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이미지 / 허밍버드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갖고 있는 '카피라이터'에 대한 환상은 정철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별 생각없이 읽게 된 책 한 권이 마침 정철의 책이었고, 그 책이 다름아닌 정철의 뛰어난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내머리 사용법>이었고, 글쓴이가 궁금해 표지 날개를 읽었더니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보였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각인된 카피라이터의 기준은 정철의 글이었다. 그냥 '글'이 아니라 '번뜩이는 재치가 담겨있는 글'. 그리고 그런 번뜩이는 재치가 담겨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카피라이터.


생각보다 강렬했던 첫만남 후 나는 정철의 책이라면 뭐든 읽어봤다. 사서든, 서평단을 통해서든, 여의치 않았을땐 도서관에서 빌려보든 어쨌든! 그리고 카피라이터에 대한 생각이 좋게 각인되어져 카피라이터 누구의 글이라고 하면 한 번쯤 눈길이 갔다. (내가 가진 카피라이터에 대한 후한 인식은 모두 정철로부터 비롯됐으니, 혹여 앞으로 내가 읽을지도 모를 책의 저자들 중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정철에게 고마워해야 할 테다.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시작할 테니까.) 일명 '씽크빅'이라고 하는 '신박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는 책들은 내가 단연 좋아하는 책이 되었고, 대체로 그런 류의 책들은 나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현재진행형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카피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듯 하다. 본인이 카피라이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꿈을 갖고 있는 이들 이외에는 해 본 적도 없겠거니와, 그런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과 그들의 일은 마치 다가갈 수 없는 곳마냥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업종은 모두 그렇게 느껴지긴 한다만;;)

나는 카피라이터가 될 건 아닌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카피든 에세이든 연애편지든 사람 마음을 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모든 글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카피라이터가 아닌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12쪽)

그런데 이번에 정철 카피라이터가 쓴 <카피책>에서는 카피는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카피라는 틀에 책을 넣고 볼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일상생활에서라도 짧은 글을 임팩트 있게 쓸 수 있다, 정도의 노하우라고 봐도 된다고 적어두었다. 그런데 나는 '정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머리를 굴리는지, 어떻게 카피를 쓰느지, 그의 머릿속과 연필 끝을 훔쳐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12쪽)라는 문장이 그 어떤 문장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정철의 번뜩이는 생각이나 재치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 썰을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철은 이 책 한 권에 자신의 카피라이터 인생을 꾹꾹 눌러담았다 자평했다. 또한 앞으로 자신이 책을 내면서 이런 종류의 책은 다시 내지 않을거라 단언했다. 그러니 이 책 <카피책>은 정철의 전무후무한 카피라이터 노하우 전수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카피의 A to Z를 설명해 주는 여타 다른 책들보다 기본에 대한 설명이 덜 들어갈 수는 있다. 그가 카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가르치려 들려 했다면 설명이 훨씬 가득했겠지. 하지만 <카피책>에는  '평생 카피 써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책도 살 수 있었던' 정철이 풀어놓는 카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 세세한 노하우가 아니더라도 그의 작업 방식, 머릿속에서 나온 과정 같은 이야기가 잘 섞여 있으므로 책 자체로도 읽기가 즐겁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보다는, 자신이 썼던 카피들을 동원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잘 읽힐 것인가'를 최우선에 둔 채, 자신의 카피 만드는 방법을 차례차례 알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하나의 단어로도 문장의 맛이 달라지는 것이라든지, 사칙연산인 더하기 곱하기 나누니 빼기 등을 활용해 문장을 줄이고 늘이면서 달라지는 느낌이라든지, 깍둑 썰어 나누기만 해도 가독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라든지, 도둑질을 권장(?)하는 등의 이야기들은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조건 좋은 글을 쓰기보다는 일단은 써 놓고 지우고 수정하면서 그 느낌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든가 뜻이 애매한 한자보다는 정확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우리말로 치환하는 방법 같은 건 꽤 꿀팁이라고 볼 수 있었고. 더군다나 <카피책>은 카피라이터가 그러니까 글쓴이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콕콕 짚어줌으로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가 꽂힐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느낌들을 전해주려 애를 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정철 카피라이터의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정철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에 있어서 독자의 기분좋음을 책의 마지막 장까지 잘 유지해 나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책 읽기가 즐겁다. 알기 쉽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카피는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광고속에만 놓여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꼭 상품을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카피, 이웃에게 먼저 손 내미는 카피, 세상 온도를 한 뼘 더 올리는 카피,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당신도 쓸 수 있습니다."(363쪽)라는 <카피책>의 마지막 문단을 통해, 정철이라는 카피라이터가 이 책을 집어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책에는 무려 35가지의 방법이 들어 있다. 그의 이야기를 즐기면서 웃으면서 슬며시 책의 마지막장까지 왔지만 그 방법들이라는 게 전혀 새롭거나 낯설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카피라는 것(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잡을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고 또 간단한 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듯 하다. 정철이 가르쳐 준 모든 방법을 한 문장 안에 다 때려넣어 사용할 수는 없지만, 하루 10분 만이라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