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예쁜 그림 한 장 - 손그림 일러스트 감성수채화 그리기 나를 위한 시간
민미레터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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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고 예쁜 그림 한 장>은 처음 책 소개를 보자마자 반했다. 아, 이렇게도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 되게 새로웠다. 뭔가 되게 신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채화는 무조건 번지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또는 번지더라도 비슷한 색상끼리 잘 조화를 이루어야 예쁘다는 생각, 내가 이전에 수채화에 대해서 갖고 있던 예의 그것들이 싹 무너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이 책은 그러니까 수채화라는 것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수채화를 가지고 재미있게 그냥 놀자!'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했다. 좀 번지면 어때! 번지는 색이 좀 안 어울리면 어때! 내가 재미있게 놀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지! 그리고 어차피 마르면 다 예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

 

사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만해도 긴가민가 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색을 쓰고, 그 색들이 서로 엉키고, 일부러 다시 물을 떨어뜨려 연하게 만들기도 하고, 붓 터치감을 주기 위해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눈으로만 봐서는 전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예쁘긴 한데, 혼자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쁜 그림들이 책에 45가지나 들어가 있는데 혹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을까. 더군다나 직접 내 손으로 그릴 수 있다는데, 거기다가 쓴 색상도 되게 간단한데, 느낌있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저절로 책에 손이 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혹하는 그림들이 온 천지에 널려있어서 다 그려보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을 보면 그리는 과정샷이 자세히 나와 있고 설명도 자세히 되어 있다. 한 장면 한 장면 클로즈업으로 작가 자신이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여기서는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을지 설명을 해 준다. 클래스를 운영하던 작가분이라 그런지 이야기를 전달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고려해 쉬운 설명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러다 진짜 혼자서도 이런 그림들이 만들어질 것도 같아'라는 느낌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책은 꽤 친절하다. 어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기법'을 썼는지, 또 어떤 '색상'을 썼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모든 메인 아래에는 이런 식으로 작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따라 그릴 때는 그 색상들과 비슷한 색을 만들거나, 아니면 색상을 참고해 다른 계열로 바꾸거나 할 수 있다. 원래 그림을 그릴 때 색상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은 비슷한 색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는데) 색상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박아뒀기 때문에 색상 찾기도 한결 수월할 수 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제품들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고 해 주었다. 물감이나 붓, 색연필, 파레트, 공책 등등 자신은 어떤 것을 쓰고 있으며 어떤 것도 괜찮다,라는 어드바이스들이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한 페이지 분량으로 드러나 있다. 수채화의 시옷자도 모르는 사람들은 수채화 물감은 어떤 걸 써야하는지 종이는 어떤 것이 좋을지 알 수 없을텐데 이런 꿀팁들이 있어서 한결 수월하게 준비물을 준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나도 한가지 도움을 받았다. 바로 그림을 그릴 공책!


 

 

작가는 파브리아노의 공책을 쓴다고 했다. 종이는 와트만지. 그래야 물을 잔뜩 쓰는 작가의 그림 특성상 종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파브리아노만 생각하고 가서 공책을 골라왔는데, 알고보니 내가 사온 것은 '드로잉'용이었고 '수채화'용은 아니었다. (하하하;;) 일단 연습용이니까 종이가 일어나지 않는게 어디냐며 나를 위로했다. 분명 위의 사진에 나온 똑같은 공책을 봤는데 이걸 사온거라 적잖이 당황. 하지만 이 공책을 한 권 전부 연습해 본 다음에 울지 않는 종이를 다시 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려줘야지!라며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극복했다. (긍정적인 거라고 해 두자)


 

 

되게 오랜만에 수채화 물감도, 파레트도, 물통도 꺼내봤다. 파레트의 상태가 완전 개차반이었던지라 이것을 닦아내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막상 구석에서 얘네들을 찾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아, 진짜 시작이구나 같은 느낌. 물감이 오래되어 색이 안 나올줄 알았는데 색이 너무 잘 나와줘서 감동. 말라붙어 있던 물감들 또한 예의 그 색들을 전부 내주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채화 놀이.


