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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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전쟁

`남자는 이성적으로, 여자는 감성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들이 감히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남자들보다 상위 계층의 종족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무조건 여자 말을 듣는게 좋습니다. 그럼 중간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결혼도 안해본) 김제동이 한 말이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지만 나 역시 결혼하고선 남자와 여자의 생각이, 아니 생각하는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결혼하고 느낀다. (내 와이프는 더 잘 느끼는 듯 싶다.) 예를 들어, 행복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다보면 나는 내가 우선 행복해야지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는 주의다. 반면에 아내는 가정이 행복해야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단다. 즉, 난 내가 우선이고 가정이 차선인 반면 와이프는 가정이 우선이다. 자기자신은 차선인 셈이다. 그리고 `잘 잤어?`, `밥 먹었어?` 라는 말을 한마디를 해도 아내는 그 안에 진심이 안담겨 있다고 한다. 의무감에 하는 말 같다나? 그런데 사실이다. 나 역시 의무감에 남편으로서 해야할 것 같으니깐... 이런 말들을 하는 것 같다. 진심을 담겨서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와이프는 섭섭하다 자주 말하는데 진짜 모르겠다. 이런 다툼의 원인이 성격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김제동이 말한 것처럼 남자, 여자 성향이 달라서 그렇다는게 정답이다.

`여자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 여자들은 다른 것을 기억하고, 그래서 기억하는 방식도 다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자들의 전쟁에는 냄새와 색깔과 소소한 일상이 함께 한다.`(p. 17/28)

이 책은 남자들의 세상인 전쟁을 여자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와의 전투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전쟁 속에 있었던 사연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런데 남자들의 전쟁 영웅담과는 엄청 다르다. 이들의 전쟁스토리에는 사랑, 원피스가 있었고 잘린 머리카락과 자신의 옷에 맞지 않았던 군복과 군화가 있었으며, 여자의 몸으로서 전쟁에 임해야 했던 이들의 눈물이 있었다. 그래서 사연들이 모두 슬프다.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글쎄......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어기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p. 83)

전쟁 영화 중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구하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5번 이상은 봤을 거다. 내 기억에 이 영화는 전체적인 배경색이 거무스름했다. 흑백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이 책의 말 그대로 전쟁 속 무기나 군복, 땅, 숲, 탱크 등 모든 전쟁의 배경도구들이 검었다. 이 여자의 말대로 피만 빼고 모든 것이 검었다. 이 여자는 전쟁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느낀 것이다. 영화처럼...

그래서 모든 사연들이 영화처럼 느껴진다. 왜? 난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깐... 전쟁영화 속 전쟁 신의 장면들과 계속해서 겹치지만 이들의 당시 상황은 더 처참했을 것이고 이들의 기억 속 전쟁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정도로 끝날 수 없는 무어라 형헌할 수 없는 지옥과 같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건 그냥 영화 속에서 떠오르는 장면들로만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이 전쟁 중에 꿈꾸던 삶들, 평범한 삶을 난 지금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항상 불행하다 느끼는 생각 자체가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가 동갑내기들보다 훨씬 나이든 것 같았고, 어떨 땐 늙은이가 된 것 같고 그랬지. 친구들은 춤추러 다니고 즐겁게들 사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 인생을 나이든 사람의 눈으로 바라봤으니까. 다른 세상의 시선으로..... 노파의 시선으로` (p. 266)

사람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고통이 너무 치열했고 고난했기에 4년만에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몸은 아직 20대였지만 정신은 온갖 경험을 다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자신도 역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노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정말이다.). 아름다움은 여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 전쟁터라는 `남자`들의 일상 속에서 전쟁터라는 `남자`들의 임무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도 들려주었다. 스스로의 본성을 변질시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대부분의 사연들의 주인공들은 차출이 아닌 스스로 지원해서 전선으로 간 여자들이 많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남편, 친구들이 전장으로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자이고 싶었지만 전쟁 동안만큼은 군인이었다. 남자들보다도 더 군인다웠다. 모두들 군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 여자이길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스스로 군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여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머리도 짧게 깍고 치마도 입지 못하고 구두/하이힐 심지어 속옷도 남자들 것으로 입었으니 여자로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텐데도 아름다움은 포기하지 못하겠단다. 여자로서 신체리듬이 망가지는데도 불구하고...

`반년이 지나자...... 우리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었어...... 매달 하는 그것도 끊기고...... 여자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다보니 생체리듬이 망가진 거야...... 이해가 돼?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 여자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더라고......`(p. 356)

이 책에는 점 6개(......) 가 모든 사연 속에 수도 없이 찍혀있다. 분명 이 점 6개의 의미는 눈물이다. 책 속에서는 그냥 점 6개일 뿐이지만 앞 뒤 글과의 관계 속에서 인터뷰 당시의 눈물과 정적과 울부짖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충분히 용감했다. 나라에서 충분한 대접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했으며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전쟁 후에도 마지막까지 아픈 기억들을 안은채 훌륭하게 살아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에도 일제통치와 6/25 전쟁에 의해 이들과 같이 가슴 아픈 사연들이 너무나도 많은텐데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만 품은채 살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국가에서 먼저 이들을 찾아서 관심을 가져주고 세상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데 점점 역사 속에 묻으려고만 하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심지어 왜곡까지 하려고 하니 뭐라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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