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7 - 1941-1945 밤이 길더니… 먼동이 튼다, 완결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7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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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시백 님의 <35년>이 7권의 출간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책은 일제 강점기 35년의 역사를 5년씩 끊어서 쓴 역사 만화다. 안그래도 무겁고 가슴 아픈 시대를 글로 만나볼 엄두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한 일반 대중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춘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고 칭송받아 마땅할 것이다. 더불어 꼼꼼한 자료 조사와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묘사는 시대와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35년>은 저자가 2015년부터 시작해 근 6년여 간의 작업을 통해 완성한 역작이다.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민족반역자들을 알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소박한 바람은 충분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35년 7권>에서는 수많은 친일파들의 향연이 시작부터 화려하게(?) 펼쳐진다. '친일 대합창'으로 명명한 각계각층의 친일민족반역자(이하 친일파)들의 면면은 놀랍기 그지없다.



일본 육사와 만주 군관학교 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육계, 종교계, 예술계 등도 예외가 없었다. 이순신·유관순·윤봉길 등 역사인물 표준영정 제작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친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교육계와 종교계는 그 특성때문에라도 친일 문제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이 있어야 했지 않을까! 이화여대·서울여대·연세대·고려대의 초대 총장들은 모두 친일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고, 개신교·천주교·불교·유교의 지도자들도 매한가지였다. 과거 자신의 잘못된 친일 행적에 대한 고백과 반성조차 하지 않은 인물들을 우리는 용서해야만 하는 것일까?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유지 등 사실상 모든 것을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행동준승 9개항'을 철폐하고 중국정부로부터 작전지휘권을 되찾은 임시정부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21세기 세계 10위권 국가임을 내세우면서도 전작권 환수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한국의 전직 장성들과 국방장관 출신 인물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리라. 다른 이들은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고 해도 한국군을 실제로 통솔했어야 할 당신네들은 찬성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지휘관'이라는 이름조차 민망하니 당장 그 견장을 떼라 하고 싶다.


미국 내 이승만의 활동은 이 시기에도 얄밉다. 이승만, 그가 가는 곳이면 언제나 불신과 분열이 피어난다. 한인 동포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낳고 조직과 단체의 와해를 가져오기 일쑤다. 재미한족연합회와 주미외교위원부의 개조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임시정부와 김구는 왜 이승만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백범이 임시대통령에서조차 탄핵된 이승만을 줄곧 옹호한 까닭은 무엇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 사람 일이라고 하더니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제의 패망을 앞둔 1940년대 각지의 독립운동 세력은 통합과 연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연합국으로부터 국제법상 '교전 단체(준정부)'로 승인받기 위해서, 또 조국의 해방에 일정한 수준이라도 군사적 기여를 하기 위해서, 임시정부를 비롯한 우리 독립운동 세력들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 그러나 해방은 도둑같이 왔으니! 일제의 항복은 그 시점마저도 우리 독립운동이 가져올 결실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했다. 한국의 독립을 유보하고 신탁통치를 구상해 추진했던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 어릴 적부터 위인전으로 만나본 그들은 또 어떠했는가!


"잘 준비된 2,500명의 미 군정 인사들에 의해 전범국 일본은 차근차근 안정된 민주화, 전후 복구의 길을 밟아나갔다. 반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의 피해국이었던 우리에게는 분단과 혼란이 차려졌다." (294쪽 인용)


