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이게 어떻게된 걸까? 산술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면, 할때도 있는 게 아닐까?
- P7

누군가는 여전히 특권이란 말이 불편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혹은 남성으로서 이렇게 살기 힘든데 나에게 무슨 특권이 있는 거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불평등이란 말이 그러하듯, 특권 역시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 P33

고정관념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다. 이 머릿속 그림이 대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다. - P47

‘김치녀‘는 ‘사치를 부리며 남성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여성이남성에게 보여야 하는 ‘바른 행동에서 어긋나 있다는 평가를 포함한다. 즉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 말하자면 조신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여야 정상이라는 억압적인 역할 규범이 부여된 언어이다. 한남충‘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게 특정한 역할 규범을 요구하는 의미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나도 당신을 조롱할 수 있다‘는 호명 권력을 사용하는 현상으로 읽힌다.
따라서 ‘김치녀‘와 ‘한남충‘ 논쟁은 단순한 언어 사용의 문제를 넘어서는, 더욱 심층적인 사회적 성차별 구조의 지각 변동 속에서이해되어야 한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역사적으로 억압되었던 집단이 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반복된다. 기존의 억압을 유지하기 위한 비하성 언어와 기존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비하성 언어가 대립하는 것이다.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이 난제를 풀 수가 없다. - P97

늘상 반복되어온 탓에 익숙해진 데다가 워낙 비일비재하여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다. 특히 유머로 던진 말에 정색을 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와 놀이를 가장한 비하성 표현들은 그렇게 ‘가볍게 만드는 성질‘ 때문에 역설적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런 언어 공격은 인간 내면의 아주 본질적인 부분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반면,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설명할 기회의순간은 짧다. 우리는 대개 말문이 막힌 채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친다.
- P98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P99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호하는 질서가 단순히 기존의 관습이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헌법재판소의 말처럼 "헌법이념과 헌법의 가치 질서"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의 정신" 등에비추어 어떤 질서는 폐기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차별도 폐기되어야 할 질서 중 하나로, 이런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 사회 혼란을초래하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평등을 실현하기위한 정당하고 정의로운 행보로 이해되어야 한다.
- P162

따라서 법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존 롤스는 저서 『정의론』에서, "사회가 동등한 사람들 간의 협동체제로 해석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부정의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시민은 단순히 통치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다음 롤스의 말처럼 때때로 시민 불복종 sivill disobedience 이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정의를 이루는 방도가 된다.
- P165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 P171

말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배제되고 억압된사람들만이 ‘다르다‘고 지칭되고, 주류인 사람들은 중립적으로 여겨진다. ‘중립‘의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몇가지의 정해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결국 ‘다르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는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고정된 특정 집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차이가 낙인과 억압의 기제로 생성되는 것이다. - P184

밀이 우려했듯 이미 우리의 삶은 상당히 획일적인 형태로 굳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수고로움이나 불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가치와지향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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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씨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 합니다 ^ㅅ^

dollC 2021-12-16 22:13   좋아요 1 | URL
오잉?!!! 이게 머선일이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