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
정구선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를 보면서 오늘날의 정치 모습과 교차하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강직한 선비가 많았는데 오늘날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과, 예나 지금이나 올 곧는 정신을 가진 사람보다는 약삭빠른 정치꾼들이 세력을 잡는 것은 매 한가지구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비딱한 시선으로 보면, 이들의 반골성향이 순전함과 절개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소극적인 정치적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의 절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 이들이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 재야에 묻혀있는 것이 과연 옳았는냐 생각도 들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같이 학문이 뛰어났다 하는데, 정치가 더럽다하여 학문이나 닦겠다고 초야에서 숨어들거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비겁함일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야에 묻히면 자기 혼자는 깨끗할 수 있겠지만, 나라를 온통 간신배에게 맡긴 꼴이 아니겠는가? 내가 진흙탕물에 더렵혀질지라도 간신배들과 싸워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고 가는 것이 보다 더 옿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 얼마나 치열했고 급박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연 초야에 묻힌 것이 더 옳았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같다.
 
예전에 정치계에서 강하게 러브콜을 받은 어느 유력한 언론인이 다른 것은 다해도 국회위원만은 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정치에 나서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의 정치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좋지 못한지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정치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는 이들의 강직함이 드러나고 또 때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상소라는 훌륭한 여론 창구가 있었기 때문일진데,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의 정치제도는 열려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참혹한 사회가 많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사화를 함부로 재단할 수만은 없는 일 같다. 그런데 오늘날은 과연 언론의 소통이 있는가? 하는 회의도 든다. 제도적으로야 물론 민주화가 되었고 언론의 창구도 넘쳐나지만 실제로는 상소제도보다 훨씬 더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도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조선시대에는 시험을 치거나 가문 덕으로 정치를 했으니 정치에 대한 책임은 왕에게 있었지만, 지금은 국회위원을 뽑는 것이 국민이니, 전적으로 국민의 책임이 아닌가?
 
생사여탈권을 지고 있는 왕에게 굴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펼쳤던 선비정신, 이런 선비 정신을 지닌 자들을 가려 뽑을 수 있는 국민의 의식이 성숙해졋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