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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스토너_존 윌리엄스
소설이 이상하다 느낄정도로 일상적이다. 단지 스토너라는 교수의 일대기를 써놓았을 뿐이다. 큰 사건, 사고라 여겨질만한 내용없이 소소한 삶을 담았으며 그의 인생 스토리가 천천히 물흐르듯 진행될 뿐이다. 하지만 빠져든다. 그리고 재미있다. 저자는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를 빗대어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이 별거 없는 그저 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모두가 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듯이 단순하지만 찬란한 이야기로 깊이 있는 소설을 썼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책의 주인공 스토너에 대한 첫 이야기다. 스토너는 (그가 남긴 일들에 비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높이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미주리 대학에서만 46년간 학생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고 열정을 다해 교수로서 본분을 다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를 뚜렷히 기억해주는 이 없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불쌍하고도 고독했으며 외로웠던 인물이었다.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의 부인 이디스한테도 끌려다니고 무시당했다. 심지어 집에서도 이디스에게 내쫓기다시피 나와 연구소로 피난온 처지가 되었다. 그의 딸 그레이스마저 이디스가 그로부터 일부로 떨어뜨려놓고자 했으며 잘못된 방향으로 딸을 교육시키는대도 스토너는 그저 참고 지켜볼뿐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본업이었던 교수로서의 일만 열정적으로 할 뿐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빵점이었다.
읽는내내 그가 너무 한심해보였으며, 미치도록 답답했다. 참는 것만이 정답인 것인가. 자신은 그렇다쳐도 그레이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디스로부터 교육을 받고 웃음이 사라지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지켜만보는 그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평소 침착하고 신중했던 스토너가 왜 하필 이디스를 자신의 부인으로 선택했을까. 단지 외모때문에? 그리고 아디스는 왜 이토록 스토너를 괴롭히는 것일까? 스토너의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의문으로 남았다. 스토너가 실제인물이었다면 그에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그는 웃고만 있을 것 같지만....
`그의 주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질질 끌리듯이 흘러갔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했지만, 괴상한 강의 시간표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만 집에 있을 수 있었으므로, 이디스의 빡빡한 일일 계획표와는 맞지 않았다. (...) 집에 머무르는 동안 그레이스를 자주 볼 수도 없었다. 이디스가 딸의 일정을 세심하게 짜놓았기 때문이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 대게 그레이스는 잠들어 있었다. 그가 그레이스를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짧은 아침식사 시간뿐이었다.(...) 그는 아이의 몸이 점점 길쭉하게 자라고, 팔다리가 서투르지만 우아하게 변하고, 차분한 눈과 주의 깊은 얼굴에서 지성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때로는 딸과의 사이에 아직 친밀함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감히 그 친밀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스토너의 이런 한심하면서 답답한 모습이 이시대의 흔한 가정의 가장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V프로 동상이몽을 보면 부모와 자식간에 싸움, 불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들과 같이 스토너가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 무기력감이 이 시대의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리만치 참고,또 참는 스토너의 모습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홀로 싸우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닮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스토너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 안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목적만 보며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말한다.
스토너는 서두에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맡은 교사로서의 업무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오로지 일로서만 행복을 느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몇 년간은 교수로서 그에게 최고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 스토너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상해보이는 학생들은 열렬하고 진지했으며, 시시한 것들을 경멸했다. 유행이나 관습에 무지한 그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스토너가 예전에 꿈꾸던 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에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스토너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결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녹초가 될 때까지 즐겁게 온몸을 바쳐 일하면서 이 시절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나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실망이나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지금 이 순간에 쏟으면서, 이제는 학자로서 자신이 해온 일을 통해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의 인생에 대해 실패라거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 생각한다.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다. 그냥 그의 삶이었으며 그가 선택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느낀 감정들이다. 그의 인생에 후회는 없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의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이 질문을 계속 던진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가. 기대한 것은 없다. 단지 행복만을 바랬을 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인생에 대해 슬프고 불행했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그만이 판단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은 삶을 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으므로....
나중에 자식도 낳아보고 더 깊고 힘든 고난들을 겪고 난 후에 다시한번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때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