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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기욤 뮈소의 신간이 출간됐다.
벌써부터 베스트 셀러에 올라가 있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그의 책이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그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책은 나도 열심히 읽고는 한다. 이번엔 그동안의 표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책을 받아들게 됐다. 그리고 왜인지 몽환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웬 걸. 이야기는 점점 스릴러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최근의 기욤 뮈소의 이야기들엔 스릴러적 요소가 많이 첨가되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엔 스릴러가 첨가된 것이 아닌, '본격 스릴러 소설'이었다.
프롤로그는 가볍게 시작했다. 결혼을 3주 앞둔 커플의 오붓한 주말 여행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밝히면서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채 3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뒀지만 비밀이 있는 듯한 여자, 그리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줬으면 하는 남자의 말싸움을 시작으로 말이다. 여자는 '당신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13쪽)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한 장의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줬고, 그 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본 채 펜션을 떠났다. 남자가 다시 되돌아갔을 땐 난장판이 된 펜션과 사라진 여자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휘몰아치는 듯한 프롤로그는 독자에게 굉장히 복잡한 느낌만을 남긴 채 본편으로 넘어갔다.
사진이 어떤 사진이었는지는 여자를 찾기 위해 남자가 마음을 먹은 후에 밝혀진다. '까맣게 탄 시체 3구가 찍힌 사진'이라는 것이 말이다. (이쯤에서 남자의 이름은 라파엘, 사라진 여자의 이름은 안나라는 것을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앞으로는 등장인물이 더 있어서 헷갈리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파엘이 가장 친하게 생각하는 친구는 60대의 은퇴한 경찰 마르크였는데, 그에게 사라진 안나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을 하면서 소설은 본격 스릴러의 길을 걷게 된다.
라파엘은 알 수 없었던 안나의 과거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마르크와는 같이 또 따로 정보들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안나가 사라진 뒤 첫째날, 안나의 본명이 '클레어 칼라일'이라는 것과 그녀는 희대의 사이코패스인 하인츠 키퍼에게 희생되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것, 현재는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책에는 안나가 사라진 뒤 총 3일의 이야기만이 담겼는데, 읽다보면 한 달 쯤은 지나간 듯 느껴질 정도로 담겨 있는 내용들은 방대하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안나가 클레어 칼라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녀를 곧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내 자신이 꽤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파엘이 그녀의 과거를 알았다는 것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되게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모든 사건의 실마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안나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을 만들어준 선생님, 하인츠에게서 도망친 클레어 칼라일을 차로 치었던 중령, 클레어 엄마 조이스 칼라일의 자매들, 불탄 시신 3구가 발견된 곳에 10살 무렵 납치됐던 남자, 클레어 사건을 파고들었던 기자, 수연, 몇몇의 형사까지. 라파엘과 마르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건은 클레어 사건에서 클레어의 엄마 조이스의 사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건으로 옮겨간다.
"영화 <고스트>에서 보면 여주인공의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벌어집니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현재도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주인공의 운명을 바꾼 사건인데도 정작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기도 하지."
"네, 형사님 말씀대로 과거의 사건이 주인공의 성격, 심리, 내면세계, 행동방식까지 모두 변화시킬 만큼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사건의 전말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어요. 그때, '고스트'의 활약이 펼쳐지면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중략) 클레어 칼라일의 '고스트'를 찾아야 해요." (138-139쪽)
책을 읽다보니 표시해 뒀던 이야기인데, 왜인지 이 대화가 이야기의 중요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저 부분을 읽을 당시 내가 제대로 표시해 뒀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알 수 없는 '고스트'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일까. 혹시 이 서평을 먼저 읽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고스트'를 추측해 나가면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 부분을 쉽게 넘기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스트를 찾기 위해 노력했떤 라파엘과 마르크에게도 시련이 닥치게 되고, 위험도 닥치게 된다. 또한 예상 가능한 혹은 굉장히 생각하지 못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과연 클레어를 찾아내 그녀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라파엘의 아이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많이 접해봤던, 익숙한 패턴들의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다만, 작가 기욤뮈소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점점 속도가 붙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다음 상황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의 다음 스릴러가 기대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자네도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거야. (185쪽)
마르크가 하인츠에게 납치되었던 당시의 남자아이(이제는 성인이 된)를 만나 건네줬던 조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남자아이에게는 순간의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이후에야 알 수 있을테니,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지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리 있나. 특히나 자신의 아이를 잃은 부모는 그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법을 터득할리 없다.
세상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지. 부모가 되면 훨씬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무한히 약한 존재가 되기도 해. 자식을 잃은 슬픔과 좌절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거야.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고통이 주어지니까. (411쪽)
<브루클린의 소녀>는 우리에게 묻는 듯 하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그 유한한 시간들이, 자식을 잃은 누군가의 부모들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과 같을 수 있겠느냐고.
덧. 한국인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대한민국에 갖고 있는 호감은 독자들만큼이나 커다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