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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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사람을 살린다'라는 명제에 있어서는 의사와 동급이지만, 의사들은 경험하지 못할 '위험'을 안고 있다.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군인'들과 동급인 것 같은데, 또 전투를 하지 않으니 특수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볼 때 소방관들은 '무조건 구하는' 사람들이다. 굉장히 맹목적인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지든 험지든, 그곳이 사지든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사례들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 소방관을 영웅에 비유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영웅이란 칭호를 받는 직업 특수성 때문에 소방관은 TV나 영화에서 참 많이 쓰이는 직업군이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20살의 '김주원'을 구하고 대신 순직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를 대중적으로 알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등장한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의 모습이 아마 우리가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소방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밖에 <시크릿 가든> 말고도 <엔젤 아이즈>와 <피노키오> 등의 드라마에도, 또 영화 <반창꼬>에도 소방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최근에 방송한 것들로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아마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욱 더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나올 테지.) 소방관 이야기가 인기있는 것은 극적인 이야기가 많아서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그 와중에 안타깝게 놓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를 구하러 갔다 살아오지 못한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의 축을 만들기도 쉬워서겠지.

 


내가 소방관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시크릿 가든>에서다. 그 작품에서 나레이션으로 언급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는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연기자의 목소리와 더불어 상황 때문에 눈물도 흘리게 만들었었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꺠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치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14-15쪽)

이 책의 제목이 <어느 소방관의 기도>인 것도 이 시에서 차용했다 저자는 밝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희망 속 생명을 향한 간절한 바람은 시와 다를바 없기 때문이라고.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고,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하는 그들의 마음 속이 말이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만 담겨있지는 않기를, 작은 바람을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



모든 소방관들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뒤로하고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진짜 소방관인 저자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직접 쓴 책이다. 사실 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1인칭 화자의 시선을 따라 마음 속 감정까지 전부 드러내는 글이다. 글을 꽤 잘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아픔이 보였다. 그들의 마음은 사람을 구하는 자신들의 직업과는 다르게 늘 아프기만 하다. 마음 속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의 자책감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지켜낼 수 있었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이 첫번째. 현장에서 스러져간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두 번째.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해 봐도 그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다. 소방관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익숙해졌다고 믿던 그 어느 날에라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9쪽)


그렇다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 속 이야기들이 전부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위독한 상황의 생명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생명줄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많이. 소방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더 부여잡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남편이었을 사람들의 생명줄을 말이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결국 놓쳐버린 생명들에 대한 마음들을 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어디선가 발생한 응급, 위급을 위해 또다시 출동한다. 죽음을 마주했음에도 또다른 이를 위해 출동해야만 하는, 계속 다치기만 하는 소방관의 마음은 그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심산하다.

우리는 늘 어려움 속에서 막아낼 수 없었던 비극에 아파해야만 한다 해도, 동료의 순직 소식에 절망해야 한다 해도 단 하루도 주어진 임무를 등한시 할 수 없다.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위험에 처한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있다. (172쪽)


