한 폭력에도 파괴될 수 없는 것 -마음을 가진 인간일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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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배(腹)보다 큰 눈을 가지지나 않을까, 능력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는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 하지만 잡히는 것은 바람뿐이다. - P20

사람은 누구나 자기 관습에 없는 것을 야만이라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관습, 그리고 직접 관찰한 사례를 제외하면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신대륙에도 완전한 종교와 완전한 정치가 있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하고 비할 바 없는 관습이 있다. 물론 그들은 ‘야생sauvages‘이다. 자연이 저절로 자연스레 발전하면서 이룩한 성과를
‘야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야생이다. - P24

내가 그 사람에게, 당신은 당신의 동포들 중에서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실제로 그는 대장이었고 우리 선원들은 그를 ‘왕‘이라고 불렀다) 그 자리가 주는 이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전쟁이 벌어질 때 앞장서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P42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음을 생각하거나 죽음을 예견하는 말을 하면 대부분 그 사람이 죽음을 겁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견이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일을 짐작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 P48

정신은 재료 자체의 성질에 기초해 재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신 그 자체가 이해하는 바에 기초해 다룬다. 사물자체의 무게와 치수, 그 밖의 여러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사물이 일단 우리 내부로 들어오면 정신은 그 사물을 자신이 이해하는 바에 따라 마름질한다. - P93

세상의 많은 오류는 아니 더 과감하게 말하면 세상의 모든 오류는 우리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게끔 배우고, 또한 우리 자신이 반론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받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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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31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책인가 보다 했더니 그보다 심오하군요!!^^

dollC 2022-10-31 11:56   좋아요 0 | URL
계속 회자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민음사에서 <에세>완역본도 나왔어요^^
 
바쇼 하이쿠 선집 -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마쓰오 바쇼 지음, 류시화 옮김 / 열림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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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될 때마다 짬짬이 읽었다. 짧은 시라고 감상하는 시간도 짧은 것은 아니다. 외려 긴 여운 탓에 쉬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힘든 순간도 많았다. n년 동안 하이쿠에 담뿍 취했다. 세세한 구성과 친절한 설명도 큰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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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7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쇼의 하이쿠 저도 좋아해요

dollC 2022-10-27 19:37   좋아요 0 | URL
곱씹을수록 좋아요^^
 
百と卍 5 特裝版(on BLUEコミックス) 百と卍 (コミックス) 6
紗久樂 さわ / 祥傳社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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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부록이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구나! 그래, 사랑이다 사랑이야. 행복해라 이놈들아~ 크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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