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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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샀을 때 내 아내가 나에게 한말이 있다. `딱! 너에게 맞는 책이네!` 무슨 말인가 했다. 물어보니 너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 성향의 사람으로서 어울린다는 말이었다. 결혼하고 툭하면 `넌 너밖에 몰라`라며 섭섭하다는 말을 자주해왔던 아내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안쓰고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이기주의적인 것과 개인주의적인 것이 똑같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기적인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주의다. 반면에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안주는 범위에 한해서 나혼자 홀로 살아가겠다라는 주의다. (같은 말인가?) 사회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한다는 사상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누라 뭐라하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겠다는 거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난 이기주의자도 아니고 개인주의자도 아니다. 물론 우리 착한 아내보다는 내 위주로의 삶을 즐기는 편이지만, 주변 사람이 힘들거나 도와달라고 할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다. 얼마전에는 엄마가 텃밭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회사 동료들의 눈치속에서도 과감하게 칼퇴를 해서 도와드린 나다. 더불어 텃밭에서 나온 고구마를 회사 동료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이 내 이익(선)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그러하지 않은가. 홉스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이 된다고 지각하는 바의 추구만이 유일한 동기가 되어 행동한다`라고 말했다.

개인주의자인가를 따지자면, 회식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이므로 개인주의자도 아닌 듯 싶다. 외향적인 성격인지, 내향적인 성격인지로 구분 지을수는 없겠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의 인간혐오 편을 보자면 문유석 판사가 회식도 싫어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주의자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개인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자신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보다는 개인이 우선시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서 개인주의 성향도 가지고 있는건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이 재미있다. 문유석 판사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푸념하는 부분이다.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식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분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돌 정 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p. 9)

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렇게나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였던가. 자국에서 한국말을 좀 배우고 읽을 줄 안다고 하는 외국인이 이 글을 봤다면 분명 그 자리에서 중국말이나 일본말로 노선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뚝 떨어졌고 세대간의 갈등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렸으며 불평등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돈으로 메꿔야 하는 구멍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글의 저자 문유석 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개인주의자로서 남의 일에 큰 관심 없이 누가 뭐라하던 내 행복을 누리며 살다가고 싶다 말했던 사람이 살아가다보니 가슴을 울리는 순간들이 생기고, 혼자만 행복하게 살수는 없다 느꼈다 말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분명히 내 일이 아닌데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책없이 줄줄 흐르는 순간들이 있다. (...)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편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것인지. 우리 하나하나는 얼마나 무력한지.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없어도 타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옆에서 나 혼자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럽고 마음 무거운 일인지.` (p. 11~12)

대한민국 사회는 집단주의 사회로서 행복해질수 없는 구조라 말한다. 양극화, 빈부격차, 불평등, 취업난, 저성장 등등 모두가 집단주의 사상에서 비롯하여 만들어졌으며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다.

대학교 졸업하고도 아직까지 친목을 다지는 8명의 무리가 있다. 졸업한지가 벌써 6년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달에 한두번씩은 꼭 모임을 가진다. 너무 자주 모여서 그런지 (난 결혼했지만) 8명의 6명은 아직 솔로다. 그래도 단합이 썩 잘되는 편이고 서로를 위해주면 잘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 무리안에서도 서로 비교하고 경쟁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배우자, 집, 직장, 연봉 차이 등 옆의 친구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공포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인가 모두가 모이는 자리가 불편할 때가 있다.

비교, 경쟁심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행복의 순위는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친구들끼리마저도 연봉, 직장, 집 등의 번잡스러운 경쟁도구들로 서열을 정하려 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저 모두가 건강하고 별 탈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단지, 모두가 결혼을 빨리해서 부부모임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은게 참 안타깝다.

`팔리든 말든 내 나름대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는 소소한 일상 자체가 내게 즐거움을 준다.(p. 61)

`내 나름대로`
나에게 노래 가삿말처럼 (`말하는대로`가 생각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가와 한참동안 멍때리는 시간을 가지도록 만든 말이다.

(돈, 성적 등)에 상관없이 내 나름대로.... / 누가 뭐라하든 내 나름대로.... / 소박하게 내 나름대로....

자기 나름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 눈치, 말들에 신경쓰면서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에 `너 나름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참 필요하지 않나 싶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혼자서 생각해본건데 `나름대로`의 `나름`이란 단어가 너무 이뻐보였다. 딸 낳으면 `나름`이라 지을까?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나름` 너무 이쁘다며 찬성해었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이나름, 나름대로 살아라!` 최고로 이쁘고 의미있는 이름 같다.

이 책의 후반부는 문유선 판사가 생각해온 우리나라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해준다. 전반부가 개인위주로의 삶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후반부는 대한민국의 아픈 기억들을 더듬으며 아픈 사람들 이야기를 해준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아픈 구석구석을 찔러면서 문제점들을 밝혀낸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다. 나서는 걸 죄악시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가 뭘 잘했을 때의 칭찬보다 그가 뭐 한가지 잘못했을 때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달려들어 돌팔매질하는 광기가 훨씬 뜨겁다.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책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 (...) 세월호 사고 초기에 선장이나 해결 현장 지휘자가 모든 승객에게 당장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 경우에도 일부의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다. 차가운 수온, 거친 해류, 여기저기 부딪치는 사고..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최선의 결단을 했다면 격려해주었을 것이가 확신할 수 있을까? 너무 성급한 조치였다. 구조선과 더 유기적으로 협조했어야 한다. 구명정을 차례로 내렸어야 한다 같은 비난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결과 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 글을 보고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느끼게끔 해주었다랄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간지러운 구석을 긁어주긴 하지만 다섯 손가락으로 팍팍 긁어서 아프도록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이 아닌 샤프같이 뾰족한 물건으로 콕콕 찔러주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느낌이 있다. 벅벅 긁을 때의 화끈하게 시원한 느낌도 좋지만 때론 가려운 부분을 콕콕 찔러줄 때 시원함과 함께 쾌감이 더할 때도 있듯 이 책은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콕콕 찔러줌으로써 간지러움을 해소시켜 준다. 극도로 절제하에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말해주듯이....

최근에 천만 관개를 넘은 배태랑을 비롯해서 소수의견, 카트와 같이 우리 사회에 대해 아픈 이야기를 해주고픈 영화들이 자주 나온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불편하고 화가난다. 영화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감독의 목적이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가 시대를 어떻게 바꾸겠냐만은 사람들이 점점 영화를 통해 이 시대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실체를 알아가고는 있다. 많은 문제가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많아지고 있으며,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과 같이 아픈 역사를 통해 시민들 역시 민주화 사회다운 국민의식을 점점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아직까지는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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