마지막 페이지의 울림은 길게 남았다. 가슴 먹먹한 안타까움 그리고 억울함이 느껴졌다. 왜 일본을 대신해 우리가 분단이 되어야 했는가? 그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전범국 독일이 연합국에 의해 분단되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는 응당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분단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애꿎은 우리가 분단이 되어야 했는가? 그 주범은 누구인가? 이 문제의 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해방 전후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가늠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은 단 한순간도 끊임이 없었다. 한 세대를 뛰어넘는 부단한 항일 투쟁의 역사를 우리는 박시백 님의 <35년(전 7권)>으로 그 전모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만화가 가진 서사와 묘사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으로, 우리는 아프지만 자랑스럽고, 치욕스럽지만 가슴 벅찬 항일 투쟁의 역사와 친일 반민족의 행위를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중한 기회를 모든 이들이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람이 없겠다. 매 권 말미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연표와 인명사전도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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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
김종훈 지음 / 이케이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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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에 이렇게 많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파)가 묻혀 있을 줄이야 누가 제대로 알았으랴.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이 불철저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 사실상 단 한 명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해 좌절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옳을 것 같다 - 그것의 명확한 현주소를 우리는 이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를 통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책은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4.19국립묘지, 효창공원에 안치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20년 올해 광복회장 김원웅의 8.15 광복절 기념사로 촉발된 논란은 대한민국 친일파 청산의 현실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이정표였다. 광복회장의 발언 중 현충원과 관련된 부분은 국립묘지에서 친일파의 묘를 이장할 것인지, 만약 이장을 안할 경우에는 묘지에 친일행적비를 세우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런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 찬반을 물었더니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의 2/3가 넘는 인원이 찬성했고,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미래통합당도 과반수 넘게 찬성했으니 올해 법개정을 기대해 본다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 확인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의 면면은 놀라웠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등재된 '국가 공인 친일파'가 너무도 많았다. 특히 만주의 항일무장부대 토벌에 앞장섰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인물들(김백일, 송석하 등)과, 일본 육사 졸업 후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던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한 인물들(이응준, 신태영 등)이 국립현충원에 독립지사들과 함께 묻혀 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실이다. 그것도 친일파의 묘가 독립운동가의 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거나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라니!!!


흔히 회자되는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공연히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안동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씨의 말은 너무 서글프고 가슴 아팠다.

"이상룡 지사의 후손인 이항증 선생은 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그랬듯 그 역시도 어린 시절 고아원에 갈 정도로 어려웠다. 언젠가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는 "나 사는 모습 보면 누가 애국하려고 할까 싶냐"면서 "잘사는 애국지사 후손들이 (언론에) 나와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니까 국가가 보호해주는구나' 하고 애국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107쪽 인용)



석주 이상룡 선생이 누구던가? 서간도의 대표적인 독립군인 서로군정서의 독판(총재에 해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하신 분이다. 서울시가 2019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은 1만7천여 명인데 이 중 74.2%가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동아일보 보도 참고) 사람들이 하는 그 말이 사실임을 통계로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예관 신규식 선생은 을사늑약에 저항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해 쑨원의 신해혁명에도 참가해 중국 정부의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웠다. 상하이에 망명한 독립지사들이 활동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분이었다. 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지낸 선생의 묘는 친일파 이응준과 신태영의 묘가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이들 '국가 공인 친일파'들과 달리 일본 육사를 나왔지만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교관, 서로군정서 사령관,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총사령을 역임한 지청천 장군도 친일파 이응준의 발 아래 잠들었다.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있는 백홍석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우러러 하늘에, 구불어 땅에,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오직 나라에의 충절 외길만을 걸어오신 참군인이었다."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 것도 아닌데,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25년간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고 제대 후 병력동원 업무를 맡은 인물인데도 이런 비문을 쓰다니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비공인 친일파' 김창룡은 어떠한가. 그는 일본 관동군 헌병 분대장 출신으로 만주에서 50여 건이 넘게 항일 조직을 적발했다. 그러한 경력이 이승만 정권의 방첩대 대장으로 활약하는 토대가 되었다. 백범 김구 암살의 배후 인물로 안두희를 비호하기도 했던 그 역시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도 올해 7월 이 곳에 묻혔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의 무덤도 여기다.


서울현충원의 충열대 '민족의 얼' 글씨는 만주군 출신의 박정희가 썼고, 대전현충원의 현판은 독재자 전두환이 썼으며, 4.19 국립묘지에 있는 사월학생혁명기념탑의 설계와 조각은 친일파 김경승이 맡았다고 한다. 수유리 묘역에 안장된 성균관대 설립자이자 초대총장 김창숙 선생은 빛나는 항일 투쟁도 존경스러웠지만 광복 이후의 삶 또한 멋있었다. 이승만에 대한 반독재투쟁도 그랬고, 병문안 온 박정희를 외면하고 벽을 향해 돌아누운 것도 그랬다.


