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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
존 스토트.데이비드 에드워즈 지음, 김일우 옮김 / 포이에마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소위 ‘신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신학’이 사회학, 철학과 같은 학문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학문의 정의로 볼 때,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 우선은 학문적으로 ‘신’을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은 무한자이고 인간은 유한자이다. 유한자가 무한자를 탐구하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유한의 잣대로 무한을 어떻게 잴 수 있고 어떻게 평가하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신을 연구의 대상으로 탐구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 어머니를 연구의 대상으로 탐구한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어머니를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연구한다면, 그 어머니는 더 이상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는 나와 애정과 나누며 감정을 교류하는 인격적 앎의 대상이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를 신학자로 명명하는데 일종의 거부감이 있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신에 대한 분석을 내놓지만 실제로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그들의 관념과 이성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신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에서 나의 이 생각은 보다 확고해 졌다.
존스토트가 이 책의 말미에서 결론적으로 잘 지적하고 있듯이, 자유주의자는 이성을 최종 권위로 삼고 있다.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모든 논쟁점은 결국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존 스토트의 답변은 자유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모두 성경적인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합리적인 광신자로 생각한다(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러하다). 그래서 존 스토트를 향해서도 근본주의자와 유사한 주장이라 생각되는 부분에서 공격하며, 자유주의자의 이성으로도 충분히 합리적일 때에는 칭찬을 한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자에게는 조금의 답도 주지 못한다. 기독교는 결코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거듭남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 책의 논쟁은 기독교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오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에드워즈의 주장은 아주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의 이해는 기껏해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철학일 뿐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은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유사품과 진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두 제품을 진열해놓고 세밀하게 차이점을 보여주고 설명할 때 이 둘의 차이를 보다 쉽게 식별할 수 있으며 진품의 진면목과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의 논쟁점은 기독교가 어떤 점에서 세상의 종교나 철학과 괘를 달리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 아직 기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미성숙한 성도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평신도가 보기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평소에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보다 깊게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