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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 역사와 문화가 보이는 서양 건축 여행
스기모토 다쓰히코나가오키 미쓰루.가부라기 다카노리 외 지음, 고시이 다카시 그림, 노경아 / 어크로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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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사람과 공간으로 기억된다. 함께 한 사람들과 공간을 채운 자연과 건물들이다. 국내 여행을 하든 해외 여행을 하든 늘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는 머릿 속 추억을 가득 채우는 건축물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었다. 그나마 국내 여행은 안내판이 있어 다행이지만, 해외 여행을 할 때는 언어 문제로 까막눈을 벗어날 수 없으니 더욱 아쉬웠다. 비가 내리던 포로 로마노에서 느꼈던 지적 갈증과 안타까움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래서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가 더욱 반가웠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여행 전후로 르네상스 미술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는데, 그 때는 주로 회화와 조각, 미술가들에 대한 것들을 봤었던 것 같다.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다큐 영화를 메가박스에서 보기도 했다.(주로 졸았지만^^) 아무튼 부족했던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이다.



책은 시대별로 나누어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의 5부로 구성되어 있고, 총 65개의 소챕터에 69개의 건축물을 다루고 있다. 사진은 한장도 실려 있지 않다. 대신 420여컷의 일러스트 그림이 실려 있다. 디테일이 풍부한 일러스트는 건물의 외관과 세부, 단면과 구조 등을 다채롭게 실어 건축의 특징과 관련 용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만약 고시이 다카시의 그림이 없었다면 이 책은 그 매력을 크게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림은 건물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의 시대 풍경과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 형태로도 제시되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서양 역사상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대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꾸며진 대중 교양서로, 일본의 문화적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건축의 대표적 양식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의 특징,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의 비교,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차이 등을 글과 그림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구별은 가장 간단한 것이었다.



책을 통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오렌지색 지붕과 플라차 거리에 담긴 사연도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게 되는 가우디의 걸작 카사 바트요는 카달루냐판 아르누보였고, 크라이슬러 빌딩으로 대표되는 뉴욕의 마천루들은 전세계에 확산된 최초의 건축 양식인 아르데코 스타일이었다. 파리의 루브르에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진 사연도 알 수 있었는데, 이로써 첫번째 챕터와 마지막 챕터가 모두 피라미드가 되었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와 건축물들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유럽 여행이라곤 달랑 한 나라 밖에 간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 건물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5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오더와 아치를 결합한 장식 오더의 완성을 보여주었고, 판테온(2세기)의 초대형 돔이 가능했던 것은 로만 콘크리트와 아치 구조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파리 한복판에도 판테온이 있었고(18세기 생트주느비에브 교회), 베를린의 알테스 무제움 박물관에도 판테온이 있었다. 건축물에도 영화계처럼 '오마주'가 있는 것일까?



피렌체의 두오모(산타마리아 델피오레 성당)는 브루넬리스키의 이중 구조 돔 설계로 완성될 수 있었고,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 있는 팔라초 델세나토레에서 미켈란젤로가 구사한 자이언트 오더와 수직적 분할은 후대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다면 다음 여행지는 역시 영국과 프랑스라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고딕과 바로크 건축의 성지를 두 눈에 담고 직접 밟아보고 싶다. 19세기에 재건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고딕 리바이벌이었고, 베르사유 궁전의 주역 루이 르보가 설계한 보르비콩트 성의 정원은 가슴이 웅장해질 것 같다.


책은 부록으로 서양 연표와 서양 건축 지도를 실었다. 연표 옆에는 건축사의 흐름을 요약해 실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해하도록 배려했고, 서양 건축 지도에는 본문에서 다룬 건축물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번호를 붙여 표시했다. 다만 아쉬운 건 색인이 없다는 것이다. 책이 글과 그림으로 건축물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을 잘 이해시켜 주고 있으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몇 챕터 뒤를 읽을 때는(혹은 하루이틀 뒤에 읽을 때는) 헷갈리거나 생각나지 않는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앞의 내용들을 뒤적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에게, 여행을 통해 접했던 기념비적 건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욱 반갑고 재미있는 책이다. 하나의 소챕터당 4~5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건축물과 관련된 사연과 인물의 이야기를 좀더 보강해서 6페이지 정도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히 평한다면 이 책을 읽고 건축에 대해 새롭게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분명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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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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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19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출범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는 뜻이다. 독립과 건국을 위해 전개된 다방면의 노력과 운동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되짚어보고, 그렇게 성취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색해보는 다양하고 뜻깊은 행사들이 기획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저작들이 작년과 올해 연이어 출판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의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도 그러한 결과물 중의 하나이다.