 

 

​먼저, 책의 처음에 나오는 기법부터 연습을 했다. 색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물을 가득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예전부터 하던 습관이 돼서 색을 칠해도 붓에 적당히 묻힐 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물을 얼만큼 묻혀야 색이 섞이는지 전혀 가늠이 안됐으니까. 그런데 여러번 해 보고 물에 물을 어느정도 묻혀야 섞일 수 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하니까 작가가 했던 것들이 나도 되기 시작했다. 우와 신기해!를 연발하며 여러번의 연습을 마쳤다. 아직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정도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


 

 

호기롭게 해바라기를 그렸다가 망했다. 물조절을 잘못한데다 색이 섞이는 것이 꽤 고난도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쉽다고 했는데 색이 마음대로 섞이고 그림도 잘 나오지 않으니까 당황 당황. 차마 아래 줄기와 이파리까지 그리지 못하고 접었다. (내 마음 더 상처받기 전에)


 

 

좀더 쉬워보이는 (꽃잎이 몇 없는) 동백꽃으로 옮겨왔다. 장미랑 비슷한 느낌으로 굉장히 화려해 보여서 따라했는데, 역시 처음은 실패. 꽃잎의 균형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다른 동백꽃을 그렸다. 동백꽃은 반만 성공.


 


그리고 대망의 수국. 내가 수국을 원체 좋아해서 이건 볼때마다 꼭 그려봐야지 생각했는데, 그래서 얘도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망설였는데, 의외로 굉장히 잘 그려졌다. 역시 나라은 수국이 맞나봐!란 생각을 하면서 수국 완성한게 뿌듯해 SNS에도 올렸다. 꽃송이가 잘 모이지 않은 것은 처음이니까 그런거고 왜인지 여러번 더 하다보면 더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수국을 그려보니까 알겠더라. 색을 꼭 저자가 한 대로 하지 않아도, 저자의 그림과 색상이 많이 비슷하지 않아도 자신의 맘에 충분히 들 수 있구나 한 것을. 나는 저자와 모양만 비슷할 뿐 꽃잎 색깔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하지만 다 그려놓고 보니 나도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스트레스 없이, 실력없이도 예쁘게 그릴 수 있다던 거였구나. 저자의 자신감이 실제로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우연처럼 떨어뜨린 물방울이 당신의 그림을, 당신의 시간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저자의 닫는말은 마치 이 책을 통해 직접 그림을 그려본 이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물을 떨어뜨려 색이 섞이기 전까지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그림을 그려보니 알겠다. 그리고 색이 섞이는 것이 절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는 것도. 또한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이 다시 그려보면 된다는 것도. 이번에 실패한 해바라기는 더 크고 예쁘게 완성해 볼 거다. 물조절 연습이 조금은 더 필요하겠지만, 이만하면 나도 어느정도 센스는 있는 것 같아!

 

수채화에 아주 생 초짜들이라면 꽃잎의 위치나 구도 등으로 인해 다른 결과물을 받아들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보고 따라했는데도 다른 결과물이라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 센스라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여러번 연습하다보면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여러번만에 마음에 드는 꽃그림을 찾은 것처럼. 반대로 그림 센스가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정말 놀이에 가까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니까.

 

수채화를 가지고 노는 것.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예쁘다.
취미로 마다할 이유가 과연 여기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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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 허밍버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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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갖고 있는 '카피라이터'에 대한 환상은 정철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별 생각없이 읽게 된 책 한 권이 마침 정철의 책이었고, 그 책이 다름아닌 정철의 뛰어난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내머리 사용법>이었고, 글쓴이가 궁금해 표지 날개를 읽었더니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보였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각인된 카피라이터의 기준은 정철의 글이었다. 그냥 '글'이 아니라 '번뜩이는 재치가 담겨있는 글'. 그리고 그런 번뜩이는 재치가 담겨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카피라이터.


생각보다 강렬했던 첫만남 후 나는 정철의 책이라면 뭐든 읽어봤다. 사서든, 서평단을 통해서든, 여의치 않았을땐 도서관에서 빌려보든 어쨌든! 그리고 카피라이터에 대한 생각이 좋게 각인되어져 카피라이터 누구의 글이라고 하면 한 번쯤 눈길이 갔다. (내가 가진 카피라이터에 대한 후한 인식은 모두 정철로부터 비롯됐으니, 혹여 앞으로 내가 읽을지도 모를 책의 저자들 중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정철에게 고마워해야 할 테다.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시작할 테니까.) 일명 '씽크빅'이라고 하는 '신박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는 책들은 내가 단연 좋아하는 책이 되었고, 대체로 그런 류의 책들은 나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현재진행형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카피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듯 하다. 본인이 카피라이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꿈을 갖고 있는 이들 이외에는 해 본 적도 없겠거니와, 그런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과 그들의 일은 마치 다가갈 수 없는 곳마냥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업종은 모두 그렇게 느껴지긴 한다만;;)

