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
브리기테 슈스터 지음, 김목인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존에 대한 강력한 울림.

천 마디 말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더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가 바로 그것이다.


스위스 베른의 건축물에 설치된 옥외 고양이 사다리를 사진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브리기테 슈스터가 찍고 책으로 엮었다. 

책은 '고양이 사다리'의 정의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와 함께 그 배경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래픽 디자인으로 다양한 형태의 고양이 사다리를 분류해 놓아 시각적으로 금세 친숙해진다.




사진은 양 페이지 전체에 걸쳐 큼직하게 배치되어 있고, 아주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챕터를 나누어 고양이 사다리를 유형별로 구분해 놓았는데 일반 사다리, 닭장 사다리, 계단식, 나선형을 비롯해서 설치와 해체가 쉬운 접이식 사다리나 잘린 나무 둥치를 사용한 자연물 사다리까지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고양이 사다리가 환기시키는 '공존'을 의식하며 읽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진 작품집으로만 감상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다만 불친절한 편집이 못내 아쉽다.



책은 짝수 페이지에 한국어, 홀수 페이지에 영어로 구분되어 있다.

작은 글씨의 빡빡한 한국어를 다 읽고 나면 영어는 아직 네다섯 페이지나 남았다. 어차피 영어 때문에 짝수 페이지를 공백으로 둘 거면 한국어와 영어를 같은 내용으로 맞춰서 편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국어의 자간, 행간에도 숨통이 트여 보다 읽기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의 경우, 양면 페이지에 걸쳐 배치되어 있어서 고양이 사다리가 사진 중앙에 있는 경우 잘려서 보인다. 다른 경우들도 펼침면의 곡선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전면 펼침으로 제작했어야 할 성격의 책인 것 같다. 단가 때문이었을까. 책 가격의 문제보다 책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엽편소설 모음집. 가볍게 술술 읽히면서 시대상 -특히 여성상이 밟힌다. 엄마가 무료해하시기에 선물로 구입했는데, 큰글씨책으로 살 것을... 생각이 짧았다.(불효녀는 웁니다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쓰지 않은 책들
조지 스타이너 지음, 고정아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 스타이너의 쓰지 않은 책에 대한 책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쓰지 않은 책들
조지 스타이너 지음, 고정아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 스타이너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통찰력 아닐까.

끊이지 않는 의문과 호기심, 예민한 감성의 피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방대한 지식과 이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 그 안에 형형히 빛을 내는 통찰력이 눈부시다. 언제나 이방인인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고독의 필요와 사색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사적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인 정당"이라는 사적 공간을 주장하면서 '이길 수 있는 패가 아닌' 것 또한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알고 있으며, 독자 역시 스타이너의 주장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최소한 이해는 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취향」과 「질투에 관하여」, 「학교와 문해력」​에서는 방대한 지식과 장르 간의 침투력이 흥미롭다.(과연 이 사람의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 분야의 벽을 건너뛰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치 사유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고전에서 현대로, 경제에서 예술로, 과학에서 음악으로 넘나드는 글은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어 길을 잃지 않는다. 독자는 즐겁게 파고에 몸을 맡기면 된다. ​「에로스의 혀」는 스타이너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독창성이 뛰어나며, 「시온」, 「인간과 동물에 관하여」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시온」은​​ 유대인으로서 세상의 이방인이라는 정체성과 부유하는 자신의 뿌리에 관한 고찰을, 「인간과 동물에 관하여」​는 개인적이고 소소한 생활을 편안한 말투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총체적 질문과 사색이 깊은 울림을 준다.


조지 스타이너의 쓰지 않은 책에 대한 책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지만 이보다 더 미묘하고 고통스러운 ‘인비디아‘의 방어모드는 조정된 자기비하다. 우리는 월계관을 받은 사람을 찬양하는 한편, 우리 자신을 실패의 축에 위치시킨다. "나는 창조자가 아니다. 어떤 의미 있는 이론적 통찰도 하지 못했다. 어떤운동도 학파도 창시하지 못했다. 어떤 종목의 기록도 깨지 못했다. 선거에 졌다. 내가 받은 상은 규모도 작고 이름 없는 것이다. 나는 푸시킨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인, 사상가, 정치 지도자, 사회 개혁가의 편지를 배달해준 배달부, ‘포스티노 postino‘다. 이런 지엽적인 역할이라도 하게 된 것, T. S. 엘리엇의 시에나오는 ‘시종관attendant lord‘ 이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우리는 비하할 때마저 대가를 인용한다)." 이런 자기 낮춤은 예방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 앞서 내가 먼저 스스로를 낮잡아본다.  - P78