효창원(=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가 안장되어 있다. 이곳의 사연은 실로 기막힐 정도다. 이승만은 백범 사후 경찰을 배치해 참배 행렬을 강제로 막았고, 심지어 묘소의 이장까지 계획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이 묘역 앞에 드러누워 막아냈으나 이승만 정권은 운동장 공사를 강행했고, 박정희 정권은 골프장 공사까지 시도했었다. 효창원은 구청이 관리하는 근린공원시설로 분류되어 현충원 같은 국가적 관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올해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라면 대규모 행사들이 진행되었을 것인데 참으로 애석하다. 그렇기에 이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의 독서가 더욱 의미가 있었고,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된 것도 많았다. 역사의 무게와 의미, 그리고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삶과 투쟁에 대해 되새겨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저자 김종훈 님의 전작인 <임정로드 4000km>와 <약산로드 7000km>도 이참에 한번 찾아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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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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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요일 오전이면 아버지는 늘 전축을 틀고 청소를 하셨다. 그러면 나와 누이들은 각자 맡은 방을 손걸레로 닦았는데, 그때 나오던 음악은 언제나 클래식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카타리'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의 칸초네 '무정한 마음'(Core’ Ngato)이다. 그때는 그게 왜 '아가리'로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흥얼대던 내 목소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을 보니 청소할 때 듣는 클래식 음악도 있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 '판타지아'와 영화 '마법사의 제자'에서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청소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제목을 뽑은 듯한데 실제 들어보니 청소할 때 듣기에 좋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풍성한 곡이었다. 다만 요즘은 진공청소기를 주로 쓰다보니 청소할 때 음악을 듣기는 쉽지 않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서를 지향한다. 작가의 머리말에도 밝혔듯이 난해한 음악이론은 가급적 제외하고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책을 엮었다. 한 꼭지는 세심하게 길이를 다듬어 3~4페이지로 구성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딱 적당하다. 그리하여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하루에 한곡씩 총 90곡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QR코드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곡에 대한 흥미로운 사연들을 읽는 것은 특별하고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제공한다.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연주자들과 필하모닉의 명음반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책에서 소개된 사연과 음악적 스토리를 떠올리며 곡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알찬 감상 팁까지 실려 있어 보다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이 가능하다. 추천 음반은 멋진 덤이다.


'첼로의 구약성서'라는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첼로의 신약성서'라고 불리우는 베토벤의 <5개의 첼로 소나타>는 이름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냈다. 책의 각주로만 소개되어 있는 베토벤의 첼로곡을 일부러 찾아듣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9번 교향곡의 저주'도 재미있는데 베토벤 이후 많은 작곡가가 교향곡 9번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징크스라고 한다. 구스타프 말러는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결국 10번 교향곡을 완성치 못하고 죽었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클래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끝없이 풀어낸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작품의 풍부함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품과 작곡가, 그의 연인과 가족들에 대한 것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개인적 뇌피셜로 얘기하자면 <90일 밤의 클래식>은 천일야화로 불리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천일야화 속에서 세헤라자드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넘기 위해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 책의 저자 김태용은 하루의 끝에 아름다운 고전음악으로 우리의 밤을 다사롭게 해주는 '90일의 클래식야화'를 풀어냈다고 하겠다.


보통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알려진 <네순 도르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투란도트 공주의 끔찍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칼라프는 공주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것이고 내일이 밝으면 승리는 나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최고의 시그니처 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지독한 혹평 속에 연주 불가 판정까지 받았다고 하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였던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매우 귀에 익은 선율이었다. QR코드로 본 연주 실황에서는 지휘자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지휘를 하며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속력으로 질주하듯이!'라는 서곡의 느낌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살려내고자 한 것 같다.


