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사람들은 글을 발명합니다. 글은 손의 연장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글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신체와 직접 연관된 소통 기술입니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우리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바퀴를 발명한 것과도 같아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바퀴는 선사 시대의 그것이에요. 반면 영화, 라디오, 인터넷 같은 현대의 발명품들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지요. - P13
미래는 직업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진짜 예언자이든 가짜 예언자이든 간에, 예언자의 본질은 바로 틀리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진정한 미래는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다.> 항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래의 위대한 특질입니다. - P53
베르길리우스는 요즘 우리가 그 안에서 기분 좋게 즐기고 있는 가상 세계를 예감했던 것일까요? 이 지옥으로의 하강은 세계 문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온 아주 멋진 주제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정복할 수 있는 - 우리에게 주어진 - 유일한 방법이죠. 다시 말해서 죽은 자들과 <망령>들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즉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존재의 영역과 무의 영역을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일종의 가상적 불멸성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 P60
그리고 대홍수 장면을 그린 도판도 기가 막힙니다. 또 『바벨탑Turris Babel』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책에서 키르허는 복잡한 계산을 통해 바벨탑이 완성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요. 만일 불행히도 그것이 완성되었더라면, 그것의 엄청난 높이와 무게를 못 이긴 지구는 그것을 축으로 빙글 돌아 버렸을 거라나요? - P148
여기 또 한 명의 광인 후보자가 있습니다. 당대에 반쯤은 옳고 반쯤은 논의의 여지가 있는 진실들을 제시한 사람이었지요. 어쨋든 그는 이단으로 취급되어 - 기적적으로 화형대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 거의 죽을 뻔했답니다. 바로 『아담 이전의 인류Prae-Adamitae』를 쓴 17세기 프랑스의 신교도 이삭 드 라페레르입니다. 그는 설명하기를, 훨씬 더 긴 시간을 입증하고 있는 중국의 족보들을 비추어 볼 때, 세계의 나이가 성서가 말하듯 6천 년이 아니라고 했어요. 이렇게 되면 인류를 원죄에서 구원하려고 온 그리스도의 사명은 지중해 연안의 유대 세계와만 관계되고, 원죄에 감염되지 않은 다른 세계들과는 상관없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18세기의 자유 사상가들이 세계의 다수성과 관련하여 야기한 문제와도 비슷하죠. 세계가 여럿 존재한다는 이들의 가정이 맞는다면, 예수가 지구에만 오고 다른 곳에는 가지 않는 사실은 어떻게 정당화해야 하죠? 그렇다면 (정당화하기 힘들므로) 예수는 무수한 혹성들에서 십자가에 매달렸었다고 상상해야 하는데... . - P226
어리석은 자는 틀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틀린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목청껏 외치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이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요란한 것인지, 참으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우리가 확실한 출처를 통해 알고 있거니와...」그다음에는 어마어마하게 엿 같은 소리들이 이어지죠. - P232
아프가니스탄에서 파괴된 불상들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군요. 부처가 설법을 행한 후 첫 몇 세기 동안에는 그의 모습은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재로써 보여졌지요. 발자국들, 비어 있는 의자, 그가 그늘에서 명상한 나무, 혹은 안장은 있되 기수는 없는 말.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침입한 이후부터,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리스 예술가들의 영향으로 부처에 육체적인 형상을 부여하기 시작했어요. 따라서 탈레반들은 <불상을 파괴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의 근원으로의 회귀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죠. 진정한 불교 신자들에게 바미얀 계곡의 그 비어 버린 좌대들은 이전보다도 더욱 웅변적이고 더욱 충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 P267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언젠가 읽게 될 책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죠. 그렇습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었죠. 서재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죠. 그것들을 영원히 못 읽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P312
우리가 한 가지 다루지 않은 점이 있어요. 왜 우리는 어떤 책을 어떤 다른 책 옆에다 두기로 결정하는 걸까요? 왜 책들을 정돈하는 데 이 방식보다는 저 방식을 택하는 걸까요? 왜 갑자기 내 서재의 질서를 바꾸는 걸까요? - P336
레비스트로스는 문화는 다른 문화들과 접촉하지 않는 한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곤 했지요. 고독한 문화는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조차 없습니다. - P337
호세 베르가민의 『문맹의 쇠락』이라는 멋진 글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이런 질문을 제기합니다. 우리는 읽기를 배우게 됨으로써 무엇을 잃었는가? 선사 시대 인간들, 혹은 문자가 없는 민족들은, 어떤 형태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는가? 우리가 영원히 잃게 될 그 지식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모든 첨예한 질문이 다 그렇듯이, 대답 없는 질문입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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