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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9월
평점 :

작년 2019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출범한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는 뜻이다. 독립과 건국을 위해 전개된 다방면의 노력과 운동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되짚어보고, 그렇게 성취된 우리의 민주공화국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색해보는 다양하고 뜻깊은 행사들이 기획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저작들이 작년과 올해 연이어 출판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의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도 그러한 결과물 중의 하나이다.
저자 김호기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와 시민사회, NGO와 시민운동, 지식인과 시대정신 등을 키워드 삼아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깊이 천착해온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진보적 사회학자이다. 그는 이미 2002년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첨단공학, 예술 및 대중문화 등을 포괄한 29개 분야의 학문적 쟁점을 소개하고 그 토론과 전망을 보여주는 책 <지식의 최전선>을 선보였다. 작년 2019년에는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함께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60명의 지식인을 통해 살펴보는 대한민국 100년의 지성사(知性史)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되는 60명의 지식인에는 독립운동가, 종교인, 철학자, 문학인, 예술가, 역사학자, 정치가, 경제학자, 여성학자, 자연과학자 등등 실로 다양한 면면을 자랑한다. 이처럼 방대한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저자의 박학강기에 놀랄 따름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한국일보에 2018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연재했던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책의 집필 의도는 다음의 문장에서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미래는 과거 기억의 현재적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일궈나가는 과정이다. 기억은 지나간 역사의 증거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에 용기를 선사한다. (10~11쪽) 지난 100년 지성사에서 어떤 담론을, 어떤 지식인을, 어떤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걸까. 기억의 사회학이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함의한다. 그것은 기억의 성찰이자 기억의 미래다. (232쪽)"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을 사는 40~50대의 세대들은 산업화 시대에 태어나 민주화 시대에 젊은 날을 보냈고 세계화 시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특질을 저자는 고려대 교수를 역임한 정치학자 임혁백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통의 시간이 완전히 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화·민주화·세계화의 시간이 혼돈스럽게 공존하는 현실'로 지금을 이해하면서, 《채식주의자》 한강의 문학에 주목하고 그녀가 앞으로 펼쳐나갈 상상력의 모험을 기대한다.
지난 100년과 미래 100년을 잇는 오늘, 시대의 등불과 문제적 인간을 읽다
최근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어업지도원 사건은 남북 관계의 현재와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 시각에서 6.25라는 내전에 빠진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일기로 기록한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겨레의 미래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전쟁은 이념적 이분법을 강제한다. 우리 안에 도사리는 적개심을 부추기며, 결국 생각과 삶을 모두 파괴하고 만다. 《역사 앞에서》가 안겨주는 기억의 사회학적 메시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선 평화에의 염원일 것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미래 10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233쪽)"
60개의 꼭지로 이루어진 책은 매 꼭지마다 저자의 생각으로 글을 맺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로 마무리되는 글은 다가올 미래의 전망과 과제를 제시하거나 해당 지식인의 사상과 업적의 의미를 평가한다. 매 꼭지마다 붙어 있는 저자의 이러한 생각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과 생각에 동참하기를 권유한다. 쉽지 않은 질문이고 가치지향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섣불리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사고의 폭과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안창호와 이광수를 비교해 읽는 것은 독립 운동의 관점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을 비교해서 읽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미래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에 대한 글은 종교적 지혜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분단시대 역사학과 분단체제 사회담론을 대표하는 강만길과 백낙청의 시각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과 족적을 남겼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 언급되는 일본의 강상중과 미국의 신기욱에 대한 글은 우리 안의 시각에서 벗어나 밖으로부터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저자도 밝혔듯이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아쉽게도 자연과학자는 두 명 밖에 언급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변화의 추세가 더욱 밀접히 관련되어가는 요즘을 생각하면 못내 아쉽지만 사회학자인 저자의 전공을 고려하면 이만큼도 대단하다 싶다. 우리의 지나간 100년의 현대 지성사를 압축적으로 살펴보고, 그속에서 주목되는 인물들의 다기다양(多岐多樣)한 관점과 핵심적 주장들을 간략하게나마 음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발판삼아 지난 100년을 대표하는 60명(+알파)의 시각과 저서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저자로서도 더없이 흐뭇하리라~!