저자 김호기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와 시민사회, NGO와 시민운동, 지식인과 시대정신 등을 키워드 삼아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깊이 천착해온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진보적 사회학자이다. 그는 이미 2002년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첨단공학, 예술 및 대중문화 등을 포괄한 29개 분야의 학문적 쟁점을 소개하고 그 토론과 전망을 보여주는 책 <지식의 최전선>을 선보였다. 작년 2019년에는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함께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60명의 지식인을 통해 살펴보는 대한민국 100년의 지성사(知性史)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되는 60명의 지식인에는 독립운동가, 종교인, 철학자, 문학인, 예술가, 역사학자, 정치가, 경제학자, 여성학자, 자연과학자 등등 실로 다양한 면면을 자랑한다. 이처럼 방대한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저자의 박학강기에 놀랄 따름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한국일보에 2018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연재했던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책의 집필 의도는 다음의 문장에서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미래는 과거 기억의 현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궈나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지나간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에 용기를 선사한다. (10~11쪽) 지난 100년 지성사에서 어떤 담론을, 어떤 지식인을, 어떤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걸까. 기억의 사회학이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함의한다. 그것은 기억의 성찰이자 기억의 미래다. (232쪽)"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을 사는 40~50대의 세대들은 산업화 시대에 태어나 민주화 시대에 젊은 날을 보냈고 세계화 시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특질을 저자는 고려대 교수를 역임한 정치학자 임혁백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통의 시간이 완전히 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화·민주화·세계화의 시간이 혼돈스럽게 공존하는 현실'로 지금을 이해하면서, 《채식주의자》 한강의 문학에 주목하고 그녀가 앞으로 펼쳐나갈 상상력의 모험을 기대한다.


지난 100년과 미래 100년을 잇는 오늘, 시대의 등불과 문제적 인간을 읽다


최근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어업지도원 사건은 남북 관계의 현재와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 시각에서 6.25라는 내전에 빠진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일기로 기록한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겨레의 미래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전쟁은 이념적 이분법을 강제한다. 우리 안에 도사리는 적개심을 부추기며, 결국 생각과 삶을 모두 파괴하고 만다. 《역사 앞에서》가 안겨주는 기억의 사회학적 메시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선 평화에의 염원일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미래 10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233쪽)"


