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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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이 어쩐지 친근하게도 느껴지는 이 책은, 단편 7개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는 현재 일본에서 미스터리 작가로 가장 핫한 작가이기에 책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듯 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표지도 어찌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스르륵 읽어가면서,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특성 답지 않게 무겁지 않아 읽기 수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살인이나 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해결하는 셜록홈즈를 비롯한 여타 탐정수사물, 첩보 액션이 가미된 히어로물, 뒤를 절대 돌아보면 안 될것 같은 스릴러물 등을 떠올리지 않나. 살인 사건이 당연시되고,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이 온 힘을 다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사건을 풀어내는 그런 이야기 구조 말이다. 하지만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다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소소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에 맞게, 장소는 당연히 나가에의 원룸이다. 표지에 보이는 방은 아마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가에의 방인 듯 하다. 연보라색 띠지를 벗기면 가려진 이미지를 마저 볼 수 있는데, 쇼파 앞 식탁(테이블)에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와 술잔, 젓가락, 앞접시 등이 놓여 있다.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원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 표지 이야기를 하냐면 7개의 단편 모두 이 '술상' 주변에서 '말'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본 등장인물은 유아사 나쓰미(화자), 구마이 나기사, 나가에 다키아키 총 3명. 여기에 단편마다 게스트가 한 명씩 등장하니 대체로 이 술상에는 4명이 둘러앉아 밤을 즐긴다.

나가에, 구마이, 그리고 나는 대학 시절 술친구였다. 졸업 후에도 셋 다 도쿄에서 일하게 되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술자리를 갖곤 했다. 그런데 매번 같은 멤버만 모이다 보니 심심해져서 몇 년 전부터는 친구를 모임에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 친구들과 새로운 화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해서 어느 결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0쪽)

 

대학시절 술친구 3명은 하나의 음식(안주)를 정해 놓는다. 배 터질때까지 먹어보자, 혹은 이 음식을 질릴때까지 먹어보자 뭐 이런 느낌으로 잔뜩, 가득. 그리고 그에 맞는 술을 준비한다. (술에 대해 여러 지식이 있는 구마이가 선택과 추천을 도맡는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그에 관한 이야기(그러니까 안주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게스트들은 음식 혹은 술과 관련된 경험들을 꺼내놓게 되고 그러면서 나가에 원룸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바로 이때! 미스터리 추리물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바로 '나가에의 추리'다. 나가에는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게스트의 행동을 보면서 일반인들은 그냥 넘겨버릴 이야기들을 짚어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추리물의 느낌이 약간 난다.

 

나가에는 '너무 똑똑한 머리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81쪽)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나쓰미는 나가에의 똑똑함은 절대로 연애 상대로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라고 언급해 두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모두는 나가에의 앞에서 누군가가 숨겨뒀던, 혹은 자신이 숨겼던 것들을 들키게 된다. 자신도 원치 않게. 그렇게 밝혀진 감정들은 대개 사소한 것들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일종의 '숨겨진 마음'에 대한 것들. 그냥 지나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지만 굳이 짚어내는 나가에로 인해 알게 된 진심들인 것이다.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긴 것을 인정하고, 그 술자리는 외려 마음을 제대로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마음을 알게 된 커플이 6커플. 심지어 여기에는 화자 나쓰미 부부, 그 당시에는 커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하고 나가에가 그 이야기들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찾는 패턴이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패턴이 읽히는 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궁금하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 나가에의 입이 떼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술을 아주 즐기지는 않기에 책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술자리'라면 늘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그 친구들이 엄선해서 데려오는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좋은 음식 좋은 술.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한 마디로 힐링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치이면서 삶을 살아낸 스트레스를 하하호호 웃으면서 씻어낼 수 있는 공간. 감춰진 마음을 찾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누구든 숨기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에 의문점이 든다면 나가에에게 찾아가보길 권한다. 그는 그저 행동의 나열만으로 묘한 부분을 찾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게스트가 상처받을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으니 주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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