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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 정운영 선집
정운영 지음 / 생각의힘 / 2015년 9월
평점 :
`정 형, 운영 형!
세상 사람들은 생전의 정 형에게 몇 가지 특징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가장 책임 있게 쓰는 사람. 책과 독서량이 가장 많은 사람.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경제 이론가이며 평론가. 당대의 대표적인 재사이며 문장가.` (p. 24)
`하나의 명검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장장이가 쇠망치질을 수천 번씩 되풀이하는 장인정신처럼 정 형이 윤전기가 돌아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어 하나하나를 갈고 다듬은 것은 글 쓰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고 우러러야 하는 모범이고 사표였습니다.` (p. 25)
이 책은 책 소개글 대신에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로 시작된다. 고인이 된 사람이 살아 생전에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니만큼 추도사가 책 소개글로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추도사를 쓴 사람이 조정래 작가가 아닌가. 분량도 스물 네페이지나 될 정도로 길게 썼다. 솔직히 정운영 교수는 학창시절 책과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낯선 사람이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본 듯한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 정운영 교수가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책을 썼는지, 심지어 고인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정운영 교수에 대해서 유려한 글로써 소개해주는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는 이 책의 소개글로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추도사를 읽고 나면 조정래 작가가 이 추도글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나처럼 정운영 교수가 누구였는지 존재 자체도 몰랐던 사람들도 이 추도사를 읽고나면 정운영 교수가 살아생전에 어떤 일들을 했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였는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운영 교수의 이야기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커질 수 있도록 만든다. 실제로도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정운영이란 사람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심여를 기울이고 굳건한 자신만의 신념 속에서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는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의 역할을 컸다.
일단, 이 책은 어렵다. 정운영 교수의 노고가 글에 묻어있는 만큼 읽는 사람들도 상당한 집중력과 노력을 요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제적인 배경지식도 갖쳐 있어야지만 글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나같이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이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읽고 이해하는데 힘이 들수밖에 없다. 다 읽고 나서도 수박 겉햝기 정도로 이해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부패되었고 썩어있던(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정치와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글 속에는 힘이 있고 그의 신념이 묻어있기에 계속 읽고 싶을 뿐만 아니라 나도 정운영 교수처럼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정운영 교수가 쓴 각 이야기속에 묻어있던 사회의 어려움들이 죽은지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기에 정운영 교수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계속된다.
2015년 대한민국은 정말로 시끄러운 한해였다. 최근 뉴스만 보더라도 교과서 국정화부터 두산 인프라코어 명예퇴직, 안철수 탈당까지 수많은 기삿거리가 넘쳐나고 있으며 뉴스에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세월호 청문회도 진행중이다. 뉴스를 보자면 한 시간에 이 모든 걸 보도하기란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은 위태위태하며 다이너마이트에 붙은 불은 심지 끝에 도달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 예상 성장률이 3%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매년 경제 성장률을 틀리면서도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성세대은 변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정부를 다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또 쫓아갈 생각인 듯 싶다.
정운영 교수의 글 속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에 이런 기성세대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좀 변해야하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얼마전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저자인 정하성 교수가 뉴스에 나와서 말하길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 말한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 `인터제도 개선을 위해서`, `알바 고용 처우 개선을 위해서`, `사교육 시장 및 선행 학습 방지를 위해서`, `유치원 추가 개설을 위해서` 등등 기성세대들이 저지른 똥(이렇게 말씀은 안하셨지만..)들을 우리가 나라에 요구해서 치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한다.
근데 `어떻게?`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이는 나쁜만이 아닐 것 같다. 정하성 교수 역시 뾰족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프랑스 혁명 때처럼 무기를 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촛불 집회와 같이 평화적 시위를 한들 기득권들은 귀를 닫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만 계속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이 시지기에 과연 정운영 교수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줬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리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