나는 카피라이터가 될 건 아닌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카피든 에세이든 연애편지든 사람 마음을 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모든 글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12쪽)

그런데 이번에 정철 카피라이터가 쓴 <카피책>에서는 카피는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카피라는 틀에 책을 넣고 볼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일상생활에서라도 짧은 글을 임팩트 있게 쓸 수 있다, 정도의 노하우라고 봐도 된다고 적어두었다. 그런데 나는 '정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머리를 굴리는지, 어떻게 카피를 쓰느지, 그의 머릿속과 연필 끝을 훔쳐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12쪽)라는 문장이 그 어떤 문장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정철의 번뜩이는 생각이나 재치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 썰을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철은 이 책 한 권에 자신의 카피라이터 인생을 꾹꾹 눌러담았다 자평했다. 또한 앞으로 자신이 책을 내면서 이런 종류의 책은 다시 내지 않을거라 단언했다. 그러니 이 책 <카피책>은 정철의 전무후무한 카피라이터 노하우 전수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카피의 A to Z를 설명해 주는 여타 다른 책들보다 기본에 대한 설명이 덜 들어갈 수는 있다. 그가 카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가르치려 들려 했다면 설명이 훨씬 가득했겠지. 하지만 <카피책>에는  '평생 카피 써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책도 살 수 있었던' 정철이 풀어놓는 카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 세세한 노하우가 아니더라도 그의 작업 방식, 머릿속에서 나온 과정 같은 이야기가 잘 섞여 있으므로 책 자체로도 읽기가 즐겁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보다는, 자신이 썼던 카피들을 동원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잘 읽힐 것인가'를 최우선에 둔 채, 자신의 카피 만드는 방법을 차례차례 알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하나의 단어로도 문장의 맛이 달라지는 것이라든지, 사칙연산인 더하기 곱하기 나누니 빼기 등을 활용해 문장을 줄이고 늘이면서 달라지는 느낌이라든지, 깍둑 썰어 나누기만 해도 가독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라든지, 도둑질을 권장(?)하는 등의 이야기들은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조건 좋은 글을 쓰기보다는 일단은 써 놓고 지우고 수정하면서 그 느낌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든가 뜻이 애매한 한자보다는 정확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우리말로 치환하는 방법 같은 건 꽤 꿀팁이라고 볼 수 있었고. 더군다나 <카피책>은 카피라이터가 그러니까 글쓴이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콕콕 짚어줌으로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가 꽂힐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느낌들을 전해주려 애를 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정철 카피라이터의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정철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서 독자의 기분좋음을 책의 마지막 장까지 잘 유지해 나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책 읽기가 즐겁다. 알기 쉽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카피는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광고속에만 놓여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카피, 이웃에게 먼저 손 내미는 카피, 세상 온도를 한 뼘 더 올리는 카피,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습니다."(363쪽)라는 <카피책>의 마지막 문단을 통해, 정철이라는 카피라이터가 이 책을 집어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책에는 무려 35가지의 방법이 들어 있다. 그의 이야기를 즐기면서 웃으면서 슬며시 책의 마지막장까지 왔지만 그 방법들이라는 게 전혀 새롭거나 낯설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카피라는 것(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잡을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고 또 간단한 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듯 하다. 정철이 가르쳐 준 모든 방법을 한 문장 안에 다 때려넣어 사용할 수는 없지만, 하루 10분 만이라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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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 - I'm a los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책에이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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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많이 쓰는 단어이지만, 정작 단어의 뜻풀이를 하라고 하면 단어가 갑작스레 낯설어지기에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봤다. 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란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바른 의의'를 뜻한다. 그러니까 '옳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반하는 단어는 '불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이 소설책의 제목은 <정의의 편>이다. 그러니까 옳고 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의 편에 있다는 얘기다. 누가? 주인공을 비롯한 '정의의 편 연구부' 동아리 소속 멤버들이 말이다.


이 동아리는 하는 일이 참 신기(?)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어려운 건 없어."

