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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래 걸으면... 외로움은 그리움이 된다.`
얼마전 `응답하라 1988`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기다렸던 응팔의 마지막회를 야근과 친구 모임으로 인해 본방으로 못 보고 일요일날 재방송으로 보았다. 본방사수를 못해서인지 아님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던 정팔이가 덕선이의 남편이 아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응팔의 마지막회에서는 `미생`과 같이 큰 여운과 감동의 쓰나미는 밀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하듯 마지막까지 마지막이 아닌 듯한 분위기의 마지막회였다. 아마도 응팔의 PD는 그동안 응팔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따뜻한 감동과 그리움으로 인해 눈물짓게 만들던 추억 속 장면들처럼 그리고 차가운 도시 인간들에게 사람과 사람간의 정(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처럼 쓰나미보다는 잔잔하면서도 가슴시린 겨울바다 파도와 같은 마무리를 하고 싶어했을거란 추측을 해본다.
응팔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우리 모두가 외로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을 이유로 가족 외에는 그 누구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 말하며 우리만 아는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걸어잠그지만 어쩌면 우린 우리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는건 아니었을까? 벽을 하나 두고 쌍문동의 골목길 보다도 몇배는 가까이 지내면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얼굴도 모르고 있는 우리는 옆집의 미소와 따뜻한 손길에 목말라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같이 웃어주고 아파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쌍문동의 가족같은 동네 친구들과 이웃주민들과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외로워지면 과거를 자주 회상하게 된다. 아직까지 여자친구 없이 솔로인 대학교 친구들만 봐도 술마실때마다 옛날 대학생 시절 이야기뿐이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인데도 잊혀질만하도 또 꺼내고 또 깔깔거리며 미친듯이 웃는다. 솔직히 졸업한지 몇년 안되었는데도 그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다. 돈은 없었지만 돈이 있는 지금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했던 때였다. 그만큼 졸업후에 사회에 나와 외로움을 많이 탔다는 의미인 듯 싶다.
과거를 회상하다보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있지만(많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기억들도 웃음이 되고 실수한 기억마저 추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수했고 철없던 시절이었기에 실수는 용서가 되고 추억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지금은... 실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나이가 됐기에 추억마저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외로워지는 것 같다. (하긴, 난 아직도 술만 처마시면 실수를 하기에 추억을 쌓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 속 김정운 교수는 책 제목과 안어울린다. 왜냐하면 전혀 외로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그의 모습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라고 마무리하는 그의 글처럼 사는 것도 순전히 자신이 생각한대로 산다.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렇게 놀기(?)전에는 교수였기에 금전적으로 걱정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그가 너무나 부럽다. 그리고 이렇게 자~알 살고 있으면서 책 제목처럼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김정운 교수가 짜증나기도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정운 교수가 하는 말은 도끼를 들고 직접 나한테 말하는 듯 가슴에 와닿았다. 김정운 교수 책에서 자기 계발서처럼 이런 글을 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주체적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인생의 주인이 돼라!`고 무수한 자기계발서들은 한결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구체적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주체적 삶이란 그렇게 주먹 불끈 쥐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p. 318)
어쩌면 나는 큰 착각 속에 빠져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다보면 어떻게든 길이 생기겠지 하며 실력보다는 운을 더 믿고 의지하며 비겁하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척!만 하며 연기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체적 삶이라...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 생각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