이렇게나 노력하는 소방관인데, 그들의 처우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소방관이 자비로 장갑을 구입한다는 소식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에 따라 지원이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는 지방직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바꿔달라는 시위에 대한 소식도 그렇고, <심장이 뛴다>라는 예능에도 나왔던 소방관 구급차를 공짜 택시 쯤으로 여기는 주취자들과 자신들의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민원에 욕설까지 퍼붓는 시민들까지-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는 '영웅'이라 칭하면서 어찌 그들에 대한 처우는 이렇게나 형편없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땅에 뿌려진 비명에 가야 했던 젊은 소방관들의 뜨거운 피를 세상은 너무도 빨리 잊어버리는 (124쪽) 여론에도, 많은 이들이 비극적인 사고를 자신과는 무관하게 바라보기만 할 때도 (129쪽) 현장으로 달려가 여린 하나의 목숨이라도 구해내려 애쓰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숭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소방관. 많은 이들이 우리를 영웅이라 부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동정을 받고 있는 직업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를 영웅이라 불러주지 않아도 좋다. 동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사명,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고 지켜내는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179쪽)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부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부제에 반기를 들고 싶다. 그대들은 결코 작은 영웅들이 아니라 우리 곁의 큰 영웅들이라고. 그대들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란 말인가. 그저 그들이 안전하게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마련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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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위대한 우리 과학기술의 비밀 - 개마무사가 달리고 신기전으로 쏘다
이명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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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단연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부터 시작해 요즘에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들까지. 세계 순위에서 빠지지를 않는다. 이과가 어려워서 아무래도 지원자가 좀 적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실로 엄청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고보니,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현대 기술로도 쉬이 복원할 수 없도록 정교한 작품들 또한 존재한다.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계산적으로 어려운 것은 기계에도 의존하며 그때를 따라해 보려 하지만 영 쉽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계산기조차 없던 시대였다. 우연이라고 얻어걸린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우연으로 만들어낸 것들이라기엔 너무도 딱 떨어질만큼 잘 계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과학기술들 때문이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모든 정교한 작품들 속에 알게 모르게 '과학기술'이 숨어있다고. 대한민국을 거쳐간 수많은 나라들(고조선부터 조선까지)의 삶 속에는 알게 모르게 과학기술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선조들의 과학기술이 뛰어나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첨성대도 그렇고 석굴암도 그렇고, 각종 석탑들도 그렇고, 조선시대의 여러 과학기술들도 그렇고. 뛰어난 선조들을 가졌으니 우리도 더 뛰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 노벨 화학상이나 물리상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언젠간 세상 최고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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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키스 -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또 사랑받는 법도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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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는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전해져온다. '이 사람들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구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소울키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여러 감정들 중에 '기쁨'만 모아놓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쁨' 중에서도 '스킵십', 그 중에서도 '키스' 혹은 '뽀뽀'의 순간. 키스가 너무 진해서 야하다거나 그래서 눈살이 찌푸려진다거나 하는 사진들은 속해 있지 않다. 책 속에 담긴 스킨십은 보기 딱 좋은 정도, 보면 기분 좋은 정도. 그래서 곁에 누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그(혹은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게 만들고, 현재는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면 지나간 인연들과의 추억 속에서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기교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잘 쓴 글이 실려 있는 책도 아닌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사진을 찍는 순간 그들이 느낀 감정을 나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예술가들에게 키스는 언제나 훌륭한 소재가 되어 주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연인들이기에 더 소중하다. 어쩌면 이 책을 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5쪽. 프롤로그)

작가의 글이 '유일하게' 실려 있는 프롤로그 속에서 발췌해 봤다. 평범하기에 소중하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아주 거창한 것들이 아닌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 무언가를 하지 않고 곁에 앉아 멍하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이 온전하게 자리를 잡은 느낌. 그건 굉장히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아니던가. 그렇게 편안함을 가득 안은 사람들의 모습을 작가는 카메라로 담아냈다. 왜인지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있을 작가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건, 책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비단 젊은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듯이, 책 속에는 아이들의 순수한 스킨십과 하얀 머리를 한 노년의 사랑도 나타난다. 모두 다 보고 있노라면 따뜻해서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사진들이다.


사진들만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면 <소울키스>는 책의 분류가 '예술' 분야여야 할 것이다. (사진집이니까)하 지만 이 책은 엄연히 '에세이' 분야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스러운 사진들과 함께 '사랑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유명한 영화 속 대사, 드라마의 대사, 어느 가수의 노래 속 가사, 시인의 시 한 구절, 책 속의 문장 한 줄, 유명인이 했던 말들이 가득 실려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상대란 건, 얼마 없잖아. ㅡ드라마 <호타루의 빛>.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ㅡ안도현 <사랑>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하나, 사랑이다. ㅡ레프 톨스토이 (작가. 사상가)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 난 사랑을 영영 몰랐을 거야.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또 사랑받는 법도. ㅡ영화 <이프 온리>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에 진저리 쳤으면서도 또 사랑이란 게 이렇게나 따뜻한거지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걸까. 내일은 올 겨울 가장 추운 한파가 몰려온다고 한다. 추우니까 더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하늘에서 남자가 뚝 떨어질 리 없으니 뜨끈한 방바닥과 부둥켜 안고 늘어져야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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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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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열강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던 시절을 지나 아프리카는 식민지화 되었다. '노예'라는 개념으로 흑인들을 마구 잡아가는 백인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날들 중 하나인 1904년부터 1905년까지의 이야기. 비정상이 정상인 양 자리잡고 있는 그 한 가운데에 여주인공 '한나'가 있다.