60개의 꼭지로 이루어진 책은 매 꼭지마다 저자의 생각으로 글을 맺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로 마무리되는 글은 다가올 미래의 전망과 과제를 제시하거나 해당 지식인의 사상과 업적의 의미를 평가한다. 매 꼭지마다 붙어 있는 저자의 이러한 생각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과 생각에 동참하기를 권유한다. 쉽지 않은 질문이고 가치지향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섣불리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의 폭과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안창호와 이광수를 비교해 읽는 것은 독립 운동의 관점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을 비교해서 읽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미래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에 대한 글은 종교적 지혜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분단시대 역사학과 분단체제 사회담론을 대표하는 강만길과 백낙청의 시각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과 족적을 남겼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 언급되는 일본의 강상중과 미국의 신기욱에 대한 글은 우리 안의 시각에서 벗어나 밖으로부터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저자도 밝혔듯이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아쉽게도 자연과학자는 두 명 밖에 언급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변화의 추세가 더욱 밀접히 관련되어가는 요즘을 생각하면 못내 아쉽지만 사회학자인 저자의 전공을 고려하면 이만큼도 대단하다 싶다. 우리의 지나간 100년의 현대 지성사를 압축적으로 살펴보고, 그속에서 주목되는 인물들의 다기다양(多岐多樣)한 관점과 핵심적 주장들을 간략하게나마 음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발판삼아 지난 100년을 대표하는 60명(+알파)의 시각과 저서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저자로서도 더없이 흐뭇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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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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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요일 오전이면 아버지는 늘 전축을 틀고 청소를 하셨다. 그러면 나와 누이들은 각자 맡은 방을 손걸레로 닦았는데, 그때 나오던 음악은 언제나 클래식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카타리'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의 칸초네 '무정한 마음'(Core’ Ngato)이다. 그때는 그게 왜 '아가리'로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흥얼대던 내 목소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책을 보니 청소할 때 듣는 클래식 음악도 있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 '판타지아'와 영화 '마법사의 제자'에서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청소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제목을 뽑은 듯한데 실제 들어보니 청소할 때 듣기에 좋은 밝고 경쾌하면서도 풍성한 곡이었다. 다만 요즘은 진공청소기를 주로 쓰다보니 청소할 때 음악을 듣기는 쉽지 않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서를 지향한다. 작가의 머리말에도 밝혔듯이 난해한 음악이론은 가급적 제외하고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책을 엮었다. 한 꼭지는 세심하게 길이를 다듬어 3~4페이지로 구성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딱 적당하다. 그리하여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하루에 한곡씩 총 90곡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QR코드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곡에 대한 흥미로운 사연들을 읽는 것은 특별하고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제공한다. 세계적 수준의 훌륭한 연주자들과 필하모닉의 명음반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다. 책에서 소개된 사연과 음악적 스토리를 떠올리며 곡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알찬 감상 팁까지 실려 있어 보다 깊이 있는 클래식 감상이 가능하다. 추천 음반은 멋진 덤이다.


'첼로의 구약성서'라는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첼로의 신약성서'라고 불리우는 베토벤의 <5개의 첼로 소나타>는 이름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냈다. 책의 각주로만 소개되어 있는 베토벤의 첼로곡을 일부러 찾아듣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9번 교향곡의 저주'도 재미있는데 베토벤 이후 많은 작곡가가 교향곡 9번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징크스라고 한다. 구스타프 말러는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은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결국 10번 교향곡을 완성치 못하고 죽었다.


<90일 밤의 클래식>은 클래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끝없이 풀어낸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작품의 풍부함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품과 작곡가, 그의 연인과 가족들에 대한 것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개인적 뇌피셜로 얘기하자면 <90일 밤의 클래식>은 천일야화로 불리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천일야화 속에서 세헤라자드는 목숨을 잃지 않으려 하루하루를 넘기 위해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 책의 저자 김태용은 하루의 끝에 아름다운 고전음악으로 우리의 밤을 다사롭게 해주는 '90일의 클래식야화'를 풀어냈다고 하겠다.


보통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알려진 <네순 도르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투란도트 공주의 끔찍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칼라프는 공주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것이고 내일이 밝으면 승리는 나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노래의 내용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최고의 시그니처 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지독한 혹평 속에 연주 불가 판정까지 받았다고 하며,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였던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매우 귀에 익은 선율이었다. QR코드로 본 연주 실황에서는 지휘자가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지휘를 하며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속력으로 질주하듯이!'라는 서곡의 느낌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살려내고자 한 것 같다.


<90일 밤의 클래식>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도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무소륵스키와 비제의 피아노곡 <어린이 놀이>는 눈앞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어린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Op. 64-1)>는 반려견이 자기의 꼬리를 잡으려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데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었고,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를 편곡한 <피아노 5중주>의 4악장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로 물가에서 힘차게 뛰노는 송어를 멋지게 형상화해낸 것이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다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고난도의 현란한 테크닉이 넘쳐나는 곡이어서 그것을 실현해 내는 연주자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이든의 <45번 고별 교향곡>은 클래식의 교향곡 연주에 익살스런 퍼포먼스(단원들이 중간에 악기를 들고 연이어 퇴장하는)를 추가하는 기발한 발상도 놀랍지만, 단원들의 휴가를 위한 하이든의 배려가 더욱 돋보였다.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 하이든의 넉넉한 성품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쉽게 읽고 깊이 있게 듣는 90일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90일 밤의 클래식>으로 '해설이 있는 음악'과 함께 하루의 끝을 차분히 마무리해보는 경험은 행복했다. 오랫만에 클래식 음악을 읽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좋았고, 무엇보다 책 표지에 쓰여진 카피와 작가의 머리말에서 얘기했던 집필의도가 충실히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클래식 문외한과 입문자, 클래식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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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위한 지식 - 그림, 우아한 취미가 되다
허진모 지음 / 이상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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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위한 지식>.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역사책인 줄 알았다. 책의 지은이가 허진모 님이었고,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의 컨텐츠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이라니~!, 그림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조합인가 어리둥절했다. 서둘러 머리말을 읽었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스스로 미술을 깨치는 과정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7쪽 인용)" 미술책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역사)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식을 위한 지식>은 책의 구성이 흥미롭고 감각적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저자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센스 넘치는 인상적인 제목들은 단번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미 알고 있을 화가들(2장)', '알듯 모를 듯한 화가들(3장)', '잘 모르지만 알면 좋을 화가들(4장)'에 나오는 화가들의 리스트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미술 실력(?)을 체크하고 있을 독자들이 눈에 선하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ㅎㅎ.



