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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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람은 봄마다 불어서 겨울을 되돌리지만, 한번 잃어버린 국권은 아무리 봄을 외쳐도 되돌아오지 않더라"(285쪽)며 변명하는 단원에게 의열단은 이렇게 답한다. "오지 않을 독립은 동지와 조국을 배신한 핑계가 되지 않는다."(286쪽) <독립혁명가 김원봉>은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웹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삼키고 일신의 고난을 인내하며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스스로 박차고 가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에 나선 이회영 선생과 6형제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제법 알려진 편인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분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더욱 자랑스럽다. 그런 분들 중에는 조선의 양반 명문가의 후손들이 많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안동 임청각의 17대 종손으로 서간도의 독립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의 국무령에 추대되기도 했던 석주 이상룡 선생도 그렇고, 노름빚으로 가산을 탕진해 파락호로 손가락질 받았으나 사실은 독립군 자금을 대기 위한 위장이었음이 밝혀진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 김용환 선생도 그랬다. 신민회가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회영의 둘째 형이었던 이석영 선생의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약산 김원봉은 이석영 선생이 지원하고 이상룡 선생이 설립을 주도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독립혁명가 김원봉> 책의 말미에 실린 선생의 연보에 따르면 3개월 만에 퇴교하였는데, 이는 4년제 본과반이 아닌 3개월과 6개월 과정으로 운영된 특별과 속성반을 수료한 것으로 보인다. 약산은 바로 이곳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동지들을 중심으로 의열단을 만들었다. 후에 임시정부의 김구가 한인애국단을 창설하는 것도 이 의열단을 본딴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의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이름이다. 2020년 올해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군을 상대로 우리 독립전쟁사에 찬란한 승리를 남긴 이 전투에서 활약한 독립군 초급장교들은 대부분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지역 독립군의 근간이었고,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길었던 35년 간의 독립전쟁도 없었을 것이며, 약산 김원봉 선생의 의열단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 단장, 민족혁명당 대표, 조선의용대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국방부장관),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을 역임했다. 직함만 슬쩍 둘러봐도 우리 독립운동사의 핵심적 주역이었다. 하지만 조국의 남북 분단과 좌우의 이념 대립이라는 현실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인물이다. 그렇기에 혁혁한 독립투사요, 비중과 역할 모두에서 핵심적인 독립운동가였음에도 그의 삶은 단편적으로만 전해질 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한국 만화계의 거장 허영만 선생의 글과 그림으로<독립혁명가 김원봉>의 삶과 투쟁의 역사가 재탄생되었다.



일제의 주요 인물과 시설에 대한 파괴와 암살을 주로 했던 의열단은 일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원봉에게 걸린 일제의 현상금이 김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에 대한 폭탄 의거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특히 김지섭 선생의 일본 궁성 투탄 의거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선생은 원래 일본의 내각총리와 조선총독이 참여하는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휴회된 관계로 일왕의 궁궐에 폭탄을 던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궁성 진입에 실패하자 연결 다리인 니주바시(이중교)에 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약산이 의열단원들과 함께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한 것은 활동 노선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개인적 폭력투쟁의 한계를 넘어 보다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위한 군대 양성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이는 향후 조선의용대의 창설로 이어졌고, 조선의용대는 다시 화북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게 되니 1940년대 우리 독립군의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장 겸 광복군 부사령으로 8.15 광복을 맞이한 약산은 귀국 후에는 임시정부의 인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다. 대체로 중도좌파 계열로 활동했던 약산은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수모를 겪는다. 해방된 조국 땅에서 빛나는 명성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가장 악질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따귀를 맞고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만화로 보는데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친일파 노덕술은 대한민국에서 3개의 훈장을 받았으나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단 하나의 훈장도 받지 못했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다.


책은 김원봉의 어린 시절과 북으로 월북한 이후의 삶은 다루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지만 자료의 부족과 분단의 상황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야말로 이념의 잣대에서 벗어나 좌우익의 독립운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책에서 허영만 선생의 그림은 선이 굵고 필치가 거칠다.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체를 좋아하는 나의 기호와는 다르지만, 척박한 현실에서 지난한 독립투쟁을 벌인 당대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더 적합했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김원봉과 의열단의 전체 모습을 조감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독립혁명가 김원봉>은 작년 2019년에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성남시에서 진행한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내년 2021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진행 중인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는 올해 1차 완성본인 33명의 독립운동가 웹툰을 만화책으로 출판한다. 이 책의 김원봉 외에도 김구, 정정화, 홍범도, 남상목, 윤봉길, 박상진 등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을 웹툰과 만화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큰 기쁨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더하여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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