<90일 밤의 클래식>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도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무소륵스키와 비제의 피아노곡 <어린이 놀이>는 눈앞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어린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Op. 64-1)>는 반려견이 자기의 꼬리를 잡으려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데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를 편곡한 <피아노 5중주>의 4악장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로 물가에서 힘차게 뛰노는 송어를 멋지게 형상화해낸 것이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다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고난도의 현란한 테크닉이 넘쳐나는 곡이어서 그것을 실현해 내는 연주자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이든의 <45번 고별 교향곡>은 클래식의 교향곡 연주에 익살스런 퍼포먼스(단원들이 중간에 악기를 들고 연이어 퇴장하는)를 추가하는 기발한 발상도 놀랍지만, 단원들의 휴가를 위한 하이든의 배려가 더욱 돋보였다.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 하이든의 넉넉한 성품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쉽게 읽고 깊이 있게 듣는 90일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90일 밤의 클래식>으로 '해설이 있는 음악'과 함께 하루의 끝을 차분히 마무리해보는 경험은 행복했다. 오랫만에 클래식 음악을 읽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책 표지에 쓰여진 카피와 작가의 머리말에서 얘기했던 집필의도가 충실히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클래식 문외한과 입문자, 클래식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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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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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람은 봄마다 불어서 겨울을 되돌리지만, 한번 잃어버린 국권은 아무리 봄을 외쳐도 되돌아오지 않더라"(285쪽)며 변명하는 단원에게 의열단은 이렇게 답한다. "오지 않을 독립은 동지와 조국을 배신한 핑계가 되지 않는다."(286쪽) <독립혁명가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웹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삼키고 일신의 고난을 인내하며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스스로 박차고 가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에 나선 이회영 선생과 6형제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제법 알려진 편인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분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더욱 자랑스럽다. 그런 분들 중에는 조선의 양반 명문가의 후손들이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안동 임청각의 17대 종손으로 서간도의 독립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의 국무령에 추대되기도 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도 그렇고, 노름빚으로 가산을 탕진해 파락호로 손가락질 받았으나 사실은 독립군 자금을 대기 위한 위장이었음이 밝혀진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 김용환 선생도 그랬다. 신민회가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회영의 둘째 형이었던 이석영 선생의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약산 김원봉은 이석영 선생이 지원하고 이상룡 선생이 설립을 주도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독립혁명가 김원봉> 책의 말미에 실린 선생의 연보에 따르면 3개월 만에 퇴교하였는데, 이는 4년제 본과반이 아닌 3개월과 6개월 과정으로 운영된 특별과 속성반을 수료한 것으로 보인다. 약산은 바로 이곳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동지들을 중심으로 의열단을 만들었다. 후에 임시정부의 김구가 한인애국단을 창설하는 것도 이 의열단을 본딴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의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이름이다. 2020년 올해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군을 상대로 우리 독립전쟁사에 찬란한 승리를 남긴 이 전투에서 활약한 독립군 초급장교들은 대부분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지역 독립군의 근간이었고,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길었던 35년 간의 독립전쟁도 없었을 것이며,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 단장, 민족혁명당 대표, 조선의용대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국방부장관),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을 역임했다. 직함만 슬쩍 둘러봐도 우리 독립운동사의 핵심적 주역이었다. 하지만 조국의 남북 분단과 좌우의 이념 대립이라는 현실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인물이다. 그렇기에 혁혁한 독립투사요, 비중과 역할 모두에서 핵심적인 독립운동가였음에도 그의 삶은 단편적으로만 전해질 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한국 만화계의 거장 허영만 선생의 글과 그림으로<독립혁명가 김원봉>의 삶과 투쟁의 역사가 재탄생되었다.



일제의 주요 인물과 시설에 대한 파괴와 암살을 주로 했던 의열단은 일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원봉에게 걸린 일제의 현상금이 김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에 대한 폭탄 의거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특히 김지섭 선생의 일본 궁성 투탄 의거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선생은 원래 일본의 내각총리와 조선총독이 참여하는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휴회된 관계로 일왕의 궁궐에 폭탄을 던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궁성 진입에 실패하자 연결 다리인 니주바시(이중교)에 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약산이 의열단원들과 함께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한 것은 활동 노선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개인적 폭력투쟁의 한계를 넘어 보다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위한 군대 양성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이는 향후 조선의용대의 창설로 이어졌고, 조선의용대는 다시 화북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게 되니 1940년대 우리 독립군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장 겸 광복군 부사령으로 8.15 광복을 맞이한 약산은 귀국 후에는 임시정부의 인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대체로 중도좌파 계열로 활동했던 약산은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수모를 겪는다. 해방된 조국 땅에서 빛나는 명성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가장 악질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따귀를 맞고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만화로 보는데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친일파 노덕술은 대한민국에서 3개의 훈장을 받았으나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단 하나의 훈장도 받지 못했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다.