"우선은 정의의 편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볼 것." (68쪽)

동아리의 멤버 수를 늘리는 것을 극히 제한하고, 그 멤버들 또한 현재 정의의 편 연구부에 속해 있는 멤버들의 추천으로 스카우트를 통해 한정된 인원만을 뽑는다. (현재는 대표, 주인공 료타, 도모이치, 안경선배, 티셔츠선배, 여자선배 총 6명이다) 그런 그들이 하는 일은 꽤 다양했다. 아니 오히려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기 힘든 일들을 했다. 다른 동아리로의 잠입수사부터 시작해서 대체로는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약간의 협박도 동원하면서. 료타의 동아리 선배라는 사람들이 풀어놓는 썰은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만큼이나 부풀려져 있는 듯 해서 믿을게 못되겠구나 싶었지만, 료타가 하는 것을 보니 그 이야기도 맞겠다 싶은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이 동아리는 뭘하는 동아리인가 싶었다.

"여하튼 정의의 편의 시선을 잊지 마. 정의의 편의 눈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따위는 없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어. 어떤 악이라도 대응할 방법이 있어. 너 혼자서는 못하는 것도 우리와 함께라면 못할 게 없어. 그렇게 믿고 세상을 봐보는 거야." (69쪽)

그래도 이들이 꿈꾸는 것은 꽤 단순했다. 정의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잘못된 행동을 상대방이 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되 폭력은 쓰지 않는 쪽으로 한다. (다만 얼마간의 협박이 있을 뿐이다)


책의 시작부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료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왕따로 지내왔고, 같은 반 친구의 셔틀이 당연했었다는 이야기가 소개됐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보지 않기 위해 전혀 연관성이 없는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고등학교때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반 친구를 대학 캠퍼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요구와 폭언과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사실 처음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심리도 이해가 되지 않고, 그런 아이들에게 전혀 반항하지 않는 료타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강도는 제 3자이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인 내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시작하기에 '도대체 정의의 편은 언제 나온다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옛 고교 동창으로부터의 괴로운 기억 소환이 정의의 편과의 인연을 만들어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미간에 계속 주름이 잡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하다)


정의의 편을 통해 료타는 친구를 얻었고, 여자친구들을 얻었으며, 선배도 얻었다. 끔찍했던 학교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하고 싶게 만드는 학교로 그 위치가 완전히 변화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였고, 책은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마냥 밝은 이야기들만은 아니었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튀어 나와서 '이건 적어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ㅡ "상관없는 일 따위는 없어. 네가 발로 찬 캔은 누구에게든 맞게 돼 있어. 같은 나라, 같은 시대, 하물며 같은 대학에 있는 우리에게, 네가 한 짓과 관계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 (116쪽)

ㅡ "일부러 상대의 씨름판에 올라가서 승부를 겨루고, 그리고는 졌다고 한탄하는 거 말이야. 지는 게 당연하잖아. 상대를 위한 씨름판인걸. 씨름으로 이길 수 없다면 100m 달리기로 겨루면 되는 거야. 상대의 씨름판에 올라가지 말고 자신의 판을 만들면 돼. 바르게 노력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야." (229쪽)

ㅡ 희망에서조차 클래스가 나누어져 있다. 상에는 상의, 중에는 중의 희망이 있고, 그리고 하에는 하의 희망이 있다. 그것을 넘어선 희망은 이미 희망이 아니라 그저 꿈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꿈이다. 나는 가질 수 있는 희망조차 클래스가 나뉜 세계에 사는 거다. (251쪽)

ㅡ 불공평함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의 뿌리를 썩게 하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의지가 꺾이고 노력할 의욕이 식어버리는 거야. 그래도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고 하는 거야. 그런 부당한 얘기가 어디 있냐고 항의해봤자 그런 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아. (중략) 그러니까 반론 같은 건 필요없어. 놈들에게는 놈들의 논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 논리가 있어. 우리는 우리 논리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258쪽)

 


정의의 편이라는 동아리로 인해 권력을 갖게 되고, 마치 세일러문처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의 마인드로 나쁜일을 막아내지만, 방벌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료타가 '어떤 것이 진정한 정의의 편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면서부터 사실 구심점을 잃어버린다. 정의의 편이라면서 우쭐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돕는다는 명목하에 잘못 대처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등등. 중간 쯤에 잠입(?) 수사로 인한 대마초 다단계 사건이 큰 계기가 됐지만, 정의의 편으로 인해 료타는 조금 성장했다.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게 됐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또한 다시 깨닫게 됐다.