르네상스 미술의 3대 천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몇년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들의 작품을 만난 것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최후의 만찬, 피에타, 아테네 학당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진정을 기원해 본다. 벨기에의 자부심 루벤스는 두달 전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림공장' 시스템을 만들어 많은 주문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클림트에 대한 글은 '작품에 금칠하기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시작하고 있어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뭉크의 그림을 해골류, 좀비류, 불행한 풍경류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는 점도 기발하다. 르네상스 '4대 천왕'으로 꼽히는 티치아노를 제갈량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주유로 비유한 점은 탁월했다. 내가 한번 보고 좋아하게 된 이름 모를 작품이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었다는 것과, 그 작가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베르메르 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가장 놀랐던 건 다비드의 작품으로 실린 5개의 그림을 내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정작 책에 실린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조금 아쉽다. (ex. 피카소, 샤갈 등)



첫장에서 '상식에서 시작하는 미술사'를 다루고 마지막 장에서 '미술에 대한 생각의 흐름, 사조'를 다룬 것도 매우 지혜롭고 영리한 구성이다. 일상의 상식에서 끄집어낸 미술의 향기가 어느새 전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술사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의 완벽한 코스로 구성된 만찬을 즐긴 느낌이다.



원근법과 소실점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브루넬리스키의 걸작 두오모 성당과 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인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모두 피렌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르네상스의 중심이 어디인지를 알게 해준다. 바로크와 로코코를 끝으로 시대를 대표하며 미술계 전체를 아우르는 유행과 화풍은 사실상 끝났다고 한다. 삐뚤어졌다는 조롱에서 장엄한 화려함으로 평가가 수정된 바로크 양식과, '샤방샤방'하고 경쾌한 화려함을 자랑하는 로코코 양식,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입학시험에서 고대 로마인의 석상을 그리는 것이 프랑스 아카데미즘 미술의 영향이라는 점도 미술사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모르면 지루하고 잠이 오는 법. 지식이 없는 감상은 미술을 따분한 것으로 생각케 하여 작품들을 눈으로 훑고 스쳐 지나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런 미술 왕초보에서 벗어나 그림과 대화하며 보다 의미있는 감상을 할 수 있는 일정한 안목을 갖추게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림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휴식을 위한 지식>은 '그림 앞에서 잠시 멍해질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저자의 뜻을 상당 부분 이루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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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2 - 베토벤, 불멸의 환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2
민은기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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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음 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줄여서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가 벌써 4권까지 나왔다. 작년 2019년에 1권과 2권이 나왔고, 이어서 올해 2020년에 3권과 4권이 출간된 것이다. 1권이 모짜르트, 2권이 베토벤, 3권이 바흐, 4권이 헨델이다. 보통은 어떤 책이라도 1권부터 읽는 습관이 있는데, 2019년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고 하니 마음이 흔들린다. 비록 한해가 지났다 해도 어떻게 베토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모짜르트는 다음으로 기약하자~^^*



