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몸으로 말을 한다 - 과학과 종교를 유혹한 심신 의학의 문화사
앤 해링턴 지음, 조윤경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9세기 이후 공산주의의 사상적 기반이던 유물론은, 윤리학자와 종교계를 비롯한 전통적인 사상에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과학이라는 든든한 지지대를 없고 다시금 세력을 얻고 있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도 이제는 거의 뇌과학에 의존하고 있다. 마음은 뇌가 만들어 낸 소프트웨어 혹은 환각 체계라는 것이다.
철학계에서는 유물론의 대척점에서 또 하나의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유심론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물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학의 요지경 속에서 들여다보면 논리적으로 개연성이 있다.
‘마음은 몸으로 말을 한다’를 읽으면서 유심론과 유물론의 주장이 떠 올랐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사상적 논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마음과 몸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는 결국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육체와 영혼은 별개라는 서양 전통에 의해, 몸의 질병은 몸의 생리적 작용의 결과이지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일반적인 신념이, 실제로 몸에 영향을 미치는 마음의 효과를 인지한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음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흥미진지하게 기술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동양적 사상에서는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리 생소한 내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만, 동양의 여러 종교나 민간 사상에서는 명상이나 수행을 통한 육체의 치료와 단련은 오래된 전통이다. 그리고 오늘날 마음이 몸의 질병과 치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은 서양의학에서 나온 것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은 오늘날 상식에 속한다. 마음이 몸을 병들게도 하고 치유하게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는 아직도 이 부분에서는 혼란이 있는 것 같다. 심신 의학이나, 마음을 통한 치료는 아직도 비과학적이고 먼가 미심쩍은 종교적 속임수 정도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그 때문에 이 책이 쓰여졌을 것이다. 서양 문화권이나 의학계에서는 아직도 마음의 영향력보다는 자신들의 과학적이고 분석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에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동양 문화권에서 자랐다면 굳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주 오래 전에 심리학에 꽤 권위가 있는 어떤 학자가 동양의 침술에 대해 미신적인 주술행위처럼 묘사하는 책을 읽었다. 우리에게는 침술이 주술행위가 아니라 의학행위라는 것이 상식인데, 그네들에게는 어리석은 행위로 보여진 것이다. 서양의 극단적인 이원론과 분석적인 사고방식으로의 한계인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은 서양의 역사 속에서 몸에 대한 마음의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서양과 동양의 극명한 사고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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