나는 못난이 맞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그저 못난이로 좋다.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그런 말을 듣는 강자가 되기보다는, 료타, 넌 분명히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말을 듣는 못난이인 채로 있고 싶었다. (382쪽)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건 이 문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등학교때의 왕따에서 벗어나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그 권력 속에서 불공평함을 상기하게 된 것. 그로 인해 더 나은 생활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그를 포기하는 것. 자신의 생활을 한탄하거나 그래서 노력해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것 보다는, 나다운 것을 찾아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루저'라 이름 붙여진 길일지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는 용기 내어 도전하는 것. 예를 들면 그런 거다. 못 생겼다고 생각해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 나아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방황이 오히려 당연한 대학생 시기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생각들을 섬세하게 잘 담아낸 소설을 통해, 누구라도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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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1월 말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늦지 않고 잘 써야지, 란 생각을 가지고. 꽤나 열의를 가지고.

하지만 2월에 들어서서 책이 결정되었다는 며칠전의 문자를 받기까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정말 까맣게 잊었다ㅠㅠㅠㅠ 중간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ㅠ

지난 15기에서도 이랬던 적이 몇 번 있어서 난감했던 적이 한 두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기다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분위기를 좀 바꿔서)

이번 1월에는 주목신간을 작성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어떤 책을 내놓았든 선택은 안됐을 듯 싶다.

많은 분들이 2권에 올인하신 느낌.

 

 

 

       

 

 

먼저 첫번째 책은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집>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써온 글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읽어보며 23편만을 뽑아 다시 고쳐 쓰고 번역한 책이다.

많은 분들이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듯 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름만큼이나 낯선 작가라 그의 책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

 

두번째 책은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136번 <시스터 캐리>이다.

역시 세상에는 너무도 유명하고 많은 작가들이 있고, 내가 모르는 작가와 작품들이 어마어마한 듯 하다.

처음보는 작가지만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자연주의 문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니.

어떤 느낌일지 감히 감도 안 오는데,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겠지.

 

 

2권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이왕 선택된 책,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물론 페이지의 압박은 (약 800쪽과 약 700쪽) 상당할테지만..

다른 책들을 줄여서라도 다 읽어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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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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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라는 단어 자체가 낯선 나는 '무신론자'이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편견이 없을 수 있으나, 외려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대로의 예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편견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런 내게 온 <카인>은 얇은데도 불구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책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래서 일단 책을 읽기 전에 검색부터 해 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적어도 작가는 독자들이 '어느정도' 내용을 알고 읽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아서.

 

알아보니 구약성서라는 건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한다. 9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책.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들 뿐만 아니라 인물들도 많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알려하지는 않았다. (모르는 내용을 새로 알아봐야 하는 거라서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그렇기에 책의 제목이 <카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봤다. 카인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인물이다. '카인과 아벨'의 그 카인 아니던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기억이 있는데 즐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었기에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형인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인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중간중간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 과정이 몽땅 생략되어 있던 부분들을 이어붙이는 것. 인과관계와 인물 설정들을 자세히 해 그 일들이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책은 그 카인과 아벨의 탄생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니 그 이전의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의 탄생,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는 과정 등을 단 3, 4 페이지에 마무리 해버린다. <카인>의 내용은 카인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놋에 도착하면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봤던 '카인과 아벨'의 지식백과 이야기는 꽤 단편적이었다. 카인은 어떻게 아내와 결혼했는가, 카인이 남을 죽이지도 또한 자신이 죽지도 않는 면죄부를 받는 것에 대해 카인을 죽이려 하려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등의 의문점만을 남긴 채 말이다. 실상 카인이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 방랑을 하게 된 이후에는 어떤 자세한 내용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인> 속의 아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착하고 순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고, 아벨의 그런 행동이 신이 의도한 시험이었으며, 그렇기에 카인은 자신이 동생을 죽였으나 그것은 여호와가 의도한 죽음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주장을 펼쳤다. 단편적이었던 사건들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나 카인은 주인공으로서 책을 활보했다. 인간이기에 (물론 영원을 갖고 있긴 하지만) 불완전하지만, 또 주어진 저주로 인해 보호받을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서 말이다.

 

기존의 컨텐츠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놀랍다. 또한 마지막 노아의 방주에서 홀로 내리는 카인의 모습은 여호와에게 전면적으로 대들었다는 느낌 또한 강하게 받았다. 글쎄,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내야 할까 참 난감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오래된 컨텐츠도 다시보자'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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