책은 김원봉의 어린 시절과 북으로 월북한 이후의 삶은 다루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지만 자료의 부족과 분단의 상황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야말로 이념의 잣대에서 벗어나 좌우익의 독립운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책에서 허영만 선생의 그림은 선이 굵고 필치가 거칠다.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체를 좋아하는 나의 기호와는 다르지만, 척박한 현실에서 지난한 독립투쟁을 벌인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더 적합했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김원봉과 의열단의 전체 모습을 조감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독립혁명가 김원봉>은 작년 2019년에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성남시에서 진행한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내년 2021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진행 중인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는 올해 1차 완성본인 33명의 독립운동가 웹툰을 만화책으로 출판한다. 이 책의 김원봉 외에도 김구, 정정화, 홍범도, 남상목, 윤봉길, 박상진 등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을 웹툰과 만화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큰 기쁨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더하여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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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영문법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주선이 지음 / 사람in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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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학습의 명가 사람in 출판사에서 새 책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영문법>이 나왔다. 사람in의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시리즈는 2019년 9월 첫 책이 나왔는데,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의 저자인 주선이 님의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파닉스>가 그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 도서는 파닉스, 사이트워드, 영단어, 영어표현, 영문법까지 총 다섯 권이다. 영문법이라는 컨텐츠의 난이도도 그렇고, 수미상응이라는 말처럼 첫 저자가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영문법>은 사실상 이 시리즈의 완결판이 아닐까 한다.


학습도서를 볼 때는 저자의 머리말이나 책의 구성 및 활용법에 대한 안내를 눈여겨보게 된다. 해당 도서만이 갖는 특징과 학습법에 대한 저자의 노하우가 집약적으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영문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념 위주로 학습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야말로 문법이라는 숲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인데, 목차와 제목에 집중할 것을 반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책은 Warm-up으로 시작된다. 본격적인 문법 학습에 앞서 문장의 구성을 비롯해 품사와 시제 등 문법 용어를 해설하는 부분이다. 없었다면 상당히 아쉬웠을 내용이다.



책은 초등학생의 발달 수준에 맞추어 각 Unit에서 배울 문법의 개념과 규칙들을 만화로 구성하여 제시한다. 해당 유닛에서 다룰 핵심 개념이나 상황들을 요령 있게 정리하여 학습의 도입부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동기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시작할 때는 물론 유닛의 학습을 마무리할 때 '학습 정리'의 형태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상황을 보여주는 만화가 꽤나 센스있고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어 어른인 나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각 문법 규칙들은 'Rule'이라는 이름으로 박스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개념을 설명했다. 같은 유형의 규칙에 속하지만 내용이 달라지는 부분에서는 1-1, 1-2... 형태로 나누어 제시해서 그 차이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개념 설명에서 중요 단어는 굵은 글씨와 빨간 글씨로 표현해 더욱 집중하도록 했다. 큼직큼직한 글씨와 여유있는 공간 배치는 초등학생의 일반적인 쓰기 습관에 맞추어져 있고, 챕터마다 테마의 색깔을 달리하여 통일성과 변화를 준 것에서는 책을 꾸미는 사람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각각의 문법 Rule 밑에는 해당 규칙을 바로 적용하여 어구와 문장을 쓰는 문제가 실려 있다. 간단한 문제에서 좀더 복잡한 문제로 난이도에 따라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제를 푼다기보다는 문법 규칙을 활용하여 어구와 문장을 표현해보는 성격이 더 강하다. 따라서 단순한 문제 풀이가 아닌 개념의 확인과 적용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문법책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시리즈의 다른 책에서 계속 봐왔던 QR코드가 보이지 않아 살짝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내용상으로도 없는 것이 맞는 듯하다.



Review는 3~4개 정도의 관련 유닛을 묶어 문법의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복습하는 부분이다. 앞의 본문에서 Rule로 나왔던 규칙들과 그 개념 해설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주가 되는데, 책의 후반부로 가게 되면 개념 확인 뿐만 아니라 문법 규칙을 적용해 간단하게 문장과 어구를 쓰는 것도 나온다. 반복과 복습은 학습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복습은 일종의 습관의 영역이다. 학습 습관에서 복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만큼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얼핏 단순해 보일수도 있는 Review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주요 부분이다.


<초등 영어를 결정하는 영문법>은 한 권으로 초등 문법의 기초 골격을 완성할 수 있도록 꾸며진 책이다. 초등 영문법의 핵심적인 개념과 규칙, 문제와 리뷰가 탄탄한 구성으로 조합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깔끔하고 정성어린 편집은 학습에 안정감을 주고, 재미있게 구성된 만화는 동기유발과 학습정리에 적당하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첫 영문법 공부를 쉽고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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