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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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솔로였을 때는 술 생각만 나면 연락해서 모이던 놈들이었는데 어느덧 한명씩 결혼을 하더니 이제는 남자들만의 모임이 아닌 가족모임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는 모임 멤버가 갑자기 늘었다. 두 놈의 친구녀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낳아서 자기 새끼라며 인사를 시킨다. 임신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언제 낳았는지 참! 신기하면서도 요즘 배속의 아이들 때문에 입덧을 하는 와이프를 생각하면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우리 역시 디질세라 와이프 뱃속에 있는 우리 새끼들을 인사시킨다. 쌍둥이라는 말에 모두들 축하해주는데, 내 느낌탓인가? 그 축하 속에는 걱정 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짙게 깔려있는 듯 했다. 하긴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고생들과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자면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우리가 걱정스러울 만도 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시픈 이야기는)시간이 빠르다보니 일년이란 세월이 짧다 느껴지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눈물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똑같은 시간이라 해도 각자 느끼는 시간과 세월의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애기들 얘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맥주를 홀짝 홀짝 마셔대다보니 어느 순간 취해있었다. 나는 취기 속에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마도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들을 말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이야기 하는 가운데 한번은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과연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지 참 걱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뒀어야 했는데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가 아이들을 낳는게 과연 아이들을 위한 일인건지 모르겠다. 고령화 되는 시대에 분명히 다음 세대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 것이다. 행복한 사회 속에서 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데 지금 이 나라는 그러질 못하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걱정스럽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옆집 아이가 이 장난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럼 나중에 아이가 커서 옆집 아이가 하는대로 우리도 똑같이 공부시켜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선행 학습을 조장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것만이 정답일까? 배교없는 세상, 공정한 환경 속에서는 키울 수 없는 것인가? 우리도 북유럽처럼 비교없는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너희들은 교육 걱정, 육아 걱정, 노후 걱정은 안되는가?'


대답은 이랬다. '뭐 벌써부터 그런 걱정은 하느냐?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너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만, 일단은 애기 낳고 너의 가정부터 걱정하고 와이프부터 신경써줘라. 애기 낳으면 다 똑같이 된다. 우리 애가 뭐 하나 부족한 게 있으면 해주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이더라. 애기 낳아봐라'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넌 지금 충분히 행복하냐?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게 행복해?'모두들의 대답은 'YES'였다. 반대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때 난 'NO!'라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지긋지긋하다고.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며 난 결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는게 행복하지 않다 대답했다.


재미있던 분위기 속에서 내가 먼저 시작한 심각한 이야기들로 인해 분위기는 싸해졌다. 역시 대한민국 술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논리적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래서?' 논리는 이해했지만 절대 승복할 마음이 없다.' 라고 말한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내가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고 굴복을 요구하듯 대화를 했던 걸까? (지금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랬다.) 나만 빼고 모두들 하나로 뭉친 듯 했다.


술기운에 '나 책좀 보고 있어요'라며 자랑을 조금 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단지 대한민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이고,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바뀌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난 그 때 당시 분명히 분노하고 있었다. (술이 문제인 듯...)


난 분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일부러 분노까지 해가며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분노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must'나 'have to'같이 의무감이 내포되어 있는 듯한 뉘앙스가 들어있기에 오히려 분노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감마저 든다. 하지만, 난 그때 당시 분노하고 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명절에 어른들과 정치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있다.


난 이렇게 묻고 싶다. '분노되지 않는가?' 뉴스에서는 연일 노동개혁안과 누리교육 예산안을 가지고 누가 맞고 틀린지에 가리기 위한 이분법적 회의만 계속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나 분배나 반값 등록금 등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까먹은 듯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정책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정책들이다. 우리가 내가 있는 세금으로 인해 이들이 아무 결정도 못내리며 헛똑똑이들 같이 뭐가 중요한지도 잊은채 자기들 잘났다는 식으로 싸우고들 있는데이런 걸 보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혀 분노되지 않는단 말인가?


'정치는 국민 모두의 삶에 매일 매일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며, 정치적 선택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는다.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정치적 선택을 외면하거나 적극적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청년세대가 희망을 포기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하는 것은 그저 무책임하고 개념없는 바람일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왜 분노되지 않는가?'로 바꾸고 싶다. 분노된다는 말은 무언가로 인해 되어진다는 의미, 즉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분노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분노하라고 부축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왜 분노되지 않는건지에 대해서만 묻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책은 'JTBC 뉴스룸'에 장하성 교수가 직접 나와서 소개될 정도로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꽤 많은 그래프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불평등의 원인과 이유에 대해서도 꽤 상세하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3분의 2는 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서 설명해놨을 뿐, 장하성 교수가 밝혀낸 불평등의 원인은 한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불평등한 고용구조가 한국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러한 구조를 만든 장본인은 대기업이다. 삼성과 현대와 같이 초대기업들로 인해 비정규직과 임금 불평등이 악화되었으며 성장의 성과가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가계, 즉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이 소유하는 기현상이 한국의 현실이다.' (P. 031)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 장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세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약간의 희망에 메시지를 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긍정적인 사고 자체를 부정하며 위험한 요소로까지 간주한다.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말한다.


'한국 청년세대의 미래에 희망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답은 '없다!' 지금의 한국 경제구조에서 청년들이 꿈꾸는 더 나은 인생, 더 좋은 세상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없다. 오늘보다 더 못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필자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이미 20대는 '잉여'가 되었고, 30대는 '포기'했다. 청년들이 이미 희망을 포기했는데, 희망이 없는 이유를 찾느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답을 구하려는 이유가 있다. 청년세대가 희망을 포기하면 한국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P381)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하다 보니, 자신을 짓누르는 것조차도 긍정해버리는 긍정의 화신이 되어 주어진 체제에 순종하는 '긍정의 노예'가 되버린 것이다. '긍정'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청년세대를 '긍정적 노예'로 만드는 배신을 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행복하고, 만족한 것은 '긍정적 노예의 행복'인 것이다. (...)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지금 해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락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 청년세대는 더 나은 미래가 없으니 지금 '행복을 집행하는 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청년세대의 행복과 만족은 희망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P393)


지금 청년들은 힘들고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대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져서 살고 있는 듯 하다. 이 의무감이 지속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자기 최면에 빠진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진짜 행복한 사람인 양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솔지기 이 '아픈 행복'이라는 최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맞고 틀리다로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며 행복학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고 틀리다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분명한 것은 암울한 미래를 보며 절망과 분노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행복만을 찾으며 살수도 없다. 단지, 긍정의 힘을 믿으며 자신의 우울한 현실 조차도 긍정으로 보고 그것을 행복하다 말하는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NO!'라고 대답해서 와이프가 적잖이 당황하고 화도 많이 났을 텐데,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단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금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아이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키울 것인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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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eus0616 2016-02-07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좋아요 어케 누르는거야??ㅋㅋㅋ

2016-02-07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7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시스패로우 2016-02-07 19:10   좋아요 1 | URL
그런거보면 무서워요...친일파옹호 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