 

'우월하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판별이 가능한 걸까? 서구열강이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화 할 때 내밀었던 기준은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월하다는 기준은 한없이 상대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기준을 어느곳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뚱뚱한 사람과 삐쩍 마른 사람을 두고 '어느 사람이 더 우월한가?'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을 고를 것이다. 뚱뚱한 사람을 고른다고, 혹은 삐쩍 마른 사람을 고른다고 그게 잘못된 선택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100여년 전의 서구열강들은 그렇게 애매모호한 기준을 들이밀고는 그 곳에 사는 이들에게 총칼로 목숨을 위협하며 영토를 빼앗았다.

 

여주인공 한나는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집에서는 다 큰 자식의 입이라도 덜어야겠다며 내쫓듯 외삼촌네로 보내버렸고, 찾아간 외삼촌 집은 이사를 가 버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에 올라타 요리사로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거기서 남편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남편이 열사병으로 죽은 후, 한나는 계속 배에 타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장례를 치르려 잠시 들른 아프리카에 아무도 모르게 남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책의 중심은 '불안한 낙원'에 있던 한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낙원'이라는 단어는 철저히 백인의 입장에서 기록된 단어이다. 자신들이 도착해 지배하고 있는 이 땅의 원주민들, 즉 흑인들은 자신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인종이기 때문에 굉장히 낯설다. 그들이 어떤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신발도 신고 다니지 않는 '미개한' 인종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들은 많이 불안해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열사병에 걸리고, 독사에 물리면서까지 아프리카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나라로 싣고 돌아가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광물 자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돈이 되는 것들이 가득한 낙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에게는 불안한 곳이다.

 

한나는 그들, 흑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보려 노력을 했다. '불완전한 존재'라 칭해지는 흑인들이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하나의 인격체였음을 자신을 치료해주던 여인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들은 한나가 자신들에게 다가올 수록 다른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그녀를 멀리했으므로, 그녀는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결국은 포기함에 이르렀다. 원체 가난한 곳에서 살았던 주인공 한나는, 왜인지 모르게 흑인들에게서 자신을 보는 듯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난한 백인들이었다면 한나가 내민 손을 잡았을 테다. 하지만 상대는 흑인, 백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존재. 그들은 자신들의 입을 닫음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 한나가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벽이 있었던 것은 그 탓이었다.

 

이 책은 자신들을 위해 애를 쓰는 한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흑인들을 질책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 잔혹한 행동들에 대한 죄를 묻기 위한 책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느 공간에서 일어났던 혹은 일어났음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풀어냈을 뿐이다. 사람위에 사람이 설 수 있던 것이 너무도 당연한 시기의 기록으로써 말이다. 작가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전할 뿐이다. 비록 책 속의 사실이란 것은 한 스푼 남짓한 작은 양일 지라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는 현재에도 인종차별은 일어난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러니 그때라면 오죽했을까. 사람 위에 사람이 설 수 있는 시기는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은 불안한 낙원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지금은 낙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는 절대로 아니니 그저 불안하기만 한 것일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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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 노희경이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언어
노희경 지음, 배정애 사진.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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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중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그 속에 나오는 대사들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안 본 사람은 있을 지언정, 보고 나서 중간에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 하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인간 군상들은 생각보다 현실과 많이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세상에 떠도는 '문장'들 중에 생각보다 많은 문장들이 그녀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옮겨지는 대사들은 감정을 싣고 있어 훨씬 이해하기 쉽지만, 활자로 '적혀있는 문장'들은 그와는 다른 맛이 있다.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으로 통해 다가오는 대사들은 그 상황 내에서의 특수성을 띠고 있지만, 활자화 된 문장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 속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그녀의 글에는 오래 곱씹을수록 좋기도 하고, 보자마자 좋기도 한 것이 있으며 특히 '엄마'에 대한 그녀의 시선들은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드라마들은 그래서 대본집으로 출간되곤 하는가보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대본집은 작품이 끝날 때마다 출간되어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대사집이 출간됐다. 그동안의 드라마들 중 노희경 작가가 뽑은 200개의 대사들을 추려 만든 대사집. 하지만 노희경은 서문에서 '확신컨대 이 책은 마지막 대사집이 될 거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번째' 대사집인데도 불구 '마지막' 대사집이 될거라니. 그런데 그 이전의 그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문장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대사를 잘 쓰려 애쓰던 서른을 지나고, 말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십의 야망을 지나, 이제 오십의 나는 말 없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배우의 손길이 그저 내 어머니고, 배우의 뒷모습이 그저 내 아버지고, 배우의 거친 반항이 그저 시대의 청춘들의 고단을 인정해주는. 그래서, 결국 내 드라마에 대사가 다 없어진다 해도 후회는 없겠다. (5쪽)

그러니까 대사집이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작가가 꿈꾸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 없는 드라마'라는 의도적인 무성드라마. 출연하는 배우들의 모든 것이 대사가 되는 그런 드라마. 상상해보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대사들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글을 쓴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꿈'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며.