같은 출판사(사회평론)에서 나온 양정무 선생의 <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더욱 기대가 컸다. 미술책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이었는데, 음악책은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으로 살짝 바뀌었다. 특히 책 속 QR코드를 스캔하거나 난톡(난처한+Talk) 홈페이지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들어보는' 생생한 클래식 수업이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 2 : 베토벤, 불멸의 환희>는 글의 중간중간 질문이 들어있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부드럽고 막힘없이 읽힌다. 서로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이어서 마치 개인교사가 일대일로 클래식을 가르치며 지도해주는 듯하다. 딱딱하지 않고 다사로운 문체가 글을 부드럽게 뒷받침하는 가운데 베토벤의 다채로운 일화들과 그의 음악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베토벤은 흔히 모차르트와 비교된다. 모차르트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아름다운 곡을 써냈다면, 베토벤은 곡을 쓸 때마다 매번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두 거장의 존재는 마치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과 두보를 보는 듯하다. 이백이 두보보다 10여년 먼저 태어난 것도 비슷하다. 이백이 일필휘지로 자유분방하게 시를 써 시선(詩仙)이 되었다면, 두보는 절차탁마하듯 정성들여 시를 써 시성(詩聖)의 이름을 얻었다고 들었다.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불리고 베토벤은 악성(樂聖)으로 불리니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참 공교롭다.


베토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궁정음악가를 지낸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다. 6살에 첫 연주회를 했고 11살에 피아노 변주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였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그는 16살에 어머니의 사망으로 사실상 소년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막시밀리안 선제후의 도움으로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당대 문화의 중심지 빈으로 가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의 나이 21살 때였다.



베토벤은 같은 사람이 작곡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기별 음악 특징이 뚜렷하게 갈린다고 한다. 초기는 고향에서 성장하던 시기, 중기는 빈에서 화려하게 활동했던 시기였다. 후기는 침체 속에서도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갔던 시기이다. 책은 이러한 시기를 따라가며 베토벤의 굴곡진 인생과 성패, 작품의 특징과 변화 양상을 꼼꼼히 짚어냈다. 베토벤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극적이고 감동이었다.


빈에 도착한 베토벤은 먼저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렸다. 피아노 교본 시리즈로 유명한 체르니가 바로 그의 제자였다. 베토벤을 성공으로 이끌어준 일등 공신은 슈비텐 남작이었으나, 그의 최고의 후원자는 리히노프스키 공작이었다. '월광 소나타'는 사랑에 빠진 줄리에타에게 선물한 작품이었고, '엘리제를 위하여'는 그의 악필로 인해 만들어진 이름이었으며,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는 안토니 브렌타노였다. 화음과 화성법에 정통한 베토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화음을 연결하며 긴장감을 능숙하게 조절함으로써 마치 드라마 같은 악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느낌은 정말 색달랐다. 지금까지 나의 독서에서 음악은 단지 배경일 뿐이었다.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책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종의 백색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교향곡 5번을 동시에 듣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책의 내용이 한결 이해가 쉽고 책과 음악이 더 깊이있게 다가왔다. 베토벤과 그의 음악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감동도 배가되는 느낌이다.


사실 운명 교향곡의(그외 다른 곡을 모두 포함해서) 이런 다양하고 세밀한 장치들을 그 누가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인가? 1악장 2주제에, 아니 운명 교향곡 전체에서 '운명의 동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책에 실린 악보를 보며 집중해서 들어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도 못했을 내용이다. 특히 리듬만 같을 뿐 음높이와 빠르기가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렇듯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베토벤과 그의 음악에 더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은 시대를 앞서간 음악의 위인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열었고 새로운 전범을 창출해 후세의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술자로 취급됐던 음악가를 예술가의 반열로 올려놓았고, 음악이 계속 남으리라 생각하며 자기가 만든 음악에 일일이 작품번호를 매겼다. 서른살 무렵에는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작곡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악기의 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소리에 의지하며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생의 후반에 만든 '합창 교향곡'과 '현악 4중주 14번'은 갈등과 대결을 넘어 세상과 화해하고 싶었던 그의 메시지이다.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2 : 베토벤, 불멸의 환희>는 참으로 행복한 책읽기였다. 독서와 음악이 이렇게 한데 절묘하고도 완벽하게 어우러질수 있다니~! 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이어서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의 멋진 기획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다면, 베토벤에 관심이 있다면 꼭 보시기를, 그것도 반드시 음악과 함께 책읽기를 하실 것을 감히 강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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