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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예쁜 그림 한 장 - 손그림 일러스트 감성수채화 그리기 ㅣ 나를 위한 시간
민미레터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작고 예쁜 그림 한 장>은 처음 책 소개를 보자마자 반했다. 아, 이렇게도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 되게 새로웠다. 뭔가 되게 신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채화는 무조건 번지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또는 번지더라도 비슷한 색상끼리 잘 조화를 이루어야 예쁘다는 생각, 내가 이전에 수채화에 대해서 갖고 있던 예의 그것들이 싹 무너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이 책은 그러니까 수채화라는 것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수채화를 가지고 재미있게 그냥 놀자!'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했다. 좀 번지면 어때! 번지는 색이 좀 안 어울리면 어때! 내가 재미있게 놀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지! 그리고 어차피 마르면 다 예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
사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만해도 긴가민가 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색을 쓰고, 그 색들이 서로 엉키고, 일부러 다시 물을 떨어뜨려 연하게 만들기도 하고, 붓 터치감을 주기 위해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걸까 눈으로만 봐서는 전혀 절대 예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예쁘긴 한데, 혼자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쁜 그림들이 책에 45가지나 들어가 있는데 혹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있을까. 더군다나 직접 내 손으로 그릴 수 있다는데, 거기다가 쓴 색상도 되게 간단한데, 느낌있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저절로 책에 손이 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혹하는 그림들이 온 천지에 널려있어서 다 그려보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을 보면 그리는 과정샷이 자세히 나와 있고 설명도 자세히 되어 있다. 한 장면 한 장면 클로즈업으로 작가 자신이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여기서는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을지 설명을 해 준다. 클래스를 운영하던 작가분이라 그런지 이야기를 전달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고려해 쉬운 설명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러다 진짜 혼자서도 이런 그림들이 만들어질 것도 같아'라는 느낌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책은 꽤 친절하다. 어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기법'을 썼는지, 또 어떤 '색상'을 썼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다. 모든 메인 아래에는 이런 식으로 작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따라 그릴 때는 그 색상들과 비슷한 색을 만들거나, 아니면 색상을 참고해 다른 계열로 바꾸거나 할 수 있다. 원래 그림을 그릴 때 색상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은 비슷한 색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는데) 색상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박아뒀기 때문에 색상 찾기도 한결 수월할 수 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제품들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고 해 주었다. 물감이나 붓, 색연필, 파레트, 공책 등등 자신은 어떤 것을 쓰고 있으며 어떤 것도 괜찮다,라는 어드바이스들이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한 페이지 분량으로 드러나 있다. 수채화의 시옷자도 모르는 사람들은 수채화 물감은 어떤 걸 써야하는지 종이는 어떤 것이 좋을지 알 수 없을텐데 이런 꿀팁들이 있어서 한결 수월하게 준비물을 준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나도 한가지 도움을 받았다. 바로 그림을 그릴 공책!

작가는 파브리아노의 공책을 쓴다고 했다. 종이는 와트만지. 그래야 물을 잔뜩 쓰는 작가의 그림 특성상 종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파브리아노만 생각하고 가서 공책을 골라왔는데, 알고보니 내가 사온 것은 '드로잉'용이었고 '수채화'용은 아니었다. (하하하;;) 일단 연습용이니까 종이가 일어나지 않는게 어디냐며 나를 위로했다. 분명 위의 사진에 나온 똑같은 공책을 봤는데 이걸 사온거라 적잖이 당황. 하지만 이 공책을 한 권 전부 연습해 본 다음에 울지 않는 종이를 다시 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려줘야지!라며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며 극복했다. (긍정적인 거라고 해 두자)

되게 오랜만에 수채화 물감도, 파레트도, 물통도 꺼내봤다. 파레트의 상태가 완전 개차반이었던지라 이것을 닦아내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막상 구석에서 얘네들을 찾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아, 진짜 시작이구나 같은 느낌. 물감이 오래되어 색이 안 나올줄 알았는데 색이 너무 잘 나와줘서 감동. 말라붙어 있던 물감들 또한 예의 그 색들을 전부 내주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채화 놀이.

먼저, 책의 처음에 나오는 기법부터 연습을 했다. 색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물을 가득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예전부터 하던 습관이 돼서 색을 칠해도 붓에 적당히 묻힐 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물을 얼만큼 묻혀야 색이 섞이는지 전혀 가늠이 안됐으니까. 그런데 여러번 해 보고 물에 물을 어느정도 묻혀야 섞일 수 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하니까 작가가 했던 것들이 나도 되기 시작했다. 우와 신기해!를 연발하며 여러번의 연습을 마쳤다. 아직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정도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

호기롭게 해바라기를 그렸다가 망했다. 물조절을 잘못한데다 색이 섞이는 것이 꽤 고난도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쉽다고 했는데 색이 마음대로 섞이고 그림도 잘 나오지 않으니까 당황 당황. 차마 아래 줄기와 이파리까지 그리지 못하고 접었다. (내 마음 더 상처받기 전에)

좀더 쉬워보이는 (꽃잎이 몇 없는) 동백꽃으로 옮겨왔다. 장미랑 비슷한 느낌으로 굉장히 화려해 보여서 따라했는데, 역시 처음은 실패. 꽃잎의 균형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다른 동백꽃을 그렸다. 동백꽃은 반만 성공.


그리고 대망의 수국. 내가 수국을 원체 좋아해서 이건 볼때마다 꼭 그려봐야지 생각했는데, 그래서 얘도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망설였는데, 의외로 굉장히 잘 그려졌다. 역시 나라은 수국이 맞나봐!란 생각을 하면서 수국 완성한게 뿌듯해 SNS에도 올렸다. 꽃송이가 잘 모이지 않은 것은 처음이니까 그런거고 왜인지 여러번 더 하다보면 더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수국을 그려보니까 알겠더라. 색을 꼭 저자가 한 대로 하지 않아도, 저자의 그림과 색상이 많이 비슷하지 않아도 자신의 맘에 충분히 들 수 있구나 한 것을. 나는 저자와 모양만 비슷할 뿐 꽃잎 색깔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하지만 다 그려놓고 보니 나도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스트레스 없이, 실력없이도 예쁘게 그릴 수 있다던 거였구나. 저자의 자신감이 실제로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우연처럼 떨어뜨린 물방울이 당신의 그림을, 당신의 시간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저자의 닫는말은 마치 이 책을 통해 직접 그림을 그려본 이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물을 떨어뜨려 색이 섞이기 전까지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그림을 그려보니 알겠다. 그리고 색이 섞이는 것이 절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는 것도. 또한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이 다시 그려보면 된다는 것도. 이번에 실패한 해바라기는 더 크고 예쁘게 완성해 볼 거다. 물조절 연습이 조금은 더 필요하겠지만, 이만하면 나도 어느정도 센스는 있는 것 같아!
수채화에 아주 생 초짜들이라면 꽃잎의 위치나 구도 등으로 인해 다른 결과물을 받아들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보고 따라했는데도 다른 결과물이라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 센스라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여러번 연습하다보면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여러번만에 마음에 드는 꽃그림을 찾은 것처럼. 반대로 그림 센스가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정말 놀이에 가까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셈이니까.
수채화를 가지고 노는 것.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예쁘다.
취미로 마다할 이유가 과연 여기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