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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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요일 오전이면 아버지는 늘 전축을 틀고 청소를 하셨다. 그러면 나와 누이들은 각자 맡은 방을 손걸레로 닦았는데, 그때 나오던 음악은 언제나 클래식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카타리'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의 칸초네 '무정한 마음'(Core’ Ngato)이다. 그때는 그게 왜 '아가리'로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흥얼대던 내 목소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을 보니 청소할 때 듣는 클래식 음악도 있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 '판타지아'와 영화 '마법사의 제자'에서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청소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제목을 뽑은 듯한데 실제 들어보니 청소할 때 듣기에 좋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풍성한 곡이었다. 다만 요즘은 진공청소기를 주로 쓰다보니 청소할 때 음악을 듣기는 쉽지 않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서를 지향한다. 작가의 머리말에도 밝혔듯이 난해한 음악이론은 가급적 제외하고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책을 엮었다. 한 꼭지는 세심하게 길이를 다듬어 3~4페이지로 구성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딱 적당하다. 그리하여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하루에 한곡씩 총 90곡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QR코드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곡에 대한 흥미로운 사연들을 읽는 것은 특별하고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제공한다.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연주자들과 필하모닉의 명음반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책에서 소개된 사연과 음악적 스토리를 떠올리며 곡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알찬 감상 팁까지 실려 있어 보다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이 가능하다. 추천 음반은 멋진 덤이다.


'첼로의 구약성서'라는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첼로의 신약성서'라고 불리우는 베토벤의 <5개의 첼로 소나타>는 이름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냈다. 책의 각주로만 소개되어 있는 베토벤의 첼로곡을 일부러 찾아듣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9번 교향곡의 저주'도 재미있는데 베토벤 이후 많은 작곡가가 교향곡 9번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징크스라고 한다. 구스타프 말러는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결국 10번 교향곡을 완성치 못하고 죽었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클래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끝없이 풀어낸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작품의 풍부함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품과 작곡가, 그의 연인과 가족들에 대한 것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개인적 뇌피셜로 얘기하자면 <90일 밤의 클래식>은 천일야화로 불리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천일야화 속에서 세헤라자드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넘기 위해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 책의 저자 김태용은 하루의 끝에 아름다운 고전음악으로 우리의 밤을 다사롭게 해주는 '90일의 클래식야화'를 풀어냈다고 하겠다.


보통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알려진 <네순 도르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투란도트 공주의 끔찍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칼라프는 공주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것이고 내일이 밝으면 승리는 나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최고의 시그니처 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지독한 혹평 속에 연주 불가 판정까지 받았다고 하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였던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매우 귀에 익은 선율이었다. QR코드로 본 연주 실황에서는 지휘자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지휘를 하며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속력으로 질주하듯이!'라는 서곡의 느낌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살려내고자 한 것 같다.


<90일 밤의 클래식>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도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무소륵스키와 비제의 피아노곡 <어린이 놀이>는 눈앞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어린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Op. 64-1)>는 반려견이 자기의 꼬리를 잡으려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데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를 편곡한 <피아노 5중주>의 4악장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로 물가에서 힘차게 뛰노는 송어를 멋지게 형상화해낸 것이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다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고난도의 현란한 테크닉이 넘쳐나는 곡이어서 그것을 실현해 내는 연주자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이든의 <45번 고별 교향곡>은 클래식의 교향곡 연주에 익살스런 퍼포먼스(단원들이 중간에 악기를 들고 연이어 퇴장하는)를 추가하는 기발한 발상도 놀랍지만, 단원들의 휴가를 위한 하이든의 배려가 더욱 돋보였다.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 하이든의 넉넉한 성품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쉽게 읽고 깊이 있게 듣는 90일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90일 밤의 클래식>으로 '해설이 있는 음악'과 함께 하루의 끝을 차분히 마무리해보는 경험은 행복했다. 오랫만에 클래식 음악을 읽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책 표지에 쓰여진 카피와 작가의 머리말에서 얘기했던 집필의도가 충실히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클래식 문외한과 입문자, 클래식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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