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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전 프랑스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가족들이 모처럼 외식을 하기 위해, 혹은 커플이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기 위해, 혹은 친구들과 오랜만에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 등등 모두들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기분 좋은 마음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 식사시간은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행복을 시셈이라도 하듯 누군가 레스토랑에 들어와 낡은 가방에서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자동소총을 꺼내들었고 망설임없이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처음부터 프랑스 테러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 모모가 방아쇠를 당긴 이들의 어린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서이다. 책의 중간에 모모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죽는 연습을 해봤지만, 시멘트 바닥이 너무 차가워 병에 걸릴까봐 겁이 났다.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법적으로 어른이 되면 나는 아마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이고 무언가를 요구하겠지.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걸 요구해야지. 진짜 그럴듯한 걸로. 당분간은 그 요구 조건이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그 직업에 대해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120p)
어디서든지 버림받고 고통받는 아이들이라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총이란 무기가 쥐어진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테러밖에 없지 않을까? 성악설, 성선설 이런 이론들은 집어치우고 단지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일상을, 그리고 너희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관심받고 했을지도 모른다.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하거나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인간이란 동물로서 똑같이 여자의 배속에서 울면서 태어났지만 분명 이들이 자란 환경은 비참했을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되었다. 모모 역시 창녀의 아들로서 태어나 로사 아줌마의 손에서 커오면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에게는 행복, 가족, 포근함, 교육 이런 단어들이 낯설다.
`아무튼 나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쓴다.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행복에 관해서는 그놈이 천치짓을 하지 못하게 막을 법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는 것뿐이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자고 주사를 맞는 짓 따위는 안할 거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104p)
얼마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 애니메이션인데,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그녀의 머리속에서 사람의 모습처럼 형상화되어 하나씩 튀어나온다. 처음에 있었던 감정은 기쁨이다. 그 다음은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이렇게 5개의 감정들이 나와 한 아이의 인성을 만들고, 성장과정과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 하지만 모모에게는 위의 5가지 감정들과는 다른 감정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모모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며,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외로움과 공허감만 깊어지면서 집에 똥을 누고 도둑질을 하게 되었다. 관심받고 싶어했던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부족한것 없이 풍족하게 살아온 나오서는 이 아이의 머리속에는 어떠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없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아이였다. 모모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생을 사랑했던 아이였으며, 마지막까지 로자 아줌마를 사랑하고 지켜주고자 했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모두가 같이 살자고 했음에도 자신은 갈 곳이 있다며 끝까지 로자 아줌마 옆을 지켜주었다. 어찌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