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 노희경이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언어
노희경 지음, 배정애 사진.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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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중에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그 속에 나오는 대사들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안 본 사람은 있을 지언정, 보고 나서 중간에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 하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인간 군상들은 생각보다 현실과 많이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세상에 떠도는 '문장'들 중에 생각보다 많은 문장들이 그녀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옮겨지는 대사들은 감정을 싣고 있어 훨씬 이해하기 쉽지만, 활자로 '적혀있는 문장'들은 그와는 다른 맛이 있다.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으로 통해 다가오는 대사들은 그 상황 내에서의 특수성을 띠고 있지만, 활자화 된 문장들은 그 어떤 상황 속에 속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그녀의 글에는 오래 곱씹을수록 좋기도 하고, 보자마자 좋기도 한 것이 있으며 특히 '엄마'에 대한 그녀의 시선들은 보는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드라마들은 그래서 대본집으로 출간되곤 하는가보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대본집은 작품이 끝날 때마다 출간되어 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대사집이 출간됐다. 그동안의 드라마들 중 노희경 작가가 뽑은 200개의 대사들을 추려 만든 대사집. 하지만 노희경은 서문에서 '확신컨대 이 책은 마지막 대사집이 될 거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은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첫번째' 대사집인데도 불구 '마지막' 대사집이 될거라니. 그런데 그 이전의 그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문장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대사를 잘 쓰려 애쓰던 서른을 지나고, 말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십의 야망을 지나, 이제 오십의 나는 말 없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배우의 손길이 그저 내 어머니고, 배우의 뒷모습이 그저 내 아버지고, 배우의 거친 반항이 그저 시대의 청춘들의 고단을 인정해주는. 그래서, 결국 내 드라마에 대사가 다 없어진다 해도 후회는 없겠다. (5쪽)

그러니까 대사집이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작가가 꿈꾸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말 없는 드라마'라는 의도적인 무성드라마. 출연하는 배우들의 모든 것이 대사가 되는 그런 드라마. 상상해보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대사들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글을 쓴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꿈'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며.

 

 

 

책에는 작가의 싸인이 인쇄되어 있다. 거기에 초판 한정 5000부에만 넘버링이 되어 있으므로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굉장히 귀한 것을 손에 넣은 듯한 느낌. 이래서 사람들이 한정판 한정판 하는가보다.


첫장을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200개의 대사들이 예쁜 사진과 캘리그라피와 함께 등장한다. 총 5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랑에 관한 주제 2개와 인생에 관한 주제 2개, 그리고 엄마에 관한 주제 1개가 그 주제들이다. 대사들이야 '안 봐도 비디오'일 만큼 좋은 것들 투성이다. 넘길수록 봤던 드라마에서의 대사라면 그 장면을 생각하게 만들고, 모르는 드라마의 대사라면 좀 더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그녀의 드라마들은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방영되었기 때문에 못 챙겨본 게 꽤 되는데, 그런 드라마의 대사들은 신선하다고 해야할까. 내게는 좀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

 

 

 

 

 

사랑은 계절같은 거야.

지나가면 다시 안 올것처럼 보여도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

#거짓말 (245쪽)


이건 이 책의 제목이 담겨 있는 페이지를 포착해 찍은 것이다. 사랑이 끝나면 다음 사랑은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랑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확 와닿는 이야기. 여기서 따온 제목은 이 책과 참 잘 어울린다.

 

 

 

저는 그동안 남에게는 괜찮냐, 안부도 묻고 잘자란 굿나잇 인살 수없이 했지만

정작 저 자신에겐 단 한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오늘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너 정말 괜찮으냐, 안부를 물어주고 따뜻한 굿나잇 인살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밤도 굿나잇, 장재열.

#괜찮아 사랑이야 (227쪽)


​조인성의 장재열은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을 끊임없이 위협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멋졌다. 그가 그동안의 삶 동안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에 대한 성찰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장면은, 담담한데도 불구 찡한 울림이 있었던 장면이었다. 현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새 없이 앞으로 걸어나가기 바쁜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굿나잇 인사를 건네는 등장인물들을 따라 입밖으로 굿나잇이라는 말을 따라해 본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 생길 땐

내가 크려나보다 내가 아직 작아서 크려고 이렇게 아픈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꽃보다 아름다워 (191쪽)


​어렸을 때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있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대사만큼은 알고 있다. 다 큰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힘들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을때 꽤나 마음에 힘을 주는 책. 나는 아직 작아서 크려고 아프는구나. 아직 성장통이 끝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어쩌면 이 대사를 고두심이라는 엄마가 해 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람하테 해 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

#그 겨울 바람이 분다 (223쪽)

 

 

 

사진을 찍다보니 우르르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찍혔는데, 사실 눈을 제일 많이 잡아 두는 건 '엄마' 주제가 담긴 곳이다. 여자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부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커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상 깊을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엄만 세상에서 뭐가 젤 힘들어?' '자식 힘든데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거.' 이나 '어머니 당신이 있어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같은 문장들. 노희경의 힘은 이런거에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쑥스러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들을 꺼내 놓아 귀로 들려주는 것, 눈앞에 놓아주는 것. 직접 내가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그걸 엄마와 함께 들으면서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게끔 해 주는 것.


그녀의 대사들은 마음의 한 가운데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게 지금 사랑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곁에 부모님이 계시든 아니든 간에. 사람에게 가장 본질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늘 고민하는 그녀의 마음이 시청자들에게까지 전해준다고 해야 할 듯 하다. 대사가 없는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여러 드라마들이 만들어질 테다. 올 하반기에 굉장한 여배우들이 함께하는 드라마가 라인업에 있는 것을 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이 대사집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대사집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늘 일하듯이 글을 쓰고 있으니, 그 글들 속에서 책을 내거나 드라마를 또 쓰게 된다면 대사집은 또 출간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녀의 작가 인생 마지막 꿈이라던 '대사가 없는 드라마'를 쓰게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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