개별 인간은 눌변에서 달변까지 다양한 수준의 ‘개인 방언‘, 즉 자신에게 고유한 어휘와 구문 기호를 만든다. 별명, 발음의 연상, 은밀한 지칭이 그런 고유성을 이룬다. 형식논리학이나 기호논리학과 달리 동어반복을 피하는 곳에서, 언어는 기초적 수준에서도 다의적, 다층적이며, 언제나 불완전하게 의도를 표현한다. 언어는 암호를 만든다. 이런 암호화는 공유된 기억, 역사적 소망,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져서 인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핵심적인, 하지만 개별화되고 사유화된 필요와 의미를 감추기도 한다. 언어는 그 자체로 다언어적이다. 그 안에는 여러 세계가 있다. - P88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인간 의식의 근원적인 질문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방식의 자기 정의는 동일한가? 아니면 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는가? 어떤 ‘나‘, 어떤 ‘자아가 "나는 나다" 라는 명제 -철학적이건 일상적이건, 내면적이건 외표되었건-에 개념적, 실존적으로 내포되어 있을까?
그 명제는 조현병, 자폐증, 치매의 도전에 언제나 무력하게 무너지는데? 데카르트의 ‘고로 나는 존재한다ergo sum‘는 내재된 불확실성을 회피한다. 그것은 자명한 진리라기보다 자랑에 더 가깝다. - P130

힘들었던 시절의 어느 날 내가 밤늦게 키예프의 호텔 밖을 산책할 때, 한 남자가 다가와서 어설픈 이디시어로 물었다. "혹시 유대인 아닌가요?"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딱 보면 알겠는데요. 걸음걸이가요." 내가 2천 년 동안 위협 속에 살아온 사람 같았던 모양이다.
- P153

예수 살해라는 비난은 신화와 심리학에 흔한 전위inversion로, 실제로는 정반대의 것을 가리킨다고. 유대인이 미움을 받는 것은 신을 ‘죽여서‘가 아니라 신을 ‘발명‘ 하고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 P166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시간의 방향이다. 과학과 기술은 자명하게도 앞으로 움직인다. 미래는 현재보다 더 풍성하고 넓어진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또 새로운 지식, 새로운 이론이 나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렇다 할 창조성이 없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라도 역량 있는 팀이나 실험실에 참여한다면(과학은 이제 기본적으로 팀 작업이다) 그 역시 상승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인문학자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들은 철학, 문학, 음악, 미술, 과거사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비평한다. 그들은 바흐의 기념일과 모차르트 몇 주년을 기린다. 그들이 있는 곳은 자료관, 기념관, 박물관이다. - P202

인간은 신들도 고삐 풀린 살육의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 동물 희생을 종교 의식의 핵심 요소로 만들었다. 이것은 인신 공양에 비교하면 인도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한 칭찬이다. 아브라함이 "숲에서 잡아서 아들 대신 번제로 바친" 양의 죄는 무엇이었나? - P236

사랑의 장소와 종류를 규정하려는 것은 바다에 색인을 붙이려는 것과 같다. - P261

내가 정치 체제에 희망하는 것은 이런 집착에 숨 쉴 공간을 허락해주는 것이다. 공리적이지 않고 집단적 이익과 무관한 것도 숨 쉬며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을, 돈에 대한 반대까지 포함해서 어떤 반대도 존중하는 것. 나는 "일인 정당" 이라는 반항적인 사적 공간에 대한 보호를 희망한다. 그리고 재능 있는 자들에게 가능성의 문들이 활짝 열리기를, 나는 잘봐줘야 플라톤적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이길 수 있는 패가 아니다.
- P269

실존적 공허 속에 홀로 던져질 공포,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날 공포, 우연성의 공포가 너무 커서 초자연적 존재가 감시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였던 것 같다. 설령 그 세계에 악마가 가득하다 해도. - P281

이것이 핵심일 것이다.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것과 일치하는 어떤 실체, 어떤 ‘진리 함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이해력도 어떤 관용 표현도 닿을 수 없는 수준과 내용일 것이다. 우리의 모든 추상적 정의에 들어맞는 신,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모든 설명에 들어맞는 신은 숭배할 가치가 별로 없을 것이다.
- P285

우리의 질문 대상은 (생각할 수 없거나 무력한 신이 아니라) 반성하는 삶의 모든 순간이다. 우리는 질문하고 틀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존재다.
- P2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