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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헬렌 켈러 지음, 이창식.박에스더 옮김 / 산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본서는 헬렌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짧은 에세이와 그녀가 23세 때 자서전을 묶어 놓은 책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에세이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며, 또 우리가 얼마나 복된 존재인지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헬렌켈러도 이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숲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별로 볼게 없어요 라고 말하지만, 자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숲에 볼 것이 너무나 많다며 일침을 가한다.
참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졋지만, 그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못 가진 것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고 있지 않는가?
나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22살때까지 살아왔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이 과연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의 글이란 말인가? 그의 탁월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는 이것이 과연 그녀 혼자 힘으로 썼을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보지도 못한 그녀가 노란색, 빨간색으로 물든 나뭇잎을 묘사하는 그런 구절들은 기묘하게 다가왔다.
빛에 대한 희미한 감각밖에 없는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묘사한 눈으로 뒤덮인 세상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문필가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마치 눈으로 본듯이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의 능력이 과연 어디까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보지 못하는 자가 보는 자 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니!!
내가 놀란 것은 책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 이 자서전이 그녀의 나이 불과 23세 때 적었다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를 40세나 혹은 그 이후, 인생의 완숙기에 들어섰을 때나 쓴 글 일것이라 추측하며 읽었는데, 겨우 23살의 나이라는 알고보니 더욱 놀라웠다.
그녀의 학구열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보지도 못하고 들을 수도 없는 자가 불어, 독일어, 라틴어, 헬라어까지 배우다니, 그것도 교양수준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원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터득했다니,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멀쩡한 나는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한 것인가!
헬렌켈레만큼이나 놀라운 사람은 그녀의 스승 설리반이다. 설리반은 무엇에 이끌려 헬렌켈러에게 그토록 헌신적일 수 있었을까? 설리반은 말 그대로 헬렌켈레의 수족이요, 눈이요, 귀였다. 설리반은 따뜻한 마음과 탁월하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헌신적이기 까지 하다. 그녀는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명성을 드러낼 수 있는 탁월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한 사람 헬렌켈러에게만 모든 열정 쏟아 부었다.
한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과 헌신....
우리가 이 두 사람의 반에 반만이라도 담는 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