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지음 / 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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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없는 예수교회 – 민중신학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비판
 
예수없는 예수교회는 소위 ‘민중신학’적 입장에서 본 한국 기독교와 이른바 ‘정통’신학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 교회의 입장에서는 변명을 넘어 항변하고 싶은 내용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명에 앞서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 일 것입니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가 예수의 참 모습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 강조되거나 투영되기보다는 메마른 교리만이 강조되고 덧붙여 기복적인 승리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뼈저린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 한국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노력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에 대한 묵상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강단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신자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와 직결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약자의 친구였고 그들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교회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눈을 감고 교회가 권력과 타협하고 기득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이 부분에 가슴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예수를 잊어버리고 대신 취한 것은 승리주의였습니다. 승리주의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힘이 곧 진리’라는 말입니다.  기독교 승리주의는 ‘내가 만사형통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은 무조건 내편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한국 교회는 저자의 지적에 할말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승리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주의를 경계할 뿐 아니라 우상 숭배라고까지 이야기 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기독교인이라면,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회개하고 반성해야할 것입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 부분도 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미국의 정치인들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승리주의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예수님의 삶을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간에, 한국 교인들은 성도를 ‘크리스챤’(예수를 닮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예수님의 삶과는 동떨어지게 살고 있다는 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조금 변명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지적하고 반박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부분은 어차피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설득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문자 그대로의 ‘정통 기독교’는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십자군이나, 식민지 침탈, 부시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닙니다. 저자도 같은 말은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저자는 참 기독교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교회, 참 기독교는 언제나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며 예수를 따르며 살아왔고, 그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살아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당시 권력자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을 빌어 자신의 침탈야욕, 혹은 정치적 야심을 포장해서 일으킨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모이고 권력이 모이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는데, 교회가 세력이 커지자 교인들이 교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고 참 교인들은 권력화되고 제도화된 교회에서 비껴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교회의 실제  모습입니다.
 
 콘스탄틴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기독교의 권력을 얻게 되고, 참 성도들은 뒤로 밀려나가 점차로 세속적인 권력이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자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수도원 운동도 권력화되고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그것도 변질되자  청교도가 일어나고 청교도가 부패하자 대 각성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교회는 세상에서 세력을 얻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잠깐동안 그럴 때도 있지만 언제나 세상에서는 볼품이 없게 비춰졌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가 회복시키길 원하는 기독교와 교회는 이러한 살아있는 참 교회가 아니라 종교로서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되기 힘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저자의 꾸지람에 귀를 기울여야할 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예수님과 그가 걸어가신 길을 묵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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