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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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책을 읽는 동안 괴로웠다. 김훈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문맥들간의 연결고리를 찾고 단어들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와 꽃과 바람과 빛과 어둠과 땅과 공기가 하나가 되는 숲 속의 풍경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였을지.. 얼마나 뚫어져라 쳐다 봤을지... 책을 보면서 느꼈다.

그래서 나도 숲을 다녀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 다녀온 것은 아니었지만, (숲태교를 위해서였다.) 숲에 가서 김훈 작가처럼 나무와 꽃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러 갔다왔다. 숲 해설가가 해준 말도 일부는 포함되어 있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와이프와 배속의 아이들과 함께...

숲은 지친 인간에게 안식처같은 곳이다. 산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산에서는 화를 내거나 인상을 쓰면서 등산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거나 심적인 고통이 있으면, 산에 가야 한다. 숲에서는 마음의 치유가 가능하다.

눈을 감고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물소리, 새소리, 낙엽소리... 음악도 아닌 것이 듣기가 좋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입은 미소를 짓는다. 아까 숲을 걸으면서 나무들이 흔들 흔들 춤을 추듯 흥겨워 보인 이유는 어쩌면 숲에서 나는 소리들이 바람을 타고 이들에게 전해지는 모양이다. 물과 새, 낙엽, 바람이 나무들에게는 음악인 셈이다.

이 중에서도 새들은 당연 메인 보컬처럼 자신들의 하모니를 자랑한다. 여러 마리 새들이 동시 다발적이 아닌 주거니 받거니 순서를 지키며 각자 자신의 경쾌하고 깔끔한 노랫 소리를 뽐낸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짓거나 울때 `노래한다`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하지만 새들에게는 `노래한다`라는 표현을 허락한다. 그 이유는 내 생각에 (새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동물들은 자기들마다 울거나 짓는 이유가 분명하지만 새들이 우는 이유는 순전히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전히 내 생각임. 우는 이유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건 모르겠다.)

4월 초, 봄을 맞이하는 숲의 모습은 파랗다. 계곡의 물은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아마도 아직 봄준비가 덜 끝난 나무들보고 깨어나라며 재촉하는 듯하다. 그리고 빛들 역시 나무들을 따스하게 비쳐주고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 동안 부족한 수분과 빛을 온몸으로 받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싸운 나무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숲은 초록으로 가기 과정 중이기에 파랗다.

숲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 우리가 남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주인의 허락을 받듯이, 숲 역시 주인의 허락이 필요한 셈이다. 숲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무? 꽃? 지구? 동물들? 아마도 모두가 숲의 주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숲의 주인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이기에 숲에 가기 전에는 잠시나마 묵상으로 허락을 구해야 한다. 허락을 구하기만 하면 숲의 주인들을 언제 어디서든지 허락을 해줄 것이다. 그러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숲에 들어가 숲의 기운을 받고 마음을 치유받으면 된다.

우리들 역시 자연이기에 어쩌면 자연과 같이 있을 때가 가장 인간다울 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숲에 있으면 평온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인간은 원래 자연과 같이 선한 존재라 생각이 든다. 자연과 떨어져지내다 보니 악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숲에 있다보면 자연이 부르는 듯 하다. come back home...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죽는 것이 아닌... 살아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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