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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리얼리스트 X ㅣ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스콧 슈만의 3번째 '사토리얼리스트' 책이자 시리즈의 마무리 격인 <사토리얼리스트 X>가 출간되었다. 스콧 슈만이라는 이름은 패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만한 이름- 굉장히 유명한 포토그래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 사진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사토리얼리스트 프로젝트로 인해 '선입견'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길거리의 멋쟁이들을 찍은 사진이 미술관에 영구보존되고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헤맬 때, 스콧 슈만은 길거리를 헤맸다.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일을 하러 가는 잠깐 사이의 거리에서 멋쟁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다. 거리에 사람들은 많고, 눈을 돌려 열심히 찾다보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멋쟁이들도 꽤 많다. 그 멋쟁이들과 배경을 어떻게 조화롭게 찍을 것인가,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어떤 이미지를 끌어내고 싶은가. 멋쟁이를 발견하고 잠깐동안 생각하고 찍어내는 사진이라기엔, 그에게는 굉장히 좋은 사진들이 많이 있다. 아마도 순발력과 센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게 2005년부터 지금까지 10년간, 하나씩 쌓아온 모든 흔적들이 큰 물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세계의 디자인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한 것이 그가 길거리의 멋쟁이들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500쪽이 넘는 페이지의 수 많은 사람들은, 옷을 입고 저마다의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어떤 이는 스콧 슈만이 아끼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 선 모든 사람들은 나이도, 인종도, 스타일도 달라 그들이 내뿜는 기운들은 모두 다르게 다가오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를 지닌 이의 마음이 어느정도 투영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각각인 사람들의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없을 테니까.
거리에서 사진 찍는 일이 지닌 좋은 점 중 하나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뭔가 건질 수 있다는 희망이 별로 없을 때조차 종종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제껏 찍은 것 중 최고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사진가들을 헤매게 하는 동력이 된다. (바라나시, 인도. 264쪽)
이런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서, 모든 관심을 이곳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멋쟁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패션쇼가 열리는 파리, 뉴욕, 밀라노 등지이다. 아무래도 유명한 포토그래퍼로서 자주 초청을 받을텐데, 그가 패션쇼를 보면서 느끼는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가 여성 패션쇼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들 중 하나의 생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뉴욕이나 파리, 밀라노의 패션쇼에서 보이는 옷들은 항상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지나치게 앞선 패션일 것이다. 그렇다고 패션쇼의 제안들이 우리의 일상 스타일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한 가지만 기억하자. 최고의 국제적인 디자이너들은 색을 배합하고 패턴을 섞고 질감을 레이어링하고 희귀한 문화적 레퍼런스(예를 들어 에스키모 소방관)를 녹여내는 작업에 매우 능한 사람들이다. (런웨이 도전. 96쪽)
여자인 나도 참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패션쇼를 시간을 들여 보는 것은 그 디자이너들에게서 센스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는 부분이 말이다. 옷을 입을 때 색깔보다는 패턴 레이어링에 애를 먹는데, 그의 조언에 따라 패턴 레이어링 부분에 좀 더 자신있게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또한 패션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쾌하게 못 밖기도 한다. 그는 패션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삶과 음악과 음식과 예술과 심지어 패션을 즐기지 못하란 법은 없다. (세계의 거리. 104쪽)
책 속에 들어 있는 글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그의 생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전 작품들은 내가 소장하지는 않고 서점에서 들춰보기만 했기 때문에 자세히 그의 글을 읽어볼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마주하니 생각보다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폰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카메라가 붓이라면 아이폰은 연필 같다. 블로그에 올리기에 생뚱맞은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려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아이폰 사진 때문에 나는 어떤 피사체에도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덕분에 더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었다. (연필과 붓. 84쪽)
책이 나온 뒤에도 여전히 길 위의 사람들을 담는 그의 블로그는 바쁘다.
(http://www.thesartorialist.com/)
지금이 한창 2016년을 준비하는 패션쇼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듯 하다. 그리고 아마 그의 카메라는 더 바빠질 것이다. 패션쇼를 하는 도시에는 멋쟁이들이 몰려들고, 그들을 담는 그의 카메라는 조금 더 신선하고 좋은 조화를 찾아서 쉼없이 셔터를 누를 테니 말이다. 매번 올라오는 그의 사진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사토리얼리스트> 시리즈는 마무리 되지만, 또 다른 시리즈로 돌아올 그를 기다려본다. (책으로 내지 않기엔 출판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