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방관의 기도
오영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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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사람을 살린다'라는 명제에 있어서는 의사와 동급이지만, 의사들은 경험하지 못할 '위험'을 안고 있다.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는 '군인'들과 동급인 것 같은데, 또 전투를 하지 않으니 특수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볼 때 소방관들은 '무조건 구하는' 사람들이다. 굉장히 맹목적인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지든 험지든, 그곳이 사지든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사례들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 소방관을 영웅에 비유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영웅이란 칭호를 받는 직업 특수성 때문에 소방관은 TV나 영화에서 참 많이 쓰이는 직업군이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20살의 '김주원'을 구하고 대신 순직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를 대중적으로 알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등장한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의 모습이 아마 우리가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소방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밖에 <시크릿 가든> 말고도 <엔젤 아이즈>와 <피노키오> 등의 드라마에도, 또 영화 <반창꼬>에도 소방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최근에 방송한 것들로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아마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욱 더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나올 테지.) 소방관 이야기가 인기있는 것은 극적인 이야기가 많아서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그 와중에 안타깝게 놓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를 구하러 갔다 살아오지 못한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의 축을 만들기도 쉬워서겠지.

 


내가 소방관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시크릿 가든>에서다. 그 작품에서 나레이션으로 언급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는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연기자의 목소리와 더불어 상황 때문에 눈물도 흘리게 만들었었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꺠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치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14-15쪽)

이 책의 제목이 <어느 소방관의 기도>인 것도 이 시에서 차용했다 저자는 밝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희망 속 생명을 향한 간절한 바람은 시와 다를바 없기 때문이라고.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고,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하는 그들의 마음 속이 말이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만 담겨있지는 않기를, 작은 바람을 가지고 책을 펼쳐 들었다.



모든 소방관들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뒤로하고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진짜 소방관인 저자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직접 쓴 책이다. 사실 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1인칭 화자의 시선을 따라 마음 속 감정까지 전부 드러내는 글이다. 글을 꽤 잘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그 다음에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아픔이 보였다. 그들의 마음은 사람을 구하는 자신들의 직업과는 다르게 늘 아프기만 하다. 마음 속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두 가지의 자책감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지켜낼 수 있었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이 첫번째. 현장에서 스러져간 동료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두 번째.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해 봐도 그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다. 소방관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익숙해졌다고 믿던 그 어느 날에라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9쪽)


그렇다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 속 이야기들이 전부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위독한 상황의 생명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생명줄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많이. 소방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더 부여잡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남편이었을 사람들의 생명줄을 말이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결국 놓쳐버린 생명들에 대한 마음들을 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어디선가 발생한 응급, 위급을 위해 또다시 출동한다. 죽음을 마주했음에도 또다른 이를 위해 출동해야만 하는, 계속 다치기만 하는 소방관의 마음은 그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한없이 심산하다.

우리는 늘 어려움 속에서 막아낼 수 없었던 비극에 아파해야만 한다 해도, 동료의 순직 소식에 절망해야 한다 해도 단 하루도 주어진 임무를 등한시 할 수 없다. 대한민국 소방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위험에 처한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있다. (172쪽)


이렇게나 노력하는 소방관인데, 그들의 처우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소방관이 자비로 장갑을 구입한다는 소식도 그렇고,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에 따라 지원이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는 지방직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바꿔달라는 시위에 대한 소식도 그렇고, <심장이 뛴다>라는 예능에도 나왔던 소방관 구급차를 공짜 택시 쯤으로 여기는 주취자들과 자신들의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민원에 욕설까지 퍼붓는 시민들까지-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는 '영웅'이라 칭하면서 어찌 그들에 대한 처우는 이렇게나 형편없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땅에 뿌려진 비명에 가야 했던 젊은 소방관들의 뜨거운 피를 세상은 너무도 빨리 잊어버리는 (124쪽) 여론에도, 많은 이들이 비극적인 사고를 자신과는 무관하게 바라보기만 할 때도 (129쪽) 현장으로 달려가 여린 하나의 목숨이라도 구해내려 애쓰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숭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소방관. 많은 이들이 우리를 영웅이라 부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동정을 받고 있는 직업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를 영웅이라 불러주지 않아도 좋다. 동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사명,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고 지켜내는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179쪽)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부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부제에 반기를 들고 싶다. 그대들은 결코 작은 영웅들이 아니라 우리 곁의 큰 영웅들이라고. 그대들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란 말인가. 그저 그들이 안전하게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마련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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