 

 

 

책에는 작가의 싸인이 인쇄되어 있다. 거기에 초판 한정 5000부에만 넘버링이 되어 있으므로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굉장히 귀한 것을 손에 넣은 듯한 느낌. 이래서 사람들이 한정판 한정판 하는가보다.


첫장을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200개의 대사들이 예쁜 사진과 캘리그라피와 함께 등장한다. 총 5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랑에 관한 주제 2개와 인생에 관한 주제 2개, 그리고 엄마에 관한 주제 1개가 그 주제들이다. 대사들이야 '안 봐도 비디오'일 만큼 좋은 것들 투성이다. 넘길수록 봤던 드라마에서의 대사라면 그 장면을 생각하게 만들고, 모르는 드라마의 대사라면 좀 더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그녀의 드라마들은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방영되었기 때문에 못 챙겨본 게 꽤 되는데, 그런 드라마의 대사들은 신선하다고 해야할까. 내게는 좀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

 

 

 

 

 

사랑은 계절같은 거야.

지나가면 다시 안 올것처럼 보여도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거짓말 (245쪽)


이건 이 책의 제목이 담겨 있는 페이지를 포착해 찍은 것이다. 사랑이 끝나면 다음 사랑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랑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확 와닿는 이야기. 여기서 따온 제목은 이 책과 참 잘 어울린다.

 

 

 

저는 그동안 남에게는 괜찮냐, 안부도 묻고 잘자란 굿나잇 인살 수없이 했지만

정작 저 자신에겐 단 한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오늘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너 정말 괜찮으냐, 안부를 물어주고 따뜻한 굿나잇 인살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밤도 굿나잇, 장재열.

#괜찮아 사랑이야 (227쪽)


​조인성의 장재열은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을 끊임없이 위협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멋졌다. 그가 그동안의 삶 동안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에 대한 성찰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장면은, 담담한데도 불구 찡한 울림이 있었던 장면이었다. 현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새 없이 앞으로 걸어나가기 바쁜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굿나잇 인사를 건네는 등장인물들을 따라 입밖으로 굿나잇이라는 말을 따라해 본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 생길 땐

내가 크려나보다 내가 아직 작아서 크려고 이렇게 아픈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꽃보다 아름다워 (191쪽)


​어렸을 때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있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대사만큼은 알고 있다. 다 큰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힘들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때 꽤나 마음에 힘을 주는 책. 나는 아직 작아서 크려고 아프는구나. 아직 성장통이 끝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어쩌면 이 대사를 고두심이라는 엄마가 해 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람하테 해 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223쪽)

 

 

 

사진을 찍다보니 우르르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찍혔는데, 사실 눈을 제일 많이 잡아 두는 건 '엄마' 주제가 담긴 곳이다. 여자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커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상 깊을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엄만 세상에서 뭐가 젤 힘들어?' '자식 힘든데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거.' 이나 '어머니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같은 문장들. 노희경의 힘은 이런거에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쑥스러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들을 꺼내 놓아 귀로 들려주는 것, 눈앞에 놓아주는 것. 직접 내가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그걸 엄마와 함께 들으면서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게끔 해 주는 것.


그녀의 대사들은 마음의 한 가운데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게 지금 사랑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곁에 부모님이 계시든 아니든 간에. 사람에게 가장 본질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늘 고민하는 그녀의 마음이 시청자들에게까지 전해준다고 해야 할 듯 하다. 대사가 없는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여러 드라마들이 만들어질 테다. 올 하반기에 굉장한 여배우들이 함께하는 드라마가 라인업에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이 대사집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대사집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늘 일하듯이 글을 쓰고 있으니, 그 글들 속에서 책을 내거나 드라마를 또 쓰게 된다면 대사집은 또 출간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녀의 작가 인생 마지막 꿈이라던 '대사가 없는 드라마'를 쓰게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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