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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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_버트런드 러셀

사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려고 했던 것 아니었지만 우연찮게 발견하게 되었다. 책 제목만 보고 `행복을 정복한다고?` 하며 책장에서 책을 꺼내 표지를 본 순간 두번 놀라게 되었는데 이유는 한번은 얼마 전에 버트런드 러셀 교수의 `인기없는 에세이`를 읽었던 터라 저자의 이름을 본 순간 놀랬고, 또 한번은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란 책에서 소개되었던 책이라서 놀랬다. 나는 버트런드 교수가 이 책을 쓴지도, 그리고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 이 책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는 것, 모두가 우연의 일치고 나보고 꼭 읽어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결국 계산을 하게 되었다.

버드런트 러셀 교수는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기에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복이라는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에레베스트와 같이 넘기 힘든 산들을 넘었을 때 어울리는 단어다. 즉, 러셀 교수는 행복도 이들과 같이 넘기 힘든 것들이라 봤을 것이 틀림없다. 이 이유가 아니면 구지 행복과 정복이란 단어를 매칭시켰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행복을 정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행복을 이론으로 배우는 느낌이 강하다. 권태, 걱정,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대 모든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모두가 맞다고는 볼 수 없을 듯 싶다. 인간의 감정이란 해석할 수 없는 심오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이유로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경험해도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다. 행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인데 러셀 교수는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 듯 싶다.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하지만 분명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란 있을 수도 있다. 러셀은 이 보편적인 감정을 설명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래서 행복이 내 곁을 왜 떠났는지, 그리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러셀은 자신있게 말했다. `인간은 충분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이말을 깊이 새기며 책을 읽었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던 화가는 사람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게 되면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일정한 시점까지는 돈이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정한 시점을 넘어선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 성공 하는 것들로 인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최근에 읽은 행복과 관련된 책들을 보자면 모두 NO라고 말한다. 러셀 역시 일정한 시점까지는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 줄수는 있으나 증진시킬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것들을 가지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왜 벗어날수가 없는 것일까? 누구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혹자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나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모두가 맞는 말일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러셀은 `바로 건전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인생의 균형 잡힌 이상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며 행복한 인생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만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행복하는데 있어 위험할 수 있다 경고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하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그런 확신을 방치하게 되면, 당신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음모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런 믿음은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당신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인정하는것이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그 고통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고통의 끝을 넘어서면 다시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 책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지 말라` 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은 위험하며 오히려 어느정도의 열등감이 나을 수 있다 말한다. 러셀이나 아들러가 말한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세가 행복에 있어 중요하다. 그냥 흐르는대로 남들이 나를 욕하면 욕하는 대로 나만 떳떳하면 된다. 자신감,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실패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좌절감도 클 것이며,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길 것이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 실수는 누구나 하는법. `한번 실수한 실수는 두번 다시 하지 말라`라는 말 역시 위험할 것이다. 인간이기에 망각의 동물이기에 몇번이고 똑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사는대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모든 관심, 행동은 따뜻하게 해야지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한다. 따뜻함을 가지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러셀의 말에 의하면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하며,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행복을 가져 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말 자체에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즉, 인간은 봄, 가을과 같이 따뜻함을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으며, 여름, 겨울과 같은 열정, 냉정은 행복함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계절이 그러하듯 온 계절이 봄, 가을같을 수는 없는 법, 열정과 냉정과 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야지 따뜻함을 표현할 수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열정 역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난친 열정은 제외하고 평범한 열정에 한에서다.

`어떤 열정이 불행의 원천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코 도를 넘어서는 안 될 몇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유지하는 것, 생계유지에 충분한 소득을 유지하는 것, 처자식에 대한 의무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지 욕망만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은 대개 심리적으로 깊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는 사람이다.

사랑 역시 행복해질 수 있는 도구이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독이될 수 있다. 러셀이 이야기 하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바람직한 사랑은 서로 생명력을 주고 받는 사랑이다. 두 사람은 애쓰지 않고도 기쁨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둘 다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 대해서도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해옵ㄱ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랑. 자주 아내로부터 듣는 말이다. 오직 나만의 충족을 위해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러셀이 말한 것처럼. 내가 사랑을 줄때나 받을 때나 서로를 위한 마음이 담겨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배푸는 사랑은 양측 모두를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 나같이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더더욱... 내가 준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된 내용을 마무리로 하고자 한다.

법정스님은 `삶이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므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고 권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튼다. 우리가 이 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따면 그 안에 행복은 깃들어 있다. 무엇에 쫓기든 살아서는 안된다. 영혼이 미처 따라올 수 없도록 다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잠재력을 묵혀 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천천히 걷듯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왠지 내 행복의 모토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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